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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에서 새해를 맞는 동포들의 이야기] 고려인이 제1 부자인 나라, 카자흐스탄에서의 새해

 

"찰떠기(찰떡), 증편, 감자 배고자(녹말가루 만두피로 빚은 고기만두), 짐치(김치), 마르꼬프채(당근채), 고사리채, 국시..."

 

김 베라(85) 씨는 새해를 함께 맞이하기 위해 곧 들이닥칠 자녀와 손주들을 위해 정성스럽게 우리 음식을 준비하며 그 이름을 말해주었다.

 

평소에도 음식상을 차리고 이웃들을 초대해서 함께 나누기를 즐겨 하는 김베라 비단길 합창단장은 "예전에 우리 어머니는 새해가 되면 이것보다 더 많은 음식을 준비해 놓고 공부하러 도시에 나가 있던 우리들을 기다리셨소” 라며 웃으며 말했다. 

 

2025년 새해를 맞은 카자흐스탄 고려인 동포들은 베라 단장네처럼 가족들이 모여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을 나눠먹으며 행운과 건강을 기원한다.  

 

시계 바늘이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자정을 가리키는 순간 한자리에 모인 가족들은 샴페인을 터뜨리며 소원을 빌고 새해를 축하한다. 이때부터 화려한 불꽃놀이가 시작되고 도시의 밤하늘은 대낮처럼 환해진다.

 

올해도 어김없이 어린 자녀들의 손을 잡고 아파트 놀이터나 시내 광장으로 나와 미리 준비해둔 폭죽을 함께 쏘아 올리는 가족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만, 여러 가지 방식으로 고국과의 연결을 이어가며 2025년 새해를 맞은 고려인 동포들은 고국에서 발생한 비극적인 항공기 참사에 대한 깊은 애도 분위기 속에서 맞이했다는 것이 예년과 다를 뿐이다. 

 

 

■ 고려인은 카자흐스탄에 언제부터 살기 시작했나 ?

 

카자흐스탄 동포들의 역사는 193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연해주 지역에 살던 우리 동포들이 1937년에 지금의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 이주를 당했기 때문이다. 

 

연해주 지역은 1860년 러시아 땅으로 편입된 후부터 두만강을 건너가는 동포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고, 조국이 일제 식민지로 전락하자 국권 회복의 꿈을 안고 망명한 독립지사들이 대거 합류하면서 동포사회가 만들어지고 해외 항일독립운동의 근거지가 된다.

 

실제로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의 빛난 승리, 하얼빈에서의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등은 연해주 동포사회라는 든든한 뒷배가 없었다면 성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고려인들은 1937년 7월, 일제가 중일전쟁을 일으키며 대륙 침략을 시작하자 연해주마저 침략당할 것을 두려워한 소련 당국에 의해  '일제 스파이 혐의'를 받고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된다.

 

1937년 8월부터 시작된 이주는 그 해 12월 초순에 완료되는데, 이로써 중앙아시아 고려인 동포사회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카자흐스탄에 이주한 첫해(1938년) 봄에 고려인 꼴호즈(집단농장)들은 2만1천 347헥타르의 땅에 쌀과 곡물, 사료 작물 등의 씨를 뿌렸다. 고려인들은 중앙아시아라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시작했지만 1941년 터진 전쟁(제2차 세계대전)으로 다시 고난을 겪게 된다.

 

고려인들은 이미 '일본 스파이 혐의'를 받고 중앙아시아로 이주 당한지라 전선으로 갈 수 없었고 대신 후방의 산업현장에 배치되어 생산 활동을 해야 하는 노동군에 편성되었다. 이들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산업 즉, 카자흐스탄의 석탄, 야금, 우랄 및 시베리아 등지에서 일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접어들자 고려인들은 농업 부문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게 된다. 기존 고려인 꼴호즈에서는 키가 6미터나 되는 옥수수 재배를 성공시키는가 하면, 새로운 경작지를 만들고 벼농사와 면화 재배를 성공시킴으로써 중앙아시아의 농업 혁명에 큰 기여를 하게 된다.

 

동시에, 중앙아시아 이주 후 단절되었던 모국어 교육과 전통문화의 보존, 계승에도 주의를 기울였다.

 

그러나 동포사회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당시 소비에트 당국의 원칙으로 인해 모국어로 가르치고 자신들의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려는 노력은 결실을 맺지 못하고 금지됐다. 그러다 고르바초프의 등장과 그가 소련 사회에 활기를 불어넣고자 시도했던 개혁개방정책으로 인해 50여 년 만에 기회를 갖게 된다. 

 

때마침 이뤄진 한-소 수교로 현지에 한국 대사관이 세워지면서 일부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현재, 현재 12만여 명의 고려인들이 사는 카자흐스탄은 구소련 지역 중에서 유일하게 고려인 동포 수가 증가하는 국가이다.

 

이는 러시아와 우즈베스탄 등지에 거주하는 고려인의 수가 자연증가분을 상쇄할 만큼 외부로의 유출이 심한 반면, 주변 구 소련 국가에 비해 경제사회적 환경과 인구학적 조건들이 더 유리한 카자흐스탄에는 주변국으로부터 유입되는 동포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카자흐스탄에는 고려인의 이름을 딴 거리가 32개나 있으며, 끄즐오르다에는 홍범도 기념공원과 홍범도 거리가 조성되어 있고, 지역 박물관에는 고려인들의 뛰어난 업적을 기리는 전시물이 게시되어 있다.

 

매년 포브스 지가 매년 발표하는 카자흐스탄의 자산 순위 50위 명단에 해마다 7명 정도의 고려인들이 포함되어 왔다. 

 

2024년에는 김 베체슬라브 카스피 은행 회장이 1위, 4위에 김 블라지미르 카작므스 회장, 13위에 오 에두아르드, 31위에 강 세르게이, 38위에 채 야콥, 43위에 김 에두아르드 테크노돔 회장이 각각 이름을 올렸다.

 

뿐만 아니라 카자흐스탄 역사 국정교과서의 저자도 고려인이다.  가히 카자흐스탄은 고려인의 나라라고 착각하게 만들 정도로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나고 있다. 강 게오르기 교수가 쓴 역사 교과서는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교양 교재로 채택되었고, 중국어로도 출간되었다.

 

 

■ 고려인들의 새해 바람

 

2025년은 광복 80주년으로써 항일독립투사들의 후손인 고려인들에게는 특히나 의미 있는 해이다. 이와 관련해 카자흐스탄 동포사회를 대표하는 몇 분들에게 신년 덕담을 부탁드렸다. 

 

강 게오르기 교수는 아직도 한국 사회의 극히 일부에선 고려인을 차별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 남아 있는 것 같다고 아쉬워하며 “일제가 한반도를 침략해서 얼마나 극심하게 민족 차별과 착취를 했으면 정든 고향 땅을 등지고 타향살이를 했겠는가를 한 번쯤 생각해 봐주면 좋겠다”면서 선조들이 두만강을 건너 연해주로 이주하게 된 원인에 대한 관심이 고려인 이해의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무안공항 항공기 사고 희생자들의 명복을 비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알마티고려민족중앙회 부회장으로서 청년 세대를 대표하고 있는 지 다미르씨는 “선진 한국을 직접 눈으로 보고 그런 한국을 배우고 싶어 하는 2030 고려인 세대들은 모국어 상실을 부끄러워했던 부모 세대와 달리 자신이 좋아하는 드라마 속의 한국과 K-POP으로 대표되는 K-문화에 대한 관심 때문에 한국어를 배운다”면서 “일자리를 찾아 모국행을 선택하는 고려인들이 늘고 있고  ’할아버지의 고향, 한국’ 이 아니라  ‘문화적 선진국, 한국’으로 인식하는 젊은 고려인 또한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제 이주 열차를 타고 오던 당시를 생생히 기억하고 계신 올해 95세의 박 이반 교수(고려인원로회장)는 새해에는 한국과 카자흐스탄이 더욱 가까워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말한 뒤  “대부분의 고려인들은 현지에서 잘 팔리는 삼성의 핸드폰과 현대 자동차를 구매하고 동시에 자랑스러워하지만 남북이 통일되는 것을 더욱더 자랑스러워하고 싶어 한다”는 뼈 있는 한마디를 덧붙이기도 했다.

 

 

최근에는 유학이나 일자리를 찾아서 한국에 나와 있는 재한 고려인 동포들이 10만 명을 넘어서고 있는가 하면 일부 고려인들은 한때는 구 소련의 일부로써 언어장벽이 없고 사회시스템이 비슷해서 현지 적응과 일자리 찾기가 수월한 러시아 지역으로 떠나는 이들도 있다.

 

또한 학업과 직장 또는 결혼 등의 이유로 유럽 각국에 거주하는 이들도 있다.

 

이렇듯 다양한 지역에 거주하는 고려인들도 가입되어 있는 카자흐스탄의 동포 단체 대화방에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고려인 동포들이 올린 새해 인사말로 가득 찼다.  그들이 올린 글들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맺고자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건강, 일상의 평안과 행복을 기원하며, 2025년이 모두에게 평화로운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 글=김상욱 고려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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