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반도체·이차전지·바이오·인공지능(AI)·로봇 등 첨단전략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총 100조 원 규모의 지원 방안을 내놓았다. 산업은행에 50조 원 규모의 ‘첨단전략산업기금’을 신설하고, 시중은행이 추가로 50조 원을 공급하도록 유도해 총 100조 원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5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주재로 열린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이러한 내용의 첨단전략산업기금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신설되는 기금은 20년간 운영되며, 산업은행이 후순위 투자자로 참여하면 시중은행이 지분 투자와 공동 대출 등을 통해 추가로 50조 원을 공급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번 지원책은 트럼프 신정부의 보호무역 기조에 대응하는 동시에, 은행권의 ‘이자 장사’ 논란을 해소하고 생산적 금융으로의 전환을 유도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금융권이 기존 대출 중심에서 벗어나 지분 투자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기금이 후순위 투자를 하면 국제 금융규제(BIS 기준)에 따라 은행의 지분 투자 여력이 최대 4배까지 확대될 수 있다. 기금이 최소 7.4%의 후순위 투자를 하면 위험가중치(RWA)가 1250%로 계산되지만, 은행의 선순위 투자 위험가중치는 기존 250~400%에서 100%로 낮아진다. 이에 따라 은행의 리스크 부담이 줄어들어 적극적인 투자가 가능해진다.
정책금융기관인 산업은행의 부담도 완화될 전망이다. 기존에는 산업은행이 직접 정책자금을 조달해야 해 대규모 레버리지를 일으키기 어려웠으나, 이번 기금은 산업은행과 별도로 운영돼 부담이 줄어든다. 이에 따라 해상풍력 등 대규모 인프라 사업에도 적극적인 투자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기금의 후순위 투자뿐만 아니라 공동 대출과 구매자 금융 등 다양한 방식으로 시중은행의 참여를 유도할 계획이다. 권유이 금융위원회 과장은 “은행들이 기업 대출을 확대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첨단전략산업은 충분한 현금 흐름이 있는 만큼 은행들도 투자에 적극 나설 유인이 크다”고 설명했다.
은행권도 이번 지원책을 통해 기존 이자 수익 중심의 영업에서 벗어나 실물 경제 지원에 나설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4대 금융지주는 역대 최고 수준인 42조 원의 이자 이익을 거두며 ‘이자 장사’ 논란에 휩싸였다. 정부는 이번 첨단전략산업 지원을 계기로 금융권이 보다 적극적인 투자에 나서기를 기대하고 있다.
다만, 시중은행의 참여 규모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권 과장은 “은행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할지가 이번 정책의 성패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 경기신문 = 고현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