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가 주주총회를 앞두고 이사회 개편에 나섰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선호해 왔던 금융관료 출신 인물 대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영입하며 이사회의 전문성과 다양성을 확대했다. 다만 사외이사 교체 폭이 30%에도 미치지 못하는 등 금융지주들이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거수기' 논란은 이어질 전망이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4대 금융지주는 임기 만료를 앞둔 사외이사 23명 중 9명에 대해 새로운 후보를 추천했다. 총 32명의 사외이사 가운데 28%를 교체하는 셈이다. 새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된 이들은 이달 말 주주총회를 거쳐 정식으로 선임될 예정이다.
눈에 띄는 점은 전직 금융관료 대신 ICT, 내부통제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영입됐다는 점이다. 통상적으로 금융지주들은 규제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해 금융당국과 소통이 원활한 금융관료 출신의 사외이사를 선호해 왔다.
KB금융은 권선주 전 기업은행장(이사회 의장)과 오규택 중앙대 교수의 후임으로 차은영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 김선엽 이정회계법인 대표이사를 추천하며 금융·경제 전문성을 확대했다. 차 후보는 금융권 사외이사 재직 경험이 풍부하고 금융기관의 자문도 활발히 맡아 온 경제 전문가다. 김 후보는 한국과 미국의 공인회계사자격증을 모두 보유한 회계 전문가다. 하나금융 역시 전통적인 금융·경제 전문가인 서영숙 전 SC제일은행 전무를 새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신한금융의 경우, 사외이사의 다양성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새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된 양인집 어니컴 대표이사는 ICT 기업을 오랜 기간 이끌어 온 디지털·ICT 전문가다. 함께 추천된 전묘상 일본 스마트뉴스 운영관리 총괄은 일본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보유한 회계·재무 전문가다. 신한금융은 전 후보 영입을 통해 여성 사외이사 비율을 업계 최고 수준인 45%까지 끌어올렸다.
우리금융은 사외이사 7명 중 4명을 교체하며 가장 큰 쇄신에 나섰다. 이영섭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이강행 전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 김영훈 전 다우기술 대표, 김춘수 전 유진기업 대표 등 각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이들이 새로운 사외이사로 합류하게 됐다.
특히 지난해 손태승 전임 회장 친인척 관련 부당대출 사건으로 홍역을 치렀던 만큼 이번 개편에서 감사위원을 모두 교체하고, 리스크관리위원회 인원을 확대하는 등 내부통제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다만 우리금융을 제외한 대부분의 금융지주들이 올해에도 소규모 변화를 선택하면서 지난 몇 년 동안 이어졌던 '거수기' 비판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금융지주 사외이사들은 이사회 안건을 관행적으로 승인하며 경영진에 대한 감시·견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실제로 4대 금융이 공시한 '2024 지배구조 및 보수체계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이들은 총 54건의 이사회를 개최했지만 상정된 안건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한 사외이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일부 이사들을 제외하고는 보고된 안건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지도 않았다.
금융당국 역시 내부통제 강화를 주문하며 그 일환으로 이사회의 독립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5대 금융지주를 불러모아 사외이사의 내부통제 역할 강화를 당부하며 "이사회의 전문성 함양은 금융회사 차원의 균형감 있고 투명한 의사결정을 이루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 경기신문 = 고현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