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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적인 일상] 기다림의 미학

 

경기도민에게 버스를 기다리던 시간은 언제나 무자비하게 길다. 몇 분 남지 않았다는 표시가 전광판에 뜨지만, 체감 시간은 늘 그보다 길었다. 기다림의 시간을 줄이기 위해 스마트폰에 몰두한다. 하지만 가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주위를 바라볼 때가 있다.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날씨의 모습,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 그냥 세상의 모습. 그렇게 기다리는 동안 나는 오히려 멀리 떠나 있던 마음을 불러와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

 

우리는 흔히 기다림을 불필요한 시간, 낭비되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하고, 다음 것을 하기 전의 공백. 빨리 결과를 보고 싶고, 계획이 당장 이루어지길 바라며 조급해한다. 그러나 기다림의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을 들여다보고, 주변을 살피며, 더 깊은 이해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들수록 이 단순한 사실이 점점 더 크게 다가온다. 기다림 속에서 작은 변화와 새로운 생각이 싹트는 경험을 자주 하게 되면서, 그 시간은 결코 허비되지 않음을 깨닫는다.

 

병원에서 번호표를 들고 차례를 기다릴 때, 전철역에서 출발을 기다릴 때, 혹은 커피가 다 내려오기를 기다릴 때. 이 시간들은 모두 사소하고 불필요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우리를 단련시키는 힘이 숨어 있다. 기다림은 나를 멈추게 하고, 눈앞의 풍경을 다시 보게 한다. 내가 사는 세상이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고, 조금 더 천천히라는 목소리를 듣게 한다. 때로는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숨을 고르고, 나만의 리듬을 찾게 해주는 고요한 시간으로 작용한다.

 

우리는 효율과 속도의 시대를 살고 있다. 더 빠른 인터넷, 더 신속한 배달, 더 빠른 학습법. 그러나 정작 가장 중요한 깨달음은 빠른 길에서 얻어지지 않는다. 느리고 불확실한 길 위에서, 답이 바로 나오지 않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고 성찰한다. 기다림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지식을 건네준다. 때로는 그저 버티는 시간이 아니라, 보이지 않던 것들을 알아차리게 한다.

 

나는 이제 기다림을 피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다림 속에서 배운다. 불편함을 참는 법을 배우고, 예측할 수 없는 시간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다. 그것은 곧 성숙한 어른이 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당장 결과에 쫓기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 기다림을 통해 우리는 현재를 사는 법을 다시 연습한다.

 

돌아보면, 내 삶의 중요한 순간들은 모두 기다림을 통과했다. 오디션의 합격 발표를 기다리고, 공연의 막이 오르기 직전, 누군가의 답장을 기다리던 조용한 밤. 그 시간들은 길게만 느껴졌지만, 결국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이제 나는 이렇게 믿는다. 기다림은 불필요한 시간이 아니다. 우리가 마음을 열고 바라본다면, 기다림은 이미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고 있다. 조금 더 성숙하게, 조금 더 온전하게 살아가도록 이끌고 있다.

 

그러니 기다림 앞에서 조급해하지 말자. 기다림이란 삶이란 여정 속 어느 길목에서 맞이하는 필요한 시간이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다잡고, 세상을 새롭게 배우며, 내일을 준비한다. 기다림은 곧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공백의 시간이자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배움의 시간이다. 그리고 이 시간을 충분히 경험할 때, 우리는 조금 더 단단하게, 조금 더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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