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의 흔적은 낡은 건물 벽 틈, 바래진 간판, 닳아진 기둥 속에 스며 있다. 한때는 사람들의 일상과 기억을 담던 공간도 기능을 잃는 순간 빠르게 잊히지만 경기도 곳곳에서는 과거의 껍질을 벗고 새로운 숨결을 얻은 장소들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하수처리장은 정원으로, 폐교는 문화촌으로, 창고는 쉼터로 변신하며 낡음과 새로움이 공존하는 공간은 시민들에게 위로와 영감을 동시에 건넨다.
■ 하수처리장이 정원으로 성남 ‘물빛정원’
성남의 탄천과 동막천이 만나는 자리에 자리한 성남물빛정원은 한때 하수처리장이었다. 30년간 흉물처럼 방치됐던 공간이 올해 시민의 정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달항아리 형태의 조형물이 놓인 담빛쉼터, 계절마다 꽃이 피어나는 꽃대궐정원, 가족 단위 나들이객이 모이는 소풍마당 등이 대표적이다. 곳곳에 남아 있는 옛 건물들은 현대적 정원과 어우러져 과거와 현재의 공존을 보여준다. 9월부터는 뮤직홀과 카페도 문을 열어 문화휴식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예정이다.

■ 폐교가 문화촌으로 평택 ‘웃다리문화촌’
평택 금각초등학교는 2000년 문을 닫은 뒤 6년간 방치됐지만 지금은 웃다리문화촌으로 변신했다. 교실은 전시실, 별관은 세미나실과 쉼터로 바뀌어 시민들을 맞이한다.
교내의 화단에는 아기자기한 조각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오줌싸개’ 동상이나 ‘책 읽는 소녀’ 석고상이 있었을 법한 자리다. 학생들이 뛰어놀던 운동장은 초록색 잔디가 깔려 있고 주변은 키 높은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이 둘러서 있어 마치 울타리처럼 아늑하다.
상설전시관에는 학교와 마을의 자료가, 기획전시실에는 다양한 예술 작품이 들어선다. 운동장과 메타세쿼이아 숲은 옛 정취를 살리며 폐교의 흔적 위에 새로운 문화를 입힌 열린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산업시설이 복합문화공간으로 시흥 ‘맑은물상상누리’
생활하수를 처리하던 시흥의 옛 시설은 ‘맑은물상상누리’라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바뀌었다. 하수처리 과정을 알기 쉽게 소개하는 창의센터, 영화 세트를 연상케 하는 비전타워, 가스 저장소를 개조한 미디어아트 전시관 등이 대표적이다.
하수처리 과정의 가스 저장소는 미디어아트 전시관으로 변신해 시흥의 명소들을 보여준다. 딱딱한 의자가 아니라 푹신한 쿠션이 깔린 바닥에 누워서 관람할 수 있어 더욱 색다르다.
일부 시설은 수생정원과 분수대로 변해 창의적 재생 사례로 꼽힌다. 이곳은 버려진 공간이 상상력으로 어떻게 되살아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소다.

■ 채석장이 시민공원으로 안양 ‘병목안시민공원’
수리산 자락에 자리한 병목안시민공원은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 철도 자갈을 채취하던 채석장이었다. 지금은 벚꽃, 숲, 단풍, 눈으로 사계절을 달리하며 시민을 맞는다.
황토 맨발길, 넓은 잔디마당, 인공폭포가 인기 명소이며, 당시 사용하던 석재 운반용 객차도 전시돼 있다. 공원 우측에 있는 캠핑장은 계곡과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국립공원의 야영장이 부럽지 않은 풍경으로 가족 단위 여행객들에게 인기다.

■ 창고가 마을 카페로 양주 ‘봉암창고카페’
비료를 보관하던 낡은 농협 창고는 주민들이 힘을 모아 카페로 되살렸다. 내부는 높은 천장과 긴 테이블 덕분에 개방감을 주며 벽면에는 봉암마을 사진과 오래된 간판들이 걸려 있어 공간의 역사를 전한다.
주민 협동조합이 직접 운영하는 이곳은 공동체가 만들어낸 쉼터이자 여행자에게는 작은 울림을 주는 장소다.
자세한 정보는 각 시설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 경기신문 = 류초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