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02 (금)

  • 맑음동두천 -13.0℃
  • 맑음강릉 -7.5℃
  • 맑음서울 -11.0℃
  • 맑음대전 -10.2℃
  • 맑음대구 -7.3℃
  • 맑음울산 -6.8℃
  • 맑음광주 -6.8℃
  • 맑음부산 -5.7℃
  • 흐림고창 -7.0℃
  • 비 또는 눈제주 1.3℃
  • 맑음강화 -11.0℃
  • 맑음보은 -12.2℃
  • 구름많음금산 -9.2℃
  • 맑음강진군 -4.4℃
  • 맑음경주시 -7.5℃
  • 맑음거제 -3.7℃
기상청 제공

[박인하의 다정한 편지] 사랑의 역법

 

책 한 권 크기의 탁상 달력을 받았다. 1월부터 12월까지 새겨진 달력을 한 장씩 넘겨 본다. 공휴일과 기념일을 표기한 붉은 숫자들을 세어 보고, 작은 글씨로 적힌 음력과 절기들을 눈으로 더듬는다. 한 해가 시작되었다. 이 빼곡한 숫자들 속에 숨겨진 날들은 어떤 사건을 데리고 나에게 올 것인가,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러고 보니 크리스마스를 기념해 나오는 어드벤트(Advent) 캘린더가 떠올랐다.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매일 작은 상자를 하나씩 여는 어드벤트 캘린더는 기념일을 기다리는 마음을 잘 활용한 물건이다. 상자 안에는 대개 초콜릿이나 미니어처 같은 것들이 들어 있다. 대단하지는 않지만, 하루의 시작을 설렘으로 채워 주기에는 충분한 것들이다. 새날이 시작되었다. 삼백예순다섯 개의 상자가 도착한 셈이다.

 

상자에서 나올 물건의 크기나 내용은 대개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무엇이 들어 있을지 기대하게 된다. 그 안에 있을 작은 기쁨을 떠올리며 상자를 여는 일은 가슴을 조금 뛰게 한다. 그렇다고 특별한 것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별다른 게 없을 걸 알면서도 상자를 열고, 그래서 실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안에 든 것이 크지 않다는 사실이 마음을 가볍게 한다. 큰 기대는 실망을 동반하지만, 작은 기쁨은 하루를 무사히 시작하게 한다. 그렇게 하루를 여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매일은 조금씩 선물이 되어간다. 우리에게는 아직 열어보지 않은 상자가 삼백예순다섯 개 있다.

 

옛날에는 연말이 되면 달력을 주고받는 일이 흔했다. 그 시절 달력에는 계절에 맞게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배우들의 사진이 실려 있었고, 시골 할머니 댁 안방에는 커다란 숫자가 적힌 종묘 회사의 홍보용 달력이 걸려 있었다. 달력은 집안의 벽 한쪽을 차지하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이들은 아주 큰 동그라미로 자신의 생일을 표시했고, 어른들은 제사와 친인척의 대소사를 빠짐없이 적어 두었다. 달력에 왜 그렇게 많은 것들이 적혀 있었을까. 돌이켜보면 달력에 남겨진 글씨들은 계획이라기보다, 그날을 소홀히 지나치지 않으려는 표시였던 것 같다. 커다란 동그라미가 그려진 달력이 있던 시절이 문득 그립다.

 

요즘은 집안에서 달력을 보기 어렵다. 달력을 구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예전처럼 벽에 걸어둘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하루를 기록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방식으로, 더 부지런히 기록하며 산다. 사진을 남기고, 메모를 하고, 하루의 장면들을 저장한다. 그 모든 기록은 결국 오늘이라는 하루가 아무 의미 없이 지나가 버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다시 내 앞에 놓인 탁상 달력을 넘긴다. 아직 아무것도 표시하지 않은 날짜들이 있다. 아직 열리지 않은, 어드벤트 캘린더가 우리 앞에 있다.

 

달력의 빈칸마다 적히지 않은 이야기들이 이미 가득하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날이 반짝일 수는 없다. 계획이 흔들리고, 사람으로 인해 마음이 다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상하지 못한 모험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잘 견뎌낸 날도, 아무 일 없이 지나간 날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 오지 않은 당신의 모든 날에 크게 동그라미를 그리고 조심스럽게 ‘좋아요’를 누른다. 그것이 내가 믿는 사랑의 모습이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