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모르면 한국서 어찌 살까? 국제규격에 알맞은 지식수준을 가졌음을 자랑하고 싶어서일까. 영어단어가 거리에서도 춤춘다. 영어를 한글로 쓰기도 하고, 영문자를 그대로 쓰기도 한다. 의미 없는 국적불명 말도 와글거린다. 언어의 속뜻을 공부하는 필자도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드물지 않다. 오늘의 주제는 ‘거리의 언어학’이다. 얼치기 영어가 거리를 질주하도록 방치되고 있다. 국어 버리고, ‘영어’를 수학과 함께 ‘필생의 과업’으로 삼는 나라의 영어 실력이 이 정도인가. 자동차 뒷 유리창에 세련된 디자인의 ‘baby in car’(베이비 인 카)라는 커다란 글자 스티커가 붙어있다. 차안에 아기가 있다는 말일까, 뜻만 통하면 된다고? 용(龍)과 드래곤(dragon)을 같은 단어로 아는 사람들의 평면적인 생각이다. 용은 드래곤이 아니다. 한국어로 외국어를 생각한다. 비교언어학의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이다. 영어의 명사(noun)에 ‘a’ 또는 ‘the’ 같은 부정관사(不定冠詞)나 정관사가 꼭 붙는 것을 모든 학습자는 영어 공부 초기에 꼭 배운다. 잊었을까? 없으면 다른 뜻이 될 수도 있다. ‘baby’in(g) car’(베이빙 카)를 말하는 것이냐고 한 외국인이 농담처
지난 뉴스의 몇 대목이다. - 정호영 장관 후보자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40년 지기라는 말은 잘못된 말이며, “(윤 당선인이) 대구로 발령을 받고 1년에 두어 번씩 만났다.”고 밝혔다. -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은 ... ‘40년 지기란 표현은 잘못 알려진, 잘못된 사실’이라며 선을 그었다. - ... “정 후보자도 ‘지기’라는 표현이 민망하다고 언론에 말한 걸로 안다.” 지기(知己)냐, 아니냐의 거북한 논란인가. ‘그다지 가까운 사이의 친구는 아니다.’라는 얘기를 저런 식으로 표현하게 된 상황이 이채롭다.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내내 ‘나는 당당하다.’고 강변했던 정호영 장관 후보자는 결국 낙마하고 말았다. ‘자기를 아는 친구’ 지기지우(知己之友)의 준말 知己. 사전에는 친우(親友), 벗과 함께 지음, 심우(心友) 등이 ‘비슷한 말’로 열거돼 있다. 어떤 친구가 ‘지기’인가? 안다는 뜻 知 글자가 붙은 지음(知音)의 뜻을 새기면 ‘보통 친구’와의 차이를 짐작할 수 있을까? 知音은 대개 知己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 중국 춘추시대의 백아절현(伯牙絶絃) 고사다. 거문고 명인인 백아가 친구 종자기(鍾子期)를 병으로 잃고 슬픈 나머지 거문고 줄(絃)을 끊고(
칼럼 ‘심우도’를 시작할 때 쓴 글 한 대목이다. ‘... 손 모양 계(彐) 아래 만들 공(工)과 입 구(口)다. 다시 쓰면 左(좌)와 右(우)다. 아래는 손목에 점찍은 마디 촌(寸)이다. 어둠 속 안개바다를 좌우로 손 내밀어 나아가는 발걸음이다...’ ‘심우도’는 만해(卍海) 한용운 선생을 생각하며 지은 이름이다. 연애편지 같은 시(詩)도 남겨 청춘남녀에게도 인기 높은 스님 만해, 뜻은 깊되 말은 쉽다. 큰 스승이다. 왜놈들 제국주의 아래서 치욕의 삶을 살았던 그의 집 이름이 심우장(尋牛莊)이다. 남향(南向) 피해 총독부와 등을 졌다. 절집 빙 둘러 바람벽에 그려진 심우도(尋牛圖) 그림과 뜻 같으리라.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마음에서 비롯해 끝내 아지랑이로 스러지는 모든 사물(一切 일체)을 담은 집이면 그건 우주다. 비유의 세계다. 아지랑이 같은 이 비유는 그 바탕이 그림이다. ‘안개바다를 좌우로 손 내밀어 한걸음씩 나아가는 발걸음’ 묘사는 찾을 심(尋)의 뜻을 추상화한 그림이다. 당신은 ‘찾는다’는 뜻을 어떻게 그릴까? 안개 속 헤매봤다면, 저 표현력을 실감할 수 있을 터. 글(文 문)을 깨친다는 것은 (文 속의) 그림을 본다는 뜻이라네. 뜻글자인 표의
흔히 삼국지라고 하는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는 우리 (생활)문화 특히 언어에 큰 영향을 끼쳐왔다. 4자성어라고도 부르는 고사성어의 주요한 요람이다. 演義는 역사의 기록이 아니라 이야기라는 뜻이다. 원나라의 나관중이 역사를 토대로 지었다. 부정적인 영향도 많다. 최근 정치동네 말잔치에 나온 ‘삼고초려’(三顧草廬)가 사례 중 하나다. 우선 말뜻부터 풀어보자. 三顧草廬의 顧는 ‘방문하다’의 뜻. 3은 하나 둘 다음, 셋 말고도 ‘많다’는 뜻이니 여러 번 찾아가 뭔가 청한 것이 ‘三顧’다. 草廬는 우리말로 초가집이다. ‘고대광실 기와집’과 대칭되는, 청렴하게 사는 가난한 사람의 집이다. 보도를 토대로 상황을 그려보자. 유비 현덕이 아우 관우와 장비를 데리고 제갈공명의 사립문 앞을 세 차례 찾아와 경세(經世)의 지혜를 청했다. 장제원 비서실장이 ‘한덕수 (국무총리) 지명자를 삼고초려 한 끝에 그가 수락했다.’고 했다. 장제원과 유비가 동급으로 비유의 대상일세. 인군(仁君) 즉 윤 당선자는 제쳐놓았군. 옛 소설 같으면 ‘역모(逆謀)의 싹’일세. 장제원의 현대판 와룡선생(공명)이 사는 ‘초가집’은 어떤 모습이지? 그의 ‘터전’ 김앤장과 수십억(훨씬 더 되는 듯도 싶다
‘문해력’이 또 하나의 과외 과목으로 올라서는 분위기다. 특히 학령기 아동의 엄마(부모)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코딩도 벅찬데 문해력 까지 해야 한단다, 어쩌자는 것이냐. 자녀의 ‘경쟁력’에 모든 걸 걸다시피 하는 우리 엄마들의 열정이 교육현장의 새 국면을 열고 있는 것인가. 문해력, 노인 할머니 등 형편 어려워 한글 못 깨우친 분들 교육하는 (정부) 프로그램의 이름이다. 최근 문득 ‘문해력이 학교교육 전반의 문제라서 하루라도 먼저 깨우쳐(줘)야 한다.’고 교육방송이 연예인들 앞세워 방송 시작하는 바람에 이 걱정이 시작됐다. 아이들이 선생님 말씀, 교과서의 설명, 문제의 예문이나 지시문 등을 상당 부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생생한 현장을 TV는 보여주었다. 설문조사나 관련 통계도 절실하게 제시됐다. 낱말 뜻 모르고, 말귀 못 알아듣고, 글눈 어두워 교육이 아이들과, 물과 기름처럼, 겉도는 모습, 충격적이었다. 몰라도 그냥 지나가는 것에 익숙한 아이들을 새삼 걱정하게 된 것이다. 학교가 무엇인가. 그걸 당연하다 여기는 분위기를 우리 교육이 이제야 실감한 것일까. 가나다 깨치고 영어도 배웠는데, 문해력이 부족하다니(엉망이라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볼멘소리도 작지
언어는 은유(隱喩 메타포)의 바다다. 김동명의 시 구절 ‘내 마음은 호수요.’는 비유법 중 은유를 잘 보여준다. 은유는 ‘~과(도) 같다’는 설명을 숨기는(隱) 비유다. 시적(詩的) 표현에만 쓰이는 개념이 아니다. 언어와 사물(일과 물건)의 관계는 대개 은유로 연결돼 있다. 서양 논리학에서 온 말이되, 언어의 작동 원리가 원래 은유적이니 동서양 구분이 필요하지 않겠다. ‘내 마음은 호수와(도) 같다.’가 은유의 상대 개념인 직유(直喩 시밀리)적 표현이겠다. 같은 뜻이되 맛이 다르지 않는가. 예문들의 그 ‘마음’ 즉 ‘마음속 생각’은 한자어로 흉금(胸襟)이 되겠다. 한자어는 한자가 바탕인 외래어다. ‘오픈’이나 ‘클릭’은 영어가 바탕인 외래어다. ‘아침’ ‘무지개’ 같은 토박이말과 함께 외래어는 한국어를 구성하는 요소다. 장제원 당선자비서실장이 최근 대통령과 당선자의 회동 후 “(두 사람이) 흉금 없이...대화를 나눴다.“며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혹 회동에서 대통령이나 당선자 중 한 사람이 ‘흉금 없이’라고 했을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참 솔직한 표현이군.’하며 어떤 이들은 쓴 웃음을 지었으리라. 장제원 비서실장(의 말)에 따르면 두 사람은 156분간 마음에
사람을 이르는 문자는 많지 않다. 인(人)과 자(者)가 일반적이다. 서예가 음악가 등의 가(家)나 공자 맹자(孟子) 등의 子가 특별한 칭호(稱號)다. 무뢰한 치한 등 ‘문제적 인물’을 이르는 한(漢)도 있다. ‘어떤 사람’이라는 뜻을 이루는 접미사다. 이 중 家는 전문직이나 어떤 분야에 능(能)한 사람이다. 재산가처럼 뭘 많이 가진 이를 이르기도 한다. 子는 공부자(孔夫子)처럼 공자와 같은 큰 학자를 스승으로 높여 부르는 이름이다. 공자의 원래 이름은 구(丘)다. 자작(子爵)처럼 봉건시대 귀족 칭호이기도 하다. 이런 이름들은 중국 역사의 여러 모습을 반영한다. 한 중 일 3국이 일정 부분 공유하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당선자와 당선인, 두 이름을 두고 언론의 보도가 설왕설래한다. 헌법에는 ‘당선자’지만 者의 훈(訓 뜻)이 ‘놈’이라서 (느낌 나쁘니) ‘자’ 말고 사람 인(人)의 ‘인’을 써달라고 했다는 게 이명박 당선자 시절의 얘기다. 언론은 권력에 휘감긴다. 언론에서 금세 ‘당선자’가 ‘당선인’으로 변하고 있다. 승리한 쪽 캠프에서 언론에 ‘마사지’를 했을 법도 하다. 어떤 매체는 한 교수의 발언을 앞세워 ‘헌법에 적힌 대로 당선자로 하자’고 했다. 자(者)
‘비호감선거’라는 말 자주 듣는다. 영웅부재시대라는 말 떠올린다. 아버지 집을 누가 비싸게 사줬다네. 법카로 초밥 수십 인분을 한 번에 사먹었다네. 살아있는 소 가죽 벗기는 푸닥거리로 뭘 노렸지? 대장동 직접 사인한 서류가 왕창 나왔대. 검사 사위 덕 듬뿍 봤다네. 아들 퇴원에 관용차 썼다더군. 주식시세 조작해 돈 벌었다네... 이런 일들, 전에는 구렁이 담 넘듯, 흘러갔다. 모르는 척해야 현명하다 했다. 심지어 ‘순리(順理)’라고도 했다. 권력과 언론의 유착은 매우 정교해서 아직도 ‘파워 만땅’이라고들 한다. 민초(民草)들은 뭐지, 세금만 내는 루저? 개돼지? 지금도? 전에 영웅 또는 천사를 뽑았다면, 착각이다. 박정희 전두환 등을 뽑았던 과거 선거는 ‘호감선거’였나? 백성 입 닫아걸고 언론에는 아무 얘기도 못하게 하면, 그는 영웅이었다. 어릴 적, 내게 대통령 박정희는 천사였고, 잘생겼고, 정의 그 자체였다. 좀 지나 ‘사나이’ 전두환 일대기는 주먹 불끈 쥐게 하는 영웅담이었다. 이순신 장군보다 위대했다. 착각을 강요했다. 심지어 충무공과 지들을 겹쳐보이게 하는 시도도 벌였다. 장난도 심했지. 비밀 없는 세상, 영웅이 되거나 만드는 ‘작전’은 불가능하다.
헝겊(巾·수건 건)을 막대기로 치면(攵 또는 攴·칠 복) 너덜너덜해진다. 천 조각과 먼지 날리는 모양, 막대기의 그림이 敝(해질 폐)다. 그 헝겊을 두 손으로 들면(廾·받들 공), 폐단(弊端) 적폐(積弊)의 弊다. 그 敝를 헝겊(巾) 위에 올리면, 폐백(幣帛) 화폐(貨幣·돈)의 幣다. 사람 인(人)에 다른 그림이 붙어 굴복할 복(伏)이 되고, 어질 인(仁)도 되는 것처럼 문자(한자)는 그림에서 비롯해 그림의 합체나 변화로 여러 갈래 뜻을 짓는다. 뜻글자 표의문자(表意文字)다. 상(商)나라 때의 갑골문이 바탕이다. 그림을 간략하게 한 기호에 소릿값(발음)을 정하고, 영어의 알파벳 같은 기호로 인간의 여러 말(소리)을 적는 것은 소리글자 표음문자(表音文字)다. 발음기호 기능과 문화적 적립(積立)이 합쳐져 소통의 도구가 된다. 한글도 소리글자다. 이집트상형문자가 바탕이다. 폐단(弊端)은 나쁜 것이다. 폐백(幣帛)은 제사나 시댁에 올리는 음식이나 비단(帛)이니 좋은(좋아야 하는) 것이다. 발음 같은 ‘폐’의 두 뜻이 하늘과 땅의 차이(天壤之差 천양지차)처럼 크다. 그 차이가 ‘문화적 적립’ 중 하나다. 영어의 라틴어, 한국어의 한자어 역할 같은 것이다. ‘오래 쌓인
‘중앙선데이’ 기사를 최근 ‘미디어오늘’이 조졌다. 싹수의 흔적마저 안 남은 언론 동네 퇴영(退嬰)의 음흉한 처참이 차라리 슬프다. 제 속셈이 여론인가? 신문이 지 하고 싶은 말에 전문가의 뜻을 까먹었다. 제 뜻에 맞춰 뒤집었다. 항의하니 반응 없다가 법적 대응한다니 ‘의도는 없었고 마감에 쫓겨 취지를 오해했다.’고 했다. 온라인 판에서 삭제했다. ‘미디어오늘’ 보도다. 대선 후보 이모저모, ‘스피치’ 주제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천천히 말하기'에 신경 쓰고 있다고 밝힌 뒤 ‘윤석열 후보도 단기간 내 화법이 변한 사례로 꼽힌다. 특히 불필요한 단어를 최소화하는 데 집중하는 모습’이라고 했다. 관련해, 신지영 교수(고대 국문과)가 그 기사에서 “윤 후보는 공적인 자리에서 말하는 경험이 적었을 뿐 스피치 자체가 미숙한 편은 아니다.” “본인 노력을 통해 구체성이 떨어지는 단어를 크게 줄인 게 눈에 띈다."고 평가한 것으로 돼 있다. 신 교수가 ‘왜곡보도’라는 입장을 밝혔다. “윤 후보의 경우 공적 말하기 훈련이 부족하다고 말했는데 따옴표를 달고 나간 말은 내가 윤 후보가 스피치를 잘한다고 평가했다고 되어 있다."고 했다. 또 "윤 후보가 '어떤'처럼 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