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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심우도 ] 지석묘, 일본말이니 쓰지 말자고요? 아니에요!

 

발랄한 활약으로 언론동네 틈새 파고든 유튜버 등 ‘크리에이터’들, 놀랍다. 거칠 것 없이 제 하고 싶은 말 다 동영상에 눅여 인터넷 선반에 얹으면 신문 방송 부러울 것 없다. 황당한 ‘소리’도 하고, 일부는 돈도 잘 번단다. 언론사들도 아예 이런 세태 따라 한다.

 

고고학과 골동품의 세계에는 광적(狂的)인 마니아가 많다. 재미있는 분야이니 응당 크리에이터들도 많겠고, 그중엔 ‘고인돌유튜버’들 활동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고인돌 관련 크리에이터들 사이에서 ‘지석묘가 일제 때 건너온 일본말이니 쓰지 말자.’는 얘기가 근자에 있었던가 보다. 왜색(倭色), 일본풍(風) 지우자는 갸륵한 뜻으로 이를 받아들인 동조자도 꽤 된다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 근거 없는 낭설(浪說)이다.

 

일본에서도 고인돌을 지석묘라고 한다. 중국에서도 그렇다. 과문(寡聞)한 탓일지 모르나 일본말에서 支石墓라 하니, 우리는 순우리말인 ‘고인돌’을 써야 할 것이란 정도의 논리로 보인다. 일본서 젓가락으로 밥 먹으니 우리는 젓가락 쓰지 말자는 것인가?

 

10여 년 전 인터넷 공간에, ‘바다의 순우리말이 아라’라는 밑도 끝도 없는 말이 퍼져 한동안 유행했던 경우와도 흡사하다. 아라뱃길 아라온호(號) 아라바다 아라카페 따위 희한한 몰지성(沒知性)의 그 ‘상처’는 아직 공사(公私) 공간의 여기저기에 남아있다.

 

支石墓는 일제 때보다 훨씬 이전의 우리 문헌에 기록이 있다. 고려의 문호(文豪) 이규보가 1200년에 남긴 글이다. 사학계는 이를 ‘우리나라 지석묘 최초의 기록’으로 본다. 그 유튜버들은 이를 몰랐을 것이다. 논란 끝!

 

“다음날 금마군(金馬郡)으로 향하려 할 때, 소위 지석(支石)이란 것을 구경했다. 민간에 전하기로 이는 옛 성인(聖人)이 고인 것이라 하는데, 과연 기적(奇迹·기이한 유적)으로 이상한 점이 있었다.” (明日將向金馬郡 求所謂支石者觀之 支石者 俗傳古聖人所支 果有奇迹之異常者)

 

이규보 문집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과 조선 때 우리나라 명문장 모은 ‘동문선(東文選)’의 ‘남행월일기(南行月日記)’가 원전(原典), 금마는 미륵사(지) 있는 익산 부근 지명이다.

 

지금 한글인 훈민정음을 세종대왕이 반포(頒布)하기 전, 선조들이 ‘고인돌’이라는 물체를 문서에 적을 때 어떤 방법을 썼을까? 古人乭(고인돌), 이런 식으로 적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뜻 지닌 한자를 써서 ‘지석’, 또 묘지 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당시 금석학(金石學)의 통찰에 따라 支石墓라고 적었을 것이다. 역사의 기록에 엄연한 것이다.

 

서양에서 돌멘(dolmen)이라고 부르는 물체를 우리는 ‘고인돌’이라고도, ‘지석묘’라고도 불렀다. 한글 이전, 이를 적을 때는 支石墓라고 썼다.

 

언어는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그 변전(變轉) 오묘하다. 그러나 여러 ‘썰’ 난무해도, 아닌 건 결코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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