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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심우도]  ‘도’와 심우도(尋牛圖)

“도를 아십니까?”란 질문, 보이스피싱일까? 그 ‘도’는 무엇일까?

 

 

‘생각하는 언어’가 삶의 슬기, 철학적 구도(求道)의 전제조건이다. 말이 뜻을 잃거나 잊으면 그 슬기는 허망하게 망가진다.

 

포털에 오른 ZDNet Korea(제이디넷 코리아) 신문 12월 25일 기사의 한 부분을 인용한다.

《...삼성 서울 서초사옥 인근에서 무분별하게 벌어지는 집회로... 집회소음이 도(道)를 넘어 주민들의 일상생활을 침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의견이 많다. 업계에 따르면...》

 

업계의 ‘말’로 주민 생활을 핑계 댔다. ‘한국의 최고 권력’인 삼성이 굽어 살펴 주시기를 갈망하는 탄원서 아닌가. 머리 좋은 삼성이 어떤 속셈을 이렇게 어설프게 표현했을 리 없다.

 

언론도 기사도 공론(公論)이다. 기자는 공공(公共)을 위하는 자(者)다. 삼성에게도 칭찬 들을 수 없는 글이 기사로 실렸다. ‘눈치껏 하라.’는 핀잔 피할 수 없으리.

 

이 신문을 갈구려고 이런 서두를 꺼낸 것 아니다. 도를 넘는 무지의 언어가 ‘공론의 장’에 오르고, 누구도 이런 언어현상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는 상황을 저어하는 것이다.

 

집회소음은, 그게 심하다면, ‘道(도)를 넘는 것’이 아니고 ‘度(도)를 넘는 것’이다. 무지(無知)를 넘어 ‘아는 체’까지도 지나쳤다. 참을 수 있는 한도(限度)를 벗어난 정도(degree)를 말하고자 했으리라. 아니면, 유교(儒敎) 또는 유학의, 공자님 말씀의 道를 가리킨 것일까?

 

사람의 뜻은 생각이다. 생각은 말이 바탕이다. 그 말이 어그러진다면 생각도 비틀릴 것이다. 그 사람은 ‘어떤 뜻’을 기준삼아 실존(實存)하고 있을까?

 

이 시리즈 제목인 심우도(尋牛圖)의 ‘도’는 길 道도, 기량 度도 아닌 그림 圖다. 소(牛)를 찾는(尋) 그림이다. 일(事 사)이나 물건(物 물) 즉 사물의 이름은 정확하고 적확(的確)해야 한다. 바르면서 과녁(的) 맞추듯 (경우에) 딱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公論인 언론과 그 생산물인 기사가 어떠해야 하는지 말하는 것이다. 최소한의 기준을 갖추지 못한 공론은 없는 것만 못하다. 언론, 그걸 보고 배우는 이도 있다.

 

공론의 주인인 독자(수용자)가 가가대소(呵呵大笑)를 넘어 자못 모욕감까지 느껴야 한다면, 사람보다 개가 먼저인 것처럼, 세상이 뒤바뀐 것이다. 어서 내려오라.

 

요즘은 뜸하지만, 전에 길 걷다보면 “도를 아십니까?”라며 소매 붙잡는 ’거리의 도인‘들이 있었다. 道는, 度나 圖도 그렇지만 그렇게 파는 것이 아니다.

 

마음에 그 글자의 뜻(이미지)이 없으면, 차라리 아는 체 말라. 아이들 볼라. 입 다물면 중간이라도 간다. 보이스피싱도 피할 수 있는 삶의 지혜다.

 

소를 찾고 보니, 나도 내 아집(我執)의 과녁인 소도, 일체(一切)가 없더라는 불교설화 심우도의 슬기다. 그 말 ‘소’의 이미지만 남았다. 언어의 모습이며 존재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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