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을 하면서 가장 기대되는 순간은 아이들이 창의성을 발휘해 만들어낸 결과물을 확인할 때이다. 특히 고학년을 맡으면 글쓰기나 영상 만들기 수업을 하면, 이후에 몹시 기대감에 차서 아이들의 과제물을 기다린다. 어린이들의 편견 없고 솔직한 글솜씨에 한번 감동 받고, 기대 이상의 영상 퀄리티에 다시 한번 놀란다. 이번 영화 만들기 수업도 혼자 여러 가지 기대를 품고 시작했다. 단편 영화 제작은 방학을 맞이하기 전 마지막 프로젝트였다. 팀당 5분 남짓의 단편 영화를 만드는데 25차시 혹은 그 이상이라는 막대한 시간이 들어갔다. 초등학교는 1차시에 40분이니 16시간 30분 정도 걸린 셈이다. 처음 계획은 17차시에서 끝내는 거였는데 진행하다 보니 도저히 시간을 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 할 것 없이 모두가 열정적으로 영화 만들기에 매달렸다. 마지막 영화 상영회까지 숨 가쁜 일정이었다. 긴 시간 영화를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며 느낀 점이 몇 가지 있다. 영화라는 작업은 혼자서는 완성할 수 없고 온전히 협업해야만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팀으로 움직여야 하는 일이 어떤 아이들에게는 쉬웠지만, 다른 아이들에게는 너무나 어려웠다. 몇
나는 숙박형 체험학습 반대론자에 가깝다. 반대하는 이유가 대단히 많은데 가장 크게 작용한 게 어린 시절 겪었던 수학여행이 지옥의 모습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낮까지는 평범한 체험학습인데 저녁이 되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일탈이 벌어졌다. 누군가는 술을 텀블러에 담아서 오고, 다른 누군가는 캐리어 숨은 공간에 소주를 넣어왔다. 밤이 되면 온갖 일탈이 벌어졌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 숙취에 절여진 채 전세 버스에서 내리지도 못했던 기억이 있다. 가장 끔찍했던 체험학습의 한 장면은 중학교 수학여행 첫째날 밤에 친구가 만취해서 똑같이 만취해서 복도를 돌아다니던 교사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던 모습이다. 아무리 소지품 검사를 해도 무언가를 귀신같이 숨겨오는 아이들을 다 잡아낼 수 없었다. 나도 우리 방 분위기에 휩쓸려서 일탈을 함께 저질렀고 인생의 커다란 흑역사로 남았다.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될 일을 경험한 셈이다. 수학여행을 반대하는 또 다른 이유도 야간에 벌어지는 사건, 사고를 교사가 다 막을 수 없다는 데 있다. 닫힌 문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교사는 알 수 없고,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져야 하는 게 몹시 부담스럽다. 교사들이 밤마다 순찰을 돌며 아이들을 재워도
학교에서 하루하루 견디기 힘들어지고, 소화가 잘 안 되거나, 배가 자주 아프면 방학이 얼마 남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무덥고 습한 날씨 탓인지 이 시기가 되면, 아이들이 전반적으로 살짝 맛이 가기 시작한다. 수업이 진행되기 어려울 정도로 교실이 시끄러워지고, 크고 작은 사건들이 연달아 터진다. 덩달아 한 학기 동안 교실을 운영하며 쌓인 스트레스가 몸으로 표출되고, 나 역시 화가 많아진다. 부디 무사히 남은 날들을 보내고 방학하게 해주세요- 저절로 기도가 나온다. 교실에 앉아 있는 게 힘들어서 하루하루 방학만 손꼽는 상황이지만, 가끔 열세 살의 푸릇푸릇한 여름들이 귀엽고 싱그럽다. 우리 반 아이들의 귀여운 모먼트를 떠올리며 남은 몇 주를 잘 버텨보려 한다. 아직 청소년이 아니고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닌 청린이들의 풋풋한 순간들. 매순간이 이렇게 귀엽기만 하면 좋을 텐데 현실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1. 반 친구 중에 누군가를 좋아했던 경험이 있으면 적어 보자고 했다. 열광적인 반응이 나올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모두 부끄러워해서 아무도 자신의 이야기를 쓰지 못했다. 아직 반에서 커플이 생기지 않았고,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는 이야기가 들리지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교권’을 찾아보면 ‘교사로서 지니는 권위나 권력’이 나온다. ‘보호하다’를 검색하니 첫 번째 뜻으로 ‘위험이나 곤란 따위가 미치지 아니하도록 잘 보살펴 돌보다’가 나온다. 교권 보호를 국어사전 뜻풀이대로 해석하면 ‘교사로서 지니는 권위나 권력을 위험이나 곤란 따위가 미치지 아니하도록 잘 보살펴 돌봄’이 된다. 권위나 권력을 잘 보살펴 돌본다는 게 어불성설이지만 교사들이 처한 상황 자체가 어불성설이라 권위를 보살펴야 하는 게 말이 되는 시대가 됐다. 교사가 아닌 사람들에게 교사들의 고충을 이야기하면 공감받기 어렵다. 힘들겠구나-라는 반응보다는 ‘라떼는 말이야’가 먼저 튀어나온다. 20년은 족히 넘었을 옛 시절의 이야기들. 그때는 학생들이 교무실 청소를 도맡아 하고, 체벌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던 시절이었다. 나 또한 교사들에게 종종 맞았고, 일정한 주기로 교무실과 화장실 청소를 했고, 학생은 중앙현관을 사용하지 못했던 시절에 학교를 다녔다. 그런 시절을 보내고 교사가 되었더니 이제 학생이 이틀에 한 번꼴로 교사에게 욕이나 폭언을 하고, 가끔은 때리는 게 당연한 일이 된 세상이 펼쳐져 있다. 교사가 폭언 및 폭행을 당해서 신고된 사안만 5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여자, 남자 혼성으로 구기 종목을 하기 어려워진다. 신체 발달이 달라지면서 힘에서 여자아이들이 밀리고 치인다. 더 큰 어려움은 남자아이들은 초등학교 시절 내내 공으로 하는 운동을 접해서 발기술이나 손기술이 발달했는데, 여자아이들은 나이가 들수록 공과 점점 멀어져서 초등학교 입학했을 때와 비슷한 기능을 가진 채 고학년이 되었다는 것이다. 어떤 여학생이 피지컬이나 힘에서 남자아이들과 견주었을 때 밀리지 않는다 해도, 스스로 공 다루는 기술이 부족하다고 느껴서 경기 참여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미 체육에 자신감이 떨어진 여자아이들이 공으로 하는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지 않게 되고, 교사조차 여학생들이 체육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초중고 여자 체육은 오로지 피구와 발야구에 머무르다 끝나는 상황이 벌어진다. 피구와 발야구로 점철된 학창시절이 막을 내리고 어른이 되면 보통의 여자들은 구기 종목과 완전히 멀어진 삶을 사는 게 일반적이다. 남학생들이 학교를 졸업하고도 따로 운동팀을 만들어서 꾸준히 모임을 갖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렇다면 여학생들이 흥미를 느낄 수 있으면서 남학생들과 함께 뛸 수 있는 종목은 없는 걸까. 조금 생소하지
학교에 떠도는 풍문 중에 ‘신도시 학교는 구도심 학교보다 학교 폭력 위원회가 훨씬 자주 열린다’는 이야기가 있다. 유치원 시절부터 한곳에 살아서 학부모들끼리 안면이 있거나 아이들끼리 친분이 있는 경우라면 학교폭력 위원회까지 가지 않고 해결될 사안인데, 신도시에서는 이사 온 지 얼마 안 돼서 부모도 아이도 낯선 상태라 민감하게 대응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신도시 학교와 구도심 학교의 학폭위 개최 건수를 통계로 확인하지 못해서 단순한 풍문인지 사실인지 모르지만, 교사들이 체감하는 횟수는 확실히 신도시 쪽이 많은 듯하다. 교사들이 이용하는 커뮤니티에서 신도시에서 학폭 담당 업무를 몇 년 동안 연달아서 맡으면 과로사한다는 말이 우스갯소리로 나오는 걸 보면 그렇다. 새로운 곳에 와서 학생과 학부모들이 낯설고 예민한 게 사실이라면 학교에서는 어떤 대책을 세울 수 있을까. 가장 손쉬운 방법은 학부모들끼리 안면이 생기게 학교에서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다. 학부모들이 따로 모임을 하는 게 저학년까지는 쉬운 일이지만 아이가 고학년이 되면 학부모들도 시간을 내기 어려워지는 경우가 많다. 점점 더 사적으로 연락하고 만나는 게 드문 일이 된다. 이런 상황에서 학부모들 사이에 연결점
얼마 전에는 스승의 날이었다. 매년 이맘때쯤이 되면 몇몇 아이들이 편지를 써서 책상 위에 두거나 수줍게 전해준다. 편지의 내용은 ‘가르쳐주셔서 감사하다, 앞으로 공부 열심히 하겠다’로 압축할 수 있다. 흔한 말들이지만 평소에 데면데면하게 인사하던 사춘기 아이들이 사랑한다, 감사하다는 말을 아낌없이 써 놓은 걸 보면 괜히 마음이 찡해온다. 개인적으로 의미 있는 스승의 날이었지만, 최근에는 형식적으로 이름만 남아있는 스승의 날을 ‘교육의 날’로 바꾸자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교사가 나서서 스승의 날 기념행사를 진행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교사들이 쉴 수 있는 날도 아니기에 현실에 맞게 수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스승의 날 기념 행사는커녕 교사들이 디지털 범죄의 피해자가 되거나 감정노동에 못 이겨 정신과나 상담을 찾는 현실에 맞는 건 ‘감정노동자 보호법’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감정노동자 보호법은 악성 민원인으로부터 무방비 상태에 놓여있는 콜센터 직원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다. 법이 시행된지 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법의 실효성에 의문이 있을 정도로 악성 민원인들이 활개를 친다는 기사가 심심찮게 보인다. 다만, 법이 생겼으므로 악성 민원인 등장 시 대응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수업시간에 책 한 권을 느리게 읽는 슬로리딩, 혹은 온 책 읽기라는 교육 방식이 꽤 혁신적이었다. 정해진 교과 시간에 교과서 없이 수업을 진행하는 일은 교사와 아이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도전적인 수업 방식이었다. 처음 우리 반에서 온 책 읽기를 진행할 때 학년 부장 선생님이 “그런 식으로 수업하면 학습 결손 생긴다.” 같은 반응을 보였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온 책 읽기의 정확한 기원이 어디인지, 누가 가장 먼저 시작했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본에서 건너왔다는 설이 있고, 한국의 몇몇 선생님들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는 설도 있다. 초기에 드문드문 퍼지던 온 책 읽기는 교육과정 재구성과 결합해서 몇 년 동안 각종 교사 연수에 필수코스처럼 등장했다. 그러다 국어 교과 단원에 한 자리를 차지하면서 1년에 정해진 시간 이상은 반드시 진행해야 하는 국가 공인 교육과정이 되었다. 책을 함께 읽는 활동이 국어 교과의 필수 과정이 되면서 교사의 집단 지성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온 책 읽기를 위한 책 선정에서부터, 교육과정에 맞게 재구성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 드는데 앞서 수업을 진행한 분들이 수업 자료나 피드백을 남겨
학부모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아이 공부를 어디까지 시켜야 할지 고민하는 분들을 자주 만난다. 아이가 어릴 때는 아직 놀아도 괜찮다고 생각해서 음악이나, 미술, 체육 같은 활동을 주로하다가, 초등 고학년에 올라가면서 공부 걱정이 많아지는 걸 종종 목격한다. 옆집 아이는 어려운 영어, 수학 문제를 척척 푼다는데 이제 우리 아이도 자기 주도 학습보다는 학원에 다녀야 하는 건지, 학원에 다니기에 이미 늦은 건 아닌지가 주된 걱정거리다. 걱정의 결론은 선행학습을 해야 하느냐, 현재 배우고 있는 과정에 충실해야 하느냐로 귀결된다. 대화 속에서 이미 부모님이 고민의 정답을 내려놓은 걸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보통 학부모님이 결정한 내용에 힘을 실어주는 쪽으로 대답한다. 교사의 조언으로 학부모의 마음이 바뀌는 경우가 흔치 않은데 괜히 불안감을 심어줄까 봐 마음이라도 편하게 해드리려는 일종의 배려다. 그래서 어떤 분에게는 아이를 학원에 보내시라고 강력하게 말하다가, 다른 분에게는 아직 혼자 공부해도 충분하다고 말한다. 개인적으로는 초등학교 때는 영어, 수학 선행학습보다는 다른 것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폭넓은 독서와 수학 연산 연습, 여기에 기초 체력을 기를
한 주를 월요일 시작하는 아침마다 서클 대화 시간을 갖는다. 거창한 활동은 아니고 아이들과 동그랗게 앉아 주제 2~3가지를 골라 이야기를 나누는 친교 시간이다. 주말에 무엇을 하며 지냈는지를 말할 때도 있고, 이전 일주일 동안 가장 즐거웠던 순간을 말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끊임없이 떠드는데 굳이 대화 시간까지 필요한지에 대한 의문이 들 수 있다. 이렇게 대화하는 시간을 만들지 않으면, 일상적인 이야기 한마디 나누지 않은 채 공간만 공유하는 친구들이 반에 의외로 많다. 얼마 전 서클 시간에 뽑힌 주제는 ‘가장 갖고 싶은 것 5가지 말하기’였다. 어린이와 청소년 중간에 서 있는 6학년 아이들이니 다양한 품목이나 종목들이 나올 거라고 기대했다. 어른은 모르는 아이들의 유행 아이템 같은 걸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이십여 명의 친구 중에서 한두 명만을 제외한 아이들이 모두 비슷한 대답을 했다. ‘롯데월드타워, 빌딩, 강남 아파트, 목 좋은 곳의 땅, 삼성전자나 테슬라 주식. 등등’ 부동산이나 주식을 말하지 않은 소수는 건담이나 아이폰, 아이패드 같은 물품을 말했다. 모두 초등학생이 갖기에 결코 저렴한 물건들은 아니었는데, 앞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