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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에서] 모두가 선행학습하는 세상

  • 강유진
  • 등록 2023.01.02 06:00:00
  • 인천 1면

 

저학년 친구들은 수업 시간에 모르는 게 있어도 힘차게 손을 들고 발표한다. 발표할 때 친구들이 나를 주목하는 그 순간이 기분 좋으니까 신나서 손을 든다. 정답과 전혀 상관없이 엉뚱하게 틀린 답을 말할지라도, 그게 맞는지 틀린 지 나도 모르고 옆에 애들도 모르니까 부끄러울 게 전혀 없다. 저학년 친구들은 모두가 발표시켜달라고 애절한 눈빛을 발사한다. 어린이들은 선생님이 발표를 안 시켜줬을 때 기분이 상하지, 틀린 답을 말했다고 주눅 들지 않는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닌 지 4~5년이 지나고 고학년이 되면 상황이 급변한다. 이제 아이들은 친구들이 발표하는 나를 주목하는 게 부담스럽고, 모두 앞에서 틀린 답을 말할까 봐 걱정스럽다. 나보다 공부 잘하고 많이 아는 친구도 가만히 있는데 내가 답을 말해도 되는 걸까 싶기도 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학생이 발표하는 빈도가 줄어들고 교사만 떠드는 조용한 교실이 되어간다.

 

교실에서 학생들이 발표 시간에 눈치를 보다가 결국 포기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두 과목이 있다. 범인은 영어, 수학이다. 둘 다 선행학습이 만연하기로 유명한 과목들이다. 미취학 시기에 영어 유치원이라고 이름 붙어있는 영어 학원에 다니는 건 흔한 일이고, 소수의 아이는 그때부터 수학 학원에 다닌다. 수능을 대비한 선행학습의 시작이다.

 

지금 학년보다 높은 학년의 수업을 들으면서 얼마나 선행이 빠른가를 따지는 건 옛날 옛적 유행이다. 이제 유명한 학원에 입학하는 것 자체로 자랑이 된다. 특정 학원에 입학하기 위해 레벨 테스트를 쳐야하고, 레벨 테스트를 위한 과외 수업이 따로 있는 건 흔히 알고 있는 풍문이다. 새로운 풍경은 그 레벨 테스트 치기 위해 응시권을 온라인 선착순으로 받아야 하고, 선착순인 응시권을 잡아주는 전문 업체가 성행하는 모습이다. 요지경이 따로 없다.

 

이러다 보니 수학, 영어는 교과서를 처음 펼쳤을 때 내용을 모르는 아이가 반에서 적은 수가 되어버렸다. 국어나 사회 같은 과목이 교과서를 미리 읽고 오거나 배경지식이 있는 아이가 아예 없거나 한, 두 명 남짓인 것과 비교하면 더 극적이다. 이제 대부분이 영, 수 선행학습을 하자 사교육이 극심한 지역에서는 더 나아가 과학 중 일부 과목도 초등 저학년 때부터 선행학습을 시킨다고 한다.

 

수업 시간에 교과서 내용을 처음 배우는 건 당연한 일이고, 당연함을 넘어서 학생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여야 별다른 부작용이 없다. 대다수가 핵심 목표를 미리 알고 몇 명만 모르는 상태에서 수업을 진행하면 문제가 생긴다. 다른 과목은 내용을 모르는 게 당연하니까 무지한 내가 부끄럽지 않은데 영어랑 수학만큼은 모르는 게 부끄러워진다. 선행을 많이 한 다른 친구들은 이미 교과서 문제를 다 풀어놓고 딴짓을 하고 있는데, 오늘 처음 내용을 배운 아이들은 쩔쩔매면서 문제와 씨름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발표는커녕 특정 과목 수업 시간 내내 땀을 흘리면서 시선이 불안한 채로 굳어버리는 아이도 생긴다.

 

아이들끼리는 쉬는 시간에 중학 수학 문제집이나 토익 문제집을 풀고 있는 모습으로 누가 어디까지 선행학습을 했는지 서로서로 알고 있다. 학원에서 진도를 어디까지 나갔는지 확인하고 선망하는 분위기가 느껴질 때 몹시 당황스럽다. 선행학습이 학습 성취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는 이미 많이 나와 있다. 선행학습을 한 학생의 성적이 좋아 보이는 이유는 단순하다. 그 과목에 쏟은 절대적인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현재 학교에서 나가고 있는 진도의 예습, 복습을 선행에 들이는 시간만큼 사용하면 선행한 학생보다 더 큰 성취를 얻을 수 있다. 그러니 예습, 복습을 철저히 하는 것으로 사교육비를 절약하고 학습 성취 기준에 도달하는 데 충분하다. 진리는 대부분 단순하고 명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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