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드족은 뉴스 속의 나라였다. ‘어린 소년들의 늙은 노래’를 듣기 전까지. 그 노래는, 개봉한지 10여년 지나 보게 된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2004년 개봉/바흐만 고바디감독)’이라는 영화에 나온다. 언론 속에서 접한 쿠르드족의 이미지는 어떠했던가. 메마른 산악지역의 전사, 독립을 위해 늘 분쟁 속에 사는 투사… 그런 모습들이었다. 그 이미지 속에 아이들은 없었다.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은 고아가 된 다섯 남매의 이야기다. 가난만 남은 집안에서 가장이 된 열두 살 맏이 아윱에게 학교는 사치고, 설상가상 죽을 병 걸린 동생을 위한 수술비 마련이 발등의 불이다. 어린 누나가 수술비를 보태려고 이라크 노인에게 신부로 팔려갔지만 돈을 받지 못한다. 아윱은 유일한 재산인 노새를 팔기 위해 밀수꾼들과 함께 이라크 국경을 넘는다. 제목의 ‘취한 말’을 은유로 생각했는데, ‘험산 넘는 노새가 한파에 쓰러질까봐 미리 술을 먹여 추위를 못 느끼게 하는 행위’에서 나온 말이었다. 삶이 곧 전쟁인 이 다섯 남매 입에서 나오는 노래가 고울 리 있겠는가? 그래도 그렇지. 트럭 뒤에 탄 아이들이 무심결에 부르는 민요 가사는 섬뜩했다. ‘인생이라는 놈은 나를 산과 계곡으로 떠돌
음악이 없는 나라가 있을까. 노래 불렀다고, 악기를 연주했다고 죽임을 당하는 나라가 있을까. 21세기, 대명천지에 그런 나라가 존재한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통치 하에서 문인들은 책을 벽장 깊이 숨기고 화가들은 그림을 땅에 묻는다. 예술 학교는 폐쇄되고 음악인들은 고국을 탈출한다. 평생 노예인 이보다 불행한 이는 ‘자유의 맛을 본’ 노예라던가. 이슬람 국가인 아프가니스탄에 한 때, 공산정권이 들어섰었고, 미군이 주도했다. 그때,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을 눌러, 국민들은 뜻밖의 자유를 구가했다. 그 경험이 지금의 고통을 더할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탈레반은 누구인가. 중앙 아시아에 위치한 아프가니스탄의 역사는 실크로드 역사와 맞물리며 전개되었다. 동서양 요충지라 숱한 강대국의 말발굽 아래 시달려야 했다. 아프가니스탄이 국가 모양새를 갖추고 역사에 등장한 것은 18세기 중반, ‘두라니 제국’이다. 제국은 100년도 안돼 망하고 이어 바라크자이족이 정권 잡은 ‘아프가니스탄 왕국’이 오늘날의 국경선을 만들었다. 제국주의 시대인 19세기와 20세기 초, 영국과 세 차례에 걸친 80년간의 전쟁으로 쇠락해가던 아프가니스탄은 70년대 이르러 소련의
눈 먼 자만이 될 수 있었다. 현악기를 들고 마을을 돌며 연주하고 노래를 불렀다. 서사시를 읊고 옛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대부분 문맹이었고 통신수단이 없었던 옛날, 사람들은 이들을 통해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전쟁이 났다더라. 왕이 바뀌었다더라. 역병이 돈다더라...... 집시들의 삶만큼 원시적이고 낯설고 매혹적인 사람들. 그들끼리만 비밀리에 주고받던 언어가 있어 신비를 더하는 존재들. 이들은 우크라이나의 맹인 유랑 예술가로, ‘콥자’라 불렸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세월의 격변 속에서도 콥자를 예우하고 사랑했다. 글 배운 이들이 늘고 통신수단이 생기고 놀거리, 볼거리 넘치는 세상이 되어도 콥자를 기다렸다. ‘오직 사람만이 채울 수 있는 자리’가 있기에. 그렇게 수 천 년 역사와 함께 해온 콥자들이 20세기를 만나면서 씨가 마르기 시작한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기원 전후, 이란 계통의 스키타이인과 로마제국을 뒤흔든 고트족, 훈족이 잠시 살았던 이 땅에 뿌리내린 이들은 서기 6세기경에 나타난 슬라브인들이었다. 이들은 (오늘날 우크라이나 수도인) ‘키이우’라는 도시를 세워 우크라이나 역사를 시작한다. 그러나 13세기 침입한 몽골의 2세기에
‘코소보는 세르비아의 심장! 폭력을 멈춰주세요’ 테니스 세계 랭킹 2위의 수퍼스타, 노박 조코비치의 지난 5월의 발언에 발칸반도가 들썩였다. 코소보는 즉각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조코비치의 징계를 요구했다. 여기서 드는 의문, 조코비치의 고향은 코소보다. 그런데 왜 코소보의 적국(?), 세르비아 편을 든 걸까? 이 의문은 코소보 문제의 핵심을 품고 있다. 코소보 분쟁의 해결이 난망한 이유는 세르비아와 코소보, 양국의 입장과 주장이 좀처럼 만나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나라의 속내를 가상 토크로 꾸며보았다. 코소보 : 한 마디로 우리 코소보의 주장은 ‘우리를 독립국으로 인정해 달라!’는 것이오!1980년 대 말, 발칸반도를 장악하던 유고슬라비아에서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몬테네그로,마 케도니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등이 모두 독립했는데 왜 우리만 독립국으로 인정 하지 않는 거요? 세르비아 – 코소보 땅은 우리 세르비아인들에게 유대인의 예루살렘같은 곳이요. 우린 6세기부터 이 땅에 세르비아 왕국을 건설했고 중세 세르비아 정교회의 첫 번째 교구도 이곳 에 만들었소. 그뿐 아니지. 오스만 터키와 싸울 때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역사의 현장도 이곳이오. 한마디로 우
피묻은 1500개 소뼈 더미 위에 흰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앉아있다. 소뼈 하나하나를 정성스레 닦고 있는 그녀의 입에서 끊임없이 유고슬라비아의 민요가 흘러나온다. 흰 드레스의 여인은 세르비아의 행위 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이고 이 작품은 199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장을 거머쥔, ‘발칸 바로크(Balkan Baroque)’. 4일간 이뤄진 이 퍼포먼스는 90년대 발칸반도의 보스니아 내전 학살을 고발하는 행위였다. 그 충격적 퍼포먼스와 함께 기억에 남은 그녀의 인터뷰. “내게 어디서 왔느냐고 물을 때 ‘세르비아인’이라고 말하지 않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나라에서 왔다고 말합니다” 세르비아인이면서 세르비아인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단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나라는 어디일까. 소뼈를 닦으며 부른 노래를 주목한다. 유고슬라비아 민요. 지구상에서 사라진 나라 유고슬라비아. 백년도 못 채우고 사라진 유고슬라비아의 흥망사는 발칸반도 비극의 상징이다. 1차 세계대전으로 오스만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되면서 신생국가들이 생겨난다. 발칸반도에서는 세르비아가 주도권을 잡아 이웃나라들을 흡수, 연합국을 세우는데 그 이름이 ‘유고슬라비아 왕국’이었다
2년 전쯤 들은 아름다운 이야기. 무대는 세르비아의 군용 무기 고물상이다. ‘니콜라 막수라’라는 한 예술가가, 매주 이곳을 방문해 예술 재료를 찾는다. 고물 무기더미에서 예술재료? 그것도, 가급적 전쟁의 최일선에 섰던 무기들, 또 가급적 전장의 핏자국이 얼룩진(물론 은유다. 살상무기를 선호한다는 뜻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 무기들을 고른다. 그 섬뜩한 살인무기들은 이 예술가의 손을 통해 음악을 연주하는 악기로 탈바꿈한다. 이를테면 M70소총과 군용 헬멧으로 만든 기타, 바주카포와 군용 가스통으로 만든 첼로, 탱크로 만든 타악기.......등이다. 막수라의 꿈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참전용사들로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연주하고 싶습니다.” ‘처치 못해 쌓여있는 무기 고물더미’는 세르비아의 상흔을 말해준다. 그 ‘상흔’이란 유고슬라비아 분열 과정에서 발생한 피비린내 나는 내전의 상처일 것이다. 세르비아 얘기 나오다 갑자기 왜 유고슬라비아? 라고 묻는 이들도 있을 듯 하다. MZ세대 중에는, 지구상에서 사라진 유고슬라비아란 국명이 금시초문인 이들도 있을 듯 하고. 요즘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음울한 지구촌에 세르비아-코스보 사이의 전운이 연일 토픽이던데, 이를
세계에는 재미난 대회들이 많다. 핀란드의 ‘아내 업고 달리기 대회’, 호주의 ‘참치 멀리 던지기 대회’ , 독일의 ‘오피스 체어 레이스(사무실 바퀴의자 달리기 대회)와 익스트림 다림질 대회(수중 다림질, 절벽 다림질, 번지점프 다림질 등), 뉴질랜드의 ’어린이 대상, 길고양이 사냥대회‘ 등이 그 예다. 우리나라 ’멍 때리기 대회‘도 집어넣을 수 있을 듯 하고. 별나기로 최고인 듯싶은 대회는 슬로바키아의 ‘무덤 파기 대회’다. 지난 2016년, 장례 산업 발전을 위해 장례업체 직원을 대상으로 시작됐다. 대회 규칙을 보면, 2인 1조를 이룰 것, 오직 삽과 곡괭이만 사용할 것, 무덤은 길이 200cm, 깊이 150cm, 폭 90cm의 규격을 맞출 것 등. 심사는 정확도, 스피드, 그리고 아름다움으로 평가하는데, ‘아름다움’은 ‘얼마나 예쁘게 팠는가’를 본다고 한다. 이 이색행사 이야기를 듣다보면, 죽음이 멀고 두렵게 느껴지지만은 않다. 슬로바키아 여행하면 공동묘지가 마을에 속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풍경이 이 대회와 겹쳐 떠오른다. 죽음을 삶 가까이에 둔 슬로바키아 문화는 주변 강대국의 끊임없는 침탈로 피얼룩진 과거사와 유관할 듯싶다. 그 오욕의 역사
그림을 보며 음악을 떠올릴 때가 있다. 미치도록 좋아하는 미국 화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1882-1967)의 그림을 보면 프랑스 작곡가 에릭 사티의 짐노페디(Gymnopedies)가 흐른다.(느껴진다) 옛 그리스어로 ‘벌거벗은 사람들’이라는 의미인 짐노페디는 슬픈가락이나 어둡지 않고 단음 선율인데 불협화음이 느껴진다. ‘고독’만으로 말해질 수 없는 호퍼의 그림을 부연해준다. 그런데 그의 그림에서 ‘브람스 4개의 소품 op.119 중 1번 인터메조 b단조’를 듣는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브람스와 호퍼의 저주받은 사랑. 스승의 아내를 평생 짝사랑한 브람스의 사랑 이야기는 모르는 이가 드물지만, 호퍼의 사랑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살았을 때도 슬펐던 사랑이 후세에 더 슬프다. 호퍼가 살던 시대의 미국은 어떤 곳이었나. 19세기 후반의 미국은 거대한 땅덩이, 천혜의 넘쳐나는 자원, 그리고 프론티어 정신으로 거세게 용틀임했다. 유럽이 20세기 들어서면서 세계 1,2차 대전으로 망가지고 있을 때 대서양 건너편에 있던 미국은 공업국, 산업국으로 비약적으로 발전한다. 호퍼는 1920년대의 대공황 혼란기에서 급
‘달나라에 갈 수 없다면!’ 북유럽의 외딴 섬나라 아이슬란드의 관광 홍보 문구다. 아이슬란드는 거리만큼이나 상식에서 먼 일이 일어나는 나라다. 귀신 이야기부터. 아이슬란드에 건물을 세우거나 도로를 놓으려면, 예정 부지에 ‘정령이 살고 있지 않다는 증명’을 해야 한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경치 좋은 곳에 ‘땅의 신이나 땅 사람, 혹은 숨어있는 사람’이라 부르는 정령이 산다고 믿는다. (우리 식으로 바꾸면 도깨비, 터줏대감 정도가 될 듯) 2013년, 도로를 내려던 시공업체와 정령이 깃든 바위 훼손을 막는 주민들 간에 싸움이 일어나 법정까지 간 일이 있는데, 판사는 주민 편을 들어 ‘바위를 파손하지 말고 이전’하도록 했다나. 다음 이야기도 귀신 이야기급이다. 맥도널드 햄버거가 아이슬란드 국립박물관에 전시된 일이 있었다. 15년 전, 금융위기로 아이슬란드가 부도 위기에 처하자 맥도널드가 발 빠르게 철수했다. 폐업 하루 전, 조르투르 스마라슨이라는 남자가 햄버거 세트를 구입한다. 그는 먹다 남은 것을 집에 둔 뒤, 3년 정도 지나 발견했는데 놀랍게도 조금도 썩지 않은 상태였다. 이 신기한 버거세트는 국립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가 1년 뒤인가, ‘버스 호스텔 레이캬비스
그림 하나가 하루를 점령한다. 일본 세키네 쇼지의 ‘죽음을 생각한 날’. 일본 배낭여행 중인 아들에게 남편이 SNS 가족방을 통해 보낸 글 중에 있었다. 학교를 자퇴한 열일곱 살 아들은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유럽에 이어 일본을 떠돌고 있다. 아들이 나라 밖 문화, 예술을 많이 접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남편은 거의 매일 ‘일본 예술 정보’를 보낸다. 세키네 쇼지의 그림을 보는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어두운 하늘 아래, 어두운 나무들 속, ‘죽음을 생각하고 있는’ 한 사내가 고개 떨구고 걸어간다. 그 배경 모두, 남자의 등을 누르는 십자가로 보인다. 또 다른 그림, ‘신앙의 슬픔’은 어떤가. 어두운 들판을 걷는 다섯 여인, 죄지어 끌려가는 듯도 하고 순교의 길인 듯도 하다. 손에 든 꽃은 사약처럼 느껴진다. 흰옷의 여인들 사이에서 혼자 붉은 옷을 입은 여자. 고개를 유달리 모로 꺾은 그 여인에게 시선이 오래 간다. 아, 그 여인의 배경 또한 십자가로 보인다. 사내와 붉은 옷 여인의 사연이 궁금하다. 미치도록. 화가에 대해 찾아본다. 19세기 말에 태어나 스무 해를 살고 폐병으로 죽었단다. ‘죽음을 생각한 날’을 열여섯 나이에 그렸다는 것을 알고 충격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