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러시아 참전이 사실일까?. 12일 KBS에서 북한군 2명을 러시아 쿠르스크지역에서 생포했다고 보도했다. 붕대를 감은 얼굴이 공개되었다. 외모가 비슷하지 않아 보인다. 설마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작년 10월 북한군이 쿠르스크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었을 때에 설마 했다. 그런데 사상자가 발생하기 시작하더니 그 숫자는 점점 늘어났다. 한 달 안되는 사이 ‘북한군 한 개 대대 사망, 총 3800명’이나 된다고 한다. 죽음이 통계로 기록되는 전쟁판에 북한 군인이 있었다. 북한군은 어째서 러시아 전쟁에 참가하게 되었을까. 그것도 최전방에서 총알받이가 되어 지뢰를 해체하며 전우의 죽음을 뒤로하고 떠밀려 나가야 하는지. 병사들에게 많은 돈을 주겠다 약속이라도 했는가. 무자비한 드론이 병사를 공격하는 영상을 보는 것으로 충격인데, 그 당사자가 내가 떠나온 내 고향 사람들이라는게 보기가 무척 힘들다. 아직 전쟁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병사가, 어느날 명령으로 지형에도 익숙하지 않는 전장으로 왔을 것이다. 만약 참전 사실을 알았다면 ‘난 못가겠소’ 거부라도 해보고 죽어도 덜 억울하지 않겠다. 막판 전쟁이 얼마나 처절한지 병사의 조국에서 모를리 없다. 전
2024년은 개인적으로, 국가적으로 결코 평범하지 않은 한해이다. 국가는 지금 12.3 비상계엄으로 혼란하다. 대통령의 권한대행을 맡았던 한덕수 총리가 탄핵 되었다. 그리고 지금 최상목 경제부총리가 권한대행을 넘겨받았다. 국가 비상상황에 권한대행이 있어 다행이다 싶으나, 전반적으로 대통령 권한을 행사하기는 소극적일 수 밖에 없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난무하고 무엇이 진실인지 가려보기 어렵다. 그 와중에 29일 제주항공 참사가 있었다. 행복여정문학 송년회를 마친 다음날 소식을 듣고 또 한번 놀랐다. 어떻게 이런 일이 한해를 마감하는 시점에 한꺼번에 일어날 수 있을까. 두 명을 제외한 비행기 탑승 전원이 사망했으니, 2024년은 개인이나 국가나 결코 평범하지 않은 한해이다. 올해는 개인적으로 이루어놓은 성취도 있다. 두 번째 시집 ‘오늘도 마음에 꽃을 심는다’를 출간했다. 남북통합문화센터 창작지원 공모 선정작으로 그동안 틈틈이 써놓은 글을 모았다. 글을 쓰는 기쁨도 크지만 책으로 출간했다는 뿌듯함도 있다. 나에게 글쓰기는 나를 확인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세상일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세상을 보는 창이 생겼다고나 할까. 나는
대통령은 얼마나 높은 자리인가? 대통령의 자리는 높다. 민주적인 선거로 선출된 대통령은 검증된 리더이다. 모든 사람의 존중을 받으며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남북한 문제는 물론 국내외 문제도 잘 풀어, 멋진 대한민국을 만들기를 기대한다. 대통령 권한은 국가 안녕에 쓰라고 있다. 국민 안녕이 깨어진 것은 지난 3일부터이다. 대통령은 12월 3일 10시 23분 비상계엄을 선포, 4일 새벽 2시 27분 계엄을 해제했다. 영화 ‘서울의 봄’이 현실로 일어난 것이다. 계엄군과 대치하고 있는 시민들, 국회로 난입한 계엄군, 담을 넘는 국회의원, 나는 지금 상황이 잘 정리되기를 바라며 놀란 마음을 쓸어내렸다. 처음 경험하는 나만 놀란게 아니었다. 모두 실시간 상황을 지켜보며 상황을 공유했다. ‘비상계엄령’이란 무엇인가? 긴급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내리는 명령이다. 언론이 통제되고, 계엄이 해제되기까지 행동의 자유가 제한된다.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권한인 ‘비상계엄령’은 때로 정치적 목적에 이용된다. 국민은 여기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그래서 신속하게 국회로 모였다. 그리고 표결에 참여할 국회의원이 담을 넘을 수 있도록 도왔다. 국민은 ‘비상계엄령’ 시기
디아스포라는 추방과 이산을 가리킨다. 그리스어 diaspeirein에서 유래되었고, ‘~를 넘어, ~를 지나다’라는 뜻과 ‘흩뿌리다’의 합성어이다. 성경에 나오는 ‘출애굽기’에서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바빌로니아(이라크)에서 가나안(이스라엘)으로 갔다. 이스라엘에 기근이 생기자 이집트로 피했고, 그곳에서 형제 요셉이 그들을 맞았다. 아브라함과 요셉이 죽은 뒤 유대인들은 노예 상태가 되었고, 이들을 구출하라는 하나님의 명을 받은 모세는 무리를 이끌고 가나안으로 갔다. 모세의 후손들이 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이스라엘을 건국했다. 이후 이스라엘은 북쪽과 남쪽으로 쪼개졌고, 신의 분노로 성전은 파괴되고 유대인들은 세계로 흩어졌다. 디아스포라는 이산과 이주를 설명하려는 연구자들이 만든 용어 즉 연구 분석틀이다. 디아스포라는 유대인을 가리키는 추방과 이산을 설명하는 언어가 되었고, 의미는 확장되었다. 5세기 강한 국가 사이에 끼인 아르메니아 사람들은 전쟁과 침략으로 자발적으로 고향을 떠났고, 16세기 노예무역으로 1100만 명에 달하는 아프리카인들이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로 갔다. 18세기 영국식민지 상태였던 아일랜드는 대기근으로 백만 명 이상이 사망했고, 경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등장으로 우크라이나는 영토를 잃을 위기에 있고, 러시아는 전쟁을 끝낼 기회를 얻는다고 한다. 어째서, 누가, 그곳에서 무엇 때문에 싸워야 하는지 묻기도 전에 두 나라 싸움은 곧 끝날 것 같다. 끝나기 전 뺏기지 않으려, 더 많이 빼앗으려 죽을힘을 다하고 있다. 경계와 경계를 넘어 밀고 당기고 마치 한국전쟁을 기억하게 한다. 두 나라 싸움에 미국 대통령은 무엇이기에 전쟁을 멈출 수 있다고 장담하며, 북한 지도자는 무엇이기에 막판 싸움에 앳된 병사를 총알받이로 보내는 것일까. 죽은 사람은 답이 없고 산 사람은 증오와 복수만 가득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했으니, 우주인 시선이라면 티끌같이 작은 지구에서 마구잡이로 파괴하는 인간의 어리석움에 조소를 보낼 것이다. 전쟁은 악이다. 총포탄이 오가야만 전쟁인가. 아직도 한반도는 전쟁이 일어날 위험이 가득하다. 어느 무식한 지도자가 게임이나 하듯 전쟁 버튼을 눌러버릴지 알 수 없다. 전쟁으로 상처받은 사람과 상처받지 않은 국가는 언제든 총과 대포로 싸울 준비를 하고 있다. 증오에 증오를 부르는 전장에서 목숨은 지극히 가볍다. 어디든 도피해 영달을 꾀할 수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최초 아시아계 여성이며 최연소 수상자에 한국인이라는 의미를 더해 국내는 물론 해외까지 관심이 뜨겁다. 책을 사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고 곧 백만부를 넘길거라 전망한다. 나는 한강 작가 관련 기사를 열심히 찾았다. 어떻게 작가가 되었을까. 그의 작품세계는 무엇일까. 한강 작가는 연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이십대부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만해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을 휩쓸었던 작가에게 더 이상 받을 상이 있을가 싶다. 전문가들은 한강 작가 작품을 역사적 트라우마를 강렬한 시적 산문으로 그려냈다고 평가했다. ‘역사적 트라우마’라는 말이 귀에 쏙 들어왔다. 사전적 의미에 트라우마는 심리 쇼크, 정신적 충격, 마음에 남긴 상처이다. ‘역사적 트라우마’는 지나간 시간에 생겨난 심리 쇼크가 오늘을 괴롭히는 마음의 상처이다. 트라우마를 쓰려는 작가는 먼저 트라우마에 대한 공감이 있어야 한다. 피해자 또는 가해자가 되어 그 자리에 서야 한다. 봉인된 상처를 건드리기에 작가의 성품이 동반되지 않으면 우울과 슬픔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타인에 아픔이 자기 아픔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역사적 트라우마’에 공감했다고 하더라도 글이 성숙하지 않으
추석이 다가온다. 추석이면 귀향길 차들이 도로를 채운다. 차 막힘으로 몇 시간을 시달리면서도 꼭 고향으로 간다. 고향 가서 부모님과 가족 형제들이 만난다. 보름달 같은 한가위 되세요.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 디지털 기술을 빌어 아름다운 엽서도 오간다. 전통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인사 하고 선물을 주고받는다. 아직 추석 연휴가 시작되지 않았는데 귀향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다. 추석은 달을 숭배한 조상이 만들어낸 민속 명절이다. 그래서 추석에는 귀향하는 관습이 있다. 추석에는 조상 묘를 찾는다. 혹은 먼저 떠난 사람 무덤을 찾는다. 무덤을 덮고 있는 풀을 깍고 주변을 정리한다. 무덤을 찾으려 추석이 있는지, 가을을 즐기려 추석이 있는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고 있다. 추석은 그동안 잊고 살았던 것들에 예의를 차린다. 제일 좋은 것으로 정성들여 제상을 차린다. 살인적인 추석 물가도 제상에 올릴 음식은 예외이다. 혹은 성경 구절을 읽는다. 전통과 근대가 어울려 충돌하지 않고 적당한 논리로 추석을 즐긴다. 엎드려 절을 하면 전통이고 머리만 숙이면 근대가 만들어낸 문화이다. 추석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는 날이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
불귀(不歸)는 돌아오지 않고, 돌아가지 아니함을 뜻한다. 불귀라는 표현은 시인 김소월의 ‘삼수갑산’에서 나온다. 삼수갑산은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양(량)강도에 있다. 삼수갑산은 한번 들어가면 다시 나오지 못하는 첩첩산중에 있다. ‘삼수갑산 어디뇨 내가 오고 내 못가네/불귀로다 내 고향 아하 새가 되면 떠가리라’ 산중에 쌓여 돌아가지 못하는 불귀는 새가 되어 고향으로 떠간다. 김소월은 시 ‘고향’에서 조상님 뼈가 묻힌 곳, 넋이라도 있거들랑 고향으로 가라고 한다. 내가 고향을 잊고 고향이 나를 버렸더라도 그곳에 부모님과 동생이 있고, 하늘, 바다, 가을, 단풍, 고깃배 들이 어우러져 있다. 백석은 고향을 아버지와 같은 따스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표현한다. 백골이 따라와 눕는 윤동주의 고향은 이주를 통해 새롭게 만들어진다. 등 따시고 배부른 곳이 고향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고향으로 갈 수 있을까. 고향이라야 별게 있냐고 하겠지만, 가볼 수 없으니 더욱 그립다. 고향은 떠나는 순간부터 그리움의 시작이다. 아쉬워 돌아보는 것은 정든 것과 이별 때문이다. 그리움도 무뎌져 가겠지만, 꿈에도 가고 싶은 곳이 고향이다. 따뜻한 어머니, 아버지 위엄있는 목소리,
‘아버지가 죽었다’로 시작하는 정지아 작가의 장편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2022년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은 진지 일색으로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죽음으로 비로서 해방되었다는 줄거리를 담고 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맛집도 나름 맛집이 된 이유가 있듯 출판보다 판매가 어려운 도서 시장에서 베스트셀레가 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죽음’과 ‘해방’으로 요약시킨 이야기 때문일까. 아니면 시골 풍경과 전남 사투리가 어울리는 문체가 좋아서일까. 이 책을 읽고 ‘죽었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을 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죽은 해방, 죽음은 고통이지만 죽음으로부터 해방된 희망을 쓰고 싶어진다. 조선이라는 나라를 잃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나라를 꿈꾸며 싸웠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저항한 사람들, 빼앗은 자에 붙어 영달을 꾀하지 않고 죽음으로 항거한 사람들을 선지자, 애국지사라고 한다. 이들에 희생으로 오늘의 국가가 존재함으로 8월 15일을 국가 공휴일인 ‘광복절’로 기념한다. 그러니 8월 15일은 빼앗겼던 시간을 다시 찾은 해방의 날이다. 해방은 되었으나, 아직 형태도 가지지 못한 신생아 국가는 허약했
분단은 피하고 싶은 용어이다. 그런데 분단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으면 나를 설명할 수 없고 내가 살고 있는 국가를 이해할 수 없다. 원래는 하나이던 나라가 둘로 갈라지면서 분단이라는 용어가 생겼다. 전쟁으로 이산가족이 생기고 수 십년 생사조차 모르고 살았다. 1990년대 북쪽 사람들이 고향을 떠나 남쪽으로 왔다. 대부분 중국 국경을 넘어 여러 나라를 거쳐 어렵게 대한민국에 도착한다. 살던 곳을 떠났으니 이주민이라는 사람도 있고, 자유를 찾아 왔다 하여 탈북민, 새터민, 귀순용사 등으로 불린다. 이것도 저것도 마땅한 용어가 없어 북배경주민으로 부르는 사람도 있다. 불려지는 당사자인 북한이탈주민 개개인도 생각이 다르다. 자신을 어느 위치에 놓을지 몰라 이렇게 저렇게 의견이 엇갈린다. 분단은 정치적 사건이다. 그래서 고향 탈출은 곧 정치적 사안이 된다. 정치적 효과가 높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차이는 크다. 경제적 이유보다 정치적 이유로 탈출한 사람이 훨씬 쓰임을 받는다. 대한민국에 도착한 순간, 정보를 줄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분류된다. 이러한 차이를 일부 사람들은 당연히 받아들인다. 정치적 사안이 된 탈출은 탈북이라는 용어로 정착된다. 정보에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