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린다. 자동차는 달리고 그 안의 연인은 서로 손을 꼭 잡고 함박웃음을 띠고, 점점 더 빨라지는 속도, 마침내 미친 듯이 내달리는 속도. 양 옆으로 갈라지며 찢어져가는 도로. 문득 날아오르는 새의 날갯짓에 시선이 빼앗겼나 했는데 순간, “끼~익!” 곤두박질치고 마는 자동차. 느닷없이 나타난 돌발적인 의외의 사건들을 통해 영화에서 노리는 건 역시 짜릿한 감동 또는 충격 또는 카타르시스가 아닐까 싶다. 영화나 소설에서는 리얼리티의 맛을 살리는 돌발 상황이 현실에서는 하늘이 무너질 듯 난감하기 짝이 없을 때가 있다. 몇 년 전 파리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탄 적이 있다. 늦은 밤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수화물을 확인하던 나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갖가지 추억이 담긴 물건으로 채운 캐리어가 고스란히 사라진 것이다. 우왕좌왕하던 나는 다행히 우리가 타고 온 비행기가 우리나라 국내항공이라는 생각에 이르자 차근차근 문의를 하게 되었고, 결국 우리의 수화물이 그곳 공항의 사정으로 처음부터 실리지 않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물건을 고스란히 받을 수는 있었지만 그 순간의 당혹스러움이란 말할 수 없는 곤혹함으로 다가왔었다. 요즘 내 주변에서
현관을 나서며 나는 별 생각 없이 어제 신었던 신발을 또 신는다.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마지막 준비과정을 위해 몸에 장착하는 신발. 그 신발로 하여 나는 바깥세상으로 발을 내딛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나를 확인하고 다시 돌아올 것이다. 마치 한 몸인 듯 내 몸에 붙어 다니며 지저분함으로부터 또는 차가움으로부터 때로는 통증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신발. 그 신발이 처음부터 그렇게 편안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갓 돌을 넘기고 있는 조카 ‘현’이의 작은 발에 신발을 신기자 금방 얼음처럼 몸이 굳어 꼼짝을 못한다.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아 신발을 이리저리 쥐어뜯기 시작하는 ‘현’이. 누구에게나 처음의 신발은 그렇게 어색하고 불편하지 않았을까 싶다. 마치, 사회의 일원으로 스며들기 위해 첫 발을 내딛던 그 날처럼 말이다. 처음의 어색함이 점점 익숙해지고 결국엔 한 몸인 듯 되어가는 ‘신발 길들이기’ 과정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마치 우리 삶과도 닮은 듯하다. 동대문 지하상가를 지나가다 문득 눈에 들어오는 구두를 산 적이 있다. 벚꽃 만발하던 그 날, 나는 잔뜩 멋을 낸 치마를 입고 그 구두를 신었다. 그 날 그 여의도에는 폭죽처럼 꽃잎이 흩날렸고 늦도록 휘청거리는 바람과 더불
선명하게 들리다 서서히 사라지는 저 소리들. 바로 옆 테이블에서 나누는 두 사람의 대화, 며칠 뒤 떠나게 될 해외여행 이야기를 하는 가 했지만 점점 희미해져가는 목소리.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출입문의 잔잔한 삐걱거림. 조금 더 멀리서 또는 가까이서 들리는 몇 번의 웃음소리. 전화 통화를 하거나 간혹 투박하게 스쳐가는 발자국소리. 그 소리들 사이로 흩어지는 커피 향까지. 모처럼 편안했다, 카페에 앉아 듣는 그 다양한 소음들이. 흔히 긍정적인 소음으로 알려진 백색소음은 비교적 넓은 음폭으로 백색광을 프리즘에 통과시키면 7가지 무지개 빛깔로 나눠지듯 다양한 음높이의 소리가 합해져서 만들어진다고 한다. 생활주변의 비오는 소리, 폭포수 소리, 파도치는 소리, 시냇물 소리, 나뭇가지가 바람에 스치는 소리 등이 있다는데 나에게는 조용한 카페에서 듣게 되는 소음이 바로 그런 백색소음이 아닐까 싶다. 한 사무실에서 아무도 모르게 백색소음을 평상시 주변소음에 비해 약 10데시벨(dB) 높게 들려주고 일주일을 지냈더니 근무 중 잡담이나 불필요한 신체의 움직임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한 달 후 백색소음을 꺼버렸더니 서로들 심심해하면서 업무의 집중도가 크게 떨어졌다고도 했다.
포항 북부시장 앞 자동차가 한두 대 오갈 수 있는 골목길이었던 것 같다. 손님이 아무도 없는 빈 미용실 문을 열며 나는 말문을 열었다. “계세요? 염색을 하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내실로 연결되는 방문이 열리고 한 아주머니께서 밖으로 천천히 나오시며 환하게 웃으셨다. “저, 휠체어를 탄 어머니라 몸이 좀 불편하신데 괜찮을까요?” 결코 크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환한 미소 끝에 힘을 주어 말씀해 주셨다. “당연히 괜찮지요.” 병원 주변을 몇 번을 오르내려도 도무지 휠체어가 오르기에는 턱이 높은 미용실만 있었지 들어갈 수 있는 미용실이 없었던 나는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아주머니께서는 망설임 없이 어머니를 편안하게 휠체어에 앉힌 채로 염색을 시작하셨다. 누워있는 시간이 많은 환자라 머리카락도 힘이 없고 하니 염색만 하고 아주 예쁘게 다듬어주시겠다고 했다. 그제야 마음이 편안해진 나는 미용실 안을 둘러볼 수 있었다. 머리를 할 수 있는 의자가 두 개, 손님들이 앉아서 기다릴 수 있는 소파가 하나. 벽에는 착한가격업소라고 적혀있는 표식이 붙여져 있고, ‘사랑’이라는 제목의 글귀가 표구된 액자도 하나 걸려 있었다. 가족인 듯한 사진들이 오밀조밀 붙어있는 작은 소품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