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는 역사전쟁 중이다. 주변 나라와의 전쟁이 아니다. 영화 ‘건국전쟁’으로부터 촉발된 1948년 8월 15일 ‘건국절’ 주장, 일제강점기 한국인의 국적이 일본이었다고 하는 궤변(詭辯), 모두 뉴라이트의 주장이다. 그 주장들은 다음과 같이 잘못된 것이다. 1949년 10월 국회는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3월 1일을 3.1절, 7월 17일을 제헌절, 8월 15일을 광복절, 10월 3일을 개천절 등으로 정하였다. 당초 이승만 정부는 7월 17일을 ‘헌법공포기념일’로, 8월 15일를 ‘독립기념일’로 제안하였는데 국회가 각각 제헌절과 광복절로 수정하여 의결한 것이다. 잘 된 일이다. 개천절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건국기원절’로 경축하던 것을 명칭변경하여 의결한 것이므로 건국절의 뜻을 담고 있다. 이 나라의 반만년 역사를 축소하여 1948년 8월 15일에 건국한 신생국으로 만들려는 것은 누구를 위한 발상인가? 8.15는 영토를 되찾은 날이지 독립을 선포한 날이 아니다. 독립선포는 이전으로 소급한다. 현행 대한민국 헌법(1987년)은 헌법전문에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 위에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아 …”라
1960년대 근대화시기에 미국의 경제학자 로스토우(Walt Whitman Rostow)는 이렇게 말하였다. 경제발전단계는 전통적 사회에서 선행조건을 갖추고 난 후 도약(take-off) 단계를 거친다. 도약단계는 마치 비행기가 날아올라 비행하느냐 아니면 추락하느냐는 전환점이다. 날아오른 경제는 성숙단계를 거쳐 최종 고도의 대량소비단계에 이르게 된다고 하였다. 한국경제는 도약하여 짧은 기간에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우리나라는 1996년 12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여 선진국에 진입하였다. 그 후 2019년 ‘30-50클럽’의 회원국가가 되고, 2023년 기준 1인당 총국민소득(GNI)이 일본을 앞질렀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되고 대량소비사회가 되었다. 그러면 우리의 삶의 질은 어떠한가. 고도 경제성장으로 우리 경제가 전반적으로 향상되었다. 그러나 국민들의 삶의 질은 그러하지 못하다. 소득의 격차가 심해지고 불평등이 심화되었기 때문이다.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는 가파르게 진행되어 우리 사회는 매우 불안하다. [세계불평등보고서](WID, 2022)를 보면, 2021년 소득집단별 상위 10%의 국민소득 점유율이 한국 46.5% 미국 45.5% 스웨덴 3
지난 8월 8일 한국독립기념관장이 된 김형석은 지난해 12월 이렇게 말하였다. “1948년 8월 15일에 정부를 세우게 되는 거예요. 거기에서 부터 대한민국이 시작되는 겁니다." 한국독립기념관장으로 임명된 뒤에도 그는 이런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했다. 대한민국이 1948년 8월 15일 건국되었고,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이라고 하면서, 독립투쟁의 역사를 부정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왜곡하는 것이 뉴라이트 역사관이다. 뉴라이트는 ‘반일종족주의’를 바탕으로 한다. 반일종족주의는 “친일은 악이고 반일은 선이며 이웃 나라 중 일본만 악의 종족으로 감각하는 반일종족주의를 고발한다”(이영훈외, 『반일종족주의』, 2019)라고 한다. 일본의 식민지배 35년간 한국인을 억압, 착취, 수탈, 학대하였다고 하는 일반적 통념을 거부하면서 뉴라이트는 이승만 전 대통령을 절대적으로 숭배한다. 이승만학당(이사장 이영훈)이 “이승만 대통령의 정치철학, 독립운동, 건국업적을 올바로 인식하고...전파할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고 하는데 과연 그러한가? 역사적 사실을 살펴보자.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 개원식에서 이승만 의장은 “이 국회에서 건설되는 정부는 즉, 기미년(己未年)에 서울
영국 사회학자 마이클 영이 1958년 '능력주의의 등장'을 발간한 이후 능력주의가 시대의 화두로 떠올랐다. 우리 사회의 능력주의는 어떠한가? 능력주의는 자신의 능력과 재능에 따라 보상받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가문과 혈통에 의한 세습주의를 부정하고 인종, 성별 등에 의한 차별은 금지된다. 무상으로 의무교육이 이루어지고 교육을 통해 능력이 키워진다. 경쟁으로 사회성취가 이루어지므로 능력주의는 공정의 가치가 되었다. 부와 명예는 개인의 능력과 근면의 결과이고 가난은 무능과 게으름의 결과로 이해됐다. 산업화 시기에 능력주의는 고도 경제성장의 초석이 되었다. 조선시대 과거제도를 통해 관리를 등용하던 전통으로 능력주의는 고시제도 등 각종 시험제도에 자연스럽게 반영되었다. 공개경쟁으로 능력에 따른 사회이동(social mobility)이 가능해졌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이 실재가 되었다. 그러나 경제의 발전이 부의 편재를 초래하고 경제적 격차가 심해지면서 ‘금수저 흑수저’ 논쟁이 회자 되었다. 1994년부터 시행되어 온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대학입학 선발제도에 초점을 둘 뿐이다. 능력주의를 개선하기 위한 논의는 찾아보기 어렵다. 학생들의 성적을 서열화하여 어느
1989년 7월 한 영화가 개봉되었다. 강우석 감독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이다. 좋은 성적을 바라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여중생 딸 은주가 자살하고 만다. 이 영화는 학교 성적에 목을 매고 사는 가정의 비극을 고발하고, 한국교육의 어두운 면을 경고하였다. 1960-70년대에 이룬 우리나라의 근대화는 교육의 발전을 통해 가능한 것이었다. 자연자원이 없는 우리나라는 인적자원을 양성하여 산업화를 추구하였다. 교육을 위해 초중등 교원을 양성하고 존중하여(君師父一體) 기초교육과 중등교육을 견고하게 하고, 실업교육을 통해 산업화의 기반을 만들고, 고등교육 특성화, 산학협력 등을 추진하였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근대화를 이룩하게 되었다. 2023년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10위가 되고, 국민총소득(GNI)은 3만 6000달러가 되었다. 인구 5천만명 이상이고 국민총소득 3만불 이상인 국가에 속하게 되었다. 경제발전은 교육발전을 통해 성취되었다. 그러나 지금 한국교육에는 어두움이 짙게 드리워졌다. 12-14세 아동과 15-7세의 청소년의 자살율이 2021년 각각 5명, 9.5명으로 계속 높아지고 있다(통계청 아동청소년 삶의 질, 2022).
6월이다. 6.25가 발발한 지 74년이 된다. 3년 한국전쟁이 끝날 즈음 태어난 나는 한반도 분단시대를 살아왔다. 돌이켜보면 통일에 대한 기대가 크게 일어났던 때는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던 날이었다. 이제 우리나라 3.8선도 머지않아 무너지지 않겠는가 하고 내심 바랬지만 그것은 남의 나라 잔치로만 끝나고 말았다. 독일은 통일을 위해 치밀하게 준비하였건만 우리는 그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후 남북의 정상들이 수차 만나서 합의서를 교환하고 진척시켰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아무런 진전이 없다. 지금 한반도 주변 정세는 험난하고 남북의 관계는 최악의 상황이다. 그러나 우리는 꼭 비관만 할 수 없다. 난관속에서도 우리 민족은 잘 극복해 오지 않았던가! 휴전선은 보통‘38도선’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경기도 연천이 북한의 개성시보다 더 북쪽이고, 강원도의 화천,철원,김화,양구,임제,양양,고성이 모두 3.8선 이북이다. 그 까닭은 강원도 지역에서 치열한 격전 끝에 군사분계선을 위로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휴전회담이 시작되던 1951년 6월부터 1953년 7월 27일 휴전회담이 체결되기까지 전투는 주로 강원도지역에서 집중적으로 그리고
각 시대에는 시대를 관통하는 정신이 있다. 당대 시대를 특징지으며 그 시대를 지배하는 정신을 말한다. 그 시대에 맞는 국정운영 이념을 정책으로 제시하면 그 정부는 국민의 지지를 받는다. 그러나 시대의 정신을 반영하지 못하는 정권은 국민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된다. 시대를 소급해 보자. 경제적인 측면에서, 3당연합으로 등장한 제6공화국 정부는 부동산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토지공개념제(1989)를, 문민정부는 금융실명제(1993)를 도입하여 투명한 경제를 지향하였다. 국민의 정부는 전 정부로부터 발생한 ‘IMF금융위기’를 잘 극복하였다. 남북관계 측면에서, 6공화국정부는 ‘남북기본합의서’(1991)를 체결하여 남북교류의 근거를 마련하였다. 국민의 정부는 6.15 남북공동선언(2000), 참여정부는 남북정상선언(2007), 문재인 정부는 남북정상회담(2018)과 판문점 선언으로 남북관계를 개선하였다. 그러나 5공정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가 아무런 족적을 남기지 못한 것은 시대의 요구를 외면하였기 때문이다. 지난 4월 10일 치러진 제22대 국회의원선거는 윤석열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였다. 선거를 통해 정부 여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바닥을 쳤다. 이것은 국민의
경기 북부 특별자치도 설치(경기분도)와 관련한 입법이 제 22대 국회로 넘어갔다. 지난해 여야 의원들이 각각 국회에 제출한 '경기북부특별자치도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안' 등이 폐기되는 수순이다. 제21대 국회에서 강원특별자치도, 전북특별자치도에 관한 입법이 이루어져 각각 지난해와 올해 특별자치도가 출범하게 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것은 메가시티서울을 추구하는 여당과 경기분도를 주창하는 경기도의 입장이 상충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국민의힘(김기현 대표)은 김포시를 비롯 서울 인접 도시를 서울에 편입하는 일명 '메가시티서울'을 당론으로 추진하였다. 메가시티서울은 서울이 거대도시화하여 경쟁력있는 도시를 지향한다. 메가시티 동경, 런던, 파리, 뉴욕을 살펴보자. 최근 동경 수도권의 인구(4351만 명)가 전체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35%이다. 런던대도시권의 인구(1437만 명)는 전체의 21%, 일드프랑스의 인구(1230만 명)는 전체의 20%이고, 뉴욕 대도시권의 인구(2090만 명)는 전체의 6%이다. 이에 비해 서울 수도권의 인구(2600만 명)는 전체의 50.6%에 달한다. 서울 수도권의 인구가 너무 많다. 지난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공공기관 지방 이
우리나라 출산감소가 예사롭지 않다. 2023년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72명이다. OECD국가의 평균(2021년) 1.58명에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고, 현재 인구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합계출산율(2.1명)의 1/3 정도이다. 이런 추세라면 우리나라가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소멸하는 국가가 될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인구감소를 막기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여 왔지만 ‘백약이 무효’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포기하기에 너무 이르다. 저출산 문제는 종합적이고 근본적으로 풀어야 하며 토지문제 해결이 그 출발점이다. 돌이켜 보면 1960-70년대의 근대화를 이룩하게 된 것은 우수인력과 산업화에 기인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제1공화국에서 1950년 실시한 농지개혁이다. 농지분배로 인해 전체 농가의 70%에 이르는 소작농이 자작농이 돼 농업생산력을 높이고 소득이 향상되었다. 농업소득의 증가는 공업투자와 소비를 유발하고, 농민들은 자녀를 공부시켜 산업화에 필요한 우수인력을 충원했다. 이처럼 농지개혁을 통한 농촌의 안정화는 우리나라가 급속한 경제개발을 이루는데 밑받침이 되었다. 빠른 경제발전은 토지가격의 폭등을 초래하고 토지 소유는 편중돼 경제의 흐름을 악화시켰다.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 첫 회의에서 이윤영 의원은 다음과 같이 기도하였다. “우리 조선독립과 함께 남북통일을 주시옵고, 또한 민생의 복락과 아울러 세계평화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이것은 통일된 정부를 수립하지 못하는 것을 참회하면서 민족의 통일을 기원하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79년이 지난 오늘 두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하나는 미군정기에 있던 신탁통치론과 다른 것은 제1공화국의 농지개혁이다. 미군정기 3년은 대한민국의 독립국가 수립을 위한 모색 과정이었다. 연합국은 1945년 2월 ‘얄타회담’과 12월에 ‘모스크바삼상회의’에서 한국의 신탁통치를 결정하였다.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하여 북한에는 소련군이 진주했고 남한에는 미군이 주둔하였다. 미·소공동위원회가 한반도의 신탁통치를 논의 하였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하였다. 각계의 여러 정파의 지도자들이 찬탁과 반탁으로 나누어져 서로 격론하다가 결국 신탁통치안은 거부되었다. 그 결과 남북은 각자의 정부를 가지게 되었고 한반도의 분단은 고착되었다. 한편 전후 유엔에서 관장하였던 14개국의 신탁통치국가들이 그 뒤 대부분 독립하여 단일한 국가를 유지하였다. 이를 미루어 볼 때, 그 당시 우리 지도자들의 통찰력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