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은 인정(人情)을 중시해온 우리의 전통적 법 감정을 대변하지요. 역사 속에서 우리의 법치는 기본적으로 가해자와 피해자를 모두 인간적으로 인식하는 온정주의(溫情主義)에 뿌리를 두고 있어요. 아무리 큰 죄를 짓더라도 진정 뉘우치는 모습을 보이면 쉽게 용서하는 게 우리의 양속(良俗)처럼 돼 있는 게 사실이에요. 그래서 세상이 이만큼 평화로울 수 있었다고 해석하는 건 별문제예요. ‘주취감경(酒臭減輕)’이라는 게 있어요. 술에 취해서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저지른 범죄의 경우 죄인의 심신미약을 인정하여 벌을 가볍게 해주는 조치이지요. 범죄자의 사정까지 헤아리고 살필 정도로 온정주의가 법치의 한복판에서 위력을 발휘해온 것은 어쩌면 미덕일 거예요. 그러나 범죄가 날로 지능화하고 흉포화하는 오늘날 이런 느슨한 풍조는 정말 괜찮은 걸까요? 지하철 신당역에서 여성 역무원이 자신을 스토킹해 오던 동료 남자 직원으로부터 살해를 당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어요. 쉽게 얘기하면 악마적 성품의 남자가 일방적인 구애 끝에 ‘짝사랑’하던 여성을 잔인하게 죽인 사건이에요. 잊을만하면 발생하곤 하는 유사한 강력 사건들을 보노라면 현행법과 제도가 세태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에 대한 추가 징계 여부에 대해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18일 국민의힘 윤리위는 긴급회의를 개최해, 이준석 전 대표에 대한 추가 징계 절차 개시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준석 전 대표에 대한 추가 징계 가능성은 “예상 밖의 일”은 아니다. 이준석 전 대표 본인은 발언 취지가 왜곡됐을 뿐 아니라 정치적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이미 “양두구육”, “개고기” “신군부”등의 용어로 국민의힘을 공격해 국민의힘과 정치권에 상당한 논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국민의힘 의원 총회에서도 추가 징계에 대한 “의견”이 제시된 바 있다. 이런 와중에 17일, 이준석 전 대표는 경찰에 출석해, 성 상납 의혹과 관련된 무마 의혹과 무고 의혹 등등에 대한 조사를 받았다. 만일 기소가 된다면, 이준석 전 대표에 대한 추가 징계 가능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론 측면에서 보자면, 이 전 대표에 대한 추가 징계와 이에 대한 이 전 대표의 대응은, 국민의힘과 이 전 대표 양자 모두에게 득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이 전 대표에 대한 추가 징계가 내려질 경우, “당연히” 가처분을 추가로 신청할 것이고,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면…
의심해 보는 것은 신앙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견고하게 한다. 불신은 사람이 무엇을 믿고 안 믿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자기가 믿지 않는 것을 믿고 있다는 뜻이다. (마르티노) 이따금 영혼의 삶을 믿지 않게 될 때가 있다. 이것은 불신이 아니며, 그때 우리는 육체의 삶을 믿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생명은 영혼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갑자기 죽음이 두려워질 때가 있다. 그것은 무언가로 인해 머리가 멍해져서, 또다시 육체의 삶이 진정한 삶이라고 믿을 때 흔히 일어나는 일로, 마치 연극을 열심히 관람하고 있는 사람이 무대 위의 세계를 현실로 생각하고 그것에 공포감을 느끼는 것과 같다. 인생에서도 이와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 그러나 그러한 환각의 순간에도 신앙이 바른 사람은, 자신의 육체적 생명 속에 사는 것은 결코 자신의 진정한 생명의 행복을 빼앗을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영혼이 침체에 빠지는 시기에는 자신을 환자로 생각하며, 가능한 한 조용히 있는 것이 중요하다. 현자는 가장 좋은 정신 상태에 있을 때도 회의를 품는 수가 있다. 자유자재로 의심할 수 있는 것은 신앙의 기초를 이룬다. 참된 신앙에는 언제나 회의가 따른다. 만일 내가 의심하지…
“뚜 뚜 뚜우, 오후 1시입니다. HLKA 방송입니다.” 라디오 방송을 듣다 보면 아나운서는 수시로 현재 시각과 방송국의 무선호출부호를 알려준다. 어린 시절 이같은 시보(時報)와 함께 알려주는 HLKA와 같은 방송국의 알파벳은 무심히 들었던 것이지만 이게 무슨 의미인지 오랫동안 궁금증을 더하였다. HL은 방송국이 사용하는 무선국의 국가 식별부호이다. 그렇지만 나라마다 사용하는 무선국의 식별부호라고 해서 각국 정부가 마음대로 정해서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국제전기통신연합(ITU, International Telecommunication Union)이라는 국제기구가 전파를 사용하는 각 국가에 국가식별부호를 부여하여 국가별로 구분하여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1947년 미국에서 열린 ITU회의에서 HL을 부여받았다. 당시 미군정이 신청하여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으며, 각 방송국은 HL이라는 접두어에 방송국마다 부여된 알파벳을 사용하게 된다. HLKA, HL은 한국의 무선국을 의미하고 KA는 KBS의 제1라디오라는 뜻이어서 언제든 다른 방송국과 식별할 수 있는 기능을 한다. 일종의 고유한 이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HL은 한국의 미디어 역사에서 어떤
윤석열 후보 시절 공염불 수사(Rhetoric), 제1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수사(Investigation). 정치권은 내전 중이다. 국민이 보기엔 수사(修辭)와 수사(搜査)는 정치가 아닌데 말이다. 문제는 경제이건만, 정치는 ‘문제 그 이상’이다. 게다가 윤석열 정부의 ‘외교 참사’는 국내 기업들에게 막심한 피해를 가져다 줬다. 무능한 정치는 국익 손상과 직결된다는 것. 확실하게 드러났다. 지난 5월, 바이든(Joe Biden) 대통령은 우리나라에 내방해 삼성(반도체)과 현대(전기차)의 ‘대미 투자’ 실익을 챙겼다. 얼마 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 발효되면서 현대의 전기차는 보조금 지급서 제외됐다. 미국은 IRA(Inflation Reduction Act)뿐만 아니라 반도체, 바이오에 관해서도 미국 내 연구와 제조를 강제하는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방침에 따라 한국의 미래에 위기가 닥쳤다. 기회는 있었다. 펠로시(Nancy Pelosi) 미 하원 의장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다. 펠로시를 상대로 노력했어야 했다. 정부 역할이다.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국정원, 외교부와 주미 대사관,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부처의 총체적 안이함을…
교육부는 문재인 정부에서 도입한 민주시민교육과를 폐지하고 박근혜 정부에서 만든 인성체육예술교육과로 통합하기로 했다. 세종교육청의 최교진 교육감은 충청투데이 9월 14일자 기고 <민주시민교육을 허하라!>에서 “인성교육이 민주시민교육의 여러 영역 중 하나로 균형 있게 이루어지고 있었기에 교육부의 ‘인성교육’에 대한 집착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다.”면서 “민주시민교육은 정치적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 라고 강조했다. 민주시민교육이 중고등학교 교사들과 시민사회 활동가들의 열정으로 수행되다가 제동이 걸린 셈이다. 겨우 걸음마를 배우는 과정에서 된서리를 맞은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교사들의 자발적 열정과 사명감으로 진행해온 것이니 차제에 지나온 과거를 되돌아보며 다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면 되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민주시민교육이 제대로 방향을 잡고 진행되었느냐 하는 진단과 성찰이다. 살펴본 바로는, 주로 민주화운동 세대에 해당하는 교사와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그들의 경험을 투영하여 부지불식간에 학생과 시민들을 ‘의식화’ 하고자 하는 열정에 사로잡혀 있지 않나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물론 주입식 수업을 지양하고 학생들의 참여를 전제로 한 방식
-졸라의 작품 『돈』 ‘사카르’라는 인물은 한때 잘 나갔다가 파산을 한 뒤, 여기저기 사람들을 끌어모아 출자를 통해 신디케이트 회사를 꾸려 ‘만국은행’을 만든다. 그러고 나서는 주가조작을 통해 주식의 가치를 한껏 부풀려 그 차익을 온통 뻥튀기를 하다가 결국 몰락하게 된다. 일확천금(一攫千金)을 노렸지만 망해버린 것이다. 때는 나폴레옹의 조카 보나파르트 나폴레옹 3세가 쿠데타로 집권했던 프랑스 제2 제정 시기에 속하는 1860년대 말에서 70년의 시기였다. 이 사건은 에밀 졸라의 작품 <돈(L’argent)>의 줄거리에 담긴 내용이다. 자본과 욕망이 한 몸이 되어 유럽의 수도 파리를 휩쓴 광기와 이에 덩달아 놀아나게 된 프랑스 대중들의 모습을 에밀 졸라는 촘촘한 취재와 놀라운 문학성으로 그려냈다. 1871년 <루공 가(家)의 행운(La Fortune des Rougon)>이 그 첫 번째 이야기라고 한다면 <돈>은 20년 뒤 출간된 소설이었다. 19세기 프랑스 사회사를 표현해내겠다는 목적으로 시작한 “루공-마카르 총서(Les Rougon-Macquart)” 가운데 하나였다. 이 총서는 무려 18권으로 마무리되었으며, 에밀 졸라 문
세기의 장례, ‘유해’는 뭐고 ‘운구’는 또 뭐지? ... 여왕의 유해를 운구차로 옮기는 것은 밸모럴 영지의 사냥터지기들이 맡았다. (뉴시스) ... 여왕 유해 보러 2만 명 밤샘, 조문에 최대 35시간 줄 (국민일보) ... BBC에 따르면 이날 오전 여왕의 운구를 영구차에 실으며 장례가 시작된다. (이데일리) 언론의 기사다. ‘여왕의 遺骸(유해)’는 금방 사망한 주검이 아니다. 추려진 뼈도 크게 보아 주검이라고? 억지다. 유해는 ‘남은 뼈’ 유골(遺骨)이다. 骸(해)의 뼈 골(骨)자를 보라. 다 안 적어서 그렇지, 헤일 수 없이 수많은 ‘유해’들이 언론에 떴다. 뉴스1 조선일보 중앙일보... ‘여왕의 운구’를 영구차에 싣는다고 했다. 운구가 뭘까? 높은 사람 주검의 이름일까? 아마 ‘시체 넣은 관(棺·柩)의 운반’을 뜻하는 운구(運柩)를 그렇게 쓴 것으로 보인다. ‘주검=운구’가 된 것이다. 맞나? 틀렸다. 개념어(槪念語)의 활용, 서툴거나 어색한 것 까지는 ‘새로운 언어적 시도’라고 짐짓 못 본체 한다고 치자. 그러나 잘못된 단어가 공공(公共)의 위치에 놓이면 곤란하다. 사람들이 보고 배운다. 기우(杞憂)일까? 언론 종사자들이 BBC를 인용할 정도로 영
토지의 사유제는 노예제도, 즉 인간의 사유제와 마찬가지로, 아니 그 이상으로 정의에 어긋난다. 맨 처음 누군가가 어떤 땅에 울타리를 두르고 “이 땅은 내 것이다”라고 말했을 때, 그 말을 믿어 준 마음씨 좋은 사람들, 그들이 바로 지금과 같은 시민사회의 창시자이다. 그런 때, 그 말뚝을 뽑아버리고 도랑을 메운 다음, “조심하시오, 이 사기꾼의 말을 믿지 맙니다. 만약 땅은 누구의 소유물도 될 수 없고, 땅에서 나는 것은 모든 사람의 것임을 잊는다면, 여러분은 모두 파멸할 것이오!” 하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인류는 그 많은 범죄와 전쟁과 살육과 불행과 비천함에서 구원받았을 것을! (루소) 단순히 공정함이라는 면에서 봐도 토지의 사유는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땅의 일부가 한 개인의 사유물이 되어, 마치 그에게만 소유권이 있는 물건처럼 그 한 사람의 이익을 위해, 그 한 사람이 사용하도록 점유되는 것이 공정한 거라며, 그 밖의 땅도 모두 똑같이 사유물이 될 것이고, 결국은 땅 전체가 그렇게 되어 지구 전체가 온통 사유재산 투성이가 되기 때문이다. (허버트 스펜서) 현재의 토지 사유권이 합법적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트럼프와 달리 바이든 대통령 시대가 열리면서 미국은 자국 이익만 중시하는 것이 아닌 국제질서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 줄 것을 기대했다. 실제로 바이든은 집권 초기 트럼프가 탈퇴한 파리기후협약과 세계보건기구에 재가입함으로써 전 세계적인 팬데믹 사태와 기후변화 위기에 지도력을 발휘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그도 결국은 트럼프와 다름없는 미국 우선주의, 미국 제일주의의 미국 대통령이었다. 이미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사인함으로써 내년부터 판매되는 차량은 모두 미국 내에서 생산된 부품만을 사용해야만 보조금을 지급한다고 법규화 한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9일과 12일에는 새로운 ‘바이 아메리칸법’에 서명하였다. 미국 내에 건설하는 반도체 생산시설에 거액의 보조금을 주는 ‘칩과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 그리고 국내 개발과 생산을 우대하는 ‘국가 생명공학 및 바이오 제조 이니셔티브(NBBI)’ 행정명령을 승인한 것이다. 향후 자동차산업과 반도체 그리고 바이오산업까지 모두 미국 내 생산시설과 제품생산을 유도함으로써 일자리 창출을 하겠다는 꿈을 실현하는 내용들이다. 중국의 경제적 부상에 대응하겠다는 논리였지만 결과적으로는 모든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