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보람은, 네가 가장 선한 순간에 도달했을 때, 네 가슴속에 삶의 의의에 대한 최고의 깨달음을 주는 것이다. 신에게 봉사하는 내적 형식으로서, 신의 은총을 구하는 수단으로 이해되고 있는 ‘기도’란 공허한 미신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원래 언어를 필요로 하지 않는 존재인 신에게 언어로 자신의 소망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기도에 의해서는 우리는 본질적으로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으며, 또 신의 계율로서 우리의 마음에 각인된 의무의 하나를 수행한 것도 아니므로, 결국은 실제로 신에게 봉사한 것이 아니다. 우리의 모든 행위를 통해 신을 기쁘게 하려는 마음으로부터의 소망, 다시 말해 우리의 모든 행위가 바로 신에게 봉사하는 거라는 마음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소망 속에는, 우리의 마음에 절대적으로 내재해야 하는 기도의 정신이 들어 있다. 이 소망에 언어와 형식을 부여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마음에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하는 수단일 뿐이다. (칸트) 이따금 어린아이처럼 누군가에게(신에게) 호소해 도움을 청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이것은 좋은 감정일까? 아니다. 좋지 않다. 그것은 나약한 마음이고 믿음이 없는 것이다. 뭔가를 간절히 소망하는 기도
인조반정(仁祖反正)은 쿠데타다. 쿠데타로 왕좌를 빼앗은 자는 능양군(綾陽君) 이종(李倧)이고 빼앗긴 자는 광해군(光海君) 이혼(李琿)이다. 조카에게 왕좌를 빼앗긴 광해군은 강화도로 유배되었다. 쿠데타에 성공한 자들은 쫓아낸 광해군의 죄상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우리가 중국을 섬긴지 2백여 년, 의리로는 임금과 신하관계요 은혜로는 부모와 자식관계로다. 그러함에도, 배은망덕한 광해군은 천명을 어기고 오랑캐에게 투항하는 대역죄를 범하였음이라.” 명(明)과 후금(淸) 사이에서 관형향배(觀形向背)하던 광해군의 외교정책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사정이 그러하였으니, 쿠데타로 등극한 인조가 ‘숭명반청(崇明反淸)’을 부르짖은 건 당연했다. 인조와 쿠데타 세력은 명나라를 끔찍이도 ‘추앙’했다. 추앙의 정도가 어찌나 지극하던지, 왕은 명나라 황제의 신하이기를 자청했고, 쿠데타 주역들은 명나라 황제의 자식이기를 갈망했다. 신하이자 자식의 눈에 청나라가 제대로 보일 리 없었다. 그들에게 청(淸)은 오랑캐에 불과했다. 아버지 나라를 도와 청(淸)과 싸우겠다던 인조는 전쟁이 일어나자 궁을 버리고 도망치기 바빴다. 도망칠 때, 인조는 눈을 감고 귀를 닫았다. 감고 닫은 왕의 마음에 백
지난주 우리를 곤혹스럽게 했던 소식이 기재부 장관의 국유재산 매각추진 발표였다. 흥청망청하던 공공기관의 파티는 끝났다며 성남과 시흥 등의 수도권에 있는 불필요한 공공기관의 부동산을 민간에 매각한다는 것이다. 국유재산의 민영화인 셈이다. 그러나 매각대상으로 공시한 9건의 부동산에서 여섯 곳이 논현동, 삼성동 등 서울 강남의 노른자위에 있는 건물들인데 숨기고 발표했다. 심지어 인근에 지하철역까지 계획된 부동산도 있었는데 말이다. 기재부는 민간 경제 활성화를 위한 매각이라고 하지만 그 활성화의 대상인 민간이 누구란 말인가. 매입조건도 분납 가능하며 정부 지원까지 줄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미 구입할 사람을 정해놓고 한 발표로 눈가리고 아웅은 아닌지 의심케 한다. 국가의 부채를 줄이고 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라면 국채를 발행하거나 기업의 투자 욕구와 기업가 정신을 일으켜 국내 생산을 높일 생각을 해야지 손쉽게 국가의 재산을 민간에 팔아버려서 메꾼다는 발상이 참으로 어이가 없다. 우리는 IMF 외환위기 당시 국가가 헐값으로 넘어가는 순간에도 자신의 이익을 챙기던 공직자를 기억하고 있다. 검은 머리 외국인이라는 가짜 한국인들에 의해서 투자된 회사들에 의해 국부유출은 지금도
인생은 운동이다. 따라서 인생의 행복은 어떤 일정한 형태가 아니라 좋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그 방향은 자신에 대한 봉사가 아니라 자신을 보낸 자(신)에 대한 봉사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행복과 쾌락을 권력 속에서 찾고, 또 어떤 사람은 학문에서, 또 어떤 사람은 육욕에서 찾는다. 그러나 참으로 행복에 가까이 다가간 사람들은, 행복이란 특정한 일부 사람들만 소유할 수 있는 것 속에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인간의 참된 행복이란 모든 사람이 차별이 없고 부러워할 필요도 없이 다 함께 소유할 수 있는 것이며, 누구나 스스로 잃어버리려 하지 않는 한 잃어버릴 수 없는 성질의 것임을 알고 있다. (파스칼) 행복(幸福)이란 인간이 자기 개인을 위해 바라는 것이고, 선복(善福)은 모든 사람과 함께 자신에게 바라는 것이다. 행복은 투쟁을 통해 얻을 수 있고 선복은 오직 사랑을 통해 얻을 수 있다. 진정한 행복은 아무 데나 흔히 있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행복은 오직 모든 사람에게 행복하고 선한 것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해롭지 않고 유익한 존재가 되고 싶으면 만인의 행복과 일치하는 것만 하라.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도 행복을 얻을…
아침 산길에서 닭 우는 소리를 듣는다. 오늘은 서울에서 우리 아이가 열심히 노력해 제 능력으로 K 회사 대표이사로 취임하는 날이다. 그래서인지 산자락에서 새벽을 알리는 닭 울음소리를 듣자니 시골에서 자랄 때 우리 집 새벽을 깨우던 수탉의 목소리며 당당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지금은 휴대폰 알림 소리가 잠을 깨운다. 그러나 알림 소리보다 닭 울음소리가 창조주 음성처럼 먼저였다. 다음으로는 할아버지 기침 소리에 집안의 대문과 어머니의 부엌문이 열렸다. 할아버지의 기침이라는 무언의 언어가 회사 대표의 리더십 같은 역할을 했다. 어렸을 적 일이다. 날만 새면 친구들과 어울려 지금의 골프 같은 자치기나 구슬치기, 땅따먹기, 딱지치기 등에 해가는 줄 몰랐다. 이때 해질 무렵이면 어머니는 내 이름을 부르며 골목길로 나를 찾으러 다니셨다.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땅따먹기고 뭐고 발로 쓱쓱 문질러버리고 어머니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 생각하면 닭 우는 소리에 태어나 어머니 같이 하나님이 부르시면 그 순간 손 털고 떠나는 게 우리들 존재의 끝인 것 같다. 나는 하나님에게 특별히 감사드릴 수 있는 것이 있다. 어머니의 외아들로 태어나 철저히 고독하게 유년기,
호주의 스타 가수 올리비아 뉴턴 존이 지난 8월 8일 73세의 나이로 세상과 이별하고 우주의 별이 되었다. 1948년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아버지 Brinley Newton-John과 독일 출신의 어머니 Irene Born 사이에서 태어났다. 올리비아는 1954년 아버지가 호주의 대학교수가 되어 부임하게 됨으로써 가족들이 모두 멜버른으로 이민해 호주 국적을 갖게 되었다. 올리비아를 거론할 때 빠지지 않는 가족관계가 있다. 그녀의 외할아버지가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막스 보른(Max Born)이라는 사실이다. 보른은 ‘불확정성 원리’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하이젠베르크에게 행렬역학의 아이디어를 제공했고, 역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슈뢰딩거의 방정식에서 파동함수 프사이(ψ)가 슈뢰딩거의 해석과 달리 확률의 파를 의미한다고 함으로써 양자역학의 안착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보른은 1954년에 ‘양자역학의 기초연구, 특히 파동함수의 통계적 해석에 관한 연구’로 뒤늦게 노벨상을 받았다. 보른은 1933년 1월 독일에서 나치당이 집권함으로써 유대인에 대한 탄압을 피해 영국의 케임브리지 세인트 존스 칼리지에 자리를 잡아 정착을 하게 된다. 그곳에서 딸인 Irene가 Brinl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맞았다. 취임 100일을 맞아 거의 모든 언론들은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점수 매기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런 것은 거의 “관습”이 됐는데, 이런 “관습”에 대해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사장도 취임 100일 동안의 평가를 받기 어려운데, 국가를 운영하는 대통령에 대해 100일간의 성적을 매긴다는 것은 의미도 없고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는 현 정권에 대한 점수로 25점을 줬다는 보도가 있다. 이준석 전 대표가 25점을 준 이유는 현재 지지율이 25% 정도이기 때문이란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매우 낮은 수준이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윤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낮은 이유를 따져보면, 지지율이 곧 점수가 되기는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다. 윤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은 정책적 오류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의 원인은 대부분 1회성 사건에서 기인한다. 예를 들어, 김건희 여사의 지인을 봉하마을 방문 때 동행시킨다든지, 대통령실 비서관의 부인을 나토정상회의에 동행케 했다는 것들은 1회성 “사건”이지, 구조에서 기인하는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재용 삼성부회장은 원죄를 안고 산다. 그는 단돈 16억을 증여세로 내고 삼성그룹 지배권을 손아귀에 넣었다. 이 과정에서 이건희 회장의 보유지분은 단 한 주도 줄지 않았으며 이재용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모든 것은 아버지 이건희 회장의 경영권 무세승계 의지와 비서실의 무세승계 전략에 따라 계열사들이 헐값발행 등 배임행위를 마다지 않고 움직여준 덕분이었다. 무세 경영권 승계는 평생 안고가야 하는 이재용의 원죄다. 오래됐다. 이건희 회장은 1996년 말 지주회사격인 에버랜드의 지배지분을 이재용에게 헐값에 전환사채형식으로 신규발행해준 후 1999년에는 에버랜드에 삼성생명의 지배지분을 몰아준다. 이로써 이재용-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전기-에버랜드로 이어지는 순환지배구조가 완성돼 이재용이 그룹경영권을 통째로 획득한다. 그 후 에버랜드가 제일모직에,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으로 흡수 합병되는 약간의 변화가 뒤따랐지만 이는 이재용의 지배권을 강화하는 수단일 뿐이었다. 원죄의 후과는 끈질기다. 달랑 증여세 16억을 내고 삼성그룹 경영권을 통째로 넘겨받은 결과는 누구의 눈에도 정의롭지 못하다. 오직 이재용에게만 주어진 특권이라 기회균등이 있을 수 없다. 경영권 무세
1. 말복이 지났다. 폭우와 염천(炎天)이 교대로 세상을 때리고 있다. 이 와중에 김건희 씨 논문 표절 문제가 사람들의 분노지수를 치솟게 만들고 있다. 지난 8월 1일 국민대가 발표를 했다. 그녀의 2007년 학위 논문을 포함한 모두 4편의 논문에 대하여 표절이 아니거나 검증불가라고. 수여된 박사학위에도 문제가 없다는 판정이다. 과연 그런가? 2018년 7월 17일 대한민국 교육부는 훈령을 공표했다.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이란 제목이다. 이 훈령의 제 3장 제 12조는 표절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정의를 내린다. “일반적 지식이 아닌 타인의 독창적인 아이디어 또는 창작물을 적절한 출처표시 없이 활용함으로써, 제3자에게 자신의 창작물인 것처럼 인식하게 하는 행위”. 국민대는 박사학위 논문심사 청구 자격으로, 전문학술지 및 학술대회 발표 논문 3편의 사전 게재를 요구한다. 김건희 씨가 이 같은 요건 구비를 위해 발표한 3편의 논문 모두가 심각한 표절의혹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 한글 '유지'를 엉터리 영어인 'Yuji'라고 번역해서 제목으로 올린 논문을 보자. 본문의 5단락, 각주 3개가 특정 신문 기사와 토씨까지 동일하다. 그런데도 일체의 인용
네가 좋다고 여기는 일을 할 경우에도, 남에게 적의를 느끼거나 남이 자신에게 적의를 느낀다면 즉시 그 일을 그만두는 것이 현명하다. 결국 너는 아직 그 일을 잘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만약 네가 무슨 일을 하면서 신체의 어딘가가 아프다면, 너는 그 일을 잠시 중단하고 어떻게 하면 고통을 제거할 수 있는지 연구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무슨 일을 하든, 그것이 좋지 않은 감정을 불러일으킬 것 같으면 잠시 중지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너에게 그 일을 충분히 할 수 있는 능력이 아직 없다는 증거이므로 더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남이 베푸는 선은, 설령 그것이 표면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소중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 때문에 그들이 사람들의 존경을, 그것도 어쩌면 부당한 존경을 받을지 모르는 일시적이고 거짓된 선으로부터, 결국엔 뭔가 진지한 것이 나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칸트) 선을 행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 많은 선을 베풀어야 했는데 하며 늘 아쉬워함이 선을 행하는 자의 마땅한 도리이다. 선한 성품은 정신의 기본적 성격이다. 만일 사람이 선하지 않다면, 그것은 그가 어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