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객 그리고 암살 1894년 3월 28일 오후 두시 경, 중국 상하이(上海)에 있는 여관 동화양행(東和洋行) 2층에서 세 발의 총성이 울렸다. 이 소리를 처음 들었던 사람들은 그저 축제에 쓰이는 폭죽(爆竹)이 터지는가 했다고 한다. 실제로는, 숙박 명부에 이와타 산와(岩田三和)라고 적힌 인물이 쓰러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의 본명은 김옥균(金玉均). 갑신혁명의 심장에 구멍이 뚫리고 피가 쏟아져 흘러내렸다. 10년 망명(亡命)의 한(恨)을 뒤로 하고 동양 3국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보려 했던 풍운(風雲)의 혁명가 고균(古筠) 김옥균의 절명(絶命)이었다. 그가 숙박부에 적은 이름 산와(三和)는 훗날 안중근의 ‘동양평화론(東洋平和論)’에 씨를 뿌린 ‘삼화주의(三和主義)’를 일컫는 것으로, 한때 그의 적수(敵手)였던 청(淸)의 리홍장(李鴻章)과 담판을 지어 실현해보려 했던 동아시아의 미래상이었다. 그의 상하이 행을 말리던 이들에게 고균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인간 만사 운명이 아니겠는가?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호랑이 새끼를 잡는다. 가서 죽음을 당할는지 유폐(幽閉)의 처지가 될는지 모르나 단 5분이라도 리홍장과 담판을 지을 기회가 온다면 리홍장은 내 것이다.”…
너무도 감미롭고 포근한 클래식 음악. 단연 타이스(Thaïs)의 명상곡이다. 멜로디를 들으면 천상의 세계, 평온의 세계에서 스르르 잠들 것만 같다. 이 곡은 쥘 마스네(Jules Massenet)의 걸작이다. 19세기말 프랑스 오페라계를 풍미한 마스네. 그는 이 곡 외에 마농, 베르테르 같은 굵직한 작품을 남겼다. 하지만 우리에게 낯익은 곡은 타이스 2막의 ‘명상곡’이다. 각종 광고와 김연아 선수의 갈라쇼를 환상적으로 수놓은 배경음악, 그게 바로 이 곡이다. 타이스. 이집트의 창녀다. 아나톨 프랑스가 쓴 소설을 루이 갈레가 각색했고 마스네가 오페라로 만들었다. “수도사 아타나엘은 유명한 창녀 타이스를 개종시키려 갖은 노력을 다한다. 타이스는 마침내 크리스천이 되고 죽을 때까지 수도원에 칩거한다. 그러나 아타나엘은 자신이 집착해 왔던 건 관능미 넘치는 타이스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다. 하지만 타이스는 속죄의 기쁨 속에서 죽음을 맞고 아타나엘은 신심을 잃은 채 절망한다.” 인간의 위험하고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다. 인간본능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19세기 대중은 이를 무척 불편해 했다. 타이스가 첨에 흥행에 실패한 이유다. 시대의 선봉장 마스네. 그는 분명 천부
시절 참 수상하다. 국내외 험한 정세는 끝내 죄없는 민초들을 희생시키고 미봉될 것이다. 나는 지금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이 나라와 함께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저 악몽이었으면 좋겠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이를 어째야 하나. 이렇게 걱정이 태산일 때, 나는 종종 안전하고 편안한 은신처를 찾아 찐하게 의존한다. 오늘은 그곳에 관한 이야기다. 거기서 벗들과 측은지심으로 동병상련한다. 한 친구가 불안한 미래를 높은 통찰력으로 예언하면 착하게 받아들인다. 이 진지한 실용주의의 시간은 한 사내가 두부김치에 막걸리 서너 병을 시키면서 이내 막을 내린다. 침울의 그늘이 사라지고 순식간에 활기를 띤다. 술은 다정하고 똑똑한 친구들 보다 늘 곱절로 유력하고 우호적인 물질인 것이다. 오죽하면 서양의 멋쟁이들이 술을 '스피릿'이라 했겠는가. 번역하면 '술은 올바른 정신(spirit)을 일깨워주는 실로 큰 친구, 대붕(大朋)'쯤일 거다. 실은, 이 정도는 세상의 모든 술집에서 가능한 체험이다. 인사동 주점에서 그 기본 미덕에 더하여 매번 특별한 감동과 기쁨을 주는 까페가 하나 있다. 후배들이 '서정춘이라는 시인'이라는 시집을 헌정한 그 시인이 홍보부장이다. 문화공간 '시/가/연(
김숙경은 함경북도 경원군 양하면에서 가난한 농민의 딸로 태어났다. 1897년 가족들은 러시아의 연해주로 떠났다. 기울어가는 조선에서 가난을 견디지 못해서였다. 열두 살이던 김숙경도 살길을 찾아 조선을 떠나는 가족을 따라나섰다. 하지만 그녀의 부모는 김숙경을 데려가지 않았다. “넌 이미 다른 집 사람이 되었으니 우리와 함께 갈 수 없다.” 한 해 전, 11살이던 김숙경을 이웃에 사는 황천금이와 혼약을 맺게 한 그녀의 부모였다. 그녀보다 한 살 위인 천금이는 좋은 사람이었지만 돈 벌러 간다며 러시아와 만주를 떠돌았다. 을사늑약이 체결되던 1905년 천금이는 잠시 집에 들렀다. 남편 천금이는 항일투사가 되어 있었다. 야속했지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내놓고 살아온 천금이가 자랑스러웠다. 천금이는 금방 다시 떠났고, 아이가 생겼다. 아들이 태어나고, 천금이가 다녀간 것을 안 일본 경찰은 김숙경과 시아버지를 잡아가 가두고 고문했다. 집문서와 얼마 되지 않는 땅문서까지 모두 빼앗기고 갓난아이마저 잃은 김숙경은 시아버지를 모시고 한밤중에 고향을 떠났다. 연해주의 연추에서 만난 천금이는 김숙경 끔찍이 아끼고 사랑했다. “숙경씨.” 천금이는 아내 김숙경을 언제나 그렇게 불렀다.
종교의 차이라니, 이 얼마나 기묘한 표현인가! 물론 종교를 공고히 하기 위해 시대에서 시대로 전해지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여러 가지 신앙은 있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젠다베스타(페르시아의 고대 경전), 베다(바라문의 경전), 코란과 같은 여러 가지 종교 서적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진실한 ‘종교’는 오직 하나뿐이다. 여러 가지 신앙도 다만 진정한 종교에 대한 보조 수단 외에 아무것도 포함하고 있지 않으며, 그 보조 수단은 우연히 출현한 것으로, 때와 장소에 따라 모습을 달리할 뿐이다. (칸트) 너는 그르고 나는 옳다고 말하는 것은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말 중에서 가장 잔인한 말이다. 특히 그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일 경우 더욱 그렇다. 그런데 종교에 대해 논쟁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 잔인한 말을 서로 거침없이 내뱉고 있다. 네가 만약 이슬람교도라면 그리스도교도에게 가서 함께 살아라. 만일 그리스도교도라면 유대인과 함께 살아라. 만일 가톨릭교도라면 정교도와 함께 살아라. 네 종교가 어떠한 것이든 신앙을 달리하는 사람들과 사귀어라. 만일 그들의 말에 네가 화내지 않고 자유로이 그들과 사귈 수 있다면 너는 이미 평화를 얻은 것이다
150석 예정으로 만든 작은 음악회 입장권이 일주일도 안돼 동나버렸다. 100석도 안 채워지면 어쩌나 해서 다각도로 마련했던 한 달 홍보 총력전이 기분 좋게 무색해졌다. 일반적인 공연장이 아니라, 관객석을 급히 두 배 이상 늘릴 수 있었다. 크고 작은 음악회를 100회 가까이 기획해오면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지난 6월 18일 열렸던 ‘2022 아마니 페스타(Amany Festa)’이야기다. 팬데믹으로 전 세계 문화계가 신음하고 있는 판에 경기도, 그것도 최북단, 그것도 시골 산속의, 이름 드러내지 않고 살아온 한 조각가의 작업장의 페스타(축제)에서 일어난 일이다. (아마니 페스타는 작업장이 아마니 삼거리 인근인 데다 아마니가 아프리카 스와힐리 어어로 평화라는 뜻이라 조각가의 작품 주제 ‘사랑과 평화’와 상통돼 정한 이름이다) 지난해 늦여름, 예술가의 인터뷰 일로 찾았던 경기도 전곡, 조각가 김창곤의 작업장. 세계에서도 유례가 드문, 국내 최초, 유일한 ‘거석 조각가’라는 소개로 찾았는데 기대와 상상 이상이었다. 멧돼지, 고라니 뛰어다니는 산속, 4천 평의 흙바닥 작업장에 전국에서 모은 100여 점의 거석들이 희귀한 장관을 연출했다. 사람 키 일곱, 여덟 배
주위의 친인척 지인들은, ‘저렇게 지속적으로 미사일실험하고 핵실험을 준비하는 북한과 교류한다는 것이 상식에 맞는 얘깁니까’ 라고 내게 따지듯이 질문을 한다. 늘 기·승·전·남북교류협력을 강조하는 필자의 견해에 대한 반문일 것이다. 아마도 다수의 우리 국민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요즈음 한반도 주변 상황을 보면 남북간 교류의 필요성을 더욱 크게 느끼게 된다. 왜 남북교류가 만병통치약이 되는지 한번 보자. 첫째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가져온다는 사실이다. 분단체제에 적응된 우리국민들은 지금의 어려운 안보상황을 대단치 않게 여기지만 사실 위기상황임을 알아야 한다. 북한 최고지도자가 보유 핵무기를 방어 개념이 아닌 공격개념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는 표현을 했고, 핵무기의 소형화, 경량화를 시험하기 위한 7차 실험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위기상황임이 분명한데 우리는 너무 태평한 것 같다. 과거 북한인사와의 대화 시, 북측인사가 한 말이 생각난다. “남조선과 미국 사람들이 한 2-30만명 정도가 우리 공화국에 상주한다면 말야, 우리가 와 핵이 필요하겠나?” 교류협력이 필요한 이유를 아주 분명하게 설명해 주는 대목이다. 둘째 경제적 문제 해결이다
언론에 대한 시민의 신뢰가 바닥 수준이라는 한탄은 새롭지 않게 들린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영국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매년 발행하는 ‘디지털 뉴스리포트’ 뉴스 신뢰도 평가에서 최하위 혹은 꼴찌 수준이라는 평가를 종종 듣기 때문이다. 한국은 46개 국가 중에 2021년 38위, 2022년 올해는 40위라는 결과를 받았다. 뉴스 전반에 대한 신뢰 하락은 전 세계적인 경향이다. 2021년 평균 44%였던 신뢰도 수준은 일 년 사이 42%로 낮아졌다. 뉴스리포트는 코로나 영향을 지목했다. 다른 정보원에 비해 공신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언론사 뉴스에 대한 신뢰가 상승했었다가, 코로나 상황이 안정되니까 팬데믹 이전으로 회귀하는 경향이 나타났다고 진단했다. 한국은 뉴스 전반에 대한 신뢰가 30%로, 글로벌 평균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그렇지만 5년 전인 2017년 23%였던 것에 비하면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2017년 조사는 “최근 뉴스를 보지 않으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한 적이 있는지”를 묻는 뉴스 기피 문항을 추가했다. 뉴스 기피 경험은 뉴스 신뢰도가 낮을수록 많게 나타났다. 뉴스 기피 경험자들은 “뉴스를 보면 기분이 나빠지기 때문”이라거나
며칠 전 얼굴에 난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는데 어떤 환자가 큰 소리로 의사를 타박하고 있었다. 정확한 내막은 알 수 없었으나 치료결과에 대해 따지는 게 분명했다. 의사는 난감해하며 무언가 설명하려고 했고, 환자는 말을 자르며 책임을 추궁했다. 의사의 명령에 환자가 순한 양이 되어 복종하는 일반적인 풍경과는 정반대여서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알고 지내는 의사들에게 그날 있었던 일을 설명하면서 특수한 사례인지 물어보았다. 그들은 대수롭지 않게 일반적인 일이라고 대답을 했다. 의사가 갑이었던 시절은 끝났고, 갑을관계가 바뀌고 있다는 것이었다. 왜 그런 현상이 빚어졌는지 묻지 않았다. 변화 자체에 큰 의미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의사와 환자의 뒤바뀐 관계는 분당 글쓰기 교실에서 강의했을 때 있었던 일을 떠오르게 한다. 대령 출신의 중년 남성이 수강을 했는데 그는 병사들에 대해서 전혀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이즈음 병사들은 지휘관들의 말을 잘 듣지 않는단다. 그러나 지휘관들이 모범을 보이거나 합리적으로 설명을 하면 병사들이 예전 못지않게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병사들을 나약하다고 본 우리들의 편견을 깨기에 충분한 증언일 것이다. 학교
1959년 시카고대학의 찰스 라이트 밀즈(C. W. Mills. 1916∼1962)가 쓴 『파워엘리트(Power Elite)』는 출간과 동시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는 관료집단과 군수업자 그리고 군부 등 세 집단이 삼위일체가 되어 미국의 주요한 정책결정을 내리니 이들을 ‘파워엘리트’라고 하였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세 집단은 이해관계를 같이하며 공동목적을 향해 공동전선을 형성하고 나머지 미국인들을 이에 추종케 한다고 주장했다. 밀즈는 이같은 미국 사회는 결코 다양한 여러 집단 간의 유화(宥和)가 이루어지는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맹비난을 하였다. 밀즈에 의하면 미국 사회는 결코 기회의 나라도 아니고, 다양성의 나라도 아닌 것이다. 권력은 항상 그들 파워엘리트들에 주어져 있고 그들은 전가의 보도처럼 그것을 행사해 미국을 점차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 국가로 만들고 있다고 외쳤다. 사람들은 그를 분노의 사회학자라고 했다. 그런데 그가 이런 별명을 얻기에는 파워엘리트의 전횡만을 고발해서가 아니었다. 어쩌면 밀즈를 가장 분노케 한 것은 권력이 대물림되고 있는 미국 사회였을 것이다. 그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파워엘리트의 권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