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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인문학은 삶의 밑거름

 

 

내가 강의하는 곳에서 10 년 넘게 공부하며 지내온 분이 농장에서 수확했다며 감과 사과를 한 상자 주었다. 상자 안 사과는 아직 더 자라도 될 것처럼 풋풋하고 싱그러웠다. 강의실 인연으로 더욱 친밀해지고 내 입장을 잘 이해하는 동창은 자기 집 뜰에 있는 감나무에서 따왔다며 권투 선수 주먹 같은 먹감 홍시를 선물로 주고 갔다. 과실수와 곡식을 거두는 논과 밭은 밑거름이 필수이다. 거름은 흙의 영양제요 보약이다. 농부는 땅을 논과 밭이나 토지라고 불렀다. ‘땅’이라는 명칭은 부동산투기자들 입에서 나왔다. 내 부모는 삶의 대부분을 논밭에서 땀 흘리며 보냈다. 덕분에 나는 곡식은 밑거름인 퇴비(거름)의 열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퇴비는 자연에서 얻은 풀이나 짚 등을 두엄자리에서 썩도록 하여 논과 밭으로 가져가 고랑을 파고 묻어준 것이다.

 

‘인문학’은 우리들 삶과 문화의 밑거름이다. 지식사회에서는 중세에는 신학이요 근대에는 인문학이 그들의 사회를 주도했다고 하였다. 모든 것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했어도 우리가 결코 잃지 말아야 할 가치와 희망의 조짐을 깨우쳐주는 게 인문학이다. 따라서 소양교육의 뼈대 위에 개인의 인격이 자리하게 된다. ‘수필과 시와 자연이 주었던 감성이 척박하고 남루한 시기를 넘기게 하는 약이었구나!’ 그래 ‘가난해도 정직에서 오는 떳떳함으로 당당하게 살아가야겠지.’ 하는 생각도 나는 그곳에서 발견했다.

자연이 표정을 바꿀 때 내 마음은 어떻게 물드는지! 생각할 때가 있다. 인문학은 질문하는 힘을 길러주는 바탕이 되어준다. 우리가 매일 밥을 먹어야 살 수 있듯 꾸준히 공부하고 자신의 삶으로 실천하는 힘을 인문학에서 배우게 된다는 말이다.

 

멀리 떠나 간 가족을 생각하다 빗길에 미끄러져 병원생활을 하고 있을 때다. 힘겹게 찾아와 병실까지는 오지도 못하고 병원 앞에서 손도 한번 잡아보지 못한 채 위로금만 전하고 돌아서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을 횡단하는 겨울 추위 같은 게 온몸으로 번지고 있었다. 50년 전 우리 집에서 함께 지내며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오00 선생은 병원생활이 끝난 뒤 찾아와 ‘모래재너머’의 레스토랑에서 나를 즐겁게 위로해주었다. 이런 친구들이 있으니 결코 헛된 생각 말고 살아야 한다는 자신의 언어를 되새김하게 되었다. 그 순간 ‘내 집에 오는 손님 박대하면 안 된다.’고 하신 어머니의 말씀이 떠올랐다.

 

앞에서 내가 밝혔던 이들은 고시를 패스하거나 학위를 소지한 자들이 아니다. 인간으로서 ‘인문학은 마음의 깊이를 더하는 공부’라고 믿어 실천하는 이들이다. 나무는 제 씨앗이 떨어진 자리가 무덤이 된다. 인문학은 거름으로서 지하수 같은 성격이다. 흙 위에서 보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지하수가 없으면 많은 생물의 생존이 위협을 받는다. 동양에서는 인문(人文)은 천문(天文)과 구분되는 개념으로 사상과 문화와 인간의 조건을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했다. 얄팍한 지식과 법과 상식은 차고 넘친다. 그런데 거기에 인간이 빠지고 인문학적 사상이 매몰된 현실이어서 그런지 생때같은 젊은이들이 땅 위에서 떼로 매몰되어 부모 곁을 떠났다. 작가로서 그들에게 죄스럽고 부끄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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