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서 있었던 나토(NATO) 정상회의에 대해서 타임지는 지난 10년간의 국제회의 중 가장 중요한 회의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북대서양의 유럽국가들 군사 동맹체인 나토가 이렇게 주목받게 된 것은 단순히 윤석열 대통령이 국제무대에 데뷔했다거나, 쏟아지는 뒷이야기 때문이 아니다. 나토가 군사방어의 영역을 태평양으로까지 확대하고 그 방어의 대상도 러시아와 중국이라고 명백하게 한 회의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새로운 철의 장막과 죽의 장막을 재현한 신냉전 시대(new-cold war)의 개막을 알린 회의였다는 것이다. 1945년 2차대전이 종결되면서 세계는 평화의 시대가 올 것을 예상했지만 뜻밖의 이념대립이라는 냉전이 시작되었다. 냉전의 주역인 미국과 소련은 직접 전쟁하지는 않았지만 두 국가의 대리전쟁은 지구상 곳곳에서 치러졌다. 하나같이 자신들의 체제 우월을 주장하는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들이었다. 우리의 6.25 참변이 대표적인 전쟁이었다. 그러나 1989년 독일 베를린장벽이 기적처럼 무너지면서 냉전은 종식되었고 강대국 소련은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이후 미국 유일의 슈퍼 파워로서 절대적 패권이 인정되는 국제질서가 지속되는 듯했지만 세계의 공장으로 등장한 중국이…
자신의 허물을 알고 있는 자만이 남의 허물에 너그럽다. 아들딸들아! 만약 누군가가 너희를 모욕하는 말을 하거든, 아랑곳도 하지 말고 생각도 하지 마라. 그러나 만약 너희가 남을 모욕하는 말을 하였다면 “우리가 못할 말이라도 했단 말이냐? 아무 일도 아니지 않은가?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양심을 속여서는 안 된다.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말고 자신의 행위를 돌아보며, 너희들 자신의 기도나 친구의 중재에 의해 너희가 모욕한 자와 완전한 화해를 이룰 때까지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탈무드) 깊은 강은 돌을 던져도 조용하다. 모욕을 당했을 때 몹시 흥분하는 사람의 마음은 강이 아닌 웅덩이다. 우리는 모두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생각하며 겸허하게 살자. 살이 타서 재가 되기 전에 머리에 재를 뒤집어쓰고 참회하자. (사디) 어리석은 사람의 말에 대한 가장 좋은 대답은 침묵이다. 우리가 대답하는 한 마디 한 마디는 반드시 우리에게 되돌아온다. 모욕으로 모욕을 갚는 것은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장작을 던지는 것과 같다. 자신을 모욕한 자에게 평온한 얼굴로 대하는 자는, 그것으로 이미 상대방을 극복한 것이다. 마호메트와 알리는 어느 날 한 남자를 만났는
불멸의 작가 기 드 모파쌍(Guy de Maupassant). 그 역시 천재적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신의 부르심은 너무도 빨랐다. 그가 생을 마감한 건 서른일곱 살 청춘. 하지만 100년을 살다 간 사람을 무색게 할 정도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의 첫 성공작 ‘비곗덩어리’부터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여자의 일생’, 그리고 파리의 불쌍하고 추잡함을 고발하는 ‘롱돌 자매’ 등 주옥같은 소설을 300편 넘게 썼다. 이 작품들을 통해 그는 다양한 인간군상과 그들의 대화, 시선을 섬세하고 애잔하게 표현했다. 이런 모파쌍의 탄생지는 특이하다. 그는 미로메닐 성(Château de Miromesnil)에서 태어났다. 노르망디 페깡(Fécamp)에 있는 이 성은 18세기 프랑스 법무재상이었던 미로메닐 공작의 소유였다. 백성을 사랑한 미로메닐 공작은 죽으면서 이 성을 지역주민들에게 개방했다. 모파쌍의 부모는 그들에게 호의적이었던 페깡시장과 주임신부에게 부탁해 이 성을 빌렸고 거기서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어린 모파쌍은 지극히 평범했다. 말이 없고 페깡의 바다와 항구, 선원들을 무척 좋아했다. 스포츠광에 자유를 만끽한 행복한 아이였다. 그가 페깡을 떠난 건 스무 살 때
이즈음 강남 좌파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다. 사회적 지위가 있으면서 경제적으로 부유하지만 정치적으로는 진보적인 계층을 일컫는 이 말은 전통적 계급이론에 들어있지 않은 것이다. 생산수단을 둘러싼 제 관계인 계급이론에 따르면 강남 좌파는 그저 소(쁘띠)부르조아일 뿐이다. 강남 좌파는 형용 모순의 조어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강남 좌파란 말이 언론이나 담론 장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강남 좌파가 우리 사회에서 사라져서 일까? 아니면 그보다 폭넓게 적용할 수 있는 말이 필요해서 일까? 말이 새롭게 태어나고 사멸하는 것은 역동적 인간 삶에 있어 자연스런 일일 터이다. 하지만 강남 좌파의 사멸을 인과 관계적으로 파악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런 가운데 담론 장에서 등장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브라만 좌파란 말이 주목을 끈다. 인도 카스트 제도에서 유래한 브라만은 중세 유럽의 3신분(전사·사제·평민) 사회에서 제2 신분인 사제를 뜻한다. 이런 브라만은 현대 사회에 있어 종교지도자뿐만 아니라 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 교수 등 지식인을 총칭하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브라만 좌파는 무엇을 지칭하는 것일까? 말 그대로 브라만에 속하면서도 우파가 아
"고난의 역사! 한국역사 밑에 숨어흐르는 바닥 가락은 고난이다. 이 땅도 이 사람도, 큰 일도 작은 일도, 정치도 종교도 예술도 사랑도, 그 무엇도 다 고난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말 듣고 놀라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부끄럽고 쓰라린 사실임은 어찌할 수 없다."ㅡ함석헌(1901~1989)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 중에서. 8.15 광복과 다름 없던 '80년 서울의 봄'은 그 해 5월, 전두환 일당이 광주를 피로 물들이면서 겨울공화국으로 되돌아갔다. 신군부의 12년 만행은 짙은 살의의 시간이었다. 그후 87년 6월 시민항쟁으로 쟁취한 민주주의는 문민정치의 싸구려 소모품으로 전락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까지 거창하고 유혹적인 구호로 시작했지만, 아는 바대로 예외없이 끝은 좋지 않았다. 씨알들이 끝도 없는 고난의 삶을 살았다는 뜻이다. 요즘은 윤석열 정치에 대한 불편함과 우려가 뒤섞인채 연관된 기억과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나날이다. 내 주변의 착한 시민들 다수가 비슷한 입장이다. 신명을 잃은채 집단적으로 무기력 증세를 보인다. 그 그룹의 폭주 때문만도 아니다. 내 경우는 문재인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반이다. 참 힘들다.…
수많은 정권교체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의 정권교체기 인사논란은 의외로 잠잠한 편이에요. 지명된 인물을 놓고 국회 안에서 ‘교통위반 딱지’, ‘표절’, ‘주민등록법 위반’ 등의 문제를 놓고 지지고 볶는 일이 뉴스가 되는 일은 상대적으로 적어요. 논란 여지가 있는 인물들은 아예 지명되기 어려운 인사시스템 덕분이에요. 그 기능 한복판에 플럼북(Plum Book)이라는 지침서가 있어요. 겉표지가 자두색(Plum)이어서 붙인 이름이어서 붙여진 이 지침서의 정식 명칭은 ‘미국 정부 정책 및 지원 직책’이래요. 플럼북에는 연방정부의 장·차관을 비롯한 9000여 개 주요 직위의 명칭, 현직자 이름, 임명 형태, 보수 등급과 직급, 임기 여부, 임기 만료일 등에 관한 인사 정보를 담고 있대요. 상·하원이 인사관리처의 지원을 받아 함께 펴내기 때문에 당리당략이 개입할 여지가 아주 좁다니 참 부러운 시스템인 듯해요. 윤석열 대통령이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김승겸 합동참모본부 의장 임명을 강행했네요. 정치자금 유용,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자녀 특혜 채용 등 숱한 의혹이 제기된 김승희 복지부 장관 후보는 뭇매를 못 견디고 끝내 자진사퇴를 했군요. 정권이 바뀔 적마다
기억력의 퇴화인가? 윤석열 대통령의 첫 외교무대 데뷔라고 할 수 있을 NATO정상회의 방문에서 딱히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하긴 대통령 스스로 집단군사동맹기구인 NATO정상회의에서 15분 동안 15개국 정상에게 원전세일즈를 했다고 하니 ‘노룩악수’를 제외하곤 기억할만한 것이 있을리 없다. 대신 스포트라이트는 김건희여사의 1억원대 목걸이와 1600만원대 팔찌 등에 쏠렸다. 박지원 전국정원장은 “영부인의 패션은 국격”이라며 “꿀리지 않고 멋있었다”고 추켜세웠다. 언론은 한술 더 떠 ‘우크라룩’이니 ‘외교패션’이니 하면서 추앙을 더했다. 김정숙여사는 2만원짜리 국산 브로치를 달았다가 숱한 언론들로부터 무슨 돈으로 2억원대 명품을 샀느냐며 난도질을 당했다. 나는 궁금하다. 그때의 기자와 지금의 기자가 같은 호모思피엔스종이 맞는지.. 이건 태세전환 차원이 아니고 기득권동맹의 추악한 이중잣대다. 말이 나온 김에 명품이라면 필리핀 이멜다여사를 빼놓을 수 없다. 남편 마르코스대통령이 20년 동안 7만명을 투옥하고 3200명을 살해하며 철권통치를 휘두르다 86년 피플파워혁명으로 쫓겨날 당시 이멜다여사는 미군용기 두 대를 빌려 자신의 금괴와 보석을 하와이로 실어날랐다. 미처
인간에게 가장 큰 행복은 자유이다. 어떤 사람이 불행하고 괴로워하고 신음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누군가의 혹은 무엇인가의 노예가 되어 있는 것이다. 자유로운 사람은 자신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지배할 수 있는 것만 지배한다. 그런데 완전히 자유롭게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뿐이다. 그러므로 만약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신이 아닌 남을 지배하고자 하는 것을 보거든, 그는 자유롭지 않음을 알라. 즉 그는 남을 지배하려는 욕망의 노예인 것이다. (에픽테토스) 내면의 자유가 없는 외면의 자유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 설사 외적 폭력에 억압당하지 않더라도 무지, 죄악, 이기주의, 공포 때문에 자기 마음을 스스로 지배할 수 없다면, 외면의 자유가 내게 무슨 소용이 되겠는가? 나는 자기 자신이나 자기 영역 속에 갇혀 있지 않은 사람 곧 오만, 분노, 게으름을 극복하고 인류의 행복을 위해 몸을 바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 그런 사람만을 자유인이라고 부른다. (채닝) 진정 자유롭기 위해서는 너는 항상 신에게서 받은 것을 언제라도 신에게 돌려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 너는 자신의 의지를 신의 의지와 연결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오직 신의 의지에 어긋나는 일에서
먼 길을 며칠에 걸쳐 걷는 등산가들이 해가 지고 나면 불 옆에 둘러 앉아 하는 게임이 있다. ‘내 몸에 난 상처 이야기’를 돌아가면서 하는 것. 오르막을 오르고, 거센 물살을 건너고, 본인 몫의 짐을 지고 여기까지 걸어오며 몸에 남은 흔적에 대한 얘기를 나눈다. 책 (보통의 존재)에서 이석원은 자신의 고통스러웠던 삶의 풍경들을 세밀히 묘사한다. 환상이 끝난 다음의 결혼생활, 끔찍했던 이혼을 이야기한다. 산책을 하다가 정신질환으로 폐쇄병동에 입원했을 때 마주쳤던 환자들의 기이한 행렬을 떠올린다. 경계성 인격장애와 우울증 등 여러 가지 병을 앓았다. 그때, 먹었던 약들로 자신도 복도를 걷는 행렬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고 주먹을 쥘 수 없을 만큼 기운을 앗아갔던 시간들을 회상한다. 이러한 고통스러운 시간들과 힘들었던 가족사의 끔찍한 불안과 스트레스가 창작의 원천이 되었고 잊기 위해 8월의 폭염속에서 아파트 지하주차장을 달리며 만든 다섯 번째 작품이 가장 큰 성과를 가져다 준 아이러니를 말한다. 자신이 부정했던 자신의 특성은 유산으로 나를 살게 한다는 것을 힘들게 깨닫는다. 책 (소망없는 불행)에서 페터 한트케는 자신의 어머니를 회상한다. 1900년대 초반 그 시대의
도망치는 것들은 직선으로 달리지 않는다. 토끼는 지그재그로 달리고 사슴은 펄쩍 뛰어 오른다. 맹수의 추적을 따돌리는 방법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임을 본능으로 안다. 사람 역시 다르지 않다. 몸을 숨기려는 사람은 목적지까지 단숨에 가지 않는다. 버스나 전철을 이용할 때도 미행하는 자가 있는지 먼저 확인한다. 버스나 전철이 도착해도 바로 타지 않고 기다렸다가 문이 닫히기 직전에 올라탄다. 내릴 때는 목적지로부터 두 정거장 전에 내리는데, 역시나 문이 닫히기 직전에 내린다. 최종 목적지로 향할 때도 곧장 가지 않는다. 큰길을 피하고 구불구불한 골목길만 골라서 걷는데, 뒤따르는 그림자가 없는지 모서리를 꺾을 때마다 확인한다. 사내 역시 그랬다. 삼십여 년 전, 사내는 시국사건 수배자로 청춘의 한 토막을 보냈다. 그 시절, 사내에게는 지켜야 할 수칙이 있었다. 함께 수배된 청춘들과 약속한 원칙이었다. 원칙 가운데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은 은신처를 지켜내는 것이었다. 은신처는 수배된 청춘 모두의 것이어서, 그곳이 털리면 모두의 안전도 털릴 수밖에 없었다. 털리지 않기 위해서, 사내와 또 다른 청춘들은 멀리 걷고 많이 걷고 오래 걸었다. 명절이나 기념일이 되어도 집에 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