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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프랑스 예술기행] 귀스타브 쿠르베와 오르낭

 

‘세상의 근원.’ 여성의 하체를 노골적으로 그린 귀스타브 쿠르베(Gustave Courbet)의 걸작이다. 너무도 사실적인 이 그림은 오랜동안 초록색 실크 베일 뒤에 숨어 있었다. 세간을 놀라게 한 스캔들의 화가 쿠르베. 그는 19세기 프랑스 화가 중 가장 파워풀했다.

 

프랑슈 콩테 오르낭(Ornans)의 지주 아들로 태어난 쿠르베. 딸 부잣집의 장남이었던 그는 유년기 아버지의 농장에서 소를 치고 농사를 직접 지었다. 동네에 나가 산사람들과 사냥꾼, 어부, 나무꾼들과 어울려 놀기도 했다.

 

 

그가 미술을 시작한 건 초등학교 시절. 이 생활은 브장송 왕립학교에 입학해서도 계속됐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공학도가 되길 원했다. 뜻을 거역하지 못한 그는 공과대학 입학시험을 쳤다. 그러나 낙방했다. 진로를 바꿔 스무 살이 되던 해 법과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파리로 상경했다. 그러나 법 공부대신 매일 그림만 그렸다. 자식 앞에 장사 없다던가! 결국 그의 부모님은 아들이 자기 길을 가도록 허락했고, 발 벗고 나서서 지원해 줬다.

 

너무도 자유분방했던 이 화가는 학교 대신 루브르 박물관을 좋아했다. 매일 거기에 나가 거장들의 그림을 복사해 연습했다. 쿠르베는 스무 살 때부터 파리의 도회지 생활을 했다. 하지만 그의 그림의 원천은 오르낭이었다. 서른 살 때 살롱전을 연 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아틀리에를 열었다. 화풍은 180도 변했다. 낭만 풍을 벗어던지고 지극히 사실적이었다. ‘오르낭에서 저녁 식사 후’는 이를 잘 나타내 준다. 이 그림은 금상을 탔고 프랑스 정부는 1500프랑에 샀다. 그 후 1년 뒤, 쿠르베는 고향 사람들과 관계를 재개하며 ‘오르낭의 매장’을 그렸다. 이 그림 역시 스캔들을 일으켰다. 대형 화폭에 무명의 농부와 추할대로 추한 조문객들을 빼곡히 그렸기 때문이다. 큰 화폭은 대개 국왕이나 영웅의 장례식 그림에 사용돼 고결함과 사기를 드높인다. 하지만 이 그림은 달랐다. 당시의 정치적 동요를 풍자한 것이라는 의혹을 살만 했다. 그러나 쿠르베는 마흔한 살의 젊은 나이에 최고의 경지에 올랐다.

 

 

쿠르베를 일등석에 올린 오르낭. 강이 굽이굽이 휘돌아 감는 두(Doubs)의 작은 마을이다. 리종과 루(Lou)의 샘들과 폭포, 바위가 두드러져 보이는 계곡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가을에는 사냥감이 많은 방목림과 수렵장으로, 겨울에는 눈 덮인 대지로 변신한다. 이 대조적인 경치들은 쿠르베의 그림재료가 됐다.

 

오르낭은 자연경치만 아름다운 게 아니다. 이곳은 역사문화 유적지가 많다. 중세에 건축된 오르낭 성이 있고, 옛날 농부들의 연장을 만들던 타이앙드리 공장이 남아있다. 여기에 16세기 건축된 에베르호텔은 여전히 고색창연하다. 이 호텔에서 꾸르베가 태났고 지금은 쿠르베 미술관이 됐다. 꾸르베와 오르낭! 이 둘이야말로 환상의 조합이다. 이들을 보기 위해 오르낭 현장으로 그 언젠가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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