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이 평양 공항에 도착하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친히 맞이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을 맞이하는 북녘 동포는 울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마주하는 남녘 동포는 TV앞에서 뭉클하였다. 이제 통일이 되는 건가. 이렇게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건가. 백날을 그리워하였던 사람들은 천날을 끌어안고 울어도 되는 건가. 손수건 꺼내 분단의 눈시울을 적실 수 있는 건가. 아, 백록담의 물을 퍼 담아 백두산 천지에 부을 수 있는 건가. 반도의 허리에 숨겨진 지뢰란 지뢰는 모두 무효일 수 있는 건가. 2000년 6월 15일, 남과 북은 이렇게 발표하였다.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숭고한 뜻에 따라 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과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0년 6월 13일부터 6월 15일까지 평양에서 역사적인 상봉을 하였으며 정상회담을 가졌다. 남·북 정상은 분단 이래 최초로 열린 정상 간 상봉과 회담이 남북화해 및 평화통일을 앞당기는 데 큰 의의를 갖는다고 하면서 선언문을 채택하였다. 선언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 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② 남과 북은…
드라마를 잘 안 본다.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화제작도 대개 한 두 번 보다가 만다. 올 봄 들어 그런 히트 드라마 두 개가 비슷한 시기에 방송되고 있다는 걸 알았다. 하나는 여전히 끌리지가 않았다. 그러나 소문의 쌍벽을 이루는 또 하나는 달랐다. '우리들의 블루스'. 스토리 전개의 구조, 주인공들 연기, 품고 있는 주제가 마치 장이 익어가는 것처럼 깊었다. 근래에 보기 드물게 드라마 전 편을 정주행한 것이 그 때문이다. 옴니버스 형식이다. 주제는 하나인데, 그 안에 독립된 여럿의 에피소드들이 겹쳐 있다는 뜻이다. 또 한 가지는 (도입부 LP판에 적힌 두 개의 이름이 상징하듯) 각 스토리가 사람과 사람의 운명적 인연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독립된 에피소드를 세어보니 모두 일곱 개다. 색깔이 다른 그런 에피소드들이 하나로 모여 아름다운 무지개를 만든 것이다. 작가는 노희경. 그녀가 쓴 드라마를 제대로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우리들의 블루스' 하나만 놓고 보면 가히 장인에 가까운 솜씨다. 정교한 감정의 복선들이 씨실과 날실처럼 이야기 전체에 심겨져있다. 주제가 선곡에서부터 흰색 크레파스로 그린 듯한 제목 모습까지 살짝 신파가 섞이기는 했다. 그런데도 쑥 들
백수로 살면서도 공휴일은 기다려진다. 마음 편하고 약속잡기도 좋아서다. 계획 없이 사는 것 같지만 가슴속 시계는 매일 돌아간다. 삶이라는 게 ‘되고 싶은 나’와 아직 거기에 ‘다다르지 않은 나’ 사이에서 발버둥 치는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했던 날들도 많았다. 지금도 나는 아침에 깨어나면서부터 외롭다.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오늘은 별일 없으려나? 하는 생각이 의식의 습관처럼 고개를 드민다. 저녁이면 잠자리에 들어 이불을 잡아당기면서도 외롭고 조금은 슬프다. 같은 핏줄 없이 태어나 울타리 없이 지내온 탓일까. 결혼하여 아들을 얻을 때까지 나는 외동이었고 을의 입장에서 얌전해야만 했다. 왜 그렇게 못났었는지, 나는 중매결혼으로 아내를 만났다. 아내에게 첫 부탁은 ‘부모님을 잘 모셔주는 일’이었다. 아내는 그 부탁을 실행하기 위해 평생을 문밖에 나가는 일도 조심하였다. 특별한 침묵인지 탁월한 선택인지는 모르나 언어를 상실당한 여인 같이 아내는 집안에서 수행적인 삶을 살았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 어머니를 저 세상으로까지 소리 소문 없이 잘 보내드렸다. 여름 숲에서 본다. 많은 나무들이 자기 생명의 언어처럼 잎을 피워 두터이 하면서 싱싱해져 하늘을 가리는 무성함이다.…
‘팝콘’과 ‘나폴레옹제과점’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윤석열 팝콘’ 키워드로 포털을 검색해봤다. 250여개 기사가 나왔다. 조선일보(6.12자 인터넷판)는 “윤 부부 주말 영화관 데이트…팝콘 먹으며 ‘브로커’ 봤다”를 기사 제목으로 뽑았다. 중앙일보는 ““윤 부부…“저도 시민이잖아요”” “윤 대통령 부부, 팝콘 먹으며…메가박스서 ‘브로커’ 관람”, 동아일보는 “‘브로커’ 관람…팝콘 나눠 먹기도”였다. 상당수 매체는 일제히 ‘시민과 소통하는 대통령’에 비중을 뒀다. 새 정부 출범에 따른 ‘허니문’ 기간이기 때문일까? 그날, 윤 대통령이 영화를 관람한 당일, 북은 방사포를 발사했다. 언론은 대체로 직접적인 비판을 삼갔다. 몇몇 셀럽과 민주당 국회의원의 SNS 비난 글을 지면에 소개했을 뿐이다. 한편, 윤 대통령 부부의 ‘나폴레옹제과점 주말 쇼핑’에 대해선 보도가 확대되지 않았다. ‘윤석열 나폴레옹제과점’ 키워드 검색 결과, 50여개 기사가 나왔다. ‘영화 관람’ 보도보다 기사량이 훨씬 적었다. 조중동은 아예 기사로 다루지 않았다. 대통령 부부의 ‘사적(私的)’ 행위에 따른 경호 인력의 낭비, 삼선교 인근 시민의 교통 불편 이슈를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다는…
고뇌는 육체적, 정신적 성장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조건이다.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너희는 울며 슬퍼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는 근심에 잠길지라도 그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여자가 해산할 즈음에는 걱정이 태산 같다. 진통을 겪어야 할 때가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에 그 진통을 잊어버리게 된다. (예수) 고통의 괴로움을 덜어주는 것은 첫째로 자신의 고통보다 더 큰 남의 고통을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리는 것이며, 둘째로 고통에 대처하는 데는 몸부림치며 괴로워하는 나쁜 방법과 조용히 견디며 인내하는 좋은 방법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성장해 간다. 즉 각자의 사상 속에는 이미 더욱 높은 사상이 들어있다. 지금은 어떤 성격을 나타내는 사람 속에도, 이미 더 높은 성격이 완성되어가고 있다. 청년은 유년 시절의 어린아이 같은 몽상을 버리고, 장년은 청년 시절의 무지와 거친 혈기를 버리고, 노인은 장년의 아욕(我慾)을 버리며 점점 우주적인 정신을 배워간다. 그리하여 그는 더 높고 더 강한 인생의 기반에 서게 된다. 외적인 관계와 조건은 서서히 소멸하고 더욱더 신 속에 몰입하면서, 신도
1. 2011년 일본 북동해안에서 진도 9.0의 강진이 일어났고, 10m에 달하는 쓰나미가 밀려왔다. 쓰나미는 미야기, 이와테, 후쿠시마현 등을 휩쓸었고, 후쿠시마 원전에서 방사능이 유출됐고, 대략 25,000명 넘는 인원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고베 대지진 이후로 다시 한번 일본을 덮친 끔찍한 재난이었다. 재해 복구 예산이 무려 250조 원이 넘는다는 엄청난 피해 앞에 일본 전역은 깊은 시름과 비통함에 잠겼다. 그런데 쓰나미가 빠져나간 뒤, 리쿠젠타카타 시를 찾은 조사관은 경이로운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바닷가에 심어진 7만여 그루 소나무가 모두 끝장난 상황에서 그야말로 낙락장송 한 그루가 버티고 있는 게 아닌가. 높이도 27.5m에 달하며, 수형도 아주 예쁘고 우뚝한 소나무는 그 자체로 장관이었다. 일본인들은 그 나무를 기적의 소나무라 부르며, 어떤 재난에도 굴하지 않는 일본의 대화혼을 상징한다고 여겼다. 그런 희망과 상징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희망은 헛된 꿈이었다. 쓰나미로 몰려온 바닷물이 뿌리를 완전히 침식해서, 소나무는 형체만 남아 있을 뿐, 이미 죽은 고사목이란 판정이 나오고 만 것이다. 섬겨야 하는 신(かみ)이 팔백만이나…
영어를 모르면 한국서 어찌 살까? 국제규격에 알맞은 지식수준을 가졌음을 자랑하고 싶어서일까. 영어단어가 거리에서도 춤춘다. 영어를 한글로 쓰기도 하고, 영문자를 그대로 쓰기도 한다. 의미 없는 국적불명 말도 와글거린다. 언어의 속뜻을 공부하는 필자도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드물지 않다. 오늘의 주제는 ‘거리의 언어학’이다. 얼치기 영어가 거리를 질주하도록 방치되고 있다. 국어 버리고, ‘영어’를 수학과 함께 ‘필생의 과업’으로 삼는 나라의 영어 실력이 이 정도인가. 자동차 뒷 유리창에 세련된 디자인의 ‘baby in car’(베이비 인 카)라는 커다란 글자 스티커가 붙어있다. 차안에 아기가 있다는 말일까, 뜻만 통하면 된다고? 용(龍)과 드래곤(dragon)을 같은 단어로 아는 사람들의 평면적인 생각이다. 용은 드래곤이 아니다. 한국어로 외국어를 생각한다. 비교언어학의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이다. 영어의 명사(noun)에 ‘a’ 또는 ‘the’ 같은 부정관사(不定冠詞)나 정관사가 꼭 붙는 것을 모든 학습자는 영어 공부 초기에 꼭 배운다. 잊었을까? 없으면 다른 뜻이 될 수도 있다. ‘baby’in(g) car’(베이빙 카)를 말하는 것이냐고 한 외국인이 농담처
인간의 감정과 행위에 변화가 일어나려면 무엇보다 먼저 그의 사상에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사상에 변화가 일어나려면, 자신의 영적 본성과 그 본성의 요구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우리의 생애의 각 시기는, 우리가 의식하는, 우리의 의지에 의해 수행되는 행위, 즉 결혼, 취직 같은 것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이를테면 산책할 때, 한밤중에, 식사 중에 떠오르는 사상에 의해 결정되는데, 특히 과거 전체를 통틀어 우리에게 너는 지금까지 그런 행동을 해왔지만 좀 더 다른 행동을 하는 편이 나았을 거라고 얘기해 주는 사상에 의해 결정된다. 그 경우 그 뒤의 우리의 모든 행동은 노예처럼 그 사상에 봉사하고 그 의지를 실천하는 것이다. (소로) 인간이 그 앞에서 발을 멈추는 모든 사상은 그가 그것을 말하든 안 하든 반드시 그의 생활을 해치기도 하고 돕기도 한다. 죄악을 피하고 그것을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모든 죄악의 뿌리는 나쁜 사상에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우리의 사색의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부처)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그가 자기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다. (소로) 우리는 돈이 든 지갑을 잃어버리면 아까워하지만
손흥민의 아버지다. 1962년생. 예순한 살. 환갑이다.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은퇴할 때까지는 매우 유능한 축구선수였다. 그 아들이 세계 최고의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을 먹었다. 나는 그 아버지가 궁금해졌다. 그의 자서전을 찾았다.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 책을 펼쳤다. "나의 축구는 온전히 아버지의 작품이다." 이 문장은 실은 성공한 아들들의 흔한 효도발언을 출판사가 광고카피로 뽑아 쓴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초장부터 손웅정에게 빨려들어가는 것이었다. 자칭 '마발이 3류 축구선수'가 쓴 이 책이 오늘 나처럼 부실한 가장들은 물론 이 해괴망측한 시대를 내리치는 죽비였기 때문이다. 한 마라토너가 2012년 12월, 스페인에서 열린 크로스컨츄리 경기에 출전하여 2위로 달리고 있었다. 선두는 런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로 케냐의 아벨 무타이 선수. 그런데 그가 종점을 착각하여 멈추려 했다. 뒤따르던 스페인의 이반 페르난데스 아니야는 무타이를 추월하지 않고 손짓으로 결승점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그가 금메달을 따도록 도와준 것이다. 이에 대하여 1등 할 수 있었는데 왜 그렇게 했느냐, 고 묻는 기자에게 아니야가 답했다. "그가 이기고 있었을 뿐이
태어난 자는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 태어나 이름을 부여받고 열심히 살다가 늙어 병들고 죽음을 맞이하는 삶의 과정을 보면, ‘생명체’와 ‘삶’이란 서로 다른 말이 아니라 표현의 차이에 불과하며, 또한 생명체의 삶이란 ‘생로병사’라는 말 안에 모두 담겨있음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죽음이 삶의 일부라는 것은 개체의 소멸이라는 죽음 자체가 생명 현상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개인이 겪는 죽음이 생명 현상의 한 과정에 불과하다면, 유한한 존재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의문은 개인 차원 내지 층위를 달리해 바라볼 필요가 있다. 비록 나라는 개체는 특정일에 태어나 일정 기간 살다가 특정일에 죽음을 맞이하는 존재이지만, 나를 있게 한 부모로부터의 생명의 힘이 있었듯이, 내 부모 또한 그 부모에 의해 존재할 수 있었다. 거꾸로 개인의 존재를 유지했던 생명의 힘은 당사자는 죽음으로 소멸되어도 자식을 통해 이어져 간다. 여성과 남성이란 성의 분화 형태는 있을지언정, 생명은 개체의 죽음 넘어 또 다른 탄생으로 끊임없이 지속되어 후손의 형태로 그 숫자를 늘려가며 다양하게 번창하는 모습이 있다. 아름다운 지구 생태계는 그 결과물이다. 이렇게 죽음과 탄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