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통령이 현 정부를 “적폐 청산 수사 대상”으로 공격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를 비판했다. 사과를 하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청와대 관계자에 따르면 "대통령이 구체적으로 주문했다. 거기에 대해 답변하고 사과하면 깨끗하게 끝날 일"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접근할 일이 아니라고 본다. (발단이 무엇이든 간에) 윤석열의 공격은 뚜렷한 프레임 전쟁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한 달도 안 남은 대선국면 막바지에서 스스로를 문재인 정부를 대적하고 대체하는 유일한 대안으로 포지셔닝시키려 하고 있다는 뜻이다. 명실공히 여권 수장인 대통령과 충돌이 격화되면 될수록 대중의 인식 속에서 차지하는 야권 후보 윤석열의 덩치가 압도적으로 커진다. 충돌 사건의 드라마틱한 흥미효과로 인해 '윤석열' 이름 석 자가 언론과 sns에 맹렬한 기세로 노출되고 각인된다. 대중적 관심의 독점 효과를 누리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일방적으로 기울어진 언론지형에서 미디어들이 신나게 해당 사안을 퍼 나르고 더욱 증폭시킬 거란 점이다. 이런 순환이 두어 바퀴 돌고나면 어떻게 되나. 윤석열은 문재인을 대체하는 차세대 권력으로서 상징적 이미지를 보다 공고히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윤석열이 해당
죽음과 고통이라는 악이 인간에게 나타나는 것은, 그가 자기 육신만을 위한 동물적 존재로 떨어졌을 때이다. 이 경우 죽음과 고통은 허깨비처럼 사방에서 그를 에워싸 그를 사람의 길, 곧 사랑이라는 신의 법칙을 실천하도록 내어몰아간다. 신의 법칙에 따라 사람에게는 죽음도 고통도 존재하지 않는다. 건강, 희열, 애착의 대상, 생생한 감정, 기억력, 일에 대한 능력, 이 모든 것들이 우리를 저버리고, 태양마저 차갑게 식어 인생이 그 모든 매력을 잃어버렸다고 느껴질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모든 희망이 사라졌을 때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자신의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걸고 돌처럼 차갑게 살아갈 것인가? 대답은 단 하나이다. 그것은 자신의 의지를 신의 의지에 합류시키는 일이다. 마음이 평화롭고 자신이 처한 상황에 편안함을 느낀다면 무엇이 어떻게 되든 무슨 상관이랴! 너는 마땅히 그러해야 할 모습의 너이면 된다. 나머지는 모두 신의 몫이다. 만약 신의 사랑이라는 것이 없고 있는 것은 오로지 만유의 법칙뿐이라 해도, 역시 인간으로서의 의무야 말로 모든 비밀을 푸는 열쇠이다. (아미엘) 우리는 신의 법칙을 예부터 있어 온 여러 종교의 가르침에서 배울
어릴 때 나는 아침마다 밥 먹기가 힘들었다. 어머니는 그런 나에게 정성껏 차린 건강음식을 강력하게 압박해 먹이셨다. 아침식사 끝에는 노란콩을 갓 삶아 식혀서 믹서에 갈아주시는 두유, 생토마토를 금방 간 토마토 주스가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인스턴트, 화학첨가물이든 재료는 전혀 사용하지 않으셨다. 뇌와 장건강에 좋은 천연재료의 한식으로 가득 채워 밥상을 차려주셨다. 그 영양 가득한 음식들이 몸의 건강뿐만 아니라 마음을 든든하게 지탱해 준 것을 그때의 나는 전혀 몰랐다. 맛있는 라면이나 화려한 기름진 빵과 과자들이 장바구니에 없다고 서운해하며 입이 쑥 나왔을 따름이었다. 거의 그 후 3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진료실에서 그때의 나와 같은 이들을 만난다. 그 아이는 빵을 좋아하기도 하고 멋진 빵을 곧잘 만든다. 라면을 좋아하는 불닭볶음면 마니아기도 하다. 식사는 코로나 19가 시작되고는 배달음식을 자주 시켜 먹는다. 과일과 야채는 거의 안 먹는다. 아이는 몇 년 전에 친한 친구가 함부로 대해서 속상한 것을 혼자서 견디다가 힘들어 죽고 싶어졌다. 우울증 진단을 받고 학교를 그만두었고 양약치료와 상담치료를 시작하였다, 많이 호전되어 최근 복학했는데 친구들과…
폐소공포증 없으시죠? 침 삼키시면 안 돼요. 주무시면 안 돼요. 미처 대답할 틈도 없이 전신이 둥근 통 안으로 들이밀린다. 없었던 폐소공포증이 고개를 들고 숨이 가빠진다. 안 된다는 말 때문일까, 침이 차오르고 입술이 바싹 마른다. 디스크가 의심되어 시행한 경추 MRI 촬영. 목 옆으로 끼워 넣은 쿠션 때문에 한 치도 움직일 수 없고 어깨와 목은 점점 더 뻣뻣해진다. 온통 하얀 공간에서 귀마개 밖으로 들리는 드릴 소리와 망치 소리에 스멀스멀 공포감이 차오른다. 괜찮다. 다 지나간다. 조금만 참으면 돼. 오롯이 홀로인 공간에서 자신을 다독이며 여행을 시작한다. 오로지 나를 위한 상상여행을. 코로나 시대 2년 차, 비일상이 일상이 된 세상에서 여행은 새로운 옷을 입었다. 하얀 막 안에서 자신이 내뱉은 숨을 들이마시던 사람들은 스스로를 벽 안에 가두고 타인을 걸어 다니는 병균으로 여기며 점차 예민해졌다. 꼼짝할 수 없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코로나블루가 심각해졌고 온라인으로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추억여행과 랜선여행으로 자신을 달래던 사람들은 전 세계를 장악한 바이러스의 기세가 약해질 때마다 소도시로, 소수의 사람들과, 소확행 여행을 떠났다. 어떤 여행이든
'제폭구민'(除暴救民)과 '보국안민'(輔國安民)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궁극적 목표였다. 민비와 그 척족이 권력을 쥐고 농단하는 동안, 나라는 늘 풍전등화였고, 조선을 집어삼키려고 싸우던 외세(청나라와 일본)는 그 존재자체가 생존의 위협이었다. 전봉준은 그 일체의 학정과 위협을 사즉생과 임전무퇴의 정신으로써 대항해야 할 폭력으로 인식했다. 그것이 동학농민혁명의 동기다. 그 폭력을 제거해야만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백성을 구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것이 나라를 돕는 일이며, 그 때 비로소 씨알들의 삶이 편안해진다는 것이 동학군의 신념이었다. 전봉준과 농민군은 고부에서 시작하여 전주까지 파죽지세로 달려갔다. 관군에게 압승을 거둔 농민군은 혁명전사로 변했다. 그 마음으로 우금치까지 폭풍 진격했다. 아쉽게도 거기까지였다. 겨우 200명의 일본군과 3000명의 관군이 연합하여 2만명의 동학군을 전멸한 것이다. 대포와 최신형 기관총으로 공격하는 일본군에게 화승총과 죽창으로 대항한 '아군'의 패배는 예정된 것이었다. 130년 전, 그 조상들이 당했던 폭력은 치명적이었다. 안팎으로, 무능하고 악마적인 왕조와 외세(청나라와 일본)는 잔인무도한 폭력집단이었다.…
새 대통령은 통일의 기초를 확실히 놓을 수 있는 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너무 커서인지 낙심이 너무 크다. 새해 들어 점점 농도를 더해가는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를 접하며, ‘선제타격’을 주장하는 후보, 점잖게 타이르며 핵미사일을 내려놓으면 내가 좋은 것 주겠다고 훈시 하는 후보, 평화번영정책을 계승 하겠다 면서도 현 남북관계 정체의 원인 진단이나 창의적인 대안 제시는 없이 그저 득표만을 의식한 듯, 북의 행태를 그저 도발로 치부하며 강경 발언을 내뱉는 후보 등 도대체 우리의 후손들이 자유롭고 평화롭게 살아가야 할 한반도 미래에 대한 밝고 희망찬 비전을 제시하는 후보를 찾아 볼 수가 없다.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포함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이루어 국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행복한 삶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하고 시급하게 추진되어야 할 과제는 안정적인 남북관계의 발전이다. 혹시라도 남북간 군사적 충돌 상황이 벌어진다면 한반도 리스크가 고조되고, 해외자본 유출은 물론, 생산활동과 수출이 감소하여 실업과 물가의 상승 등 재난수준의 악몽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이 확실함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새롭게 탄생하는 정부에서 꼭 유념해 주었으면 하는 대북정책…
한국의 20대가 존재감을 드러낸 것은 대통령의 인사권을 무력화한 이른바 윤석열 사태 정국이 아닌가 한다. 당시 검찰의 선택적 수사에 분노한 시민들은 대규모 촛불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20대는 생뚱맞게도 공정을 외쳤다. 조국 씨 부부의 자녀 스펙 쌓기야말로 우리 사회가 불공정하다는 증표라는 것이었다. 일각에서는 기성 언론이 정권에 타격을 가하기 위해 우리 사회의 낯선 언어인 공정을 내세웠는데 소가 뒷걸음질하다 쥐 잡는 격으로 예기치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아무튼 20대가 부르짖은 공정은 한국 사회의 키워드로 급부상했다. 공정이 모든 영역으로 파고들어 20대의 영향력을 실감하고 있는 이즈음이다. 하지만 이는 20대의 출현 그 서막에 불과한 것인지 모른다. '공정 사건' 이후부터 그들이 선거의 가장 큰 변수로 자리 잡아 기성세대의 판을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20대 대선 후보 지지율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는 20대 존재감으로 정리된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헤럴드경제 의뢰로 지난 2~3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에서 20대의 국민의힘당 윤석열 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53.7%로 과반을 넘었다. 리서치뷰가
레퀴엠(Requiem). 죽은 자를 위한 진혼곡이다. 그래서일까. 무섭고 장중하고 근엄하다. 하지만 가브리엘 포레(Gabriel Fauré)의 레퀴엠은 전혀 다르다. 지옥불처럼 요동을 치는 모차르트와는 달리 아주 상냥하고 평화롭다. 죽음은 결코 황망한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것. 이것이 포레의 철학이다. 그의 파반느(Pavane) 역시 너무도 아름답다. 피아노 선율과 트럼펫 소리는 우리의 심연을 오묘하게 파고들어 흔든다. 독일풍이 아닌 프랑스풍을 구가했던 포레. 키는 작았지만 뚝심의 사나이였다. 그의 고집은 프랑스 음악을 바그너 음악으로부터 탈피시켰다. 그가 격찬 받는 이유 중 하나다. 포레는 베를리오즈 시대가 가고 드뷔시의 시대가 오기 전 가장 위대한 작곡가였다. 하지만 그가 하루아침에 명성을 얻은 건 아니다. 인고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가 유명하게 되자 비평가들은 흔들어댔다. 그러나 포레를 괴롭힌 건 혹평이 아니라 신체적 장애였다. 귀머거리 작곡가하면 베토벤을 연상하기 쉽다. 그러나 포레 역시 그러했다. 선율을 들을 수 없다면 작곡가의 인생은 끝난 게 아닌가. 하지만 역경 속에서 더 찬란했던 사람들이 있다. 포레도 그 중 하나다. 그는 청각을 잃으면서부터…
영혼에 있어서의 선은 육체에 있어서의 건강과 마찬가지이다. 그것이 진실로 몸에 배어 있을 때 선은 눈에 띄지 않는다. 진실로 선한 사람은 자기가 선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진정 선한 사람인 것이다. 스스로 선하다고 믿는 사람은 절대로 자신의 선행을 잊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진짜 선한 사람이라 할 수 없다. 진정한 선행은 자기주장을 하지 않고 자기 이름도 알리지 않는다. 반면 거짓된 선행은 자기를 주장하고 자기 이름을 알린다. 진정한 공정함은 필요한 경우에만 얼굴을 내놓지만 함부로 나서지 않는다. 거짓된 공정함은 늘 참견하고 나서기를 좋아한다. 진정한 예의는 필요할 때는 나타나지만 특별히 자기를 과시하고, 거기에 응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폭력을 써서라도 자신의 규칙을 지키게 한다. 바른 도리가 쇠퇴하고 인의가 사라지면 예의가 나타난다. 그 예의의 법칙은 정의의 모조품이며 모든 무질서의 시초에 불과하다. (노자) 진정으로 선한 사람은 끝까지 저 똑바른 길을 걸어가려고 애쓴다. 길을 반쯤 가다가 기운을 잃어버리는 것, 그것을 우리는 두려워해야 한다. (중국 금언) 남몰래 선행을 하고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하라. 그때 비로소 너는 선행을 하는
어떠한 이치도 정신적인 것을 물질적인 것에 귀속시킬 수는 없으며, 정신의 탄생을 물질로 설명할 수도 없다. 영혼의 실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세상 일에 열중하여 자유와 정의와 사랑 같은 정신적인 것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그러한 사람은 언제나 이성의 빛으로부터 몸을 피한다. 왜냐하면 그는 죽은 사람으로, 빛은 오직 살아 있는 사람에게만 생명을 주며, 반대로 죽은 사람이 빛을 받으면 마르고 썩기만 하기 때문이다. 영적 생명에 대한 믿음은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다르게 변화시킨다. 영적 생명을 믿는 사람은 자신의 내부에 주의를 돌려 자신의 감정과 사상을 점검하려고 애쓰며, 자신의 생활을 고결한 영적 요구에 합당하도록, 즉 자유롭고 올바르고 사랑으로 충만하도록 노력하고, 실천을 통해 자신의 생활을 선의 여러 목적에 가장 합당한 사상과 감정으로 채우려고 노력한다. 그러한 사람은 진실을 찾아 빛을 향해 손을 뻗는다. 왜냐하면 영적 생활은, 눈에 보이는 외계의 생활이 태양의 빛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처럼, 이성의 빛이 없이 절대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부카) 형이상학은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 학문으로는 아닐지라도 인간의 자연적인 성향으로서 존재한다. 왜냐하면 인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