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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매화 눈트는 아침에

 

산길을 걷기 위해 과수원 옆을 지나며 본다. 어젯밤 비에 젖어 눈트는 매화나무 가지 끝 부분의 매화를. 콩알만 한 크기의 매화 꽃망울은 붉은 화피가 별자리 같이 째지면서 희고 맑고 연한 매화의 속살이 드러나고 있다. 그런데 저렇듯 여리고 보드랍고 아련한 꽃잎으로 빗물이 스민다면 아리고 쓰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서둘러 오신 화신이요 이 땅의 고운임처럼 바삐 오신 꽃잎이 비에 젖고 있다는 생각에 안쓰러웠다. 매화는 분명 꽃망울을 터트리려고 화피가 째지는 아픔을 견디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지난 밤 편한 잠결이었구나. 나무라고 아픔이 없겠는가.

 

매화는 삼천 년 전 중국을 원산지로 한국에 전해졌다. 이어서 일본으로 건너갔지만 문화적 의미와 함축된 뜻은 각기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절개와 금욕의 상징으로서 선비정신을 나타내는 데 있어 으뜸 꽃이 되었다. 그런데 일본에서의 홍매는 성적인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한다. 매화 원산지인 중국에서는 중국의 꽃이라고 하면서 약용으로 그 매실이 일찍부터 이용되어 왔다. 그리하여 중국, 한국, 일본을 매화권 문화라고 하였다.

 

매화는 겨울 언 땅에서 피어나는 강인함만 있는 게 아니다. 역사와 사회 그 모진 한파에 시달려도 동북아시아인의 가슴속에서 매화꽃은 향기롭게 피어났다. 그리고 그 꽃은 희망의 등불이 되어 미래의 평등사상을 그리워하게 했다. 그래서인지 우리에게 『일지매』 같은 소설을 탄생시키고 이매창 같은 여인의 시심과 의로운 절개를 길러냈다.

 

매화만큼 시가 되고 소설이 되고 도자기에서 피어나며 종교적 이념과 믿음의 대상이 된 꽃도 드물다. 특히 우리나라에는 ‘고난의 추위 속에서도 향을 팔지 않음의 꽃’으로서 우러름이 컸다. 그 힘이 이 땅의 생명들에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삶을 살아가게 한 사군자 정신이 되었다.

 

연꽃은 불교에서 상징적 의미로 삼고, 백합은 기독교에서 순결을 힘주어 말하듯, 매화는 유교의 정신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유교는 오늘날 학문하는 사람들의 정신일 수도 있고 밥보다 뜻을 중히 여기는 이들의 철학적 상징일 수도 있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청빈 속에서 깐깐하게 살아가는 선비요 군자의 덕이라 이르며 정신의 꽃이요 영혼의 닻이 되어주었다.

 

자고 나니 하룻밤 사이에 유명해져 있더라는 말은 영국의 시인 바이련이 1812년 한 말이다. 그는 케임브리지대학 재학 중 예수께서 물을 포두주로 만드신 기적이 상징하는 종교적 영적 의미를 서술하라는 문제에 ‘물이 그 주인을 만나니 얼굴이 붉어지더라.’고 단 한 줄의 답을 써 더 유명해졌다. 지구상에 불시착당한 듯 홀로 사는 나는 매화꽃이 비에 젖어 쓰라리겠다는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자고 났더니 TV에서는 대통령 후보자로서의 한 사람은 ‘제가 부족했습니다.’라고 수줍은 미소를 짓고, 승자로서 또 한 사람은 천하를 얻은 듯 하늘에 주먹을 날리며 연신 고함을 지르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인생이란 낯선 여인숙의 하룻밤이라.’고 테레사 수녀는 말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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