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칸은 시대를 초월한 영웅이다. 잔인한 정복군주로 기억하는 이들도 있으나 어찌됐든 칭기즈칸은 전쟁으로 전인미답의 새로운 세계를 건설했다. 1995년 말,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1천 년간 누가 최고의 인물이었을까”를 되묻고, 답한 적이 있다. 정답은 칭기즈칸이었다. 1997년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세계를 움직인 가장 역사적인 인물’의 가장 높은 자리도 칭기즈칸이 차지했다. 현대에 와서도 칭기즈칸의 영향력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에서 높게 평가된다. 칭기즈칸의 일대기는 수많은 책과 영화, 그리고 노래 등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가 거둔 빛나는 승리를 분석하는 자료도 엄청나다. 각종 전사를 연구하는 전략가는 물론이거니와 그의 전쟁방법에서 경영을 배우고, 삶의 지혜를 빌리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당시 그 누구도 꿈꾸지 못한 전술과 전략, 공성 무기, 용감한 병사, 신상필벌, 용인술, 포용력 등에서 해답을 얻으려는 연구가 산더미다. 하지만 칭기즈칸은 어느 통치자보다 속도에 민감했음을 간과하면 반쪽만 보는 것이다. 특히 전쟁터의 상황과 3개 대륙에 펼쳐진 제국을 통치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누구보다 빨리 알기를 원했다. 전사가(戰史家)들에 의하면 칭기즈칸
세상엔 중심에 서있는 사람과 비켜서있는 사람이 있다. 중심에 서있으면서도 비켜서있는 사람과 같은 자세와 관점을 가지고 자신을 겸손히 낮추는 사람이 있다. 반면에 비켜서있으면서도 중심에 서있는 것처럼 착각하며 그런 언행으로 주변을 혼란스럽게 하는 사람도 있다. 진심으로 비켜서있는 사람이 중심에 서있는 사람으로부터 한없이 질타와 멸시를 받을 때 그 쓸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중심에 서있는 사람의 오만불손한 태도에 그만 인내의 한계를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렇다고 그에게 딱히 대항하거나 견줄만한 힘은 없다. 그래서 한없이 무기력해지며 비애를 느낀다. 물론 중심에 서있는 사람은 자신의 실력과 능력으로 그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잘못은 아니다. 왜냐하면 생각은 자유롭기 때문이다. 그 자유는 태어날 때부터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천부인권(天賦人權)이다. 그렇다면 생각의 기준이 있음을 상기하고, 고귀한 관점을 가질 필요가 절대적으로 있다. 자신이 중심에 서있기까지는 비켜서있던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런 사람들이 없었다면 그리 쉽게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중심에 서있는 사람은 겸양
흥미로운 통계가 있다. 한국경제는 성장하는데, 행복을 느끼는 국민의 숫자는 늘지 않는다는 통계이다. 국내총생산 규모를 표시하는 GDP가 1993년 8천402달러였고, 2011년에는 2만2천489달러였다. 2.7배나 성장하였다. 그런데 갤럽의 조사 결과를 보면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한국민의 수는 1993년이나 2011년이나 똑같은 52%다. 한국사회와 한국인들은 그동안 경제성장을 우리 사회의 당면 과제로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 결과, 국내총생산은 늘어나고 산업화를 19년 만에 달성하였다. 산업화는 한 나라의 경제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50% 이상에서 20% 이하로 떨어지는 과정을 말한다. 19년 만에 산업화를 달성한 것은 세계 경제사에서도 그 예를 찾기 힘든 기록이다. 경제가 성장하면 그 과실이 국민에게 돌아가고, 경제생활도 나아진다. 옛말에 “가난이 대문으로 들어오면 행복은 창문으로 달아난다”는 말이 있다. 궁핍해지면 불행해지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행복이 찾아온다는 말이다. 한국사회는 이전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긴 사람이 늘어났는데도, 행복해 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불행해
어떤 市 /함기석 어떤 市를 가는데 어떤 커다란 돌이 굴러와 멈춘다 돌에서 다리가 쑥 나오더니 내 엉덩이를 걷어찬다 팔이 쑥 나오더니 내 빰을 후려친다 내 가발을 빼앗아 쓰더니 내 바지를 빼앗아 입더니 내 가방을 빼앗아 열더니 노트에 깨알같이 적힌 미분방정식의 오류를 지적하더니 오류의 오류를 지적하더니 내 노트를 먹어치우기 시작하더니 내 가방도 구두도 마구 먹어치우더니 나까지 먹어치우더니 다시 데굴데굴 굴러간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삼복염천의 다리 밑에서 돌은 배를 두드리며 늘어지게 낮잠을 잔다 출처- 함기석 시집 <오렌지 기하학> 문학동네 옛 어른들께 많이 듣던 소리, 눈 뜨고도 코 베어간다는 도시가 서울이다. 같은 대도시임에도 水原보다 훨씬 눈이 휘둥그레지고 눈알이 팽팽 돌아간다. 혼이 쏙 빠진다. 획획 나타났다 획획 사라지는 사람들, 건물들, 가로수들, 자동차들. 모두 나를 ‘후려치고 걷어차고 빼앗고 오류를 지적하는 돌’이다. 아니 서울은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일들이 순식간 일어났다 사라진다. 그러니 내 예상은 오류투성이일 수밖에. 당연히 지적당한다. 겉으로는 개미처럼 열심히 살아가는 것 같지만 정신없음 속에서 누군가
격동의 근현대사와 관련된 전시, 교육프로그램 등이 결합된 역사문화공간으로 운영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개관했다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나는 이곳에서 홍보영상물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일본의 2차 대전 참전을 지칭하는 ‘태평양전쟁’이라는 용어가 버젓이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담당자의 답변은 더 걸작이다. “박물관에 관여한 학자들이 모두 한국고대사를 전공한 교수들이라 근현대사에 어둡다”고 한다. ‘태평양전쟁’이라는 용어는 세계학계에서 공인한 명칭이 아니다. 일본의 외교관으로 31대 총리를 지낸 시데하라 기주로(幣原喜重郞)가 1951년 회고록에서 처음 쓴 용어다. 이후 일본의 사학자들은 이 말을 즐겨 쓰기 시작했다. 이 말이 널리 통용된 계기는 여러 학자들의 공동저작물 『태평양전쟁에 이르는 길(太平洋戰爭への道』이 출간되면서다. 일본은 1937년 7월 7일 베이징 북쪽의 노구교사건을 빌미로 중국 침략을 단행하였다. 12월 난징에 진격하여 야만적인 대학살을 자행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1개월 사이에 무려 30만 명을 살해하고 1만~2만 명의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난징대학살은 일본군의 잔인성을 드러낸…
유럽 중세의 암울함을 가장 잘 대변하는 단어는 ‘마녀 사냥’이다. 종교가 세상을 지배하고, 유일한 기준인 시기에 악마의 힘을 지닌 마녀는 죽음을 의미했다. 마녀 판별법에는 마녀 혐의로 체포된 사람을 물에 잠그는 방법이 있었다. 신성하다고 믿는 깨끗한 물에 사람을 던져 익사하면 마녀가 아니고, 떠오르면 마녀여서 화형을 시켰다. 결국은 마녀로 찍히면 죽는 것이다. 창조미래과학부 장관에 내정됐다가 낙마한 김종훈씨가 자신이 한국에서 마녀 사냥을 당했단다. 김씨는 미국의 유력지인 워싱턴포스트(WP)에 ‘새로운 세상의 오래된 편견(Old prejudices in new world)’이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그는 “조국에서 나는 (미국) 스파이였고, 나의 아내는 매매춘 연루자였다”며 한국사회의 편견을 공격했다. 또 “‘마녀 사냥(witch hunt)’에 비유할 수밖에 없는 독기서린 공격은 인터넷은 물론 주류 언론 매체도 마찬가지였다”고 분노했다. 앞서 그는 자신이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는 과정을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특히 국내에서 논란을 빚었던 미국 중앙정보부(CIA) 경력과 관련, “CIA 자문위원직을 자랑스럽게 맡았으나 이 자리는 결국 조국인 대한민국에서 장관직 내
요즘 요리학원에서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남자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가사와는 거리가 멀었던 베이비부머 남자들이 앞치마를 두르기 시작한 것이다. 대부분의 50대는 오랫동안 일했던 직장에서 물러나 시간적인 여유가 많다. 반대로 경제적 여유는 크게 줄어들었다. 집에 있던 부인도 일하러 나가기 시작했다. 50대 가구의 맞벌이 비율은 86%에 달한다. 이처럼 50대는 사회·경제적으로 변화가 큰 시기고 일자리가 불안정한 시기다. 이 같은 50대의 불안은 작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82%라는 기록적인 투표율로 연결된 바 있다. 60세 이상 고령층만 선거권 있는 것이 아니다. 700만이 넘는 50대 베이버부머의 목소리도 좀 들어달라는 것이었다. 불안한 50대의 행복은 최저 수준이다. 2007년부터 6년째 계속되고 있는 현대경제연구원의 ‘경제적 행복지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20대의 행복감이 가장 높고, 50대와 60세 이상 고령층의 행복감은 가장 낮다. 작년 말 조사 결과는 100점 만점에 40점에 불과했으며, 연령별로 보면 20대는 46점으로 가장 높았지만 50대와 60대는 36점으로 가장 낮았다. 그런데 소득수준을 보
봄날의 점심 /엄승화 꽃이 만발하면 함께 먹자구요 그러면 무섭도록 정이 들어요 덩굴꽃이 담장을 넘으면 미울 지경이에요 오 오 탄식하며 주저앉아 울어요 물이 든 길을 걸어 오르면 당신의 간소한 식탁이 가장 화려해요 무엇보다 당신의 발놀림이 음악이어서 가난한 어깨 무거운 줄도 몰라요 푸른 것을 씻고 붉은 것을 그 위에 놓아 나르는 당신은 요술을 부리지요 앉아서 기다리고 있으면 입 속에서 소리를 내며 탁탁 꽃이 터지고 있어요 간소하지만 사랑이 있어 화려한 식탁, 가난하지만 사랑이 있어 가벼운 어깨, 꽃이 만발한 봄날 사랑하는 이와의 아, 무섭도록 정이 드는 식사.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며 탄식하는 이여, 울어도 괜찮다. 입 속에서 꽃이 터지는 그 설렘, 꽃이 만발한 봄날의 점심, 상상만으로도 아름답다. 아름다워 슬프고 슬퍼 아름답다. 머지않아 기다리는 이가 음악처럼 오리라. /조길성 시인
요즘 우리사회의 자살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자살자수는 2003년을 기점으로 교통사고 사망자 숫자를 추월하여 불행히도 OECD가입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IT 세계강국 1위인 나라, IQ지수 1위인 나라. 하지만 학교폭력이 자살원인 7위인 나라 역시 대한민국이다.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앨프레드 알바레즈가 쓴 ‘자살의 연구’에서는 자살이란 결국 치명적으로 불발된 ‘구조의 외침’이라고 설명한다. 자살은 자살자 사건의 행위에 다름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철저히 자살자가 속한 사회의 부조리와 고통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청소년과 20~30대의 자살은 심각한 수준으로 속수무책인 재앙수준인데, 자살자 수는 해마다 증가하여 10~30대 사망원인의 1위가 자살일 정도다. 심지어 인터넷에서는 아무런 제약 없이 자살자를 모집하고 방법까지 알려주는 사이트가 공공연한 게 현실이고, 자살포기를 다시 생각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자살을 결행하는 모임도 있다니 실로 모골이 송연한 현실이다. 더구나 사회적 인사나 연예인의 자살은 가뜩이나 자살률이 높은 한국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