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제1항이다. 시민(民)이 주인(主)인 공화국이라는 뜻이다. 공화국은 공화제로 운영되는 국가를 의미한다. 공화제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입법과 집행이 분리된 통치형태가 핵심이다. 즉, 입법부와 행정부가 분리된다는 의미다. 여기에 사법부의 분리가 더해지면 삼권분립이 된다. 정리하면 삼권분립을 채택한 국가는 형태상 공화국이다. 그러나 입법과 행정이 분리되었다는 것만으로 공화국이라고 할 수는 없다. 형태 또는 절차상으로는 공화제일 수는 있지만 진정한 공화국이 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자발적 복종’이 필요하다. ‘복종’은 공화제가 아닌 독재와 어울리는 개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독재와 복종은 공존할 수 없다. 독재국가에서 시민들은 단지 억압되어있을 뿐 권력이 복종하지는 않는다. 복종은 시민들이 권력을 인정하고 스스로 그에 따를 때 만들어진다. 다시 공화제로 돌아가 보자. 삼권분립 국가에서 입법, 행정, 사법 권력은 서로를 견제하며 균형을 이룬다. 이 중 입법부의 구성원인 국회의원과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은 시민이 직접 선출함으로써 시민으로부터 직접 정당성을 부여받는다. 그리고 나머지 행정부와 사법부는 행정
2022년 3월 9일은 차기 대통령 선거일이다. 225일 남았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5000만 씨알들과 8000만 민족 전체의 삶과 내용, 낱낱의 개인들과 공동체의 안위에 지대한 영향력을 갖는다. 뿐만 아니라, 소위 G8의 일원이 됨으로써, 지구촌 전반에도 비중 높은 인물이 된다. 과연 누가 될까? 솔직히 말하면, 지금 장부에 이름 올리고 뛰는 이들 대부분 마치 '전국상인연합회'의 회장 자리를 놓고 다투는 듯하다. 하기야, 당선만 되면 100만 명의 공무원들이 하던 일 그대로 하고, '여의도'는 변함없이 잘 굴러갈 텐데 무슨 문젠가? 취임하면 가장 먼저 공약들을 손본다. 캠페인 기간에 마구 던졌던 '뻥카'들은 섞어찌개 식으로 합치거나 과감히 폐기하면 되는 것. 야당이 따지고 들면, 겸손 떨며 사과하면 된다. '허니문 기간' 타령하는 기특한 기레기가 반드시 나오니 걱정할 것 없다. 특급 장사치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언동으로 목적을 이룬 다음, 주판 튀겨서 이문이 큰 쪽으로 말을 바꿀 줄 아는 자다. 그래서 개나 소나 닭이나 다 나와서 구세주처럼 약을 파는 거다. 나와 동지들은 요즘 대선 도전자들의 저질 행태에 역겨움과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 y와 c가 특
당신은 늘 거기 있어요. 옥상 한 귀퉁이, 배불뚝이 옹기 속에 있어요. 유리로 된 창도 없지요. 앞으로도 뒤로도 열고 나올 문이 없어요. 문도 창도 없는 동그라미 속에 당신이 있어요. 저는 믿어지지 않을 때가 많아요. 그렇게 사는 것도 산다고 할 수 있을까요. 당신이 사는 옹기 속은 어떤 세상인가요. 얕기만 한 제 눈에는 보이지 않아요. 애써 부릅떠도 볼 수 없어요. 당신은 속에 있고 저는 밖에 있어요. 무릎에 턱을 고이고 쪼그려 앉으셨나요. 옹기 속 동그란 세상에도 환한 달빛이 드리우나요. 저는 모르겠어요. 뚜껑을 열어 봐도 어둠뿐이니까요. 당신은 늘 거기 있어요. 옥상 한 귀퉁이, 배불뚝이 옹기 속에 있어요. 메주 아홉 덩이를 넣고 소금물을 부은 날부터였지요. 맞아요. 그랬던 것 같아요. 그때나 지금이나 당신은 말이 없지만, 어둠이 두껍게 내린 밤이면 제 귀에 들려요. 당신은 동그란 옹기 속에서 앉아 울고 있어요. 당신의 울음은 밖으로 퍼지지 못하고 속으로 무너져요. 당신이 우는 밤이면 저는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저앉고 말아요. 참지 말아요. 속으로 울지 말아요. 익는다는 것은, 까맣게 태운 속이 다시 썩어 문드러지는 걸까요. 저는 모르겠어요. 뚜껑을 열
생명이 드러나는 사실, 즉 진화 이야기는 사람들을 결합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과학은 수많은 과학자들의 자료를 종합하고 과학 탐구의 전형인 의문과 회의를 키우는 문화적 창조물이고 (잘못을 고친다면) 편협한 신화나 신앙을 요구하여 사람을 분열시키는 종교적 전통보다도 훨씬 설득력 있게 세계를 설명하게 되었다. 과학자들이 언제나 옳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미래 인류의 존재에 대한 가장 의미 있는 이야기는 힌두교, 불교,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보다 과학의 진화적 세계관에서 나오기가 훨씬 쉬울 것이다. 과학 탐구와 창조 신화를 둘 다 이해한다면 과학 이야기 속에 증명할 수 있는 사실과 개인적 의미를 모두 풍부하게 담는 세계관을 형성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298쪽) 참된 진화 심리학 관점에서 보면 영혼과 정신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물질에 의한 불가피한 존재다. 생각은 다른 어떤 것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세포의 활동에서 나온다. (299쪽) 인간은 특별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직립 보행을 한다(바로 이 점 때문에 우리 자신을 말 그대로 다른 종 “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마주 보는 엄지(도구 사용자 인간), 언어…
어릴 때도 방학은 무척 기대되는 이벤트였다. 늦잠을 자고 하루 종일 밖에서 실컷 뛰어놀 수 있으니까 손을 꼽아가며 방학을 기다렸다. 마냥 놀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때는 방학 숙제가 정말 많았다. 매일 일기 쓰기와 책 읽고 독후감을 몇 편 이상 작성하기는 1학년 때부터 6학년 때까지 빠지지 않던 숙제였다. 고학년이 되자 주제를 정해서 탐구해 오기와 문제집 한 권 풀어오기가 추가되었다. 당연히 방학 내내 아무것도 안 하다가 개학이 다가오면 이 모든 걸 다급하게 해결했다. 다른 건 몰아서 해도 지장이 없었는데 일기만큼은 그게 어려웠다. 일기의 내용을 채우는 건 아침 먹고 놀고 점심 먹고 뛰어다니고 저녁때 TV 봤다는 내용으로 채울 수 있었다. 문제는 날씨였다. 이미 지나간 날씨는 거짓말이 어려웠다. 그때는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여서 신문 같은 매체에나 날씨가 적혀 있었다. 앞일을 걱정했다면 그날그날 일기는 안 쓰더라도 날씨는 적어놓았을 텐데 그 정도의 계획조차 세우지 않을 만큼 아무 생각이 없었다. 학교 가서 친구의 일기를 보고 날씨를 베끼기로 하고 개학 전날 밤까지 열심히 일기를 써서 검사를 받았다. 교사가 되고 보니 방학 숙제는 담임교사 재량이었다.
생명은 에너지와 물질의 변환이다. 태양의 불꽃이 광합성 생물의 녹색 불꽃이 되는 것이다. 녹색 불꽃은 꽃식물의 적색, 홍색, 황색, 자주색 등 성적인 불꽃, 즉 다른 생물계를 설득하는 전문가가 된다. 화석화된 녹색 불꽃은 태양의 경제체제 안에 있는 인간의 방에 축적된다. 생명은 끊임없이 열을 소산 하는 화학작용이다. 그리고 생명은 기억이다. 과거의 화학작용을 반복하면서 행동하는 기억이다. 그리고 생명은 자기 초월적이다. 태양으로부터 온 에너지를 저장하고 재분배하면서 생명은 최고 수준의 활동력과 복잡성을 과시한다. 생명이 우주의 큰 영역을 자신의 보금자리로 만들어 간다면 그 과정에서 자신을 어떤 생명으로 만들지 누가 추측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다른 포유류 종과 마찬가지로 호모 사피엔스 역시 200만 년을 더 견뎌낼 것이다. 신생대 포유류 종의 평균 존속 기간이 300만 년 보다 짧았다. 모든 종은 사라진다. 멸종하거나 둘 이상의 후손 종으로 갈라지는 것이다. 캄브리아기부터 지금껏 살아 있는 동물 종은 없다. 어쩌면 호모 사피엔스도 오늘날 침팬지와 사람만큼 서로 다른 자손 종 둘로 나뉠지도 모른다. 종의 분리가 기술에 의해 더욱 가속화될 수도 있다. 내구력 있는
과거 남북 간 교류가 활발해지기 시작하던 시절(2001년), 남북장관급 회담에 참여했던 북한 통전부(노동당 대남사업 기구) 인사와의 대화에서 내가 깨달았던 한 가지 사실은 내 인식의 틀을 바꾸지 않고는 북한을 제대로 볼 수 없다는 것. 서울 도착 첫날밤, 북에서 채널이 하나밖에 없는 TV를 대하다 수십 개 채널의 남한 TV를 대하면서 쉬이 잠을 이룰 수 없었던 북측 R선생은 다음 날 아침에 충혈된 눈을 비비며 나에게 말을 건다. 주제가 은행털이 강도 얘기인 오락영화를 보았는가본데, “야! 긴데, 혼자 다 갖겠다고 끝내는 친구도 죽이누만! 사람 욕심이란 참...”.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가 보다. 비록 영화지만 말로만 듣던 자본주의 현실을 직접 대하다 보니 앞에 있는 남조선 사람인 나도 인간으로 잘 보이지 않는 듯하다. 국가와 사회를 위한 희생봉사, 친구와의 의리를 생명처럼 여기는 집단주의적 가치관이 체화된 그에게, “영화 덴 뭘 그래!” 나의 쉬운 대답이 수긍될 리 없다. 그의 흥분한 모습을 통해 나도 회담 기간 내내 잠을 설치며 북에 대한 내 그릇된 선입관을 생각하게 했고 이후 나의 사고체계는 근본적으로 변하게 된다. 역지사지의 사고 나아가 우리보다 저들이
방송을 보면서 아나운서들이 제일 짜증이 날 때는 장본인과 주인공을 구분하지 못하고 마구 섞어 쓰거나 아예 장본인이라는 표현밖에 모르는 것 같을 때이다. 장본인은 여러 (나쁜) 일을 일으킨 바로 그 사람이다. 주인공은 여러 (좋은) 일을 만들어 낸 바로 그 사람을 말한다. 그러니까 ‘네가 이 모든 일을 그르친 그 장본인이냐’가 맞는 말이고, ‘바로 이 분이 이번 대형 화재에서 어린 아이들을 구한 그 주인공 영웅이십니다’가 맞는 표현이다. 그런데 국영/공영 아나운서조차 이걸 구분 못하고 ‘이번에 올림픽 경기를 승리로 이끈 장본인이다’식의 표현을 쓴다. 한심한 일이다. 그렇다면 우크라이나 선수단을 소개할 때 체르노빌 원전 사진을 내보내고 아이티 선수단을 소개할 때 대통령이 암살된 얘기를 하는 등의 행태는 위와 같은 무식의 소치인가. 그 지경을 넘어선 것이라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무엇보다 정치적 올바름에 문제가 있다. ‘라떼에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아버지가, 혹은 선생님이 항상 말씀하셨다. ‘걔가 그래도 애는 착해. 그러니까 너무 싫어하지 마. 사람들 앞에서 너무 뭐라 그러고 그러면 안된다 알았지?’등등의 말씀이셨다. 사람의 좋은 면을 먼저 봐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단어 같지만 사람은 ‘의리’가 있어야 한다. 많은 부부들이 성격도 다르고 답이 없는 관계라도 나이테처럼 켜켜이 쌓인 ‘정’과 ‘의리’ 하나로 버티며 위기를 넘긴다. 흔히들 이런 경우 “전우애로 살아간다”고도한다. 여염집의 장삼이사들도 이럴진대 만인을 위해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속된 말로 “의리고 나발이고”식으로 처신하는 것을 보면 처참한 심정을 금할 수 없다. 정치인의 의리는 수십 년 동안 지켜온 자기 신념과 역사에 대한 책임일진대 말이다. 얼마 전 재보궐선거가 끝나자마자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조국 전 장관 때문에 선거에 졌다며 검찰개혁을 주도하다 멸문지화의 처지에 몰린 장수에게 책임을 돌렸다. 정작 자신들은 조국사태(?)이후 21대 국회의원선거에서 드높아진 국민들의 개혁 열망을 등에 업고 당선되었는데 말이다. 또 윤석열 씨가 지지율 1위를 달리자 “추미애 전 장관이 윤석열을 키워줬다”며 검찰개혁 전쟁으로 만신창이가 된 사람에게 창을 겨누었다. 가볍기가 새털이요, 얇기가 습자지 한 장이다. 지금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을 지켜보노라면 원팀은 개뿔, 과연 이들이 한 배를 탄 사람들인가 의문이 들 지경이다. 상대의 말꼬리가 삐끗하기라도 하면 ‘망
요사이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경선 과정을 보면, 한 가지 특징적 현상을 떠올릴 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과거 지향성”이다. 미래를 말해야 하는 여당에서 “과거 지향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도 문제지만, 더욱 문제인 것은 “과거의 잘못”만을 거론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의 정책이나 정치적 행위 중에도 분명 계승할 것이 많음에도, 잘못만을 들춰내는 과거 지향성을 보이는 것이 문제라는 말이다. 현 정권 들어서 가장 먼저 역점을 둔 사안은 바로 적폐 청산이다. 적폐 청산이란, 문자 그대로 과거의 폐단을 “청산”한다는 것이다. 물론 과거를 바로잡아야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울 수도 있지만, 과거의 잘못된 폐단을 단 몇 년간 청산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독일의 경우도 그래서, 역사에 관한 문제는 “청산”이라는 단어 대신 “극복”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역사 혹은 과거를 일거에 깨끗하게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독일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현 정권은 적폐 청산을 내세웠는데, 이 역시 과거 지향성을 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여권의 과거 지향성을 보여주는 사안은 이뿐만이 아니다. 대통령이 사과를 할 때도 보면, 과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