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세균이다. 세균이 아닌 생명은 세균인 생명에서 진화했다. 시생대 말기에는 불모지란 불모지는 모두 미생물 매트와 일시적인 더께로 뒤덮였다. 황이나 암모니아가 있는 뜨거운 웅덩이마다 개척자들과 밀려드는 이주자들이 가득 찼다. 세균은 소금 알갱이에 끈끈한 점액을 배출했고, 철분이 많은 연못에서 자철광을 침전시켰다. 극지방 근처의 차갑고 메마른 바위에 들러붙고, 열대의 얕은 바다에서 화산암 조각을 뒤덮어 지구를 푸르게 하면서 광합성 생물은 자신들이 만든 양분을 배고픈 기회주의자들에게 내주었다. 발효 세균의 노폐물은 운동성이 있는 호산성 세균의 먹이가 되었으며, 황산염을 환원하는 세균들의 고약한 숨결은 녹색 클로로비움이나 붉은색 크로마티움 세균들에게 값진 원료를 공급했다. 지구에서 이용 가능한 곳은 모조리 개화된 생산자, 분주한 변혁가, 극한의 개척자들인 세균으로 채워졌다. 자연선택을 받은 자손은 살아남았지만, 그것은 개체군의 동료로부터 플라스미드에 들어있는 유전자를 빌렸을 경우에만 가능했다. 유전자 교환은 분해될 단백질, 유해한 망간 찌꺼기, 산화되거나 환원되어야 하는 위협적인 구리 등 환경의 독소를 제거해야 하는 생물에게 필수 불가결한 것이었다. 유전자를…
50대에 대한 백신 접종이 7월 26일부터 시작되었다. 55살 이상은 8월 14일까지, 54살 이하 예약자는 8월 16일부터 28일까지 진행된다고 한다. 필자도 50대이기 때문에 8월에는 백신 접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백신 접종 예약을 하기까지에는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었다. 백신 예약 당일, 뉴스에서 보도되었던 내용과 마찬가지로 백신접종 예약 사이트는 예약 일보 직전에 접속이 끊어지는 일이 반복되었다. 30여 분을 기다리다가 13초를 앞두고 접속이 세 번이나 끊어지니 슬슬 짜증이 밀려왔다. 네 번째로 예약사이트에 접속을 시도했을 때는 내 앞에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에 늘 하던 저녁 운동까지 미루고 예약을 마무리하기로 마음먹은 터라 자꾸만 끊어지는 접종 예약 사이트가 야속하기까지 했다. 이러기를 반복하다 보니 대기 시간이 무려 87시간이라고 뜨기까지 했다. 이렇게 우왕좌왕하고 있을 때 다른 곳에 있던 딸아이가 전화를 걸어왔다. 백신 접종 예약을 대리로 할 수 있으니 주민등록번호를 알려달라는 것이다. 접종예약이 시작된 지 두 시간이나 지났고, 어차피 운동 나가기도 틀렸고 해서 다음날이나 예약을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 아루바, 앤티카 바부다, 안도라, 에스와 티니, 에리트리아, 기니 비 시우, 상투메프린시페, 세이셀, 차드, 바베이도스.... 국가명들이다. 지구 상 어느 곳, 어떤 나라인지 아는가? 지난 23일, 도쿄올림픽 개막식 때 입장한 세계 205개 나라 선수단을 보며 아직도 낯선 국명들이 여럿 있구나 생각했다. ‘카보베르데’가 나온다. 월드뮤직 강사가 되기 전에는 몰랐던 이름. 가수 세자리아 에보라(Cesaria Evora 1941-2011) 때문에 알게 된 이름. 말하자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모르거나 관심이 없었는데 BTS 때문에 알게 되고 사랑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비슷한 예다. 여기까지 읽고 바로 유튜브 영상 등을 통해 ‘세자리아 에보라’를 찾아보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거구의 늙은 흑인 모습이 뜰 것이고 사시 눈에 고생 찌든 느낌의 얼굴을 볼 것이다. 반전은 목소리다. 어두운데 무겁지 않다. 밝다. 이런 컬러의 목소리가 있었던가. 한 곡 더..... 하다가 모든 노래를 찾아 듣게 될 것이고 베사메 무쵸(Besame Mucho)에 이르면 ‘대체 어떤 삶이 이런 목소리를 만들어냈을까?’라는 궁금증으로 폭풍 검색에 들어갈 것이
가장 보잘것없는 생물인 단순한 세균조차 이미 엄청나게 많은 수의 분자들이 연합한 결과이다. 그 모든 조각들이 원시 바다에서 개별적으로 형성되었고, 어느 멋진 날 우연히 만나 갑작스레 그렇게 복잡한 체계를 만들어냈음이 틀림없다. (프랑수와 자콥) 생명은 과거 환경, 과거 화학의 표명이다. 초기 지구의 모습은 생명으로 말미암아 오늘날 지구에 남아 있다. 생명은 시공간이 막으로 둘러싸여 있고 물을 머금고 있는 캡슐이다. 죽음도 생명의 일부다. 죽어가는 물질도 일단 번식하면 복잡한 화학계와 새로운 소산구조가 만들어져 열역학적 평형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생명은 상대적으로 어리석고 무감각해 보이는 우주라는 부모 물질에서 감성과 복잡성을 증가시켜온 결합체다. 생명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흩어져버리는 열의 보편적 경향을 거스르면서 자신을 존속해야만 한다. 이러한 열역학적 관점은 생명의 편향성과 목적성을 설명해준다. 수억 년 동안 생명은 살아남기 위해 내기돈을 올리는 데서 벗어날 수 없었다. 열을 잃고 해체되는 경향이 있는 우주에서 이러한 화학적 보존 패턴이 바로 생명이기 때문이다. 과거를 보존하고 과거와 현재 사이의 차이를 만들면서 생명은 시간을 구속하고 복잡성을 계속 확
광주교도소 특사 동에서 아침 점호 시간이 끝나면 까망이는 내가 열어주는 식구통으로 사뿐히 뛰어올라 밖으로 나갔다. 자유 없는 감옥에서 유일하게 까망이만 자유로운 고양이였다. 까망이가 복도에서 ‘야옹’ 하고 한 번 울면 특사의 죄수들은 일제히 까망이를 자기 방으로 불러들이려고 갖은 아양을 떨었다. 무엇보다 확실한 유혹은 먹을 것이었다. 멀건 국 멸치는 하급이었고, 일주일에 한번 배식되던 돼지고기 살코기는 고급이었다. 어떤 죄수는 사식으로 들어온 훈제 닭고기로 까망이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까망이는 여유롭게 이 방 저 방을 순시하듯이 드나들었다. 까망이를 영접한 죄수들은 어떻게든 까망이와 긴 시간을 보내려고 애썼다. 그러나 까망이는 한 곳에 정을 주지 않았고 기특하게도 반드시 내 방으로 돌아왔다. 아침에 홀쭉한 배로 출타했던 까망이가 저녁에 다시 내 방 식구통으로 넘어올 때는 얼마나 얻어먹었는지 배가 빵빵해져 뒤뚱거리면서 넘어왔다. 까망이는 나를 보며 ‘씩’ 하고 웃어 보였다. 까망이는 하루가 다르게 커갔다. 이제는 뺑기통 창을 통해 특사 밖으로까지 활동 반경을 넓혔다. 어느 날 갑자기 ‘푸드득’ 거리는 소리와 함께 까망이가 호들갑스럽게 방으로 달려 들어왔다.…
-할매요, 뭘 그렇게 많이 사 들고 가세요? -누기라? -저 예주목 사는 사람입니다. -아, 그래여, 이거? 아~들 줄 끼라. -아들요? -손주들, 그거 뜨리 저번 주에 와써, 저 아바이 어마이 일 다닌다고 나한테 매끼노코 가 뿌리네. -아이고, 참말로 더위에 고생 많으시네요. 키워 놓으면 보람 있을 겁니다. 근데 왜 걸어가세요? -3시 차가 고장 나서 안 들어온다카네. 보람은 무신 노무 보람, 나 죽고 저들만 잘 살만 그기 보람이지. 차 좀 태워 주든지. 마스크 썼응께, 주사도 맞았고... -아, 예, 예, 타세요. -나 알아여? -모르는데요. -그런데 우째 잘 아는 사람처럼 말을 걸어서 아는 사람인 줄 알았네. -할매가 막 아는 사람처럼 대답을 잘하시더만요. 하하하하. -그럼, 저짜 봉지뫼까지만 태워 줘. -아이고 걱정 마세요. 집까지 태워 드릴게요. -까자 좀 샀는데 하나 주까? -아뇨, 아뇨, 손주들 갖다 주세요. 저는 술만 먹지 과자는 안 먹어요. -술 한잔 받아 디리야 되는데... -젊은 여자가 사 주는 술만 마셔요. -애이~ 하기사 그럴끼라.
내년 3월 9일 치러질 20대 대통령 선거가 7개월 여 앞으로 다가왔다. 후보들의 각축 만큼 언론의 보도 열기도 뜨겁다. 여론조사 보도는 선거보도의 핵심이다. 선거-여론조사-언론은 삼각동맹을 구축한다. 정치 여론조사는 단순하지만 순위가 보도되면 최고의 클릭수를 기록한다. 언론의 효자상품이다. 거의 모든 언론사가 보도경쟁에 뛰어든다. 유명 연예인의 스캔들 보도를 방불한다. 여론조사를 의뢰한 언론사와 여론조사기관 입장에서는 최고의 홍보효과를 얻는다. 하지만 이면을 들여다 보면 걱정이다. 언론사는 경영이 어렵고, 여론조사기관은 조사원이 투입되지 않는 기계음을 활용한 ARS 조사기법이 개발돼 저비용 조사가 가능해졌다. 언론사가 의뢰하는 ARS를 통한 지지율 조사는 3-400만 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일부 조사회사는 유명 언론사를 상대로 무료 조사까지 제안하는 현실이다. 유명 언론사와 손을 잡은 조사회사는 정치여론조사를 기업컨설팅 등 다른 수익사업을 위한 교두보로 활용한다. 언론사와 여론조사 회사가 ‘누이좋고 매부 좋은’ 공생관계가 형성된다. 지난 7월 13일 머니투데이는 윤석열 캠프에서 제기한 의혹은 ‘사실과 다르다’는 자사 입장문 냈다. 이에 앞서 윤석열 캠프에
한순간 지속되는 사랑. 밤, 그것은 빛의 그림자, 생명, 그것은 죽음의 그림자. (알제논 스윈번) 생명은 지구에 충만한 하나의 태양 현상이다. 생명은 지구 대기와 물, 태양을 세포로 바꾸며, 우주 전체로 볼 때 극히 제한된 곳에서 일어나는 변화다. 생명은 성장과 죽음, 처리와 배제, 변화와 부패가 뒤얽힌 복잡한 패턴이다. 생명은 다윈의 시간을 통해 최초의 세균과 연결되고, 베르나드 스키의 공간을 통해 생물권의 모든 구성원과 연결되는 팽창하고 있는 하나의 조직이다. 신이고 음악이고 탄소이며 에너지로서 생명은 성장하고, 융합하고, 죽어가는 존재들이 소용돌이치는 결합체다. 생명은 피할 수 없는 열역학적 평형의 순간(죽음)을 무한정 앞지르기 위해 자신의 방향을 정할 수 있는 억척스러운 물질이다. 생명은 또한 우주가 인간의 형태로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살아있는 물체를 그토록 다르게 만들기 위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 답은 과학적이면서도 역사적이다. 생명은 모방할 수 없는 자신만의 역사다. 일상의 눈으로 보면 “여러분”은 나이가 몇 살이든 태어나기 약 9개월 전에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진화적 관점에서 더 깊숙이 보면 “여러분”은 생명의 대담
- 발걸음으로 시작된 인류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Marvin Harris)는 그의 책 《우리 인간이라는 종자(Our Kind)》에서 인간 역사의 시초에 “발걸음이 있었다”라고 적고 있다. 성서의 창세기 첫 문장 “태초에”를 본뜬 건데 직립보행의 인류사를 압축한 문장이다. 그런데 이 발걸음이 있기 위해서 가장 결정적인 것이 생물학적 진화 못지않게 기후다. 또는 기후의 변화가 진화를 촉진했다고 할 수 있다. 빙하기가 지속되는 한 인간의 활동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기온이 올라가면서 얼었던 땅이 녹고 그만큼 초목이 들어차면서 초식동물의 이동이 있게 되고 그 뒤를 따라 이들의 포식자가 움직이고 인간의 생활영토 역시 넓어지게 된다. 최초의 인류 발상지를 아프리카로 설정하고 있는 것은 ‘루시’라는 이름으로 불려진 원시 유골 발견이기도 한데 거기에서 시작된 인류의 역사가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것 역시도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의 압박 때문이었다. 방하기를 지나 적도 지대의 온도가 급상승하면서 숲이 건조한 사바나 초원이 되자 나무 위에서 땅으로 내려와 살아야 하는 상황은 직립보행의 결정적 조건을 만들었다. 고대 이집트 제국의 젖줄인 나일강 유역도 주변이 사막화되면서…
벌써 10년 전이다. 한 산모가 증상이 너무 심해 입덧이 심한 시기인 산후 9주-11주 사이 거의 음식을 못 먹고 힘들어서 내원했다. 인터넷 검색으로 자가요법을 하던 중 다른 것은 효과가 없고 맘까페에서 추천받아 해외직구로 구입한 것이 조금 효과가 있었다고 가지고 왔는데 바로 내관혈 자극기라고 부르는 손목밴드였다. 손목에 시계처럼 찰 수 있게 되었는데 내관이라는 손목 내측에 있는 혈자리 부위에는 볼록하게 요철이 있어서 그 요철을 압박하면 혈 근처를 자극을 할 수 있게 만들어진 단순한 장치였다. 내관혈이 소화기 질환 등에 효과적인 혈자리인지라 입덧에도 효과가 있기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오늘 언급하려는 EFT도 한의학의 경락의 경혈을 자극하는 법만 달리했고 외국에서 만들어졌다는 큰 맥락에서 내관혈 자극기와 비슷하다. EFT는 한의학에 관심이 많았던 로저 칼라한이라는 임상심리학자가 우연히 물 공포증 환자를 치료하다가 경락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는 것이 감정을 해소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을 발견해 만든 치료법을 공학을 전공한 게리 그레이그가 보다 쉽게 실용적이고 대중적으로 만든 것이다. 그는 EFT를 기존의 약물, 상담치료 등에 반응을 보이지 않거나 호전이 없었던 베트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