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발효로 인삼산업 관계자들도 다른 농업과 마찬가지로 삼삼오오 모여 걱정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동안 국제시장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상품 중의 하나인 고려인삼은 어떠했는가? 고려인삼은 중국삼, 서양삼(캐나다, 미국산)과의 치열한 경쟁으로 ‘인삼삼국지’라 불릴 정도로 그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다. 우리나라는 종주국의 배짱만을 믿고 걷고 있는 사이에 중국삼과 서양삼은 고려인삼을 따라잡기 위해 뛰고 있었기에 국제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러나 최근 건강관심의 고조에 힘입어 내수시장 활성화에서 찾은 희망과 정부 및 관련 단체의 노력으로 세계시장 다변화에 따른 수출증가로 무르익은 반격의 기회를 찾은 것이다. 고려인삼은 1990년대 중반까지 매년 1억 달러 이상의 수출실적을 보였지만, 이후 저가의 중국삼과 미국삼 등에 밀려 2002년 마침내 5천500만 달러로 최저를 기록했다. 하지만 고려인삼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재도약의 길을 찾은 샘이다. 중국의 경제성장에 따른 소비 확대 및 대만시장의 수요회복 등으로 홍삼 수출량이 크게 증가하면서 수출 회복세를 보여 2009년 드디어 1억 달러를 돌파했다. 2010년 1억2천400
겨우내 얼었던 땅을 뚫고 새순을 피운 씀바귀. 예전엔 궁핍했던 시절 허기진 배를 채워 주는 존재였지만 요즘은 웰빙(well-being)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특유의 쌉싸래한 맛은 우리의 나른한 몸을 깨워주고 겨울철 잃었던 입맛까지 살려준다. 봄에 자라는 쓰디 쓴 씀바귀를 많이 먹으면 여름철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하니 몸에 좋은 나물이라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봄나물은 채취한 뒤 바로 먹어야 제격이다. 겨울철 아무리 입맛이 떨어졌다한들 모진 추위를 이겨내고 싹을 피운 나물의 향내를 어찌 피할 수 있겠는가. 나물에 봄의 싱싱함이 여전히 묻어있기 때문에 봄은 곧 맛이다. 봄나물로 ‘무쳐먹고, 데쳐먹고, 담가먹고, 튀겨먹고, 쌈 싸먹는’ 즐거움을 만끽해 보자. 살짝 데치거나 또는 생채인 씀바귀를 참기름과 통깨를 뿌려 버무리면 쌉싸름한 맛이 일품이다. 뿌리째 튀겨먹는 맛도 잊을 수 없다. 봄나물은 우리네 어머니들의 정성이 담긴 추억 속 이야깃거리에서 다시 현실세계로 되돌아 나온다.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인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나물이 씀바귀다. 쓴 맛을 없애기 위해 소금물에 살짝 데쳐내어 무치거나 고들빼기처럼 김치를 담가 먹기도 하는 씀바귀는 항암효과와 더불어 항스
이렇게 무능한 경찰이 우리 주변에서 주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겠다고 밥먹듯이 말해 온 것을 믿은 것이 잘못이다. 아무것도 속시원하게 해결해 준 것이 없다. 수원에서 20대 여성이 납치돼 살해됐다. 목숨이 위태롭고 성폭력이 자행되는 긴박한 상황에서 기치를 발휘해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신고를 받은 경찰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피해 여성이 112 신고전화로 범행장소를 자세히 설명했으나, 경찰이 안일하고 무능하게 대처하는 사이 이 여성은 살인마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됐다. 피해자는 첫 신고 후에도 6시간 반 이상 생존해 있었던 것으로 경찰 수사 결과 밝혀졌다. 초동 수사만 잘했어도 피해자가 생명을 보전했을 것이다. 경찰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여러번의 거짓말도 했다. 경찰의 자질과 교육 문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특히 112 신고와 관련된 현장 출동 체계나 보고체계가 너무나 허술하다는 것이 드러났다. 신고를 받은 근무자는 112 신고센터에서 근무한 지 두 달 밖에 안됐고, 신고전화 응대요령도 익히지 못했다. 담당 경찰관들이 피해자의 비명을 전화로 들으며 “부부싸움 같다”고 한 대목에서는 말문이 막힐 정도다. 신고 내용을 현장 경찰관들에게 전달하는 체계도 미흡
불체자 및 외국인 범죄에 대한 대응책이 시급하다. 지난 1일 발생한 이른바 ‘수원 토막살인사건’ 이후 국민들의 불안과 공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외국인 범죄자에 대한 단호하고 엄중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확산되고 있다. 온라인상에서는 강력한 처벌과 단속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도배를 하고 있다. 본보(9일자 6면)에는 ‘조선족을 모두 한국에서 추방시키자’는 극단적인 반감이 섞인 글이 소개되기도 했다. 이번 사건으로 이주노동자에 대한 반감은 극에 달한 느낌이다. 사실 외국인, 특히 불체자들의 범행은 날로 흉악해지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가 많이 거주하고 있는 경기도의 경우 지난해 한 해 동안 모두 8천504명의 외국인 범죄자가 경찰에 적발됐다. 이는 2010년 대비 19.5% 증가한 수치이다. 경기지방경찰청에 따르면 범죄 유형별로는 살인(미수포함) 45명, 강도 40명, 강간 95명, 절도 487명, 폭력 2천930명, 지능범 1천23명, 마약류 82명, 기타 3천802명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살인 사건은 2010년(25명) 보다 무려 20명이 증가했다. 강간범도 2010년(52명)보다 43명이 늘었다. 이들의 범죄 내용을 보면 대한민국법을 무시하고 있다는 느
忌則多怨 남을 싫어하면 원수가 많아진다 新기(忌)자의 뜻은 ‘미워하다’이며, 나아가 ‘꺼리다’, ‘원망하다’로 쓰인다. 초상집에 기중(忌中)이라 써놓은 것은 ‘함부로 들고 나는 것을 꺼리므로 조심하라’는 것이다. 미워하는 마음을 밖으로 드러내면 원망을 많이 사게 되므로, 남을 미워하는 행동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춘추(春秋)에 나오는 말로 미워하면 원망이 많아진다. 원망할 바가 아니면 원망하지 말라.(忌則多怨 非所怨 勿怨, 기즉다원 비소원 물원) 즉, 원심(怨心)을 갖지 말라는 말이다. 승리했을 때가 상대방의 원망을 사게 되는 것이다. 승부가 없고 다툼이 없는 세상이라면 편안하다 할지 모르지만, 이 세상에 승부 아닌 것이 또 어디에 있는가. 그렇다고 패배자가 되면 자신이 비굴해져 버리는 것이다. 부처님 말씀에 악한 사람이 착한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일부러 찾아와 방해하더라도 너희들은 참고 견디며, 그들에게 성내고 꾸짖지 말라. 나쁜 짓을 하는 그 사람은 스스로 나뿐 줄 안다. 악한 사람이 어진 이를 해치는 것은 하늘을 향해 침을 뱉으면 침이 하늘에 닿지 않고 도리어 자기
꽃봉오리에 눈이 내리자 꽃들이 일제히 실눈을 뜬다. 앞이 보이지 않아 자세히 보려고 한다. 봄눈 내리는 내막을 알고 싶어서일 것이다. 봄인듯 했으나 겨울이 아직 잡은 손을 놓아주지 않고 있다. 겨울의 지독한 집착인가. 서술적 이미지를 구현하고 있다고 평가받는 김춘수의 시 ‘처용단장 1-2’는 다음과 같다. ‘삼월(三月)에도 눈이 오고 있었다./ 눈은 /라일락의 새순을 적시고/ 피어나는 산다화(山茶花)를 적시고 있었다./ 미처 벗지 못한 겨울 털옷 속의/ 일찍 눈을 뜨는 남(南)쪽 바다/ 그 날 밤 잠들기 전에 /물개의 수컷 우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삼월(三月)에 오는 눈은 송이가 크고, /깊은 수렁에서처럼 /피어나는 산다화(山茶花)의 /보얀 목덜미를 적시고 있었다.’ 이 시에서는 ‘눈’의 중의적 표현을 읽을 수 있다. 앞부분의 눈은 설(雪)이고, 뒷부분의 눈은 안(眼)이다. 각각의 평행선을 가던 눈(雪)과 눈(眼)이 마주친다. 즉 ‘삼월(三月)에 오는 눈은 송이가 크고’인데, 표면적으로는 하늘에서 내리는 눈이지만 함축적으로는 산다화를 응시하는 커다란 눈 즉 관능적인 눈이다. 시각적인 상황에서 역동성이 느껴지는 육감의 외침소리를 듣게 된다. 물개 수컷 우는
경찰지휘부에서는 이번 선거를 통해 국민과 정치권으로부터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이 완전히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경찰의 정치적인중립이 이루어지지 않고 선진국이 된 나라는 없다. 베스트셀러의 요건으로 ‘쉽고 재밌어야 한다’를 꼽는다. 그런데 작년에 하버드대학교의 어렵고 딱딱한 정치학 강의를 담은 책인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정의와 공정성에 대한 매우 갈망이 크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하다. 최근 일련의 사건들로 국민들의 좋지 않은 시선이 경찰에 쏠려 있다. 지난 3월 한국일보에 ‘국민이 지켜보는데…경찰, 기소청탁 굽신굽신 수사’라는 제목으로 경찰의 정당한 수사에 대해 검사가 부당하게 사건을 축소하고 모욕적인 언행을 했다는 내용이 소개됐다. 그러자 국민들은 경찰이 검찰의 눈치를 보며 공정성을 저버리는 것이 아느냐 하는 의혹을 품게 됐다. 이러한 의혹을 풀기 위해서는 선진 형사·사법 체계가 갖춰지면 좋을 것 같다. 경찰이 사건처리 시 ‘기본과 원칙’에 따라 헌법·법령에 규정된 대로 당당하게 수사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현재 검찰이 가진 수사·기소권한을 분리해 ‘수사는 경찰이, 기소는 검찰’이
지났지만 4월 7일은 ‘신문(新聞)의 날’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의 창간 61주년을 맞은 지난 1957년 제정됐으니 올해로 56회를 맞았다. 올해 신문의 날 표어는 ‘펼쳐라 넘겨라 세상과 소통하라’로 희망을 노래하고 있지만 새로운 환경을 맞은 신문의 위기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인터넷뉴스 구독률은 77.9%였고, 종이신문 구독률은 67.8%로 처음 인터넷뉴스 구독률이 앞섰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추세가 앞으로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는데 있다. 각종 자료들을 나열치 않더라도 앞서가는 IT산업으로 인해 새로운 미디어에 열광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그것을 눈치 챈 힘 있는 중앙언론들이 대거 종편이라는 이름을 걸고 방송으로 갈아타기에 나서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신문이 생존할 미래는 없는가. 다행인 것은 우리보다 앞서 이러한 환경을 겪었던 선진국의 경우 신문, 특히 지방지의 생존공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입증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특정지역의 경우 지역지가 폐간되자 이를 대체할 블로거나 각종 대체미디어가 대거 출현해 뉴스와 정보를 쏟아냈다. 그러나 넘쳐난 뉴스와 정보의 홍수 속에서 뉴스소비자들은 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