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소송에서 사실관계를 가장 소중히 다뤄야 하는 판사가 판결문을 쓰느라고 사건 소송서류를 들여다 볼 시간이 없다고 불평한다면 헛소리로 들릴 것이다. 그런데 이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실제로 하는 집단이 있다. 언론인을 자임하는 상당수 언론사 취재기자가 그들이다. 그들의 입에서 기사를 쓰느라 취재를 할 시간이 없다는 푸념이 나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논리의 모순이고 궤변이며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 기사가 취재의 토대 위에서 작성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기자 초년 시절 수습기간을 거치게 하고 경찰서와 병원, 사건을 찾아 사람들을 만나서 현장감이 있는 기사를 생산하도록 하는 훈련을 받는 것도 충실한 취재와 엄밀한 확인의 과정에서의 긴장감을 놓치지 말라는 의미 아닌가? 그런데 요즘 기자들은 현장 취재를 통해서 보다는 사이버 공간, 즉 연예인과 정치인의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계정을 검색해 기사거리를 찾아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취재 시간과 노력을 더 들이기보다 주로 저질 황색정보들을 골라 ‘단독’이니 ‘속보’니 하는 요란한 제목을 달아 포털에 올리는 경우가 흔하다. 사람들의 관음증을 자극해 조회수를 늘리려는 이른바 낚시행위가 자주 눈에 띈다. 클릭
임기말을 향해 달리고 있는 현 정부가 북한카드를 회심의 반전카드로 삼아 만지작거리는 느낌이다. ▲지난 1월 개정한 조선노동당 규약 개정 내용을 6월에 흘린 점, ▲개성공단 복원 및 금강산 관광 재추진을 송영길 대표·이인영 통일장관 등이 밝힌 점, 그리고 ▲민간차원에서 민변 등의 국보법 폐지 공론화와 더불어 통일걷기대회· 통일논문대회· 평양탐구학교 등을 잇달아 여는 것 등이 금년 하반기에 ‘통일열기와 북한과의 평화만들기 작업’을 본격화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일부 언론에서 벌써부터 깜짝쇼 식 정상회담이나 ‘대북성과 조바심’을 내지 않도록 촉구하고 있고, SNS 상에는 국보법 폐지 청원과 반대운동이 가열되고 있을 정도로 또 한 번 진영 간 대결 조짐도 보이고 있어 지난 4년 간 심화되었던 국민들 간 갈등의 골이 더 깊게 패이지 않을까하는 걱정부터 앞선다. 노동당 규약 개정 논란부터가 대립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진보진영은 노동당의 ‘당면 목적’ 수정 문구(‘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 과업 수행’)를 두고 북한이 견지해 온 ‘남조선 혁명론이 약화되어 사실상 남조선 혁명론이 소멸된 것’이라고 해석한다. 또한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
사회 질서의 개선은 도덕적 완성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내가 이렇게 붓을 들고 있는 방의 창문 밖으로, 코에 코뚜레가 꿰여 말뚝에 매어 있는 커다란 소 한 마리가 보인다. 소는 풀을 뜯어먹다가 저도 모르게 자신이 매여 있는 고삐를 말뚝에 감아버렸다. 소담스럽게 자란 풀을 눈앞에 두고도 배를 주리고 어깨에 달라붙는 파리를 쫓기 위해 목을 흔들지도 못한 채 죄수처럼 가만히 서 있다. 그는 몇 번이나 빠져나갈 양으로 몸부림쳐보지만, 그때마다 슬픈 신음소리를 지르다가 지금은 얌전해져서 조용히 괴로워하고 있다. 엄청난 힘을 갖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하면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 이해할 만한 자각도 없이, 많은 풀 앞에서 배를 주리며 지극히 연약한 생물에게 비참하게 당하고 있는 이 소의 모습은, 내 눈에는 마치 노동자들의 상징처럼 비친다. 모든 나라에서 땀을 흘리며 풍요로운 부를 생산하는 노동자들은 가난에 시달리고 있다. 하루하루 진보하는 문명이 새로운 사상의 분야를 개척하고 새로운 욕망을 부추기고 있을 때, 그들은 그 보잘것없는 동물적 욕구를 채우기 위해 가축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그들은 불공평하기 짝이 없는 현실을 의식하고, 마음속으로 자신들이 이런 비참한 생활을 보
홍범도만큼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사람도 드물다. 1868년 평양의 서문 밖에서 머슴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머슴, 군인, 종이공장 노동자, 승려, 포수, 의병, 광산 노동자, 독립군, 농부, 부두 노동자, 혁명가의 삶을 살았고 마지막 직업은 극장 수위였다. 그가 한 일은 수없이 많지만 한 단어로 그를 규정해야 한다면 독립군일 것이다. 그보다 더 오래, 그보다 더 많이 일본군과 싸우고 그보다 더 크게 일본군을 이긴 사람은 없었다. 27세에 강원도 단발령에서 황해도 출신의 동지 김수협과 함께 일본군 12명을 처단한 이래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52세까지 그는 싸우고 또 싸웠다. 그 과정에서 그는 가족 모두를 잃었다. 아내는 일제의 고문으로 죽고, 큰아들 양순은 그와 함께 일본군과 싸우다 열일곱 살 나이에 전사했다. 작은아들 용환은 그와 함께 만주를 유랑하다 병으로 죽었다. 핏줄 하나 남기지 못하고 머나먼 중앙아시아에서 극장 수위로 생을 마감한 그의 유해조차 아직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필자가 그를 다시 소환하는 이유는 그의 파란만장한 생애와 위대한 업적을 재평가하자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비운에 찬 한 영웅의 생애를 제대로 기리자는 것도
“이상반응 없는지 대기하셨다가 안내사항 받고 가시면 됩니다.” 잔여백신 당일예약에 성공했다. 스마트폰 앱에서 잔여백신 조회와 당일예약을 반복했는데 드디어 잡았다. 얀센이냐 아스트라제네카냐 가릴 여유는 없었다. 백신 접종이 시작된 지 105일 만에 접종자 수가 1000만 명을 넘겼다. 국민 5명중 1명이 백신을 한 번이라도 접종했다. 나도 먼저 편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잔여백신은 사전예약자가 접종 당일 예약을 취소하거나 최소 잔여형 주사기를 사용했을 때 추가로 생기는 물량이다. 잔여백신 안내를 예약해둔 병원에서 알림이 오기 전에 지도에 뜬 표시를 보자마자 클릭했다.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 운영 종료시간이 저녁 6시라고 표시돼 있었지만 지금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예방접종 예진표를 써서 접수했다. 정보 수신 동의에 ‘예’를 표시하고, 아픈 증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아니오’를 반복해서 표시했다. 대기실에는 예진표를 든 사람들이 띄엄띄엄 있었다. 다들 대기실 앞 TV 뉴스를 보고 있었지만 진료실과 주사실 문이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할 때마다 그 쪽으로 신경을 쓰는 것이 느껴졌다. 내 순번 앞에는 젊은 나이의 남자 몇 명이 있었다. 얀센 백신의…
1. 천하일통 금계국 아침저녁으로 걷는 반석천엔 시방 금계국과 개망초 천국이다. 노란 금계국에 하얀 개망초가 제법 근사한데, 볼 때마다 끌탕 치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까닭은 무엇인가. 금계국 때문이다. 북미가 원산지인 이 꽃은 이르면 오월 중순부터 팔월까지 오래도록 노란 꽃을 피운다. 국화과 식물이 대개 그렇듯이 해열 효과가 있고, 부종을 제거하고, 간열을 내리는 데도 쓸 수 있지만, 한약재로 널리 쓰이는 건 아니다. 문제는 이 금계국이 전국을 뒤덮고 있다는 점. 한반도의 혹독한 겨울 추위를 견디며 월동해 다음 해에도 꽃을 피우는 여러해살이 식물이라서일까, 번식력이 강해서 아무 땅에 심어도 잘 자라기 때문일까, 남도 해안가에서 경기도 천변, 강원도 국도변까지 금계국 천지다. 그야말로 야생화 끝판왕으로 전국을 뒤덮고 있는데, 실은 우리나라 식물 생태계에 큰 위협이다. 일본에선 이미 2006년부터 생태계 위협종으로 지정하고 퇴치 중이며, 계명대 생물학과 김종원 교수는 돼지풀보다 더 위험한 종류라고 말하고 있다. 지금처럼 민관에서 아무 곳에나 금계국을 무분별하게 심는 일은 중단해야 한다. 꽃도 화사한 데다 관리할 필요가 없고, 한 번 심기만 하면 잘 자라고 번식력
이웃에 살고 계신 이중길 전 서울예술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은 특별한 분이지요. 오래전에 퇴임하신 선생님은 트래킹 마니아들에게는 전설적인 인물이에요. 지난 2012년 칠순의 연세에 유럽을 가로지르는 5600㎞ 어마어마한 길을 걸어서 완주하신 놀라운 기록을 갖고 계시기 때문이랍니다. 매일 25~67킬로미터씩 걷는 불가사의한 도보의 결과였다고 하니 말이 안 나올 지경이지요. 선생님이 들려주신 유럽횡단 에피소드에는 신기한 내용이 많지만, 인상적으로 남아있는 것은 ‘파이팅(Fighting)!’이라는 응원 구호 이야기예요. 굳이 비유하자면 중국의 ‘짜유(加由)!’ 정도가 될 텐데요, 유럽 여행 중에 아무 생각 없이 ‘파이팅!’이라는 구호를 써먹었다가 상대방이 정말 싸우자는 건 줄 알고 표정이 새파래지는 바람에 곤경을 겪었다더군요. 말씀을 듣고 보니 정말 우리는 ‘파이팅!’을 아무 데서나 남발하고 사는 것 같아요. 우리가 무심코 쓰고 사는 언어습관 중에는 ‘전투적’이거니 ‘적대적’인 게 적지 않습니다. 그 가운데 ‘틀리다’라는 말은 참 심각해요. ‘다르다’라고 말해야 할 때 ‘틀리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예요. 텔레비전 속에서도 그렇고, 길거리에서도 그렇게 말하는…
창업활동은 경제성장정책과 산업정책뿐만 아니라 사회복지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성장동력이며, 여기에 창의성과 기업가정신이 곁들여져 국가 경제의 역동성이 결정되게 된다. 창업활동의 강력한 엔진이라 할 수 있는 혁신활동을 기반으로 창업 스토리를 잘 정리하고, 조직의 정체성을 명확히 함으로써 시장의 기대에 부응하고 사회적가치와 경제적가치를 창출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끊임없이 발굴하고 사업화 실천을 해나가야 한다. 기업 경영에 있어 전략적 선택과 균형잡기는 창업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키워드이다.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될지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가 될지, 회피 대상으로 위험을 바라볼지 아니면 기회로 삼을지, 사회적경제와 자본주의경제 또는 전통적 사회적기업과 소셜벤처 사이 어느 위치에 자리매김할지, 공공시장과 민간시장 어느 곳을 주력 시장으로 삼을지 등 선택과 균형을 잡아가는 동안 수많은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사회적경제기업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요소 몇 가지를 살펴보면 가격경쟁력, 제품(서비스) 품질과 기술경쟁력, 자본(자원)연계, 마케팅, 고용유지 등을 들 수 있다. 정부와 공공기관이 사회적기업 제품에
파블로 피카소 탄생 140주년을 맞아 그의 작품 110점이 서울에 왔다. 이번에 전시된 진품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그림은 단연 ‘한국에서의 학살’. 이 작품은 피카소의 ‘반전(反戰) 3대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널리 알려진 ‘게르니카’의 한국판이라고나 할까?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0월 중순부터 12월 말까지 황해도 신천에서 일어난 양민학살을 그렸다. 부녀자와 어린이를 포함해 주민의 4분의 1이 떼죽음을 당했다. 도대체 누가 이런 만행을 저질렀나? 남과 북의 ‘공식 기억’이 서로 다르다. 남한에서는 공산당을 지목하고, 북한에서는 미군에게 책임을 돌린다. 스페인의 프랑코 정권에 저항해 프랑스로 망명한 피카소는 1944년에 공산당원이 되었다. 그런 그가 1951년 1월에 ‘한국에서의 학살’을 그렸으니, 여기 묘사된 학살의 주체는 미군으로 해석될 공산이 크다. 해서 이 그림은 미국의 환대를 받지 못했다. 피카소가 죽은 뒤 한참이 지난 1980년이 되어서야 처음 미국 전시가 허용되었다. 이런 이력을 지닌 ‘한국에서의 학살’이 드디어 대한민국에 상륙한 것이다. 가로 210㎝, 세로 110㎝의 대작이다. 왼쪽에는 임신한 여인들과 순진무구한 어린이들이 알
부자 그리스도인이란 발 없는 경주마라는 말과 같이 모순된 말이다. 세상에서 상대방에 대한 존경심은 그 사람의 가진 부에 정비례하며, 인간의 내면적 가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러나 진정 깨달은 사람은 이성적 존재로서의 ‘나?’에 대한 존경심에서 재물과 돈을 부끄러워한다. (에머슨) 이번에는 부자들에게 한 마디 하겠습니다. 당신들에게 닥쳐 올 비참한 일들을 생각하고 울며 통곡하십시오. 당신들의 재물은 썩었고 그 많은 옷가지들은 좀먹어 버렸습니다. 당신들의 금과 은은 녹이 슬었고 그 녹은 장차 당신들을 고발할 증거가 되면 불과 같이 당신들의 살을 삼켜 버릴 것입니다. (야고보서 5장) 나는 도처에서 사회복지라는 이름하에 자신만의 이익을 좇아 가난한 사람들을 착취하는 부자들의 음모를 보고 있다. (토머스 무어) 부는 오만과 잔인, 자만으로 인한 난폭, 부패와 타락의 뿌리이다. (퓨지) 차라리 부자의 냉담함이 그들의 동정심만큼 잔인하지 않다. (루소) 부자를 존경해서는 안 된다. 그들을 가엾게 여겨야 한다. 부자는 자신의 부를 자랑할 것이 아니라 부끄러워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의 획득은 자본(판돈)의 크기에 달려 있다. 이는 일종의 도박장에서의 카드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