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수원시 장안구 장안문 밖에 형성된 상가들은 항상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젊은이나 중·장년층 할 것 없이 저녁나절 모임을 갖거나 삼삼오오 만나 한잔할 때는 으레 이곳에 약속 장소를 잡았다. 당시 장안문 일대는 수원상권의 중심지였다. 그러다가 상권이 다른 지역으로 옮겨 가면서 이 지역은 사양길로 접어들고 시민들의 관심 밖으로 멀어졌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거북시장이라고 불리는 상가의 상인들이 상권의 부활을 외치며 일어섰다. 상인회를 구성하고 각종 축제를 열면서 손님 끌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거북시장 일대의 원래 지명은 ‘새술막거리’였다. 약 220여년전 정조대왕의 명에 의해 화성축성공사가 벌어질 때 건축현장의 인부들과 감독관들을 위해 생긴 주막거리였던 것이다. 화성축성 책임자가 모자라는 화성 축성비용에 보태기 위해 예쁜 주모들을 채용해 인부들의 노임을 노렸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온다. 물론 ‘전설’이기는 하지만 새술막거리는 그처럼 흥청거렸다. 여기에 인근에 영화역이 있고 장용외영 훈련장도 있었으니 주막은 물론 음식점과 시장도 들어섰던 것이다. 이곳에서 지난 23일 ‘새술막거리 술축제’가 열렸다. (사)거북시장 상인회(회장 차한규)가
어릴 적 경안천은 참 맑았다. 경안천 냇가에서 자란 나는 그 곳이 주요 놀이터였다. 방학이나 휴일은 늘 냇가에 가서 살았다. 여름에는 멱을 감고 겨울에는 썰매를 탔다. 봄볕이 흙 속으로 녹아 들 무렵이면 하루 종일 강변을 돌아다녔다. 모래사장과 자갈밭 사이에 물떼새의 알이 놓여 있어 새도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성급한 우리들은 물고기를 잡고 다슬기와 말조개를 주웠다. 물 밑의 돌을 들추면 징거미새우, 미꾸라지, 모래무지 등 ‘물반 고기반’이었다. 맨손으로 움켜 잡았다. 장마철 홍수가 나고 사나흘 지나면 사납게 소용돌이 치며 흘러내리던 냇물의 흙탕물기가 가시기 시작했다. 해가 뒷산에서 두 뼘 정도 올라오면 우리들은 개울가에 모여 강물을 헤엄쳐 건넜다. 센 물살 때문에 물도 몇 모금씩 들이키면서 위험하기 짝이 없는 강 건너기를 몇 번 하고 나면 하루해가 저물었다. 강 건너 넓은 들에는 이른 봄부터 기름종이를 고깔처럼 씌워 가꾼 수박 참외가 끝없이 줄지어 익어 갔다. 겨울이 되면 손을 호호 불면서도 냇물이 얼었다 싶으면 재빨리 썰매를 메고 나왔다. 날카로운 날을 박아 넣고 선 자세로 타는 외발썰매는 대단한 속도를 자랑했다. 한참 달리다가 목적지에 다 왔을 땐…
이순의 나이에도 피붙이 가족 빼놓고, 좋은 것 하나 고르라면 서슴없이 정겨운 친구를 고르겠다. 코흘리개 시절부터 함께 뒹굴며 초등학교 시절을 보낸 어릴 적 친구도 있고, 사회 초년병 시절 만난 친구, 나이가 들어가면서 정을 주고받는 친구가 있다. 나는 초등학교를 마친 뒤 고향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따라서 꼬맹이 친구들과는 우정을 쌓을 수 없었고 스물이 갓 넘어 우연히 만난 필연의 친구들이 꽤 많다. 60년대 후반 연기학원을 다녔다. 영화배우가 아닌 연극연출이나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서다. 이 때 故 하길종 감독의 처녀작 ‘화분’이라는 영화에 출연했고, 70년 초에는 당시 김동훈, 오현경, 김순철, 이낙훈, 이순재, 최불암 등 잘 알려진 연기파 배우들이 있는 실험극장이라는 극단에 들어가 기초를 다졌다. 그 후 외국인이 운영하는 디자인 회사에 입사하면서 연출의 꿈은 접었지만 그 꿈은 늘 마음속 깊이 자리잡고 있다. 어느 날 잘 가던 단골다방에서 모 예술학교 출신들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등단한 시나리오 작가와 연극배우 등을 만나 그들과 의기투합해 우정을 키워 나갔다. 그중 시나리오를 쓰던 친구는 당대 최고의 거장이라 불리던 고 유현목 감독이 제작하고, 얄개
전직(前職)과 현직(現職)이란 차이는 하늘과 땅 만큼 크다. 나도 현직에 있을 때 그럴 것이라고는 생각했었지만 ‘그래도?’하는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이 별로 틀리지 않다는 사실을 체험하고 공감한다. 물론 현직으로서 예우(?)를 받던 그러한 형식적인 겉치레를 이야기 하는 것이 결단코 아니다. 아무리 역사는 승자들의 기록이란 말이 있지만 선출직이란 떨어진 순간부터 시정에 참여할 방법과 기회가 철저하게 봉쇄된다. 물론 낙선자 본인 스스로도 관여할 생각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지만 책임을 느끼며 들어주고 실행해보려는 공직자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새로 선출된 단체장이나 의원들도 전(前) 의원이나 단체장의 의견을 들어보려 하지 않는다. 혹시 있다 하더라도 의례적이고 형식적이다. 현직을 다년간 역임했고, 지역 현안을 제일 잘 알고 있는 경험자의 조언을 듣기위한 진정성 있는 자리가 만들어졌다는 소리를 들어 본적이 없다. 이런 현상은 소속한 당이 바뀌어서 갑자기 생긴 일이 아니다. 같은 당이라도 똑같았고, 훨씬 그 이전부터 물려 내려온 현명하지 못한 관습이요, 살아남은 자들의 오만이요, 역사 지우기로서 마땅히 바뀌어져야 할 것이다. 물론 새로 선출된 분들이 새로운
‘변화를 만드는 날(Make a difference day)’. 1992년 2월 29일 미국 유에스에이 위크엔드가 일일 자원봉사 경연대회를 처음 개최했을 때 신문은 그 날을 이렇게 명명했다. 바로 시민들의 자원봉사를 새로운 변화 창출의 활동으로 본 것이다. 오늘날의 선진국가는 이렇게 사회변화의 원동력을 시민들의 자원봉사활동에서 찾고 있다. 국가에 대한 무조건적인 의지에서 벗어나 시민 스스로가 사회를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 매년 10월 1일 공동모금켐페인이 시작되면 일본 각지에서 20만 명의 민생위원들을 비롯, 수십만 명이 거리에 나선다. 모두가 시민 자원봉사자들인 이들은 1주일간 불우한 이웃을 돕기 위해 ‘사랑의 깃털’을 팔면서 가두 자원봉사를 벌인다. 일본 왕세자비도 이날만은 시민들과 함께 모금행사에 참가해 자원봉사를 한다. 홍콩에서는 불우이웃돕기만이 아닌 지역사회 자원봉사 활동을 권유해 해마다 ‘옷 벗는 날’을 정한다. 이날엔 모든 홍콩 시민들이 외출복을 벗고, 구두를 벗고, 자원봉사에 나서보자는 것이다. 볼런티어(volunteer)라는 말은 라틴어로 ‘내가 시작하겠다’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vol(volo)은 이처럼 자발적인 의지를 나타
지하철 계단을 오르며 생각했어요.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 이름을 불리지 못했기에 무엇도 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요. 그래서 계단 하고 불러주었지요. 그랬더니 오른쪽 끝에서 날개 하나가 삐죽이 솟는 거예요. 내가 너무 작게 불렀나요? 조금 더 크게 불러줄 걸 그랬나요? 어제는 얼음이 든 쥬스를 마시는데 첫눈이 오고 앵두들이 빨갛게 익었어요. 첫눈이 녹고 앵두들이 떨어지고 그녀가 울었어요. 내가 첫눈 하고 부르자 첫눈에서는 하얀 양파꽃이 피어났는데요. 조금 더 크게 불러줄 걸 그랬나요? 언제나 배가 고파서 굳게 닫힌 문들을 뜯어먹고 싶었어요. 후식으로 반짝이는 문고리도 먹어치우고 싶었지요. 그녀의 네모진 방에 직각들이 부풀어 오르면 시계 초침은 왜 그리 초조해 하던지요. 조금 더 크게 불러줄 걸 그랬나요? 그랬다면 내 관자놀이에서 사과들이 둥글게 커졌을텐데요. 시인소개: 1970년 대구 출생. 2009년 시전문계간지 ‘애지’로 등단 후 작품발표 시작. 시집 공저 ‘버거씨의 금연캠페인’ ‘내게로 망명하라’ ‘떠도는 구두’ ‘편운아래 서다’ ‘가을
나는 평생을 고향을 지키며 농사꾼으로 살아왔다. 낙후된 고향의 현실을 바라보며 이래서는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여러 봉사활동에 참여했다. 그러나 개인봉사만으로는 지역에 변화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한계가 있어 지방의원이 돼 제대로 해보고자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 출마, 제6대 양주시의회 의원으로 당선됐다. 1년 가까이 지난 오늘 그저 평범했던 한 가정의 가장이자 농업인이 이제는 20만 양주시민을 대표하는 한 사람으로 봉사의 정신을 실천한다는 것이 그저 쉽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주민을 섬기는 자세로 주민들이 바라는 의원이 되고,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먼저 생각하는 의정활동을 하려 주변에서 많은 조언과 당부 말씀을 귀담아 들었다. 처음 등원하는 날 의회에서 선서했던 그 초심을 잃지 않으려 항상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의정활동을 하고 있다. 의원으로서의 지난 1년 여 가까운 시간은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했다. 새 신발을 신었을 때의 느낌이랄까, 발에 맞지 않아 어색하고 약간은 힘든 것처럼…. 그러나 정신없이 뛰고 다니는 동안 의정과 시정의 흐름을 알게 돼 이제는 조금은 익숙해 졌다. 의원이 아닐 땐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무관심으로 스쳐 지나갔던 일상의 것들
이명박 대통령이 ‘제31회 장애인의 날’인 20일 찾아간 서울 금천의 한 장애인 고용 우수기업 아름다운사람㈜은 지난 1998년 문을 연 신사복 제조업체로 전체 근로자 183명 중 여성장애인 33명을 포함해 44%(80명)가 장애인이라고 한다. 이가운데 청각·언어 장애인이 46명, 지적 장애인이 12명, 지체 장애 8명, 간질 등 기타장애인이 14명이다. 장애인의 날에 이 회사가 주목받고 있다. 탄탄한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는 장애인들의 어려움과 특성을 이해하려는 이 회사 김창환 대표(54)의 남다른 장애인에 대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넉넉지 않은 회사 살림에도 정부의 지원을 받아 높낮이 조절용 작업대, 저층용 엘리베이터 등 다양한 장애인 편의시설들을 설치했다. 신사복 제조업체인 이회사는 연 매출이 70억원에 달하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국내 신사복 제조업체로는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2007년 매출 72억원을 기록한 이후 4년간 70억원대를 유지해오고 있다. 올해는 8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납품처도 (주)LG패션, 세계물산, SK네트웍스, (주)크레동 등 국내외 고급 신사복 메이커들이 고객이다. 이 대통령이 ‘특별한 회사’를 찾아 사업주와
자장면의 재료인 춘장은 중국에서 왔지만 이젠 완전히 한국화 되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정착됐다. 자장면에 얽힌 이야기들도 참 많다. 그중에 가슴에 와 닿는 노래가 있다. 한 남성그룹이 부른 노래 가사 중에 ‘어머니는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라는 구절이다. 돈이 없어 자식에게만 자장면을 시켜준 어머니의 마음을 생각하면 울컥 목이 메어 온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우리나라 성인들은 자장면에 각별한 추억이 있다. 그래선지 수원시에는 유난히 노인들에게 무료로 자장면을 대접하는 봉사단체나 업소가 많다. 지난 13일부터 14일까지 이틀 동안 수원시 권선구 평동에서는 노인 1200여명을 초청해 자장면데이 행사를 개최했다. 오목천동 용강중화요리과 고색동 고색반점이 음식을 만들고 평동새마을부녀회 등 지역 단체회원들이 봉사를 펼친 이 행사는 지난 2004년부터 실시되고 있다. 연무동에서도 7년째 자장면 봉사를 하고 있는 봉사단체가 있다. 수원효사랑봉사대는 회원들에게 월회비 5천원을 받아 매달 노인들에게 자장면을 제공한다. 지난 12일에도 200여명의 지역노인들에게 현장에서 직접 만든 자장면을 대접했다. 수원효사랑봉사대는 강원도 수재민, 태안기름유출현장 등에서도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