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인이다. 그러나 직업은 공인중개사다. 시인과 부동산, 너무 안 어울리는 함수관계라고 가끔 친구가 놀리지만 늘 자유롭고 사람만나 즐거운 내 직업에 대해 항상 자부심을 갖는다. 이웃집 대학생 딸이 워킹비자로 호주유학을 다녀오더니 한국식당에서 된장찌개 먹으려면 한 시간 이상 줄서서 기다려야 되는데 엄마 우리 호주가서 식당이나 하자고 해서 혼내주었다는 말을 듣고 이런 진취적인 생각을 가진 딸를 우리 며느리로 달라고 해서 한바탕 웃었다. 원래 호주 땅은 영국 탐험가가 발견해 영국 죄수 10만명을 보내 세운 나라다. 처음 영국인이 들어갔을 때 원주민인 아보리진은 너무 순해서 산으로 사막으로 도망가서 살았는데 그나마 백인들이 옮긴 감기바이러스로 반이 죽었다. 하지만 그보다 10년 뒤인 1769년 영국의 중산층들을 보내 세운 뉴질랜드는 도시계획 시설도 잘 돼 있고 얼마전 지진이 난 크라이스트처치市는 마치 런던에 온 것이 아닐까 착각할 정도로 흡사했다. 그러나 원주민인 마오리족은 용맹해서 백인들과 끝까지 싸워 지금도 수증기 기둥이 솟구치고 있는 온천지구며 반딧불이동굴 등 유명 관광지구의 입장료 수입뿐만 아니라 금융분야까지 경제적으로 널리 포진돼 있다. 사실 마그마가…
커피숍이 아니고 다방이 사교장소(社交場所) 중심역할 하던 시절, 당연히 전화가 귀했다. “000교수님 계세요? 전화 받으세요” 다방 모든 손님들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서 교수(敎授)되시는 분, 뚜벅 뚜벅 자리에 일어나 전화 받으러 갈 때 되게 폼 났다. 구겨진 바바리, 머리가 헝클어져 있어도 역시 대학교수답다. 약간 빈(貧)티가 나야 대학교수 신분에 어울려 보였다. 그 시절에는 세끼밥, 따뜻한 잠자리가 보편적 꿈이었다. 돈과는 거리가 먼 초연한 선비 정신이 더욱 대접 받았다. 지금은 상공농사(商工農士)이지만 그땐 분명 사농공상(士農工商)이었다. 내왕이 잦았던 아파트 앞 뒷동(棟)의 집안 동생이 있었는데 근래 얼굴 보기가 힘들었다. 집안 형편 때문에 교육대학을 스스로 선택해서 초등학교 선생님 생활을 하다 대학에 편입해 영문학 박사(博士)를 얻어 대학에서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성격도 원만하고 집안 두루 자상해 칭찬이 자자하다. 오랜만에 만나 “교수가 월부(月賦)장수 하는 것도 아닌데 뭘 그리 바쁘냐”고 물었더니 푸석한 얼굴로 신세타령 하는 것이었다. “학생 모집 때문에 고등학교 선생님 만나서 섭외해야지, 졸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기부양을 위해 시중에 뿌려진 막대한 자금이 오늘에 와서 서민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하루하루 오르는 물가에 서민들의 시름은 더해가고 허리띠를 졸라매도 저축은 커녕 빚만 늘어 가고 있다. 이 와중에도 백화점의 명품코너는 문전성시라니…. 지난 주 모 지역아동센터에 학부모 간담회가 있었다. 15명 남짓의 부모들이 모였는데 대부분이 엄마들이었으나 그중 아빠와 할머니가 일부 있었다. 부모들의 얼굴에는 삶의 힘겨움이 잔뜩 묻어 있었으나 그래도 자식들의 일이라 직장이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달려온 모습이었다. 지역아동센터는 취약계층 아이들을 방과 후에 돌봐주는 곳으로 조손 가정, 한부모 가정, 차상위, 부모의 여건으로 사회적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한 가정과 같은 곳이다. 이 곳에서 만난 한 할머니는 불편한 다리로 손주들을 키우고 사는데 모이기만 하면 지역아동센터 자랑을 늘어 놓는다. “아동센터가 있어서 우리 손주들 잘 클 수 있게 해서 너무 고맙지…. 큰 놈은 중학교 때 급식비 지원 받는다는 것을 반 친구들이 알았다고 학교 그만두고 피자배달하면서 검정고시 준비하긴 하지만…. 크게 엇나가지 않고…
KBS 2TV의 천하무적 야구단은 일반인들도 프로야구 선수에는 크게 못미치지만 충분히 야구에 빠져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계기가 됐다. 수많은 아마추어 야구인들은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잔디가 깔린 야구장에서 배트 한번 휘둘러 보는게 꿈이었다. 스코어는 별문제가 아니었다. 이에 영향을 받은 탓인지 야구 클럽과 동호인이 부쩍 늘었다. 천하무적 야구단은 사회인 야구장 건설을 내걸었었다. 사회인 야구인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국내 전체 사회인 야구팀은 공식적으로만 총 6천여 개에 가깝다고 한다. 비등록팀까지 합치면 수도권에만 7,000여개가 넘는 사회인 야구팀이 주말마다 구슬땀을 흘려가며 열심히 야구를 즐기고 있다. 그러나 환경은 그 열정에 비해서 열악하기 그지없다. 야구는 골문 두 개만 있으면 해결되는 축구와는 달리 그물과 펜스가 설치되어 있어야 한다. 수도권 지역에 이러한 시설을 갖춘 사회인 야구장은 손에 꼽을 정도다. 300여개 팀에 5,000여명이 활동중인 수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수원지역에 좋은 소식이 들린다. 3일 수원시 장안구 일림배수지 야구장에서 열린 국민생활체육 수원시야구연합회 회장 취임식에서 장유순 연합회장은 취임사를 하던 도중 본부석에 앉아…
정애정 햇살 한 줌 주세요 새순도 몇 잎 넣어주세요 바람 잔잔한 오후 한 큰 술에 산목련 향은 두 방울만 새들의 합창을 실은 아기병아리 걸음은 열 걸음이 좋겠어요 수줍은 아랫마을 순이 생각을 듬뿍 넣을래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마음을 고명으로 얹어주세요 시인소개: 故 박남수 시인, 1918년 5월 3일 평안남도 평양 출생, 1939년 시 ‘마을’로 데뷔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회 위원장, 한양대학교 강사 한국시인협회 창립회원 역임 공초문학상, 아세아자유문학상 수상
언제 우레 소리 그쳤던가. 문득 내다보면 4월이 거기 있어라. 우르르 우르르 빈 가슴 울리던 격정은 자고 언제 먹구름 개었던가. 문득 내다보면 푸르게 빛나는 강물. 4월은 거기 있어라. 젊은 날은 또 얼마나 괴로웠던가. 열병의 뜨거운 입술이 꽃잎으로 벙그는 4월. 눈뜨면 문득 너는 한 송이 목련인 것을. 누가 이별을 서럽다고 했던가. 우르르 우르르 빈 가슴 울리던 격정은 자고 돌아보면 문득 사방은 눈부시게 푸르던 강물. 시인소개 ; 1942년 전남 영광 출생. 1968년 현대문학 ‘잠 깨는 추상’ 등단. 시집 <반란하는 빛>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 <무명 연시> <꽃들은 별을 우러르며 산다> 다수.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수상. 서울대교수 역임.
4.27 재보궐 선거일이 불과 한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대통령 선거당시 공약으로 내걸었던 동남권 신공항 건설 약속을 이명박 대통령이 스스로 거둬들였다. 이 대통령은 1일 “국민에 불편과 부담을 주고 다음 세대까지 부담을 주는 이런 사업을 책임 있는 대통령으로서는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예상대로 나라 살림을 책임진 대통령으로서 욕을 먹더라도 다음 세대가 짊어지게 될 부담 등을 감안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내렸다고 국민의 이해를 구했다. 대선 공약을 어긴 데 대해 사실상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이다. 정부의 신공항 백지화 발표 후 이틀 만에 이 대통령이 정면 돌파에 나섰지만 세종시 수정안 논란에 이어 대선공약을 다시 파기한 데 대한 후폭풍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4.27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내에서는 “선거 망쳤다”는 푸념섞인 말도 들린다. 백지화 후 박근혜 전 대표를 포함한 영남권 의원들이나 야당의 주장을 들어보면 신공항은 내년 대선 정국에서 공약으로 다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대형 국책사업이 정치논리에 의해 좌우되는 폐해가 계속될 우려를 남긴 것이다. 이처럼 신공항 문제는 한국 정치의 고질병을 상징하는…
고요히 흐르는 강줄기를 바라보던 할아버지에게 강물이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강물에게 물었지, 어떻게 이리도 먼 길을 왔느냐, 그리고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느냐고.” “그랬더니 강물이 내게 이런 말을 하더구나.” “옛날 나도 작은 웅덩이를 가득 채운 적이 있었어요. 만약 제가 작은 것을 채우는 것에만 급급했다면 그 웅덩이로 만족했을 거예요. 제 친구들은 대부분 지금도 작은 웅덩이에 만족하며 살고 있죠. 미처 웅덩이도 못 채운 친구들은 저를 보면서 한껏 치켜세우기도 했죠. 그래서 저도 한때는 제가 최고인 줄 알고 우쭐했어요.” “그래서 나는 ‘그런데 어떻게 그 작은 웅덩이를 벗어나서 먼 곳까지 여행하게 되었지?’하고 물었더니 강물이 대답하기를….” “저는 바다를 보았거든요. 다른 친구들은 미처 보지 못했지만요. 깊고 넓은 바다에 대한 꿈을 꾸자 더 이상 웅덩이에 머물러 있을 수 없었죠.” “그래도 편안한 웅덩이를 벗어나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 작다고는 하지만 웅덩이도 둑이 있으니 그걸 넘어야 하는 어려움도 있고 말이야 하고 물었더니….”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더 낮은 곳으로 몸을 낮추기만 하면 되거든요.”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섭리를…
‘서추(西酋)’라는 말이 있다. 언론인 전택원은 지난해 말 출간한 철학서 ‘마음의 이슬 하나’에서 이 말을 소개하며 ‘서양추장’으로 풀이했다. 동학 2대 교주인 해월(海月) 최시형(1827~98)의 시에 나오는 신조어다. “해월은 ‘서추’란 말을 썼습니다. ‘인(仁)의 방패를 들고 예(禮)의 검을 들어 ’서추‘를 쳐내면 이런 장부가 없다’면서…. ‘서추’, 즉 ‘서양추장’이란 막상 서양엔 없습니다. ‘서추’는 서구화된 우리 자화상입니다.” 전택원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동학’(지금의 천도교) 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수운(水雲) 최제우(崔濟愚,1824~1864)가 기독교와 유불선(儒佛仙)에 담긴 좋은 점만 가려내 ‘시천주(侍天主)’사상과 ‘인내천(人乃天)’으로 발효시킨 우리나라 종교라 알고 있다. 그러나 그는 수운이 ‘사람이 곧 하늘’이라며 동학을 만든 씨앗은 ‘도선비결(道詵秘訣)’에 있다고 못 박는다. ‘동학’은 신라시대 도선국사가 한반도 앞날을 글자 속에 꼼꼼하게 숨겨놓은 ‘도선비결’에 그 뿌리가 닿고 있으며, 수운이 이 세상에 나오자 천 년을 넘게 가만히 웅크리고 있던 그 뿌리가 마침내 싹을 틔워 ‘동학’이란 꽃을 피웠다는 것이다. 따라서 ‘도선비결’은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