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기간만 되면 동네에 있는 공공도서관은 발 디딜틈 조차 없이 학생들로 붐빈다. 자리를 차지 하지 못한 학생들은 아쉬움을 남긴 채 발길을 돌려야 한다. 촌음을 아껴야 할 시험공부 시간이 공중으로 분해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도서관 열기는 도서관 문을 열기 수시간 전부터 도서관 앞에서 장사진을 치며 시작된다. 순서에 의해 그것도 주어진 좌석 수 안에 들어야 한다. 이는 도서관이 부족한데서 오는 불편함이다. 도서관 하면 우선 책이 떠오른다. 평생 보지도 듣지도 못한 수많은 책들이 진열되어 있다. 글자 그대로 도서관은 도서.회화 및 기타 자료를 수집.정리.보관하여 이용자의 요구에 따라 신속하고 효과적이며 창조적으로 할용할 수 있도록 봉사하는 기관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정보가 사회를 지배하는 요즘에는 책에서 찾을 수 없는 수많은 정보들을 접할 수 있는 평생학급관으로의 확대가 보편적인 추세다. 그곳에 가면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발행되는 단행본을 별다른 투자 없이 모두 읽을 수 있다는 것도 강점이다. 그렇게 도서관은 발전을 거듭해 왔다. 그러나 문제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우리주변에 도서관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주민들의 문화적, 정신적…
일 년에 두 번씩 설레이는 마음으로 찾아가는 곳이 있다. 몇 해 전부터 동창들이 모여 함께 가는 K보육원이다. 보육원이란 고아원을 고친 이름으로 부모가 사망하거나 자녀유기, 가출, 미아의 발생 등으로 고아가 된 아이들을 데려다 돌보는 기관이다. 주로 0세에서 18세사이의 아이들이 입소 대상이 되며, 그 후 성인이 된 후에는 정부에서 지급하는 정착금을 지원받아 독립된 생활을 하게 된다. K보육원은 2세에서 18세까지 고아 75명, 18세에서 23세까지의 복지시설 출신 대학생 등 100명 가량의 아동ㆍ청소년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우리는 각자의 월급에서 분담한 돈으로 아이들에게 85개의 봉투를 만들어 이름을 쓰고 그 원생을 생각하며 정성스럽게 미래의 기원문도 넣었다. 은행에서 빳빳한 지폐로 교환하여 1000원부터 10000원으로 배분하여 동봉했다. 유치원생부터 대학생까지 나이별로 줄지어 선 원생들과 사랑과 기도하는 마음으로 같이 세배하고 이름을 부르며 천원에서 만원이 담긴 봉투를 건넨다. 원생들의 표정은 금방 싱글벙글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연말에는 연극공연도 있고 산타복장을 하고 찾아오는 분들이 더러 있지만 설날이나 연초엔 사람들이 다들 자기 가족 찾아가느라
“밥 먹었느냐”, “진지 드셨습니까”라는 인사말은 지금도 쓰이고 있다. 이 인사말은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가난했기 때문에 생겼다는 설이 있으나, 실제로는 의·식·주 가운데 食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생겼다는 설에 무게가 실려 있다. 옛날 한·중·일 3국 가운데 중국은 의(衣), 일본은 주(住)를 중시한데 반해 우리는 음식에 대한 경건한 관념이 강했던 탓에 식사 중에는 말을 하지 않았다. 몇몇 외국인들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우리 민족은 쌀을 주식으로 했고, 한끼에 먹는 쌀은 장정인 경우 7홉(현재의 2.1홉), 밥으로는 세 공기를 먹었으나 평균으로 치면 5홉(현재 1.5홉), 두 공기 정도를 먹었다. 이는 2홉을 먹는 일본인에 비하면 배 이상 많은 대식가였다. 대신 보통 하루 두끼만 먹었는데 우리는 아침과 저녁, 서양과 중국인은 점심과 저녁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점심은 말 그대로 뱃속에 점을 찍는 정도로 간단한 식사로 대신 했는데 이덕무의 ‘청장관전서’는 “점심은 낮밥으로 소식(小食)을 의미하며 국왕의 ‘낮것&rsquo
입춘을 지나 날씨가 따뜻해짐에 따라 나들이 차량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그에 따른 주말 차량의 운행이 많아지며, 교통 사고도 증가하고 있다. 이에 대비하여 경찰의 지속적인 단속과 계도로 차량의 운전자와 동승자의 안전띠 착용이 생활화 되어 가는 추세이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의 안전은 예외인 것 같다. 최근 몇 년 간 어린이 교통사고는 계속 감소하는 추세이나, 차량에 탑승한 어린이 사고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그 요인 중 하나는 차량 내 어린이 카시트 장착율이 매우 저조하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는 어른에 비해 머리부분이 무겁고 체격이 작아 교통사고가 발생하면 아무리 어른이 아이를 꼭 안고 있다 하더라도 아이를 놓치게 되고, 앞좌석에 앉아 있었다면 순식간에 아이는 자동차 유리창을 깨고 공중으로 튕겨져 나갈 수 있고 에어백이 장착되어 있다면 금새 질식사 할 수 있다. 간혹 “아이가 타고 있어요”라는 문구가 차량의 유리에 부착되어 있는 차량을 볼수 있다. 물론 다른 차량에 주의를 주며, 양보를 유도하는등 안전운전에 효과적일 수는 있으나, 내 아이들의 안전을 다른 운전자에게 의지할 순 없을 것이다. 도로교통법에 의하면, 차량 내에 6세미만의 유아를 태울 경우에는 보호
많은 사람들로부터 아예 뭇매를 맞을 각오를 하고 올해 자녀 2명이 대학에 진학하게 되는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 사교육에 대해서 정직하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먼저 다른 학부모들처럼 자녀가 공부를 썩 잘했으면 당당하게 내 자녀는 학원도 안보내고 과외도 안 시켰는데도 서울 소재 대학에 들어갔다라고 자랑을 하련마는 자녀의 재주가 미천하여 입시 전문학원을 보낼 수밖에 없는 학부모의 심정을 십분 헤아렸으면 한다. 집의 딸아이는 일찍부터 문예 창작에 뜻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실기시험이 무척 중요한데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이 아이의 진학지도를 해 주지 않았다. 아니 해 줄 수 없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솔직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고액의 학원비를 들여서 문예실기 입시전문학원에 보낸 결과 아이가 원하는 학과에 진학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비해 아들은 사진작가의 꿈을 일찍부터 키워왔다. 부모의 자녀 교육은 자녀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삶을 영위해 나가도록 돕는 행위나 마찬가지이다. 아들에게도 마땅히 사진실기 입시전문학원에 보내야 하는데 사교육비를 충당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없어서 그냥 수능 준비만 시키고 말았다. 결국 그는 자신이…
CCTV 설치를 둘러싼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전국 각 지자체와 경찰은 강호순 연쇄살인사건과 같은 흉악범죄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CCTV 확대·설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당장 경찰은 올해 CCTV를 6300여대 추가 설치할 계획이고, 경기도를 중심으로 각 지자체도 앞다투어 설치계획을 내놓고 있다. 범죄예방을 위한 CCTV 설치는 최근 전국적인 추세지만 한편으로 CCTV 설치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촬영 대상의 동의를 구하지 않는 CCTV 촬영은 인권침해라며 맞서고 있다. 반면 김문수 도지사는 최근 공식석상에서 “영국에는 CCTV가 촘촘히 설치되어 있어 범죄자들이 숨을 곳이 없다”며 “CCTV를 설치하는데 인권을 논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어떻게 더 크게 들릴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90년대 초부터 국가 전체에 CCTV를 촘촘히 설치한 영국 등 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우리나라가 CCTV를 설치한 역사는 초기단계다. 그래서 우리는 CCTV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영국 등 유럽의 지침을 그대로 옮겨 왔다. 물론 CCTV설치에 대한 관련법으로 공공기관의 개인정보보호법이 있지만 CCTV를 설치할 때 사전에 주
전국 최대를 자랑하던 경기교육의 자존심이 완전히 무너졌다. 초·중고생들의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에 나타난 경기교육의 현주소다. 경기도 교육청이 표방해온 수월성 교육과 경쟁력 강화 교육이 무색하게 된 것이다. 경기교육청은 이 같은 참담한 결과에 대해 당혹해 하면서도 해명에 나섰다. 과밀학급과 신도시개발에 따른 교육환경의 불안정을 꼽았다. 충분한 개연성을 지난 해명이다. 또 한편으로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해명은 기초학력 미달자 비율이 높게 나타난 이유는 될 수 있어도 보통학력 이상의 학생비율이 낮은데 대한 분석으로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그동안 경기교육정책은 우수학생에 대한 지원에만 너무 집중해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반성도 해볼 만하다. 몇몇 특별한 학생들만 너무 매달려 있다 보니 그로인한 상대적 박탈감이 수치로 나타난 것은 아닐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자 한다. 특별하게 우수한 학생들에 대한 지원 효과는 전체학생들에 대한 전체학력이 떨어진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경기도의 꼴찌학력과 함께 시·도교육청별 격차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결과였다. 특히 제주도의 선전이 눈에 띄었고 전북임실의 작은 초
걸산마을은 서울에서 30km 남짓 떨어진 곳에 있는 육지속의 섬마을로 지칭되는 경기도 최후의 오지마을로 경기도 한수이북지역인 동두천시에 있는 마을이 있다. 법정동인 걸산동은 자연마을명 걸뫼로 행정동인 보산동에서 관할한다. 걸산마을은 지형이 풍수지리로 보아 산수가 수려하고 소요산의 정기를 받아 인걸이 태어날 수 있는 인걸지형(人傑地形)이라한 데서 유래한 지명이다. 행정구역상 동쪽은 포천시 신북면과 접하고, 서쪽은 보산동, 남쪽은 광암동, 북쪽은 상봉암동과 경계를 이룬다. 걸산마을의 위치는 소요산 남쪽이며, 소요산에서 동남쪽으로는 왕방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이 막고 있고, 그 능선에서 분기된 능선이 남서쪽으로 막고있다. 따라서 서쪽만 막으면 고립무원인데, 여기는 6·25사변 이후부터 미군기지가 들어서 있다. 그야말로 육지속의 절해고도로 미군부대 주둔으로 사상 유례없는 육지속의 섬으로 불편을 감수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 미군 기지내에 민간인 마을이 섬처럼 존재하는 것이다. 이 지역에 거주하는 52세대 151명의 동두천 주민들은 마을 출입을 위해 미군부대 출입절차를 거쳐야 하는 불편을 수십 년간 겪으면서 살아야 했다. 이곳을 출입하기는 민통선안에 있
내일(20일)이면 선종(善終)한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는 영원한 유택에 드신다. 장지는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 오산리 천주교 성직자 묘역이다. 그는 1922년 이 땅에 태어나 그 시대를 살았던 모든 사람들이 겪어야했던 가난과 시련을 똑같이 체험했다. 일제에 의한 수모도, 동족상잔의 한국전쟁도 함께 겪었다. 전쟁이 뜸해진 1951년 사제 서품을 받고 1969년 47세의 최연소, 한국인 최초의 추기경에 서임되어 1998년 서울대교구장 직에서 은퇴할 때까지의 발자취와 은퇴 뒤 선종하기 전까지 그가 남긴 발자취는 너무 크고 뚜렸해서 종교 지도자의 차원을 넘어 민족 지도자로 추앙받아 왔다. 그는 나라가 위태롭고 국민이 부당한 권력으로부터 박해 당할 때 철권 세력이 두려워 비겁해질 수밖에 없었던 민중을 대신해서 독재를 비판하고 폭력은 또다른 폭력을 낳을 뿐이라며 민주화와 인권 운동에 앞장 섰다. 험난하고 치열했던 한국 민주화는 그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만큼 그는 민주주의와 보편적 인간애를 몸으로 실천했다. 그는 최고 종교 지도자로서 개인의 안락을 보장 받기보다는 가난한 자와 소외 당한 자, 절망에 빠져 스스로 인생의 낙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