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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룡문] 쌀밥

이창식 주필

“밥 먹었느냐”, “진지 드셨습니까”라는 인사말은 지금도 쓰이고 있다. 이 인사말은 우리 민족이 예로부터 가난했기 때문에 생겼다는 설이 있으나, 실제로는 의·식·주 가운데 食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생겼다는 설에 무게가 실려 있다. 옛날 한·중·일 3국 가운데 중국은 의(衣), 일본은 주(住)를 중시한데 반해 우리는 음식에 대한 경건한 관념이 강했던 탓에 식사 중에는 말을 하지 않았다.

 

몇몇 외국인들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우리 민족은 쌀을 주식으로 했고, 한끼에 먹는 쌀은 장정인 경우 7홉(현재의 2.1홉), 밥으로는 세 공기를 먹었으나 평균으로 치면 5홉(현재 1.5홉), 두 공기 정도를 먹었다. 이는 2홉을 먹는 일본인에 비하면 배 이상 많은 대식가였다. 대신 보통 하루 두끼만 먹었는데 우리는 아침과 저녁, 서양과 중국인은 점심과 저녁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점심은 말 그대로 뱃속에 점을 찍는 정도로 간단한 식사로 대신 했는데 이덕무의 ‘청장관전서’는 “점심은 낮밥으로 소식(小食)을 의미하며 국왕의 ‘낮것’도 떡, 다과, 국수 등 간식 정도에 그쳤다”고 적고 있다. 하루 세끼 먹는 부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부자들은 하루 3~4끼, 농번기의 농부들은 곁두리, 새참을 합해 네끼, 해가 긴 여름에는 다섯끼까지 먹었다.

 

우리가 주식으로 쌀밥을 먹은 데는 쌀이 다른 작물에 비해 수확량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밀의 경우 한 알을 뿌리면 5알을 수확하지만 쌀은 27알을 얻을 수 있었다(당시)고 한다. 다만 쌀 농사는 일손이 많이 드는 것이 흠이었다. 육식은 삼국 시대부터 즐겼으나 불교가 전래되면서 잠시 멈칫했다가 몽고요리법이 도입되면서 소, 돼지, 닭 등을 가리지 않고 먹었다.

 

특히 개고기는 목축을 한 서양과 달리 농경문화권의 우리는 개를 하찮은 존재로 여기고 자주 먹었는데 공자는 개고기를 제사상에 올렸다는 기록도 있다. 오늘날 쌀밥은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배가 부른 탓이다. 그러나 쌀밥을 푸대접하다가는 언젠가 경칠 날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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