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공천 비리 수사가 세간에 다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검찰의 판단에 의하면 무슨 연대와 무슨 신당이 비례대표를 공천하면서 차용증을 써주거나 당채를 발행해서 수십억 또는 수억을 받은 것이 공직선거법을 위반한 것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지난 2월 신설된 공직선거법 제47조 2(금품수수금지)의 1항에서는 정당 후보자 추천과 관련해 금품을 제공받거나 그 제공 의사표시를 금지하고 있고, 2항에서는 이와 관련해 지시, 권유, 요구, 알선 등을 금지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선거법이 이렇듯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변에선 아직까지도 이 같은 공천과 관련된 편법적 금품 수수 행위가 버젓이 빚어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같은 비리가 이번 처럼 밝혀진 경우 외에 더는 없었을까? 이 물음에 과연 우리 국민 그 얼마가 그렇다고 답을 해줄까는 심히 의문시 된다고 할 것이다. 돈이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직(職)을 매개로 금품을 수수하기에 아무 거리낌도 느끼지 못하는 일부 정치인들이 서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이 아니냐는 식으로 이 같은 추태를 부린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문제의 심각성은 비단 여기에 국한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을 테마로 한 베이징 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폐막식 식전행사는 개막식 식전행사 못지 않게 장엄했다. 가장 먼저 선보인 것은 북 연주였다. 쩡쩡 울리는 북소리는 관중을 압도했다. 북은 사람을 모이게 하고 하나로 뭉치게 하는 힘이 있다. 북은 크고 작은 일이 있음을 알리는 신호로 스였다. “승전고(勝戰鼓)를 울렸다.”거나 “깃발을 들고 북쳤다.”라는 말은 싸움에 이겼음을 알리거나, 적에게 항복했음을 알리는 뜻이다. 낙랑 공주는 자명고(自鳴鼓)를 찢어 고구려 왕자 호동의 승리를 도왔고, 조선 태종 때 신문고(申聞鼓)는 백성이 억울함을 왕에게 직소하는 항고(抗告)의 수단이었다. 절에는 법고(法鼓)가 있는데 법고는 중생의 번뇌를 물리치고 해탈을 기원하는 법열(法悅)의 의미가 있다. 절의 북은 홍고(弘鼓)와 소고(小鼓)로 나뉘는데 몸통 양쪽에 암소와 수소 가죽을 부착한다. 이는 음양의 조화를 위해서다. 옛 중국은 북을 시간과 의사를 전달하는 목적에 썼다. 그래서 장안을 비롯한 고을마다 북을 매단 고루(鼓樓)가 있었다. 일본에서는 사람을 모을 때 북을 쳤는데 북문화가 발달된 나라다. 우리나라에는 ‘조리돌림’이라는 것이 있었다. 죄인 등에 북을…
우리나라는 한때 교통사고 사망자수 1위라는 불명예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그 결과 교통사고 사망자수를 최단기에 반으로 줄이는 성과를 거뒀다. 교통경찰관의 단속과 더불어 무인단속카메라와 도로표지판, 도로구조 개선 등을 통해 해마다 교통사고와 그 사상자 수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그렇지만 최근 감소 추세가 급격히 둔화되고 교통단속과 더불어 다른 무언가가 필요시 되고 있다. 이제 교통문화 선진국가가 되기 위해, 그리고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교통경찰관의 단속과 더불어 운전자(또는 보행자)들의 협조의식이다. 여기서 말하는 협조의식은 단속되었을 때의 교통경찰관에 대한 협조가 아니라 교통경찰의 단속이 있기 전에 마땅히 운전자(또는 보행자)의 올바른 마음가짐과 교통법규 준수에 대한 협조의식이다. 대부분의 교통사고가 경찰관이 있는 곳에서 발생하기 보다는 경찰관이 없는 곳에서 발생한다. 이는 바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행해지는 법규위반이 있기 때문이다. 운전자(또는 보행자)들은 경찰이나 남들의 시선이 있는 곳 외에도 인적이나 차량이 없는 시골 도로 위에서도 법규를 준수할 수 있는 그러한 협조의식이 있어야 할 것
대학을 졸업하고 아파트 개발을 시행하는 회사에 입사해 근무한지 벌써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창조적인 일을 한다는 자부심과 회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프로젝트 실무를 담당하면서 많은 것을 체험하고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수원 모 지역의 프로젝트 실무를 담당하면서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을 겪었다. 시행사에서 토지를 매입하면서 토지건물주들이 임대차 기간이 만료된 세입자들을 정리·명도해 주는 조건으로 전부 계약을 체결했다. 이에 따라 토지건물주들이 세입자들에게 임대차 기간이 만료됐으니 건물을 비워줄 것을 요구했으나 일부 세입자들이 터무니없는 보상을 요구하며 나가지 않아 건물주들이 어쩔 수 없이 법적인 절차를 거쳐 강제퇴거에 나섰다. 그런데 본인이 근무하는 회사와는 전혀 무관한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회사측의 보상을 요구하며 철거 등의 현장 업무를 방해하고, 회사 임직원들에게 폭언과 욕설을 퍼부었다. 그것도 모자라 아무런 근거 없이 공공기관과 본인의 회사 앞에서 집회를 하는 등 업무를 방해하고 있다. 얼마전에는 철거민 7~8명이 회사에 강제로 밀고 들어와 사무실 집기를 집어 던지고, 여직원의 옷을 찢고, 임직원에게 온갖 욕설과 폭언을 퍼붓고, 취재하는…
8월 17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농촌지역을 포함한 전국 16개 시·도 3만가구를 무작위 표본 추출해 소득과 지출 등 사회계층을 파악한 ‘2004년도 국민생활실태조사’ 자료를 활용하여 한국 아동 빈곤율 수준과 아동빈곤에 대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국내 아동· 청소년 100명 중 9명이 개별가구의 경제적 능력이 기본적인 물질적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는 상태인 ‘절대 빈곤’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중위소득을 기준으로 50%에도 미치지 못하는 소득이나 소비 수준의 ‘상대 빈곤’ 상태인 아동· 청소년도 100명 중 15명이라고 한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그 내용을 살펴보면 2003년 기준으로 국내 18세 미만 아동· 청소년 1,142,464명 가운데 ‘절대 빈곤아동’이 1,016,421명으로 8.9% 수준이었다. 또한 ‘상대 빈곤아동’은 전체 가운데 170만 1649명으로 추정되어 해당 연령 전체 인구의 14.9%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더하
정부수립이냐 건국이냐 문제는 결코 용어선택 논란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항일운동을 포함한 근현대사에 대한 해석은 물론 국가 정체성과 직접적인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사를 쓴다는 일은 어떤 역사의 기술보다도 어렵다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한결같은 말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시대정신을 정의한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는 말과 같은 말일 터 이다. 1945년 8월 15일 대한민국의 광복절이요, 독립일이다. 그리고 건국절이다. ‘광복’이라는 단어 적 해석이라면 ‘빛이 되돌아왔다’ 쯤으로 풀이할 수 있겠지만 우리에게 광복은 그 의미가 사뭇 다른 것이다. 나라의 운명과 민족의 희망을 되찾은 날이라는 의미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1949년 10월 1일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다. 8월 15일을 광복절이자 건국절로 해 국경일로 지정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여론조사에 나타난 것처럼 건국절을 아는 국민은 10%에 불과했다고 한다. 87%에 달하는 국민들이 광복절로만 알고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에서 논의되고 있는 건국절 논란이 뜨거워지는 이 같은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이냐 하는데 대한 해석이 필요할 것 같다. 6·25전
2분기 전국 가구 중 적자가구의 비율은 28.1%로 전년 같은 기간(27.8%)에 비해 0.3%포인트 높아졌다. 전국 어디서나 네 집 건너 한 집이 적자라는 말이 되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원·달러 환율이 4년여 만에 처음으로 1080원대를 돌파했다는 우울한 소식도 들린다. 한 취업 포털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구직자 5명 중 3명은 입사지원 학력요건이 자신의 학력보다 낮은 곳에 지원한 적이 있다고 한다. 구직자 776명을 대상으로 지원학력에 대한 의식을 설문한 결과 60.2%가 입사지원 학력요건이 자신의 학력보다 낮은 곳에 입사를 지원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왜 이들이 하향지원했겠는가. 대답은 뻔하다. ‘일단 취업하는 것이 급해서’(66.6%) 라는 것이다. 따라서 하향지원을 한 구직자들 대다수는 취업이 됐을 경우 ‘일단 일을 하면서 더 좋은 일자리로 이직하겠다’(71.1%)고 응답했다. 청년실업이 얼마나 심각한지, 젊은이들의 취업의 절박성이 어떠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설문조사 결과이다. 또한 한국은행이 지방의 648개 업체 및 유관기관 등을 조사해 최근 발표한 ‘지방경제동향’ 자료에 따르면 지방 제조업의 ‘재고 누증’이 2분기에 심화됐고 생산 증
근대 미학자 고유섭 선생이 한국의 문화와 미에 대해 언급한 ‘구수한 큰 맛’은 다정다감한 이런 시골의 정감까지도 아울러 의미하는 표현일 것이다. 그런데 한국화에 대한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은 갈수록 덜해지는 것 같아서 아쉬운 마음이 든다. 한국화가 이선우는 우리의 정감을 구수하고 친숙하게 화폭에 담아내곤 한다. 대단히 섬세한 그의 그림에는 한국인의 미감이 두터운 감흥과 진지함으로 깊이 담겨져 있다. 주목할 만한 독특한 이미지와 감흥은 단지 손끝의 재주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다. 이선우는 충주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교육환경을 바꾸기 위해 중학시절부터는 서울 인사동으로 이사하였다. 예민한 사춘기 시절에 새로운 환경에서 문화적 격차를 소화하지 못했던 그는 친구를 사귀는 데엔 흥미를 갖지 못하였고, 아직 익숙하지 못한 서울의 곳곳을 돌아다니는 것이 즐거웠다. 여기저기 안 가본 데가 없을 정도로 다니며 어린 눈으로 바라다 본 삶의 현장은 생경하고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만큼 인상적이었다. 이러한 색다르고 소중한 경험들은 훗날 그림을 그리는 데 많은 영향을 주게 되었다. 이선우가 홍익대에 입학할 무렵엔 이중섭 신드롬이 대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