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역에서 인천 방향으로 가다보면 오른쪽으로 농촌진흥청 내 호수가 보인다. 이곳이 조선 정조대왕이 화성을 축성하면서 만든 인공호수인 서호다. 당시 농지에 물을 공급하는 저수지로 사용되었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물이 심하게 오염돼 시민들로부터 외면당해오다 현재는 서호를 중심으로 한 조깅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으나 오염된 물이 개선되지 않아 시민들의 안타까움을 사왔다. 아름다운 기생의 자태와 같은 여기산의 그림자가 수면에 잠겨 있는 서호는 수원의 눈썹으로 상징되며 중국 항주의 눈썹과 눈 보다도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일찍이 수원팔경중 6경인 ‘서호낙조’로 불렸다. 서호 제방을 따라가면 30여m 높이의 폭포로 물줄기가 흘러내리고 그 위에 아담한 향미정이 있으며 노송 사이로 석양이 드리우면 호수에 비친 낙조가 어느 화가도 따라 그릴 수 없는 천상의 황홀함을 발산한다. 서호는 40~50대 장년층에게는 추억의 호수로 기억된다. 초등학교 시절 수원에서 즐겨 찾는 소풍장소 몇군데 중 하나였고 세월을 낚는 강태공들이 선호하는 저수지의 하나였다. 그 후 도시개발과 산업화로 인해 20여년 전부터 물이 오염돼 물고기가 살지 못하는 상태까지 이르렀다. 파장동~평동 11.5
중국은 베이징 올림픽을 통해 그들의 경제대국으로서의 자신감과 꿈을 온 세상을 향해 펼쳐 보이고 있다. 이번 베이징올림픽의 개막식은 웅장함과 화려함으로 지구촌에 감동을 전달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중국은 이 개막식에서부터 ‘21세기의 영웅’으로 부활하는 중국의 모습을 재현, 중화주의의 위대한 부흥을 외쳤다. 올림픽을 통해서 문명의 중심국가임을 과시한 중국은 이제 더 이상 못살고 가난한 나라가 아니다. 자금과 인력을 무제한적으로 퍼부은 개막식은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을 슬로건으로 내놓았지만, 그것은 ‘강한성당(强漢盛唐)’, 곧 중국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한(漢)나라의 영광과 문화가 가장 화려하게 만개했던 당(唐)나라의 영화를 펼쳐 보임으로써 중국인이 염원하는 ‘베이징의 꿈’에 막중한 실감을 부여한 또 하나의 의미심장한 이벤트였다. 개혁개방 30년을 맞은 중국은 100년 만에 꿈을 이룬 올림픽 유치를 통해 한당(漢唐) 이래 1000여년 만에 다시 세계 속에 일어서는 강성대국 중국의 모습을 강렬한 전율과 함께 세계인에게 전달했다. “일어나라. 노예가 되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이여! 우리의 피와 살로 우리의 새로운 장성(長城)을 쌓자!” 개막식 문화공연에서 북소리와
2005년 오늘, 광복 60년을 맞아 8.15 민족대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에 온 북한 대표단이 국립 현충원을 찾아 참배했다. 북측 인사가 현충원을 참배한 것은 6.25 전쟁 이후 처음이었다.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와 안경호 조평통 서기국장 등 북한 당국과 민간 대표 32명은 현충문 앞에 내려 참배를 위한 첫 발을 내딘 뒤 현충탑 아래 머리를 숙였다. 현충원에 들어서 참배를 마칠 때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0분. 짧은 참배였지만 북한 당국이 6.25 전사자 위패와 무명용사의 유골이 봉안돼 있는 현충탑에 참배한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파격적인 일이었다. 김기남 북한대표 단장은 “현충원을 방문하게 해줘서 감사하다, 민족 화합을 위해 앞으로 일들을 많이 하자”며 현충원 방문 소감을 밝혔다. 한일협정 비준동의안이 야당과 국민들의 거센 반대를 무릅쓰고 조인된 지 54일 만인 1965년 오늘 국회를 통과했다. 한일협정 비준안은 이날 제52회 임시국회 12차 본회의에서 여당인 공화당 의원들만 참석한 가운데 출석위원 111명 가운데 찬성 110표, 기권 한 표로 통과됐다. 이 동의안은 한 달 전인 7월 14일 여당이 단독으로 국회에 상정한 것이다. ▲청나라 - 영국
얼마 전 지인을 방문하기 위해 홍콩에 다녀온 적이 있다. 방문목적도 있었지만 관광도 배제할 수 없는지라 홍콩시내를 둘러보던 중 홍콩의 상징인 2층 버스를 타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 뒤로 나도 서있었다. 잠시 후 버스가 위쪽에서 유턴을 하더니 사람들이 늘어선 줄 앞 정류장 팻말 쪽에 서야할 버스가 바로 내 앞에 서는 것이었다. 당시 줄도 굉장히 길고 날씨도 무더웠던지라 기다림과 더위에 지쳐있던 찰라에 바로 내 앞에 선 버스를 보고 나는 미소를 지으며 차에 올라서려는 순간 약속이나 한 듯이 맨 앞에 서있던 사람들이 위로 올라오더니 차례 차례 버스에 타기 시작했다. 그 누구하나 밀치거나 먼저 타려는 사람 없이 순서대로 사람들을 태우고 버스가 출발했다. 순간 나의 어리석은 행동과 아무 의식 없이 버스를 타려했던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홍콩은 항상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과 시민들로 북적거리고 좁은 땅에 늘어선 높은 건물들과 좁은 골목길을 누비는 자동차와 택시들 때문에 아주 복잡하고 무질서하다고 느꼈지만 이 일을 겪고 나니 그간 보아온 무질서한 도시가 아니라 질서가 아주 잘 지켜지고 의식수준이 높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우리 경찰에서는 올
베이징에서 들려오는 우리 선수들의 낭보에 온 국민이 열광하고, 주요 경기를 앞두고는 방송 채널에서 눈을 떼지도 못하고 있다. 이는 스릴과 감동 그리고 인간승리의 장엄함이 TV라는 매체를 통해서 더욱 실감 있게 마음속 깊이 전달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방송은 실시간적인 내용들이 시각과 청각을 자극하는 동영상으로 시청자들에게 전달된다는 점에서 그 파급력은 어느 언론 매체보다도 막중하다할 수 있다. 하지만 불과 엊그제 우리 앞에 펼쳐진 이 나라 방송들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무자비하게 주저앉는 소를 학대하는 동영상을 하루에도 수차례씩 방영함으로써 온 나라가 광우병 공포에 휩싸이도록 하지 않았던가. 좀 더 거슬러 올라가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됐을 때도 KBS와 MBC는 아예 드러내놓고 탄핵을 반대하는 편에 치우친 편파 방송을 함으로써 선량한 국민들을 호도하지 않았던가. 사실이 그러한데도 오늘의 KBS와 MBC 그리고 더 나아가 민주당과 좌파세력들은 작금의 방송개혁을 위한 일련의 조치들을 “방송장악 음모”라 폄훼하며 극렬 저항하고 있음은 참으로 대국민 기만극의 철면피적 행위에 다름이 없다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어느덧 건
‘경기도지사’의 전신은 ‘경기관찰사’였다. 관찰사제도는 조선 태조 2년(1393)에 실시됐다. 올해로서 715년째가 되고 조선 말기까지 612명이 거쳐갔다. 초대 경기관찰사는 장자충(張子忠)이었다. 관찰사는 조정에서 각 도에 파견하는 지방장관으로서 행정책임자이자 군사지휘권과 사법권도 겸직했다. 관찰사제도의 시초는 고려의 안찰사(按察使)제도였는데 태조가 관찰사로 바꾼 것이다. 관찰사는 감사(監司), 방백(方伯), 도백(道伯)이란 별칭이 있고, 경기관찰사는 기백(畿伯)이라고 불렀다. 관찰사의 기능은 크게 다섯가지였다. 첫째 인적자원 확보와 관리, 둘째 권농정책의 수행, 셋째 민생 안정, 넷째 인재 육성을 위한 흥학(興學), 다섯째 조세확보였다. 경기감영은 당초 수원에 개설되었다. 그후 광주와 서울 돈의문 밖에 둔 적도 있었다. 기백의 임기는 1년이었으나 반드시 지켜지지는 않았다. 하룻만에 경질된 기백이 있었는가하면 2년 넘게 재임한 관찰사도 있었다. 1910년 일제 강점 직전인 1908년 6월 11일 부임한 김사묵(金思默)을 마지막으로 1945년 8월 광복이 될 때까지 12명의 일본인 도지사가 도정을 담당했고, 광복 후 구자옥(具滋玉)을 시작으로 오늘날 김문수…
올해는 건국 60주년이고 내년은 수원시가 시로 승격한지 60주년이 되는 해다. 좀 창피한 얘기지만 인구 110만이 넘는 거대도시로 성장한 수원시에 제대로된 박물관이 없다. 걱정할 일은 아니다. 세계문화유산 화성의 모든 것을 보여줄 화성박물관이 화성안 종로에 건립중이며 내년 상반기에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 수원 영통구 이의동에 오는 10월 개관을 목표로 준비중인 수원역사박물관과 한국서예박물관 그리고 사운 이종학사료관이 위용을 갖춰가고 있다. 수원역사박물관은 수원의 모든 시대와 지역의 역사문화를 다루는 종합박물관의 성격을 갖고 있다. 앞으로 수원시의 박물관, 자료관 등을 총괄하는 중심센터의 기능을 담당하게 된다. 역사박물관에는 130여㎡ 규모의 팔달문 번화가 거리 모형이 실제의 80% 크기로 60년대 수원 중심 거리를 재현한다. 한국서예박물관은 서예를 주제로 한 특화된 전문 박물관으로 우리나라의 서예자료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각종 자료를 수집해 한국 서예의 중심 기능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사운 이종학 선생은 수원 출신 서지학자로 독도박물관 초대 관장을 지냈다. 이종학 사료관은 그의 유지를 받들기 위한 맥락에서 이뤄졌다. 이곳에는 이종학 선생이 기증한 일제
사체불근 오곡불분(四體不勤 五穀不分)이란 말이 있다.팔과 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고 다섯가지 곡식도 구별하지 못하는 어리석고 못난 사람이란 뜻이다. 중국 춘추시대 공자가 자신의 주장을 널리 알리고 관철시키기 위해 수제자인 안회(顔回)와 자로(子路) 등 여러 제자들을 대동하고 14년간 각국을 돌아다녔는데, 어느날 어떤 연유에서인지 자로가 일행과 떨어져 앞서간 공자 일행의 행방을 수소문하며 방향을 잃고 거리를 방황한 적이 있었다. 자로는 밭에서 김을 매고 있는 노인에게 “조금전 우리 선생님 일행이 이곳을 지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까?”하고 묻게 되는데, 한참을 생각하던 노인은 요란한 행렬이 조금전 이곳을 지나가긴 했지만 당신이 말하는 선생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자초지종을 들은 자로는 틀림없이 자신이 찾는 공자의 행차임을 알고 노인에게 말하기를 “그 분은 천하가 알아주는 공자 선생인데 어찌하여 그런 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느냐”하면서 무식한 촌노의 어리석음을 질타하게 된다. 그러자 무식한 줄만 알았던 그 노인이 ‘사체불근 오곡불분’이라는 의미 심장한 말을 하고는 아무일 없다는 듯이 자기의 일을 계
최근 발광다이오드(LED:Light Emitting Diode)는 조명, 가전, 차량, 선박 등 모든 산업분야에서 21세기 꿈의 광원으로 크게 주목받고 있다. 초 고유가 현상이 이어지고 기후변화협약의 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현실화되면서 에너지·자원의 효율적 이용과 절약이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발광다이오드는 타 산업과의 접목 및 획기적인 에너지 절감이 가능하고 친환경적이라는 장점까지 가지고 있어 일상생활 곳곳으로 급속히 보급되고 있다. 이는 농업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농업분야에서 발광다이오드가 주목을 받는 몇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첫째, 식물의 광합성 및 생장에 필요한 단색광이다. 둘째, 전력 소모량이 적다. 셋째, 수명 또한 반 영구적이다. 넷째, 다른 조명기구와 달리 수은이 들어있지 않아 친환경적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자연광을 대신해 빛의 파장을 선별적으로 조사할 수 있어 농업분야에 적용이 가능하다. 최근 일본에서는 발광다이오드 조사가 엽채류의 비타민C 증가에 유효하다는 연구보고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냉장고의 냉장실에도 발광다이오드 조사가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