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가 한창이다. 논농사의 특성상 벼 베기를 할 때는 농부들이 모여 같이 일을 하는 모습, 새참을 함께 먹는 모습도 볼 수 있어 좋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중장년의 젊은 농부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더욱 좋다. 이들은 대개 평소 다른 직업을 갖고 일하다가 농사일이 바쁠 때 연로하신 부모님을 대신해 긴급 투입되는 겸업농가의 구성원들이다. 평상시 농가를 방문하면 고령의 어르신들이 농사를 짓고 계신다. 통계를 보면 2021년 기준 70세 이상 농가 가구주가 전체 농가의 55.9%를 차지한다. 어르신께 자식들은 농사를 안 짓냐고 여쭤보면 다들 인근의 직장에 일을 나간다고 한다. 시급 높은 아르바이트 일을 하거나 매달 또박또박 월급 받을 수 있는, 농사일보다 수익성이 높은 일로 사람들이 가는 것은 당연지사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농가의 소득구조 및 소비성향 분석'(박미선, 2023.5)에 따르면 농가소득에서 농업소득의 비중(27.7%)은 농업외소득(35.6%)의 비중과 이전소득(각종 직불금, 코로나 지원금 등)의 비중(32%) 보다도 낮다. 농촌에 살면서 농산물을 팔아서 얻는 소득의 비중이 소득원 중에서 가장 낮은 것이다. 농촌에 사는 촌부가 농부라기보다는 다양
사회서비스는 사회적 취약 계층의 자립과 생활 능력을 높여 주기 위한 지원 제도이며, 도움이 필요한 모든 국민에게 복지, 보건 의료, 교육, 고용, 주거, 문화, 환경 등의 분야에서 삶의 질이 향상되도록 도움을 주는 제도이다. 사회서비스는 공공과 민간 부문에서 함께 제공하여 자활의 능력을 심어 주는 데 주력함으로써 생활의 불안 요인을 실질적으로 해소해 줄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사회서비스는 혁신을 통해 공정한 사회 구현과 사회문제 해결, 그리고 공공 책임성 강화라는 기대 속에서도 민간 중심의 공급 구조로 인해 서비스 시설에 대한 신뢰도와 국민의 정책 체감도 하락이라는 우려감을 낳기도 한다. 하지만, 수요자 맞춤형 서비스 제공과 온 국민이 체감하는 보편적 돌봄서비스 구축을 위해 사회서비스 혁신은 꼭 필요하다. 사회서비스의 수요는 사회경제적 여건 변화로 인해 급증하고 있지만, 공급은 여전히 부족한 상태이다. 이는 경제사회발전에 비해 사회서비스에 대한 공공투자가 미흡하기 때문이며 이로 인해 국민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줄 서비스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민간 위주의 서비스 공급자에 대한 품질관리 체계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있으며, 사회
가자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했다. 이번 공격으로 인해 중동 정세는 다시금 불안해지고 있다. 중동 지역의 정세가 불안해지면, 유가 상승으로 인해 우리 경제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번 경우, 경제에만 영향을 줄 것 같지 않다. 한반도 정세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정리하면 이렇다. 첫째, 이번 전쟁이 북한에게 학습 효과를 줄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북한은 이미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에서, 상대를 먼저 건드리면 다른 국가들이 쉽게 참전하기 힘들다는 점을 배웠다. 이런 와중에 북한은 하마스로부터 또 하나를 배우게 됐다. 즉, 전격적이고 다발적인 공격을 가하면, 상대는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개발한 아이언 돔의 능력에 대해 자랑해 왔다. 그런데 하마스가 5000여 발의 로켓을 한꺼번에 쏘자, 아이언 돔은 무용지물이 됐다. 이런 결과는 북한에게 상당한 자신감을 줄 수 있다. 현재 북한은 자주포, 방사포, 장사정포를 동원해 시간당 1만6000발의 포탄을 남한에 쏟아부을 수 있다. 북한이 한꺼번에 포탄을 쏟아부을 경우, 이런 공격을 효율적이고 효과적으로 막을…
필자는 본 난(9월 7일 자)을 통해 '서사 부재 시대의 비극'을 쓴 바 있다. 그런데 재독 철학자 한병철 선생의 『서사의 위기』가 8일 뒤인 15일 번역 출간되었다. 이 책이 먼저 출간되었다면 읽은 뒤 보다 풍부하게 글을 전개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임이 인다. 필자는 자신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사람들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칼을 휘두르는 흉악 범죄가 유행이다시피 하는 현상을 서사의 부재에서 찾고자 했다. 한 선생이 책의 근저로 삼고 있는 발터 벤야민에 따르면 근대는 (대)가족 공동체의 붕괴를 통한 개인의 출현을 근간으로 한다. 근대 사회는 공동체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움직인 것이다. 특히 근대 후기로 접어든 한국의 경우 학력계급사회가 되어 개인의 파편화·원자화를 더욱 부채질한다. 카페가 건물마다 하나씩 들어서 있는 것은 잃어버린 공동체에 대한 노스탤지어로 작용하는 것으로 필자는 보았다. 이는 서사 부재 시대라는 강력한 반증이 아닌가 하고 반문한 것이다. 하지만 필자가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통한 서사의 부재를 말했다면 한병철 선생은 SNS를 분석의 틀로 삼아 서사의 위기를 풀어나간다. 그의 분석을 압축하면 페이스북 등 SNS는 서사가 아닌 셀링 스토리(S
1887년 평안도 선천에서 태어나 평양의 일신고보를 졸업했다. 1904년 하와이로 노동이민 갔다가 본토로 옮겨 도산 안창호의 공립협회에 가입하였다. 이 단체에서 도산의 지도를 받으며 활동하다가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토쿄를 거쳐 귀국했다. 국권회복이 목표였다. 1907년. 스무살이었다. 100년 전, 뜻있는 약관의 청년들은 대개 이와 같았다. 1909년 1월. 이토 히로부미가 순종황제와 함께 평양에 온다는 정보를 듣고 동료들과 평양역에서 대기하다가 도산 안창호의 '전략적 만류'를 받아들여 연해주로 떠났다. 그 해 10월 26일. 하얼빈에서 안중근이 그 '동양 제1적'을 쏘아죽였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 목표를 이완용으로 바꿨다. 백범일지 '민족에 내놓은 몸' 편에 보면, 이재명과의 인연이 상세히 나온다. 의사는 미국서 돌아와 오인성이라는 여교사와 결혼했다. 부인은 남편의 계획을 듣고 강하게 반대했다. 이견으로 다투다가 오발이 발생했는데, 집밖에서는 그 총성을 심각하게 여긴 것 같다. 동네 유지가 마침 그 마을에 와서 머물던 백범에게 청년을 데리고 왔다. 백범이 타일러서 총을 챙겼고, 함께 있던 노백린 장군이 "서울에서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두 거인은 얼마 후…
알고리즘이 추천해 주는 유튜브 영상 중에 ‘카푸어’ 관련 내용이 올라오는 채널이 있다. 영상에는 자신의 경제적 상황을 뛰어넘은 차를 산 사람들이 나와서 본인의 차를 자랑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한 달 수입의 대부분을 차에 올인한 사람들이 주로 나오는데, 드물게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슈퍼카를 구입한 사람들이 나오기도 한다. 최근에 본 영상에는 20대 초반 대학생 A가 독일 슈퍼카를 타고 나왔다. 차량 가격이 카푸어 마인드로도 감당이 되지 않을 만큼 큰 금액이었다. 유튜버가 A에게 부모님 찬스를 쓴 게 아니냐고 물었지만, 본인이 차 리스 비용을 지불한다고 했다. A가 다니고 있는 대학은 서울권 4년제가 아닌 잘 들어보지 못한 학교였다. A는 어떻게 돈을 벌고 있을까. A는 고등학교 때부터 컴퓨터 프로그램과 모바일 앱을 만들어서 파는 중이라고 했다. 프리랜서 개발자로서 몇 억대의 실 수령액을 받고 있었다. 일반 직장인은 평생 연봉으로 받기 어려운 금액이고, 사회에서 선망하는 전문직들이 오랜 수련 끝에 버는 돈을 어린 나이부터 벌고 있었다. 그는 이미 한 분야의 전문가로서의 삶을 살고 있었다. 문득 A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주위로부터 선망 받는 학생이었을까…
찰거머리처럼 질긴 여름이 가을에게 자리를 물려주면서 들녘에 벼가 고개를 숙이고, 농민들의 추수에 보답하거나 기다리고 있다. 남한 농민들에게는 연례행사로 벼수매 문제가 관심사항으로 떠오름과 동시에 북한의 작황에 대해서도 궁금해 한다. 2017년부터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2020년에 440만 톤을 기록하고, ’23년 상반기 북한의 대중 쌀 수입(10만 톤 이상)이 2019년 동기간 대비 약 5배 증대한 것을 들어 식량난을 부정하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금년 7월까지 아사자 240건 발생을 근거로 최악의 식량위기 발생을 추정(국정원)하는 등 엇갈린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여기서 생각해 볼 점은 북한 식량난을 분석하는 접근방법이다. 북한의 ‘기근’원인을 주로 공급(식량 가용량 감소)의 문제 또는 접근성(식량획득력 감소) 문제로 인식함으로서 북한주민이 왜 식량 접근성이 약화되었는지, 영양 부족현상에 대한 ‘과정적-미시적’ 설명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그것이다. 이 때문에 권위주의 체제가 제제 정당화와 사회 안정화를 위해 식량 공급 전 과정을 통제하는 전략을 의미하는 ‘양정(food politics)’의 관점에서 분석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권위주의 체제들은…
짐작은 했지만, 우리 사회의 우울증 확산이 예상보다 심각하네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최근 5년간(2018∼2022년) 우울증 진료 인원 현황’ 통계에서 지난해 우리나라의 우울증 환자는 모두 100만744명으로 집계돼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어섰다는군요. 2018년에는 75만2천976명이었으니 불과 5년 사이에 32.9%나 증가했다는 얘기에요. 최근 확산하고 있는 온갖 사회병리적 현상은 이런 변화와 과연 무관할까요? 사실 우리가 만끽하고 있는 문화의 악영향 중에 가장 고약한 것은 바로 조울증(躁鬱症) 조장이죠. 창작이라는 명분으로 양산되는 온갖 자극적인 유흥들, 특히 전자기술과 연계돼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수많은 오락이 거의 그렇잖아요. 인간의 희노애락을 극단적으로 충동하는 창작물일수록 흥행이 보장되는 시대에 1년 열두 달 하루 24시간 사뭇 인간의 오감을 뒤흔드는 문화가 범람하고 있는 게 사실이니까요. 기분장애의 대표적인 질환 중 하나인 조울증은 기분이 들뜨는 조증이 나타나기도 하고, 기분이 가라앉는 울증이 나타나기도 한다는 의미에서 ‘양극성 장애’라고도 해요. 이 증상은 대략 기분이 비정상적으로 고양되면서 생기는 다양한 증상의 조증 삽화(Manic Epis
잠깐 시계를 2018년으로 돌려 보자. 4월,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함께 걷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6월 싱가포르에서의 트럼프-김정은의 역사적 만남, 9월에는 문-김의 평양시내 카퍼레이드와 능라도 5.1경기장에서의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 모습, 다음 날 백두산 정상에서 두 정상이 함께 손을 쳐드는 감격, 우리는 잠깐이나마 남북통일이 꿈이 아닌 현실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후 이상하게 꼬여 가는 북미관계를 보면서 불안감을 느끼다, 이듬 해 2월 하노이로 향하는 열차 속의 김정은 위원장을 보며 다시 희망을 가졌었다. 그러나 노딜로 끝난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그래도 그 해 6월 판문점에서의 남ㆍ북ㆍ미 세 정상의 깜짝 회동에 다시 희망을 불 태웠다.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고 싱가포르 북미공동성명의 실천을 위한 후속 북미실무접촉을 갖는다는 트럼프의 약속에서 다시 한반도의 봄을 기대했었다. 그러나 다음 해 6월, 한미연합훈련의 지속과 싱가포르 약속 실행이 난망해 지면서 북한이 느닷없이 개성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시키는 장면을 보면서 1년여의 일장춘몽에서 깨어나야 하는, 가짜평화에 속았다는 좌절감과 배신감, 그 허망함은 지금까지도 우리 국민들의 의
1979년 10월 26일 밤. 궁정동 안가에 모인 유신정권의 수뇌들은 민주화를 요구하며 터진 부마항쟁에 대해 격하게 논쟁 중이었다. 국내문제를 제대로 대처치 못했다는 박정희의 질타에 이어 차지철 경호실장이 입에 바린 소리로 김재규 중앙정보부 부장은 순진해서 강경책을 못 쓴다고 비꼬았다. 차지철은 캄보디아의 200만 사망자를 들먹이며 우리도 그렇게 하자는 헛소리에 김재규는 준비한 총을 꺼내 들었다. 이런 버러지 같은 놈과 정치를 하니 정치가 제대로 되겠냐며 방아쇠를 당겼고 놀라는 박정희에게도 총구를 겨누며 말했다. “각하 정치를 좀 대국적으로 하십시오.” 10·26사태의 현장에서 벌어진 이야기다. 김재규는 파국으로 가는 정국을 풀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야당과 대화가 필요하다고 확신했지만, 박정희는 힘으로 밀어붙여야 한다고 믿었다. 박정희에게 정치는 무용지물이고 야당은 건건이 반대만 하는 상종 못 할 대상이었다. 그래서 김영삼 신민당 총재를 제명하고 이에 반발해서 총사퇴서를 던진 야당 의원들을 선별적으로 수리하려고 했다. 부산 마산지역에서 터진 유신철폐의 민주화 시위는 계엄령을 내렸음에도 가라앉질 않았다. 시위는 수도권으로 올라오기 직전이었다. 그야말로 정국의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