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드족은 뉴스 속의 나라였다. ‘어린 소년들의 늙은 노래’를 듣기 전까지. 그 노래는, 개봉한지 10여년 지나 보게 된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2004년 개봉/바흐만 고바디감독)’이라는 영화에 나온다. 언론 속에서 접한 쿠르드족의 이미지는 어떠했던가. 메마른 산악지역의 전사, 독립을 위해 늘 분쟁 속에 사는 투사… 그런 모습들이었다. 그 이미지 속에 아이들은 없었다. ‘취한 말들을 위한 시간’은 고아가 된 다섯 남매의 이야기다. 가난만 남은 집안에서 가장이 된 열두 살 맏이 아윱에게 학교는 사치고, 설상가상 죽을 병 걸린 동생을 위한 수술비 마련이 발등의 불이다. 어린 누나가 수술비를 보태려고 이라크 노인에게 신부로 팔려갔지만 돈을 받지 못한다. 아윱은 유일한 재산인 노새를 팔기 위해 밀수꾼들과 함께 이라크 국경을 넘는다. 제목의 ‘취한 말’을 은유로 생각했는데, ‘험산 넘는 노새가 한파에 쓰러질까봐 미리 술을 먹여 추위를 못 느끼게 하는 행위’에서 나온 말이었다. 삶이 곧 전쟁인 이 다섯 남매 입에서 나오는 노래가 고울 리 있겠는가? 그래도 그렇지. 트럭 뒤에 탄 아이들이 무심결에 부르는 민요 가사는 섬뜩했다. ‘인생이라는 놈은 나를 산과 계곡으로 떠돌
"지구는 두 나라가 성공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크다." 지난 11월 15일 샌프란시스코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이 한 모두 발언이다. 이에 대하여 바이든 대통령은 “경쟁이 갈등으로 바뀌지 않도록 관계를 책임 있게 관리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중국이 ‘공존’을 말하니, 미국은 ‘경쟁’으로 응수하였다. 바이든의 대중국 전략의 핵심 개념은 ‘전략적 경쟁’이다. 작년 11월 인도네시아의 발리에서 개최된 미중 정상회담에서, 바이든은 ‘신냉전’의 우려를 불식하고 대신 치열하게 ‘경쟁’할 것임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중국은 경쟁이 양국 관계에 큰 불확실성을 초래하고, 종국에는 대결과 갈등으로 밀어붙일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공존과 상생 협력’을 주장한다. ‘경쟁’에 대한 이들의 해석은 왜 이처럼 극명하게 다른가? 아시아사회정책연구소(ASPI)의 네이선 르바인에 의하면, “서구의 자유민주주의 정치에서 경쟁은 스포츠 경기에서의 경쟁과 유사하다. 서로 전력을 다하여 싸우지만, 상대를 정치의 장에서 제거하지는 않는다. 정치적 경쟁이 적어도 생사의 문제는 아니다.” 그러나 “중국에서 정치적 경쟁이란 권력투쟁이고, 권력투쟁은 경쟁자 제거의 서막이다. 종국적으로 생사의 문제
경기도 내 공공기관 부정 채용 사례가 올해 또 적발됐다. 산하 28개 공공기관 중 23개 기관에서 저질러졌다. 채용 비리가 좀처럼 근절되지 않는 것은 뿌리가 제대로 뽑히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채용의 공정’은 공공과 민간을 막론하고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온갖 지혜를 다 동원하여 기강을 다잡는 한편 비리가 발붙일 수 없는 ‘무결점’ 채용 시스템 구축을 서둘러 완비해야 할 것이다. 경기도는 8개 반 43명으로 감사반을 구성해 지난 7월 5일부터 8월 31일까지 공공기관에서 시행한 신규 채용과 정규직 전환 업무 전반에 대한 채용실태 특정감사를 실시했다. 감사 대상은 도 산하 공공기관 28개 기관 가운데 종합감사로 대체한 경기도사회서비스원, 시·군에서 감사를 추진한 경기테크노파크(안산시)·킨텍스(고양시), 지난해 12월 설립된 경기도사회적경제원 등을 제외한 24개 기관이다. 감사 결과 적발된 27건은 신규 채용과 관련된 사안이다. 유형별로 보면 공고위반 2건, 부당한 평가 기준 2건, 위원구성 부적정 3건, 규정 미비·위반 7건, 인사위원회 심의 누락 3건, 가산점 적용 부적정 5건, 기타 5건 등이다. 경기도의료원의 A병원은 응시 자격 미
동해안에 위치한 함흥-흥남은 오래전부터 이름난 명태어장이다. 함흥에서 동쪽으로 흥남 항구가 있다. 항구가 생겨나기 전 서호진 앞바다에서 명태가 많이 잡혔다. 명태가 많이 잡혔으므로 가공시설도 발달했다. 특히 흥남이 화학공업도시로 되면서 인구가 늘어나고 명태수요도 많았다. 멘타이코로 불리는 명란젓은 일본인들이 함경도 특산인 명란을 가져다 만든 것이다. 명태는 김장철인 지금 적기이다. 11월부터 1월까지 많이 잡히는데 특히 12월과 1월에 많이 잡힌다. 명태를 넣으려고 일부러 김장을 늦추기도 한다. 1980년 중반부터 명태가 사라지기 시작해서 지금은 금태가 되었다. 명태가 한창 잡히는 성어기에는 항구에 명태가 산처럼 쌓여 그것을 가공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었다. 지금은 명태 치어를 방류해서 명태생태계를 복원하려고 하고 있다. 명태의 고장인 함흥-흥남 지역은 명태로 만든 음식이 유명하다. 명란은 소금에 한번 절인다음 마늘과 고춧가루를 넣고 삭혀서 먹는다. 짠 맛의 명란젓이 아니라 새콤한 맛의 명란젓을 만든다. 창란젓은 명태 내장을 손질해서 고춧가루 마늘에 버무려 만든다. 명태식해는 명태를 좁쌀과 버무려 발효시켜 먹는다. 혹은 좁쌀을 넣지 않고 명태를 버무려 따
종교의 차이라니, 이 얼마나 기묘한 표현인가! 물론 종교를 공고히 하기 위해 시대에서 시대로 전해지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여러 가지 신앙은 있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젠다베스타(페르시아의 고대 경전), 베다(바라문의 경전), 코란과 같은 여러 가지 종교 서적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진실한 ‘종교’는 오직 하나뿐이다. 여러 가지 신앙도 다만 진정한 종교에 대한 보조 수단 외에 아무것도 포함하고 있지 않으며, 그 보조 수단은 우연히 출현한 것으로, 때와 장소에 따라 모습을 달리할 뿐이다. (칸트) 너는 그르고 나는 옳다고 말하는 것은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말 중에서 가장 잔인한 말이다. 특히 그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일 경우 더욱 그렇다. 그런데 종교에 대해 논쟁하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그 잔인한 말을 서로 거침없이 내뱉고 있다. 네가 만약 이슬람교도라면 그리스도교도에게 가서 함께 살아라. 만일 그리스도교도라면 유대인과 함께 살아라. 만일 가톨릭교도라면 정교도와 함께 살아라. 네 종교가 어떠한 것이든 신앙을 달리하는 사람들과 사귀어라. 만일 그들의 말에 네가 화내지 않고 자유로이 그들과 사귈 수 있다면 너는 이미 평화를 얻은 것이다
수원특례시와 캄보디아 시엠립주는 19년간 자매도시로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 수원특례시는 2004년 시엠립주와 국제자매도시결연을 체결한 후 빈민 지역인 프놈끄라옴 마을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지원사업은 단계별로 전개됐다. 화장실·공동우물·마을회관·도로·다리 등 주민 자립기반을 조성했다. 이와 함께 마을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끌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중·고등학교도 설립했다. 현재 프놈끄라옴 수원마을은 시엠립주에서 가장 쾌적하고, 살기 좋은 마을이 됐다. 수원마을 주민들의 소득을 증대하고 자립역량을 강화시키기 위한 4단계 지원사업도 추진됐다. ‘양봉 시범 가구’ ‘버섯재배·새우양식 시범 가구’ 사업이 그것이다. 수원시의 지원은 의료부문으로까지 확대됐다. 2007년부터 ‘캄보디아 수원마을 의료봉사단’이 코로나19로 인해 방문이 어려웠던 2020~2022년을 제외하고 매년 수원마을을 방문해 인술을 베풀고 있다. 올해도 수원시 관계자와 수원시의회 의원, 수원시장안구보건소, 아주대학교병원·화홍병원, 수원시의사회·치과의사회·한의사회·약사회·간호사회·안경사회, 경기도 간호조무사회·물리치료사회, (사)행복캄 등으로 구성된 대표단은 수원마을에서 봉사활동을 펼쳤다. 수원시 의료인으
얼마 전 우리재단의 장학사업팀 직원이 장학금 기부에 대한 보고서를 가지고 왔다. 화성시 향남에 있는 초등학교에서 기부금 전달을 문의했다는 내용이었다. 우리재단은 공익법인이기 때문에 기부금 접수를 할 수는 있지만 장학금이나 기부금 모금을 위한 홍보를 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장학금을 기부 받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은 일이다. 별 생각 없이 결재를 하기 위해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니 사정은 이랬다. 이 학교에서는 매년 2학년 학생들 모두가 ‘우리가 마을을 위해 직접 할 수 있는 일’을 실천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 동안은 주로 학교 주변의 마을에서 쓰레기를 줍는 활동을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활동을 하고 싶어졌다. 2학년 선생님들이 머리를 맞대고 찾아낸 일이 나눔장터를 여는 것이었다. 학생들은 집에서 쓰지 않는 물건들을 가지고 와서 서로 사고 팔아 모은 돈이 30만원이었다. 선생님들은 이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 논의한 끝에 우리 재단에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화성시인재육성재단에서 형편이 어렵거나 운동, 예술에 재능이 있는 학생들을 지원한다는 정보를 알게 되었다고 했다. 학생들에게 동의를 구한 후 아름다운 돈 30만 원이 그
서울 가 살자 “그 이불솜 베개 다 버리고, 우리 이제 서울 가서 살자...미련 없이 버리고, 서울 가 살자”고 한다. 대중의 마음을 파고 드니 대중가요이고, 순식간에 대중이 즐겨 들으니 유행가라 할만하다. 노래나 정책 이슈나 사회적 흐름과 시대를 반영해야 성공한다. 아이디어 차원에서 논의되었지만 이번에 갑자기 튀어 나온 ‘김포 서울 편입론’은 얼마 전 텔레비전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화제를 모은 노래 가사처럼 들린다. 이번 김포 서울 편입론은 지난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직후 여당에서 나왔다. 이 이슈의 소통 풍경은 어떠한가. 급부상한 메가시티론과 사라지는 지역분권론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여당이 이겼다면 이런 주장이 나왔을까. 언론 보도를 보면 여당은 일개 구청장 선거 결과라고 의미를 크게 부여하지 않으면서 선거 패배 국면의 전환용으로 새로운 이슈를 던진 것이라고 분석하는 듯하다. 또 새로 출범한 여당 내 혁신위원회가 특정 지역 다선 출신 의원들의 내년 총선 출마 자제 내지 험지 출마라는 일종의 혁신안에 대한 서울 포함이라는 아이디어라는 해석도 내놓는다. 다시 말하자면 행정구역 개편과 국토균형 발전이라는 장기적인 국가발전 목표를 깊이 검토한 주장이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연인’은 배우들의 열연과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역사를 실감 나게 재현해 내어 많은 호평을 받았다. 재미있게 보던 중 인상적인 장면들이 눈에 띄었다. 전쟁이 일어나고 여인들만이 피난하던 중 은애는 만주 군에게 겁탈을 당할 뻔하는데 이 찰나 비명 소리를 듣고 달려온 길채는 가지고 있던 은장도로 만주군을 찔러 죽인다. “여인이 오랑캐에게 욕을 당하면 죽는 것은 당연하거니와 잠시 적과 얼굴을 마주했다 해도 살 수가 있겠느냐”라고 받은 교육을 떠올리며 죽는 게 낫다고 절망하는 은애에게 길채는 “우리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라고 결연하게 말한다. 전쟁이 끝나고 정혼자인 연준이 은애에게 청혼하니 “나는 연준도련님의 각시가 될 자격이 없어,더럽혀진 몸이잖아”라며 한번 더 주저하는 은애를 설득하며 너는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말하며 그 당시의 유교사회의 시선과 달리 혼인을 응원한다. 그 후 길채는 은애보다 더 심한 일을 당했지만 죽으려고 하지 않고 생명을 택하고 오히려 오랑캐에게 욕을 당했다고 치욕으로 우물에 빠져 죽으려는 여인도 구해낸다. 수치심은 거부되고, 조롱당하고, 노출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존중받지 못한다는 고통스러운 정서를 가
LH사태로 일컬어지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 임직원들의 부동산투기를 폭로한지 2년이 지났다. 당시 상황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수많은 제보를 통해 LH임직원 뿐만아니라 정치인을 포함한 공직자들에 대한 수사가 이루어졌다. 아직도 법원에서 형사재판이 진행중인 것도 있다. 이른바 LH사태로 인해 공공주택특별법, 한국토지주택공사법, 도시개발법,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 국회법, 공직자윤리법, 농지법 등 7가지 이상의 법률들이 개정되기도 했다. 공직자, 공공기관 임직원들의 내부통제가 강화되고, 우리사회의 부동산 투기에 대한 감시제도가 강화된 점 등 상당한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 LH사태 해결방안의 하나로 제시된 농지법 개정이 과연 타당했는지. 당시 제도 개선방안으로 제시한 것들이 LH사태에서 혁신 내지 개혁의 주체라고 한 대다수 LH내부 구성원들이 수긍할만한 내용인지를 반문할 시간이다. 농지법은 경자유전의 원칙이라는 헌법상의 대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과연 경자유전의 원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지에 대한 근본적 논란이 있다. 설령 경자유전의 원칙을 고수한다고 해도, 지난 LH사태로 촉발된 농지법 개정은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즉 경자유전의 원칙대로라면, 농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