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그렇지 우리 아배 참봉 나으리. 내 생각한 대로, 절대 남들이 말하는 파락호 아닐진대.” 1995년 아버지 김용환이 독립운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는 날, 딸 김후웅은 이같은 내용의 ‘우리 아배 참봉 나으리’라는 글을 남겼다. 김용환은 집안 말아먹을 난봉꾼이라는 뜻의 파락호(破落戶)를 수식어로 하는 안동의 실존 인물. 노름과 난봉질로 세간의 온갖 비난을 받았음에도 해방 후 독립운동이 인정돼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게 됐다. ‘신행 때 농 사오라 시가에서 맡긴 돈, 그 돈마저 가져가서 어디에서 쓰셨는지? 우리 아배 기다리며 신행 날 늦추다가 큰 어매 쓰던 헌 농 신행 발에 싣고 가니 주위에서 쑥덕쑥덕. 이 모든 것 우리 아배 원망하며 별난 시집 사느라고 오만간장 녹였더니 오늘에야 알고 보니 이 모든 것 저 모든 것. 독립군 자금 위해 그 많던 천석 재산 다 바쳐도 모자라서 하나뿐인 외동딸 시가에서 보낸 농값, 그것마저 바쳤구나.’ 뒤늦게 사실을 알고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회한을 담아 쓴 딸의 편지 ‘우리 아배 참봉 나으리’를 제목으로 한 연극이 오는 12월 14~15일 이틀간 반월아트홀 소극장에서 시민들과 만난다. 경기문화재단 ‘20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19세 나이로 세상을 떠난 독립운동가 유관순 열사의 순국 101주기를 맞았다. 1902년 12월 16일 충청남도 천안시에서 태어난 유관순은 1919년 4월 1일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 당시 그의 나이 만 열여덟. 앞서 3월 1일 3·1운동을 시작으로 이화학당 친구들과 서울 학생단 시위운동에 참여했다가 경무총감부에 붙잡혔다 풀려나기도 했다. 4월 1일 아버지 유중권, 어머니 이소제 등과 함께 시위를 주도한 유관순은 그해 5월 9일 공주법원에서 5년형을 받았다. 그와 아우내 만세 주역들은 6월 경성복심법원에 항소했으며, 이후 서대문 감옥에 수감됐다. 옥중에서도 독립만세를 부르고 동료들을 격려하며 뜻을 굽히지 않았던 그는, 그렇게 조국의 자주독립을 외치면서 1920년 3월 1일 오후 2시 옥중 만세시위를 이끌기도 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28일 모진 고문에 의한 방광 파열로 서대문 감옥에서 순국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사진 속 유관순 열사는 고문으로 인해 콧방울이 주저앉고 퉁퉁 부은 얼굴로 수감번호 371번이 선명히 찍힌 수의를 입은 모습이다
“우리 사회가 76년 전에 광복했지만 지금도 독립운동가들의 정신과 이념을 후손들에게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재준 전 수원시 제2부시장은 21일 수원SK아트리움 소공연장에서 열린 역사학자 심용환과 함께하는 ‘항일 렉처 콘서트’ 현장을 방문해 무대에 오른 청소년들을 응원했다. 독립운동가들의 숭고한 정신을 가슴에 새기고 일제잔재 청산을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한 그는 “얼마 전 광복절이었는데 독립운동을 하셨던 우리 선조들을 기리는 의미 있는 공연이 열린다니 매우 반갑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어 “친일은 아직도 우리 주변에 있다”며 “반일 감정이 친일을 배격하는 건 아니다. 독립정신의 가치와 이념을 우리 후손들에게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독립운동가 이상철의 자손이라고 밝힌 그는 자랑스러운 마음을 드러내며 “큰 할아버님이 독립운동을 하셨는데 우리 선조들의 정신과 이념을 후손들에게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또한 이번 공연에 대해 “자라나는 청소년들과 수원시민, 더 나아가 경기도민들이 항일 독립 투사들의 의지와 그 의미를 가슴에 새길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전했다. 끝으로 이재준 전 부시장은 “76년 전에 광복했지
성남문화재단(대표이사 노재천)이 독립운동가를 웹툰으로 재조명하는 3년 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간다. 독립운동가 100명의 삶과 정신을 담아내기 위한, ‘독립운동가 100인 웹툰 프로젝트’의 마지막 년차는 ‘평화’를 주제로 한 34점의 새로운 작품 제작을 목표로 한다.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성남시와 함께 추진해온 공공프로젝트의 올해 사업은 ‘위대한 시민의 평화’를 중심으로 안중근, 유관순, 독도 등이 만들어질 예정이다. 특히 해마다 작품의 25~30% 이상 여성 독립운동가를 재조명한데 이어, 이번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독립운동가 10인 이상의 삶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기회를 만들겠단 계획이다. ‘머털토사’, ‘임꺽정’을 그린 한국만화의 거장 이두호 작가를 비롯해 대한민국 순정만화 대표작가인 이은혜, ‘아만자’의 김보통, ‘코믹 메이플스토리’의 서정은 등 40여 명의 작가가 참여한다. 아울러 제102주년 3.1절을 기념해 성남시 공공도서관과 협업으로 1차 웹툰 프로젝트 작품을 책으로 발간한 ‘독립운동가 33인의 이야기’와 웹툰 캐릭터 사진 전시, 독립선언문 필사 등의 행사를 14개 도서관에서 7
독립유공자 단체인 광복회가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을 폄하하는 발언을 한 만화가 윤서인 씨를 대상으로 억대 규모의 소송을 제기했다. 광복회는 25일 서울중앙지법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 씨를 상대로 위자료 청구소송을 낸다고 밝혔다. 이번 소송의 청구금액은 총 2억 4900만 원이다. 이 자리에는 김원웅 광복회장과 생존 독립 운동가 임우철 애국지사도 참석했다. 김 회장은 이날 "윤서인 사건을 보면서 참담한 심정"이라며 "더 큰 문제는 우리 사회에 제2의 윤서인, 제3의 윤서인처럼 독립운동을 폄하하고 친일을 찬양하는 그런 사람들이 적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친일을 찬양하고 독립운동을 폄하하면서 역사를 왜곡하는 자를 처벌하는 법을 만들어 줄 것을 국회에 강력히 요구한다"고 전했다. 아울러 "(광복회) 회원만 8300명이고 유족까지 합치면 7만2000명이다. 오늘 249명이 소를 (제기) 하지만, 나도 하겠다는 사람(회원)들이 전국에서 쇄도하고 있다"라면서 "앞으로 연속해서 계속 소송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사건을 대리하는 정철승 변호사도 "잘못된 역사 인식 하에 2~3년 전부터 점점 도를 넘는 망언과 허위사실 유포 그리고 명예훼손에 대해 위자료 청구
“대한독립 만세, 대한독립 만세.” 우렁찬 함성이 쏟아졌던 1919년 3월 1일. 전국에서도 가장 격렬했던 수원의 만세운동은 수백 명이 모인 방화수류정에서 시작됐다. 수원의 대표적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인 김세환은 3·1 만세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48인 중 한 명이다. 제102주년 삼일절을 앞두고 민족주의 운동을 위해 일생을 바친 그의 삶을 돌아보고자 한다. 1888년 11월 18일 수원 남수동 242번지에서 태어난 김세환은 당시 보시동에 세워진 감리교회에서 자연스럽게 기독교를 접하고, 서양의 문물과 학문을 배웠다. 이곳은 현 북수동에 위치한 종로교회로 수원성내 최초의 개신교회이며, 천주교도들이 병인교난에 피 흘린 순교의 터, 북수동 368번지 종로사거리로는 1907년 이전했다. 서울에서 보성중학교와 관립 한성외국어학교를 졸업한 그는 이후 일본에서 유학하며 신학물을 배운 뒤 귀국해 고향인 수원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했다. 김세환이 처음 교편을 잡은 수원상업강습소는 지역의 조선인 상업인들 주도로 1908년 4월 15일 설립된 수원상업회의소 내 학교로, 상업에 관한 지식과 기능 강습을 통한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했다. 현 수원고등학교의 전신인 수원상업강습소는 191
“이 사회는 새 교육을 받은 새 일꾼을 요구한다. 거듭 말하노니 우리는 서로 손을 잡고 농촌으로 달려가자.” 일제강점기 농촌계몽운동에 일생을 바친 독립운동가 최용신. 그의 헌신적인 행적은 1935년 심훈의 소설 ‘상록수(常綠樹)’를 통해 널리 알려졌으며, 주인공 채영신의 실제 인물이다. 안산시 상록구 상록수공원 내 위치한 최용신기념관은 최용신을 기리고자 안산시가 지난 2007년 건립한 공립박물관이며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이다. 특히 이 터는 최용신 선생이 당시 샘골마을사람들과 세운 샘골강습소가 있던 곳으로, 1931년 YMCA 교사로 샘골마을에 파견된 그는 자립심과 애국심을 기르는 교육활동과 농촌운동을 펼쳤다. 지난 20일 찾은 최용신기념관에서는 최용신이 농촌계몽운동가로서 이바지한 일생을 둘러볼 수 있었다. 이날 하루 동안 20명 넘는 관람객이 찾았다고 하며, 자녀의 손을 잡고 오거나 카메라로 역사를 담는 이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최용신은 1908년 함경남도 덕원군 현면 두남리에서 태어났으며, 부친의 본관은 경주로 선조들이 대대로 살아오다가 12대조의 원산 귀양을 계기로 덕원군에 정착했다. 이곳은 일찍이 기독교 전래와 교회, 학교를 운영하는 등 서구문물
본명 김순이. 향기로운 꽃 향화(香花)란 기명을 지닌 수원 권번을 대표하는 기생으로, 1919년 3월 29일 만세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체포됐다. 1897년 한성부(현 서울특별시)에서 아버지 김인영, 어머니 홍금봉의 딸로 태어난 김순이는 어린 나이에 수원군 북수리 48번지에 사는 나이 많은 정도성과 결혼해 호랑이 같은 시어머니를 봉양하고, 자신보다 나이 많은 딸을 보살피며 시집살이를 한다. 1914년 아버지 김인영의 사망 전보를 받고 급히 서울로 향했던 김순이는 생계가 막막해진 가족들과 남수리 202번지로 이주해왔고, 남편과 갈등을 겪으며 결국 18살 나이에 이혼하고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수원 권번의 기생이 된다. 말할 수 없는 꽃이라 하여 ‘해어화’라고 불리던 기생은 조선의 신분제 안에서 천민에 속했다. 일제강점기 이후부터는 권번에 속해야 기생이 될 수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기생의 교육뿐 아니라 기생들이 요정에 나가는 것을 지휘·감독했다. 권번 입학은 8살부터 20살 여성으로 제한됐고, 시문(詩文)과 음곡(音曲), 습자(習字), 가무(歌舞), 예의(禮儀), 시조를 교육 받고 졸업시험에 통과해야만 기예증을 받아 기생활동을 할 수 있었다. 수원예기조합의 중심
오는 3월 1일 삼일절을 앞두고 관객들을 찾은 ‘향화’는 기생이라는 신분으로 살았지만 그 누구보다 대한독립을 위해 앞장 선 김향화이자 김순이의 삶을 돌아보게 했다. 경기아트센터가 2021년 레퍼토리 시즌 첫 작품으로 창작가무극 ‘향화’를 선보였다. 경기아트센터와 서울예술단이 공동제작한 ‘향화’는 1919년 수원지역의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여성독립운동가 ‘김향화 열사’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지난 20일 찾은 경기아트센터 대공연장에는 오랜만에 문화나들이에 나선 관객들의 기대와 설렘이 가득했다. 마스크 착용과 손소독제 사용, QR코드 명부 작성 후 들어선 공연장은 사회적 거리두기 세 자리씩 띄어앉기로 운영됐다. 막이 오르고 매일신보 퇴역 기자는 오랜 수소문 끝에 마침내 김향화로 살아간 김순이를 찾아내 취재하며, 지난 세월을 거슬러 우리가 기억하지 못했던 사실들을 밝혀낸다. 1897년 경성에서 태어나 수원으로 시집을 가게 된 김순이는 “엄마가 ‘순이야’하고 부르면, 동생이 ‘언니야’하고 부르면 행복했죠”라고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표하며 애절함을 더한다. 아버지 김인영이 사망하고, 열여덟 나이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게 된 김순이는 천변길을 걷다 수원 권번을 찾는다.
만화가 윤서인 씨가 최근 논란이 된 자신의 독립운동가 글에 대해 사과한다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사과문 내용을 보면 정말 사과인지 의문이다. ‘너무 짧게 쓴 게 실수’, ‘표현이 부족해서 오해를 부르고, 그래서 저들에게 빌미가 된 점’ 등을 적은 것을 보면, 논란이 된 상황 자체에 대한 사과일 뿐이다. 해당 발언으로 상처를 입었을 독립운동가 후손들에 대한 사과라고 하기 어려워 보인다. 사과 내용과 진정성 여부와는 별개로,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으로 구성된 광복회는 윤 씨를 상대로 수십억 원대 소송을 예고했다. ◇ 윤서인 "표현이 부족해 오해"…누구를 향한 사과? 윤 씨는 지난주 자신의 페이스북에 친일파 후손이 산다는 고가 단독주택과 독립운동가 후손이 산다는 허름한 집이 비교된 사진과 함께 “친일파 후손들이 저렇게 열심히 살 동안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도대체 뭐 한 걸까. 사실 알고 보면 100년 전에도 소위 친일파들은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이고 독립운동가들은 대충 살았던 사람들 아니었을까”라는 말을 남겼다. 해당 게시물이 논란이 되자 윤 씨는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번에 논란이 된 제 글은 너무 짧게 쓴 게 실수였다”며 “글의 의도를 모두 풀어 쓰면 아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