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BS 텔레비전 방송을 타고 열정적인 몸짓과 현란한 언술을 한껏 발휘하며 우리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도올의 노자 강의도 이제 일상사의 한 부분이 되어 그 충격이 거의 잊혀진 듯하다. 그러나 그것이 한 시대를 구획하고 우리에게 던져준 문제는 여전히 시퍼렇게 살아있다. 그것은 그 시점에서 돌출한 것이 아니라 이전 세기부터 꾸준히 성장해오던 새 세기의 시대정신을 일정하게 건드렸기 때문이다. 그가 일찍이 ‘동양학, 어떻게 할 것 인가?’라는 선진적인 문제의식을 제출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 문제의식이란 다름 아닌 근대과학의 한계에 관한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무엇보다 먼저 서양 근대과학 자체 내에서 이미 지난 세기의 진입기에 그 단서가 열렸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존 뉴턴의 만유인력법칙을 상대화한 아이슈타인의 상대성원리가 그것이다. 이것은 근대 ‘존재론’의 바탕인 물질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시간-공간이란 기본 범주를 상대화시킴으로써 ‘관계론’으로 이행하는 통로를 비밀스럽게 열어젖힌 기념비적 사건이다.
기존 다윈의 적자생존론으로부터 마굴러스, 도킨스의 공생진화론으로의 진화, 천체물리학 분야에서 굴드의 단속적평형론의 등장, 생태학의 발전에 따른 제레미 레프킨의 엔트로피론의 등장도 그러한 갈래에 잇대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연과학 분야의 변화 움직임을 반영하면서 서구에서 의미 있는 사회적 전화를 가져온 것이 이른바 68혁명이다. 구좌파의 교조적 혁명이론이 퇴조하고 사회 변혁의 움직임은 명상과 성찰을 동반한 거대한 호흡조절기에 들어섰는데, 그런 와중에서 ‘해체’라는 이름으로 묶이는 각종 유파들이 등장한 것도 우리가 익히 아는 바이다.
87년 이후의 한국 사회운동의 변화도 크게 보면 그러한 세계적인 흐름과 궤를 같이한다. 증산, 동학, 개벽, 평화, 생태, 생명, 명상 등이 이제 더 이상 속세를 떠난 산사람들만의 수도의 수단이기를 그만둔 지 오래이다. 심지어 전투적 노동운동 단체에서까지도 이제 ‘마음공부’는 필수 과목이 되었고, 폐교를 활용한 수련원을 설치하여 조직적으로 구성원들을 교양시키고 있을 정도이다. 그리고 그러한 획기적 전환은 ‘동양적 세계관’과 친연성이 있는 것으로 여기는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어 있는 듯하다.
그렇다면, 서양적 세계관의 어떠한 지점까지를 우리가 계승해야 하고,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하여 동양적 세계관의 어떠한 지점을 새롭게 도입해야 하는 것일까?
근대 과학의 방법론은 거칠게 이야기하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먼저, 일정한 가설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 가설을 입증하기 위한 가능한 많은 사실들을 수집한다. 이들을 일정한 범주에 따라 정리하고, 분석하며, 종합한다. 이를 현실에 적용하여 검증한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원래 가설을 수정, 폐기, 확정하는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점차 근접한 결론에 도달한다. 자연 현상을 분석할 경우에는 시험관 등의 기구를 사용하거나 진공 상태 등을 만들어 실험을 거치며, 사회 현상의 경우에는 ‘추상력’을 통하여 핵심적인 개념을 다듬어 나가기도 한다. 우리는 이러한 방법론이 유의미하다는 것을 알고, 이를 정당하게 계승할 것을 인정한다.
그런데 세계를 인식하는 이러한 근대적 과학방법론은 무엇이 문제이며, 어떤 점에서 한계를 가지는가? 그리고 왜 이 지점에서 근대 세계에서 패배했던 동양적 세계관이 다시 문제로 되는가? 이를 ‘논어’의 틀을 살펴보면서 정리해보기로 하자. 필자는 이를 ‘학-도-입-권’으로 요약하고 싶다. 여기서의 ‘학’은 근대과학 방법론에서의 그것과 그 엄밀성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큰 틀에서는 다르지 않다.
결정적 차이는 그 다음 단계에서부터 시작된다. 근대과학은 이성을 매개로 하여 이른바 과학성, 객관성, 엄밀성에 모두를 맡기지만, 동양 고전은 여기서 다음의 ‘도’의 단계로 나아간다. 그것은 ‘자기 적성을 발견하는 과정’이며, 이전의 ‘학’의 과정이 이성을 매개로 지식을 거대하게 쌓고 정리해가는 과정이라면, 이 ‘도’는 감성에 의지한 채로 지금까지 쌓여왔던 것들을 하나씩 덜어내면서 있는 그대로의 자연과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거쳐 비로소 우리는 세계에 대한 자기의 입장을 갖게 되는 ‘입’의 단계로 가게 되고, 그 위에서 세상의 다양한 존재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권’(저울)의 단계로 진입할 수 있게 된다. 바로 여기가 근대과학을 넘어 동양사상이 새롭게 조명되는 지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