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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방황 끝내고 돌아온 느낌”

인터뷰-소설가 윤대녕씨

책을 읽다보면 연필을 들어 밑줄을 그으며 읽고 싶은 소설들이 있다. 문장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혹은 글이 주는 내용이 가슴에 와 닿아서 오래 기억하고 싶다. 소설가 윤대녕(45)씨의 작품들이 그렇다. 마치 사연이 담긴 글처럼 말이다.

 

“80년대에 대학을 다녔다는 사실 자체가 내 작품을 절대적으로 지배했다. 비록 운동권 소설은 쓰지 않았지만 당시는 ‘인간 존재 자체’를 다룬 소설이 부재하다시피 해서 그 부분을 내 몫으로 기꺼이 받아들였다.”

‘제비를 기르다’
윤대녕 지음 창비 출판/320쪽,9천800원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천지간’을 비롯해 존재론적인 작품들을 써왔던 윤씨가 올초에 작품집 ‘제비를 기르다(창작과 비평사)’를 출간했다.

소설가 신경숙씨는 이 책의 뒷표지에 ‘그는 사소한 개인을 신화적으로 이끌 줄 알아서 그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나도 너도 사뭇 소중하고 장엄해지는 것이 은근히 살아갈 맛이 생겨난다’고 썼다.

이 책 또한 그런 맥을 잇고 있다. 그의 데뷔 이후 작품들을 보다보면 인간에 대한 성찰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내 작품들은 70, 80년대 문학이 제시했던 민중노동해방문학의 소설 문법에서 인간과 존재로 주제를 이동시켰다고 생각한다. 이념에 가려지고 억눌려 있던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탐구가 필요한 시기였다.”

이번 작품집 ‘제비를 기르다’에 대한 작가 노트가 궁금했다.

“‘탱자’와 ‘고래등’ 두 편은 제주도에서 쓴 작품이고 나머지 여섯 편은 일산으로 돌아와 작년에 집중적으로 쓴 작품들이다.”

이번 작품집에는 유난히 죽음에 대한 내용이 많이 등장한다. 친구의 죽음인 ‘낙타주머니’를 비롯해 병든 아버지를 찾아가는 ‘편백나무 숲 쪽으로’, 죽음을 앞둔 고모가 조카를 찾아오는 ‘탱자’ 등이 그렇다.

“…이듬해 산에 진달래 필 무렵 애아버지는 기차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었다. 조용한 밤이었다. 왜 그리 세상이 조용한지 마치 내가 다음세상에 와 있는 것 같더구나. 그런 날이 숨막히게 며칠이나 계속됐다. 이틀 뒤 산에 갖다 묻는데 진달래꽃들이 모두 검게 보이더구나. 무섭게도 눈물 한방울 나오지 않더라. 세상이 온통 적막해 울어도 소리가 들리지 않았겠지.” (소설 ‘탱자’ 중)

윤씨가 소설 ‘탱자’에서 고모의 입을 빌려 말하는 죽음은 이렇다.

“전에 ‘새무덤’이라는 단편에서 아버지의 존재를 다룬 적이 있다. 그 작품의 다시 쓰기, 혹은 심화가 ‘고래등’이다. 현실의 내 아버지와 비슷하게 겹치는 부분이 있고 나 자신이 중년이 되다 보니 아버지 시대의 삶과 그에 따른 고독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 동시에 여성 존재(혹은 일생)에도 관심을 갖게 되어 제주도에서 ‘탱자’라는 소설을 쓰게 된 동기가 됐다.

이전 작품들과 많이 달라진 느낌이었다. 한때 그는 제주에서 머물다 뭍으로 돌아왔다.

“상징적인 의미이긴 하지만 바다를 사이에 두고 이 년 동안 제주에서 살고 일산으로 복귀하는 시기에 자아와 존재에서 타인과 서사로 시점이 이동한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윤씨의 소설들을 보면, 어디론가 무작정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일단은 나 자신의 생래적 습성과 연결돼 있을 것이다. 로드로망의 매혹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그것이 바로 인생의 행로라는 고전적 주제와 또한 선을 추구하는 불교적 만행의 의지와 맞물려 있다.”

‘올봄에 통영에서 제주로 오는 배 안에서 마주친 어떤 늙은 중이, 사람은 가끔 정화(淨化)되지 않으면 나이를 먹을 수 없으리라 내게 말하였다. 그래서 굳이 갈 곳이 없음에도 바다를 건너게 되었다고 말이다. (···) 정화가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내 손에 들려 있는 빨갛게 타들어가는 담뱃불과 옆에 놓인 빈 소주병을 가리켰다. 그러고 나서 덧붙이기를, 죽음에 들기 전에도 아마 다시 이러리라 멋쩍게 웃으면서 말하는 것이었다.’ (소설 ‘탱자’ 중)

그가 쓴 작품들은 유난히 아름다운 선을 지니고 있다. 그 선은 독자들에게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길을 떠나는 이의 모습. 윤씨의 작품들은 마치 깨달음을 위해 길을 떠나는 선승(禪僧)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30대는 젊은 날의 행로였다. 모성 찾기와 세계 편력. 그러나 이제 그것도 끝난 것 같다. 여행이란 무릇 돌아오기 위한 것이고 이제는 돌아왔다고 느낀다. 그때는 말하자면 방황이 필요한 시기였다. 그리고 오랜 방황 끝에 간신히 돌아올 수 있었다.”

윤씨의 소설에는 불교, 신화, 동양고전 등 많은 요소가 결합돼 있다. 그러나 그는 등단한 90년 즈음에, 시대적인 상황인 소비에트 해체 이후의 감각을 동시에 표현하고 싶어했다.

이는 개인, 내면, 환상 같은 요소 등을 말한다. 윤씨는 여전히 끊임없이 글에 전념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최근 발표되는 문예지에 그의 이름이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최근에도 계속 문예지에 단편을 쓰고 있다. 하지만 올해 안에 그동안 준비해온 장편을 시작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앞으로 보다 좋은 소설을 썼으면 싶고 독자들이 많이 읽어줬으면 하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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