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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여인을 통해 반추해본 나는 누구인가?

인터뷰- ‘리진’ 작가 신경숙

 

‘리진1·2’ 신경숙 지음
문학동네 출판
각권 296·360쪽 9천 800원

“나는 누구일까요? 나란히 걷던 콜랭이 걸음을 멈추고 리진의 어깨를 안았다. 리진은 슬며시 콜랭의 팔을 밀어냈다. 나는 누구일까? 조선에서는 해보지 않았던 생각이다.”(신경숙 장편소설 ‘리진’의 일부)

신경숙(44)씨가 최근 출간한 소설 ‘리진’은 존재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된다. 이 소설은 조선시대 말 궁중 무희의 삶을 근대적인 입장에서 조명하고 있다.

신씨는 “이 소설의 주인공 ‘리진’은 매우 아름답고 총명한 여인으로 100년 전 프랑스로 건너가 새로운 문화를 습득하고 소박한 근대인의 삶을 꿈꿔오던 중 을미사변이라는 악을 만나 좌절하면서 잊혀진 여인”이라고 말했다.

근대(近代)라는 말을 세계사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봉건사회가 끝난 다음에 전개되는 시대를 지칭한다.

특히 이 시기는 공동체에서 ‘나’라는 개인의식이 성립되는 때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리진은 그 시대를 조명하는 근대의 상징으로 비춰진다.

소설 ‘리진’은 아주 작은 역사적 기록에서 시작된 역사소설이다. 하지만 역사소설보다는 이런 점에서 현대소설로 읽힌다.

신씨는 왜 ‘리진’을 소설 속으로 끌어 들였을까. 그는 4년 전 우연히 보게 된 이야기 속에서 리진을 발견했다. 이후 신씨는 그 여인을 소설로 되살려보겠다고 결심한다.

그의 이런 생각은 프랑스까지 건너가 100년 전인 19세기 프랑스 곳곳을 서성거렸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100년 전에 살았을지도 모를 여자의 행적을 뒤쫓았다.

헝가리 태생의 미학자 게오르그 루카치는 ‘내 영혼을 증명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소설 속에서 ‘리진’이 프랑스로 떠난 것은 어떤 것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

“당시는 100년 전이다. 더구나 여성이 새로운 세상으로 떠난다고 해서 떠나지는 세상이 아니었다. 리진의 프랑스 행은 여러 상황이 만든 것이지만 새 세상을 보러가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여기에 그녀를 사모하는 세 남자들과의 관계가 현대소설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신씨는 “콜랭은 리진을 사랑하지만 근본이 제국주의자이고, 홍종우는 개화를 내세우지만 역시 왕권주의자이며 국가주의자이다. 강연은 어떤 이념에도 자신을 묶어두지 않은 채 리진이라는 여성만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세 사람은 표현이 모두 다르지만 리진을 향한 마음이 지극하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러나 세 사람은 완전 다른 인물이다. 강연은 역사에 없는 사람으로 제국주의자 콜랭의 반대편에 조선 남자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내가 탄생시킨 인물이다. 그는 유년부터 리진과 함께 지내오다 후에 궁중무희가 되는 리진을 따라 궁중 악사로 등장시켰다”고 덧붙였다.

콜랭을 따라 프랑스로 떠났던 리진은 조선에 대한 향수병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다시 돌아오게 된다.

“리진은 근대에 완전히 동화되지 못한다. 루브르 박물관의 예술품이나 블로누 숲속에 아프리카인들을 집단으로 이주시켜 놓고 구경하는 모습 등에서 근대라는 이름으로 발생하는 착취를 동시에 보았기 때문이다. 귀국한 리진은 봉건사회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조선을 보며 영혼의 안식처를 찾지 못한다. 여기에 비틀린 홍종우의 사랑, 강연의 희생, 콜랭의 변한 마음들이 더해지면서 방황하게 된다.”

이 소설에서 조선으로 돌아온 리진이 오랜만에 왕비와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들었을 때 왕비가 ‘자느냐?’하고 묻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리진에게 왕비는 어떤 존재로 비춰질까.

“두 사람은 정신적인 모녀 관계이다. 나는 리진을 다 읽은 사람들이 지금껏 명성황후로 지칭되는 왕비에 대한 이미지를 새로 얻길 바란다. 그간의 왕비는 권력자로 왜곡된 채 인간적인 모습은 은폐돼왔다. 심지어 그녀의 최후는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베일에 싸여 있다. 그것은 힘이 강한 자들이 진실을 은폐해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리진에서 왕비를 여성으로서 어머니로서 접근했다.”

신씨는 왕비 시해라는 을미사변을 통해 리진의 삶을 조명하고 있다. 리진은 이 사건을 목격하고 좌절을 겪게 된다. 을미사변은 리진, 그녀에게 ‘나’라는 존재를 확인하는 일로 비춰진다.

“리진은 을미사변의 진실을 알리려고 다시 조선 공사로 돌아오는 콜랭에게 편지를 남겨놓고 궁에서 생을 마치지만 그것마저 은폐된다. 나는 은폐에 대해 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는 신씨의 모습에서 정체성을 찾고자 몸부림치는 리진의 아픔이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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