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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윤근일 기전문화재연구원장

 

윤근일(61) 기전문화재연구원장에게는 늘 꼬리표처럼 따라 붙는 수식어가 있다. 바로 ‘금동신발의 사나이’와 ‘우리나라 고고학계의 산증인’이다.

 

천마총 금관부터 황남대총 금관과 금동관, 백제 입점리 금동관과 금동제 신발, 관식, 물고기 장식의 금동신발 등에 이르기까지 웬만한 연구가들은 평생에 한 번 구경도 못할 법할 귀하디 귀한 유물들을 직접 발굴한 장본인인 까닭이다.

 

그런 그가 지난해 9월11일 평생을 몸담았던 정든 국립문화재연구소를 떠나 경기문화재단 부설기관인 기전문화재연구원(이하 기문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취임 1주년을 앞둔 그를 만났다.

 

33년 발굴인생 이젠 ‘숨’ 같아…

윤근일 원장은 숨 가쁘게 달려온 시간에 대한 소회를 묻자 대뜸 “지난 1년의 시간에 대해 말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기문원에 왔어도 실제 업무 자체에는 큰 변화가 없거든요. 그저 인생의 연장선일 뿐이죠.”

윤 원장은 고고학이라는 학문이 우리나라에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은 1970년대 초, 우연한 기회로 ‘고고학의 늪’에 빠졌다. 인생의 절반이 넘는 시간을 뿌연 먼지와 함께 해왔으니 이제 그에게 있어 고고학이라는 학문은 숨 쉬는 일보다 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여질 정도.

“대학(단국대 사학과) 1학년 시절 스승인 정영호 교수의 권유로 처음 사천의 패총발굴에 참여했어요. 이후 양평지석묘, 중원지구 지표조사 등을 했는데 아마 그때 고고학의 매력에 빠지게 된 게 아닌가 싶어요. 그저 여행과 돌아다니는 일을 좋아해 시작한 일이었는데 그때의 일이 인생을 결정짓는 계기가 된 셈이죠.”

그가 지난해까지 33년간 발굴인생을 펼친 곳은 바로 국립문화재연구소의 현장이다. 이 시기 윤 원장은 러시아과학원 시베리아지부 고고학민족학연구소와 공동발굴조사를 하기도 했다. ‘유물 복 많은 남자’라는 소리를 듣게 된 것도 이 때부터다.

“기문원에 와서 처음 느낀 것은 모든 직원들과 연구원들의 높은 의지와 열정이었어요. 다소 경직된 공조직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죠. 그런 의미에서 직원들에게 항상 고맙죠.”

 

 

발굴현장에서의 에피소드를 묻자 화려했던 발굴현장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목소리에 더욱 힘이 실렸다.

“한 번은 발굴조사를 하는데 촌노들이 와서는 ‘네놈들이 왕 무덤을 파니까 하늘이 노해서 비도 안 오고 가물다’며 호통을 친 적이 있어요. 촌노들이 돌아간 후 조심스럽게 흙을 걷어내는데 영락(구슬을 꿰어 만든 장신구)이 달린 노란 금관의 뾰족한 부분이 눈에 들어왔어요.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죠.”

천마도로 유명한 155호 고분(천마총)에서 순도 99.9%의 금관이 출토되던 순간이었다. 높이 3.5.cm의 전형적인 신라금관이었다.

놀라운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발굴된 금관을 조심스럽게 유물상자에 넣으려는 순간 갑자기 맑은 하늘이 갑자기 시커먼 먹구름이 드리워지면서 억수같은 비와 함께 천둥벼락이 몰아치기 시작한 것.

“믿기 어렵겠지만 간신히 금관을 안전한 곳으로 옮겨놓자 하늘이 조금씩 개이기 시작했어요. 천지개벽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죠.”

문득 그가 그토록 고고학이란 학문에 열망하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도전정신이죠. 항상 새로운 것을 찾아낸다는 것, 공통점은 있을 수 있어도 매번 똑같은 것은 있을 수 없거든요. 오래된 흔적을 따라 떠나는 여행이라고나 할까요. 전세계 각국의 발자취를 따라 문화유적을 발굴해보고픈 꿈도 갖고 있어요.”

그는 특유의 인자한 미소로 인터뷰에 응하다가도 ‘고고학’이라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자리를 고쳐 앉고 진지한 눈빛으로 ‘현장 고고학자’로서 식지 않은 열정을 보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 아니었나 싶어요. 빠지면 빠질수록 헤어나올 수 없는 늪. 고고학이 그래요. 원장 임명 당시 평생 터득한 것들을 다 쏟아내겠다는 다짐을 했는데 초심 그대로 가고 싶어요. 아직 발굴인생은 끝난 게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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