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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깨달음의 노래, 해탈의 노래<154>-깨달음의 길

만공에게 전법게를 내리는 경허 - 소설가 이재운

 

범어사에서 하안거를 마친 후 통도사 백운암에 이르러 쉬던 중 새벽 종소리를 듣고 마침내 그 공안도 타파하였다. 참으로 진정한 깨달음이라고 느낀 만공은 다시 경허의 시험을 받았다. 만공은 그 후 서른네 살이 되어서야 경허의 엄격한 심사를 거쳐 인가를 받았다. 경허는 전법게를 내렸다.

구름에 잠긴 달 / 계곡의 산이 모두 같음은 / 그대의 큰 가풍이네 / 글자 없는 도장을 / 은근히 그대에게 맡기니 / 일단의 기틀이 활안(活眼) 중에 있네.

이 때 경허는 이때까지 월면(月面)이라는 법명으로 불리던 그에게 만공이라는 호를 지어 주었다. 십 년이 지나서야 이룬 오도였다. 전법게의 첫 행이 그 십 년의 그림자를 담고 있다.

1946년 10월 20일, 양력으론 11월 말에 만공은 그가 거처하는 정혜사의 전월사라는 초가로 시자를 불렀다.

“내가 오늘 가야겠다.”

만공은 몸을 깨끗이 씻고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았다. 거울 속의 만공과 거울 앞의 만공이 잠시 눈빛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잠시 후 만공은 조용히 그가 왔던 곳으로 돌아갔다. 다비가 있던 날 백학의 무리가 온종일 배회하였다고 한다. 세수 75세, 법랍 62세였다.

1876년에 태어나 아홉 살의 어린 나이로 시골 서당에서 십팔사략(十八史略)을 읽던 중 인생의 근본 문제에 회의를 갖게 되었다. 천황 씨 이전에는 누가 있었느냐고 훈장에게 묻자 훈장은 반고라는 전설의 인물을 들어 그가 천지를 창조한 거인이라고 대답해 주었다.

이를테면 반고라는 거인은 구약에서 천지창조를 해보인 야훼쯤 되는 존재로서 그 이전은 모두 다 그분의 뜻이지 인간이 알 바가 아니라는 것이 훈장의 대답이었던 것이다.

“반고가 천지를 창조했느니라.”

한암은 반고 이전에는 누가 살았느냐고 질문을 고쳤다.

“반고는 누가 만들었나요? 반고 말고 누가 있었을 거 아닌가요?”

한암에게 있어서 천지를 창조했다는 반고도 산뜻한 해답을 가져다 주질 못했기 때문이었다.

반고 이전은 그냥 혼돈이었을까? 그렇다면 혼돈 이전은? 혼돈에서 천지창조라는 개벽이 일어났으니 그 이전에도 무슨 현상이 있었음에 틀림없을 거라는 생각의 사슬을 물고 자꾸자꾸 짚어 내려가보았지만 끝도 없는 미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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