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오년 설이 지났다. 2026년, 대한민국이 마주한 시대정신은 단연 불확실성이다. 국제 질서는 거칠게 요동치고,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 혁명은 산업과 노동의 지형을 근본부터 뒤흔든다. 세대·이념·진영 간 균열과 저출산·초고령·양극화는 공동체의 신뢰 자산을 잠식하고 있다. 이제는 정부의 국정목표나 대통령 개인의 리더십만으로 국가의 미래를 예측하고 설명하기 어려운 국면에 들어섰다.
이럴수록 주권의 주체인 국민은 멈추지 않고 질문해야 한다. 정치·경제·사회·문화는 물론 인구·교육·과학·복지, 안보·외교·통일·재외동포, 에너지·산업·노동·이민, 국토·균형발전·부동산과 기후·정보환경·주식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영역이 동시에 시험대에 올랐다.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꾸며 무엇을 내려놓을 것인가. 답을 미리 정해두고 설득에 나서는 정치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질문은 무지를 드러내는 행위가 아니다. 질문이 사라진 공동체는 정체와 퇴보로 향한다. 알면서도 묻고, 이해했다고 여겨도 다시 점검하는 사회만이 불확실성의 강을 건널 수 있다.
2014년 겨울, 히브리대학교를 찾았을 때의 일이다. 히브리어 집중과정인 울판 관계자는 한국인 유학생들이 좀처럼 질문하지 않는다고 했다. 사소해 보여도 곧바로 묻는 다른 학생들과 대비된다는 평가였다. 모르는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질문 자체를 주저한다는 것이다.
질문은 정답을 얻는 기술이 아니라 사고를 단련하는 태도다. 이해되지 않으면 묻고, 의심이 들면 확인하며, 합의가 필요하면 공개적으로 토론하는 과정이 곧 질문이다. 이때 구성원들의 자세가 중요하다. 아는 것은 분명히 답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하며, 오류가 드러나면 수정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질문이 정교해질수록 질문자와 답변자는 같은 방향으로 나아간다.
동양 고전 예기 학기편의 ‘교학상장(敎學相長)’은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에서 서로 성장한다는 통찰을 전한다. 논어 공야장편의 “묻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不恥下問)”는 구절도 다르지 않다. 질문에는 지위도, 나이도 없다.
끊임없이 서로 묻고 답하는 공동체만이 길을 찾는다. 멈춰 서서 답만 기다리는 순간 길은 막힌다. 그러나 한 걸음 내딛고 질문을 던질 때, 막혀 보이던 길은 다시 열린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구호가 아니다. 질문을 생활화하는 문화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반대 의견을 존중하고, 데이터와 근거로 검증하며, 시행착오와 실패를 기록해 다음 선택의 자산으로 삼는 열린 시스템 말이다. 질문과 대화를 두려워하는 리더십은 공동체를 분열시키지만, 질문과 대화를 환영하는 리더십은 공동체를 단결시키고 전진시킨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얼마나 성실하게 묻고 답하느냐에 달려 있다. 무엇을 지켜야 하고, 무엇을 고쳐야 하며, 무엇을 새롭게 발전시켜야 하는지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과 점검. 그 질문을 멈추지 않는 사회만이 불확실성의 시대를 건널 수 있다. 국가의 운명은 결국 정답을 강요하는 목소리가 아니라, 질문을 멈추지 않는 태도에서 갈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