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거후공(前倨後恭)이란 말이 있다. 전에는 거만했는데 나중에는 공손하다는 뜻이다. 상대의 입지에 따라 태도가 일변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세상인심이 야박하다고 하는데 이 말은 시대를 불문하고 통하는 이야기인 것 같다.
춘추전국시대 종횡가(제후들 사이를 오가며 여러국가를 종횡으로 합쳐서 경륜하는 외교술)로 손꼽히는 소진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원래는 낙양사람으로 청운의 꿈을 안고 제나라에 가서 귀곡자를 스승으로 삼아 학문을 배웠다. 수년 동안 제후들에게 유세하러 다니기도 했으나 모두 실패해 결국 실의에 빠진 채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때 그의 형제들은 말할 것도 없고 형수, 누이, 심지어는 아내, 첩조차 모두 그를 노골적으로 비웃었으며 “주나라의 풍속은 농업을 주로 하고, 상공업에 전력해 2할의 이익을 올리기에 힘쓴다. 그런데 당신은 본업을 버리고 혀를 놀리는 일에만 몰두했으니 곤궁한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라며 질책을 했다.
소진은 이런 질책의 말을 듣고 부끄럽고 한심스런 생각이 들어 방문을 닫고 틀어박혀 두문불출하게 된다. 평범한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르다는 특권의식에 젖어 살아온 자기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절친한 친구들의 방문도 거절하고 절치부심하며 세상을 보내고 있던 중 주서(周書)의 음부(陰符)를 손에 넣어 이를 탐독하게 된다.
1년 동안 지난 세월을 반추하며 학문을 연마한 끝에 소진은 고향을 떠나 연과 조나라로 가서 제·초·위.·한의 여섯 나라가 연합해 진나라에 대항하는 합종책(合從策)을 건의하게 된다. 소진의 유세는 그 전과는 확실히 달랐다. 마침내 여섯 나라는 합종의 맹약을 하고 힘을 합치게 되는데, 소진은 합종의 맹약의 장이 돼 여섯 나라의 재상을 겸하게 된다.
소진은 북쪽의 조왕에게 경위를 보고하기 위해 가는 도중 고향인 낙양을 통과하게 되는데 소진을 따르는 일행의 행렬이 임금에 비길만하게 성대했다.
주나라의 현왕은 이 소식을 듣고 도로를 청소하고 사자를 교외에까지 보내 위로할 정도로 소진의 위세는 보무당당했다. 이때 이 소식을 들은 소진의 형제, 처, 형수가 그 행렬을 보기 위해 애써 찾아왔지만 감히 면대하지 못하고 군중들 틈에 끼어 화려한 귀향을 곁눈으로 볼 뿐 감히 쳐다보지도 못했다.
소진은 고향을 통과하는 길에 식솔들을 찾아보기로 결심하고 이들을 부르게 되는데, 지난날 문전박대했던 일로 인하여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두려움에 떠는 것을 보고 소진은 웃으며 형수에게 “전에는 그렇게 거만하더니 지금은 이렇게 공손하니 웬일입니까”라고 묻게 된다.
형수는 넙죽 엎드리며 얼굴을 땅에 대고 사과하며 말했다. “지위가 높고 재산이 많기 때문입니다.” 소진은 탄식하며 말했다. “부귀하면 일가친척도 두려워하며 공경하고, 빈천하면 가볍게 보고 업신여기니 하물며 세상사람들이야 더할나위 없겠구나. 또 만약 내가 낙양성 부근의 비옥한 옥토 200묘만 가졌더라면 어찌 여섯 나라 재상이 되었겠는가” 그리고 나서 1천금을 뿌려 일족과 벗들에게 나눠줬다고 한다. 세상인심이란 것이 모두 이런 것이다.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하면 아무리 개인적 능력이 탁월한 정치가든, 아니면 CEO든 실패할 수 밖에 없다.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1988년 대통령 선거만 해도 검증문제로 출마를 포기해야 했다. 사생활 문제 등 각종 추문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을 극복할 수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1992년 대선에서는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economy, stupid)’라는 정치구호를 내걸어 승리했다. 지난번 선거의 쟁점이 도덕성이었던 반면 이번 선거에서는 경기침체와 회복이 민심을 지배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민심의 정확한 포착이 성공의 요인이었다.
이렇게 세상인심이라는 것은 변하게 돼 있다. 사람들은 권세가 있을 경우 빌붙고, 쇠락하면 푸대접하는 세상인심에 야합을 한다. 의리, 지조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세상의 이익만 좇는다. 이런 세상의 무상함을 일컫어 ‘염량세태’라 하는데, 이런 꼴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 정치권이다.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막상 정승이 죽으면 문전이 쓸쓸하다는 말이 있다.
정치권에서 지조와 의리를 찾기는 ‘네 발 달린 닭 찾기보다 어렵다’고 한다. 일본에는 ’원숭이는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국회의원은 떨어지면 사람도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세상인심이란 다 이런 것이 아니던가, 정치하는 사람에게서 의리를 찾아내는 것보다 차라리 네발 달린 닭을 찾는 것이 더 쉽다는 말을 음미해보면 실망할 일도, 분개할 일도 없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