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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깨달음의 노래, 해탈의 노래<162>-깨달음의 길

판사직에 회의를 느끼는 효봉 - 소설가 이재운

그때 청담은 다음과 같은 조사를 지었다.

아이고! 아이고!

큰 법당이 무너졌구나

어두운 밤에 횃불이 꺼졌구나

어린 아이들만 남겨 두시고

우리 어머니는 돌아가셨구나

동산이 물 위에 떠다니니

일월(日月)이 빛이 없도다

봄바람이 무르익어

꽃이 피고 새가 운다

1890년 격동의 조선 말기에 태어난 동산은 일제와 육이오와 군부 정치라는 역사적 혼돈기를 살았음에도 한 점 흔들림없이 수행에 전념하다가 1965년에 입적했다. 세수 76세, 법랍 53세였다.

그의 문하에서 수많은 선객이 쏟아져 나와 우리나라 현대 선맥을 중흥시켰으니, 성철, 광덕, 지유, 고산, 무진장 등이 다 그의 제자다. 동산은 그의 법호이고 법명은 혜일(慧日)이다

효봉은 시대를 잘못 타고났다. 하필이면 혼돈이 극치를 이루던 구한말에 하필이면 시아버지 대원군과 며느리 명성왕후가 집안 싸움으로 나라 망치던 그 무렵에 태어났으니 말이다. 철이 들자 나라의 주인은 일제로 바뀌어 있었다.

그저 세상이 원래 그런 줄 알고 그는 일본 와세다대학에 입학해 법학을 공부하고 곧 평양의 고등법원으로 발령받아 판사로 일했다. 처음에는 절도니 폭행이니 하는 작은 사건이나 맡아서 그가 일제의 판사라는 사실조차 실감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판사 노릇 10년째 되던 해였다. 드디어 효봉은 곤란한 지경에 빠지게 되었다. 때마침 일제는 사상범 색출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효봉은 난생 처음으로 남을 죽여야만 하는 사건을 접수했다. 그것도 독립운동을 뼈를 깎는 고생을 하다가 잡혀온 독립 투사를 죽여야만 했다. 사건 자료와 증거로 미루어볼 때, 적어도 그가 쥐고 있는 법전, 즉 일본제국주의 형법에 의하면 그는 어쩔 수 없이 사형을 선고할 수밖에 없었다.

판사로서 막상 사형을 선고하고 난 효봉은 큰 회의에 빠져들었다. 독립 투사는 기어이 사형수가 되어 독방으로 끌려가 죽음의 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같은 조선인으로 그를 돕지는 못할망정 사형 선고를 내렸다는 자괴감에 그는 미칠 것만 같았다.

그는 마침내 무작정 판사직을 내던졌다.

그러고도 죄의식을 씻을 길이 없어 무조건 가출했다. 민족적 인간적 양심이 그를 몰아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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