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모습 그대로 간직한 팔달문(八達門), 화성의 북문이자 정문인 장안문(長安門)의 화성을 생각하면 수원이 생각납니다.
파리의 에펠탑처럼 어떤 도시를 생각하면 연상되는 상징물이나, 기준점이 되는 건물을 우리는 랜드마크(Land-Mark)’라고 부릅니다.
이처럼 도심 표지판 역할을 하는 시각적인 랜드마크도 있지만 감성적· 서정적 랜드마크도 있습니다.
여행전문가로 알려진 이용환 소설가, 이재웅 시인의 맛깔나는 글, 취재기자의 현장탐방, 그리고 뉴 미디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앵글의 사진으로 ‘경기도 新 랜드마크’ 를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1. 평화ㆍ통일의 전초기지 ‘도라산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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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덕분에 화성은 심심치 않게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화성의 안내 팸플릿은 한 마디로 이 모든 것을 요약해주었다.
정조의 얼 깃든 성곽따라 바쁜일상에 쉼표를 찍다
어쩌면 그래서였을지도 모른다. 화성의 안내 팸플릿을 들고 팔달문을 지나던 중 어떤 선입견처럼 성의 화려한 용모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었다. 하지만 화성의 첫 느낌은 화려한 것과 거리가 먼 것이었다. 팔달문에 어떤 숭고한 위엄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위엄이 압도할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팔달문을 지나 성 외곽을 따라 거닐기 시작 했을 때, 위엄보다 훨씬 강렬한 단아한 고요에 도취됐다. 어떤 은은함이 시름을 녹이며, 또 어떤 행복감이 허무처럼 가슴에 맺히는 느낌…. 부드러운 곡선의 언덕을 따라 도는 성곽들, 기와의 푸른 빛깔, 우거진 소나무 숲, 그리고 억새풀과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들.
화성의 억새풀밭에서 화성을 배경으로 사진 셔터를 눌러대는 아마추어 사진사들을 보았다. 성곽을 따라 거니는 동안 다이어트를 위해 달리기를 하는 중년 여성도 보였다.
노란 모자를 쓴 유치원생들이 긴장한 표정으로 유치원 교사의 안내를 따라 종종 걸음을 치고 있는 모습도…. 누군가가 성곽 바로 밑 도로에서 경적을 울리며 차를 몰고 가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수원 화성의 단아한 고요를 깨뜨리지는 못했다.
화성 안 행궁에 가서, 신풍루와 좌익문을 거니는 사이 뒤주가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았고, 그 뒤주에 담겨 있던 비극적 죽음을 어떤 단아한 고요처럼 느꼈다.
절규가 너무 강렬해서 고요처럼 느껴졌다고 할까? 절규는 오간데 없고, 햇볕은 쨍쨍하며, 현대의 도시인들은 나처럼 안내문을 들고 신용루와 좌익문을 지나 어딘가로 흩어져 가는 것이다. 나는 몇 백년 전 이 땅을 뒤엎을만 했을 비극적 사건이 이제는 이토록 무덤덤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에 대해서 어떤 아이러니 비슷한 감각을 느꼈다. 정조도 이것을 예상했을까?
나는 행궁 안 북군영에서도 이와 비슷한 감각에 빠져들었다. 북군영에서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시복, 각궁, 동개와 편전 같은 조선시대 군사무기였다.
그리고 그 때야 나는 뜨거운 여름날 선잠이라도 들었다 깨어난 사람처럼 이 화성이 한 때는 군사시설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나는 그때까지 어떤 박물관을 관람하듯 화성을 돌아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예측지 못하게 나에게 아주 소소한 감격을 주었다. 조선시대의 성이 ― 그것도 왕이 머물던 성이 ― 이제는 대한민국 수원의 하나의 휴식처, 관광명소가 되었다는 것이다.
장전도와 쌍검은 한 때 살과 뼈를 도려내는 살육의 무기였다. 하지만 이제는 하나의 전시품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몇 백년이라는 시간의 힘인 것이다.
이러한 소소한 감격이 어떤 씁쓸함이었는지 혹은 어떤 놀라움이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제야 나는 행궁 앞 종로 사거리의 북적거림을, 남양공원에서 크로킷을 치던 노인들을, 창룡문 앞의 외제차와 덜커덩거리는 트럭을 마치 두 눈이 차가운 빗물에 씻기운 듯한 감각 속에서 다시금 바라보게 되었다.
그 풍경은 조선시대의 화성이 아니라, 2007년 대한민국 수원의 화성이었다.
이것은 아마도 색다른 깨달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어쩐지 나에게는 이것이야말로 화성의 아름다움이나 관광명소로서의 위상보다 더 대단해보였다.
과연 이러한 성이 몇 개나 될까? 성문 안으로 말 대신 자동차가 달려가고, 시장이 서고, 아이들은 성곽을 따라 돌면서 장난을 치고. 내 학창시절의 소풍을 떠올려보면, 성은 언제나 차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먼 관광지이자 오지였고, 그 곳에서 느끼는 것이라고는 현대와 단절된 어떤 독립적인 역사, 혹은 고독과 그 비슷한 서늘한 감각 뿐이었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화성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성 중의 하나이고, 동시에 가장 행복한 성 중의 하나일지 모른다. 화성은 도시 한 복판에서 여전히 2007년의 사람들과 어울려 있으며, 고상하고 단아한 채로 도시의 소음과 공존하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이것이야말로 화성의 가장 큰 매력일지도 모른다. 어떤 성들의 풍경은 조선시대에 머물러 있지만, 화성의 풍경은 2007년도에도 살아있는 것이다. 만약 화성이 성곽의 진정한 꽃이라면, 그것은 아마도 수원의 야경과 함께 하는 것일테다. 정약용은 이것을 상상이나 했을까? /글=이재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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