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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3지구 주변은 역사고고학의 보물창고”

조계종·경기문화연대 학술발표… “위대한 문화유산 보존하자”

 

최근 문화유적과 문화유산의 밀집도가 높은 융건릉·용주사 일대(태안 3지구)가 보존과 개발이라는 갈림길에 서 있다.

이는 대한주택공사가 이 일대에 대규모 주택단지 개발 계획을 추진하면서 문화유산 보존을 요구하는 종교계와 학계의 반발을 사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조계종 총무원과 용주사, 경기문화연대는 지난 9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정조시대 문화예술과 효 문화재’를 주제로 학술발표회를 열고 조선후기 문화의 절정기였던 정조시대 문화예술의 역사적 중요성과 자료적 가치를 역설했다.

이날 학술발표회에서 정해득 교수(한신대)는 “융건릉·용주사 일원은 역사적·학술적·경관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 ‘역사고고학의 보고(寶庫)’”라고 강조하고 “길이 보전해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융건릉·용주사 일원(태안 3지구) 유적과 발굴조사의 성과’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이같이 밝히고 융건릉·용주사 일원의 역사적·문화적 가치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화성시 태안읍의 현륭원(융릉)·건릉, 용주사, 만년제, 독산성 등의 문화유적은 세계문화유산 화성과도 연계된 문화재로 화성 건설의 배경을 이루고 있다”며 각각의 문화재가 가진 가치를 역설했다.

특히 “일제시대 때부터 훼손이 시작된 융건릉·용주사 일원은 한국전쟁과 1960년대 융건릉 소유의 토지가 민간에 불하되면서 소규모 개발이 더욱 가속화됐다”며 “최근 직면하고 있는 대규모 택지개발이 진행된다면 역사적·학술적·경관적 가치를 지닌 귀중한 문화유산의 훼손이 불가피하다”고 우려감을 나타냈다.

◇풍수지리적 측면에서 바라본 융건릉

정 교수는 먼저 “풍수지리적 측면에서 볼 때 융릉이 위치한 곳은 반룡농주·대주향공의 형국을 지닌 명당으로, 일찍이 효종의 능침 후보지로 거론된 곳”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효종의 서거로 산릉을 정하기 위한 논의에서 거론된 후보지 가운데 수원을 적극 추천한 인물은 윤강과 윤선도였다”며 “특히 윤선도는 수원호장가 뒷산에 대한 산론에서 ‘눈에 번쩍 뜨여 상격임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면서 용대 풍수가 영릉에 비해서는 조금 못하지만 진정 천리를 가도 그러한 곳은 없고 천 년에 한 번 만날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고 밝혔다.

특히 “1989년 정조가 직접 정리한 천원사실(遷園事實)은 화산(花山)의 풍수에 대해 ‘용(龍)과 혈(穴)과 사(砂)와 수(水)가 모두 좋고 아름다운 수원의 화산은 진실로 천 리를 가도 없을 천재일우의 길지’라고 적고 있다”고 설명했다.

 

 

◇융건릉·용주사 일원의 문화유적 가치

정 교수는 융릉과 건릉에 대해 각각 “정조시대의 높은 문화수준을 가름할 수 있는 걸작”과 “융릉과 함께 정조 때의 문화융성의 기운과 양식을 반영하고 있으면서 19세기에 어떻게 변화해 나갈 것인지 보여주는 자료”라고 평가했다.

또 “952년 국왕의 후원으로 혜거국사가 대대적으로 중창한 용주사는 1634년 폐허가 됐다가 1652년 정학·효순 두 스님이 다시 중건했고 1702년 사리를 봉안했다는 기록이 있는 유서가 깊은 절”이라면서 “현재 용주사에는 다수의 소중한 문화재가 지정, 보호되고 있지만 아직도 상당수의 뛰어난 걸작들이 비지정 상태로 방치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용주사 소장 문화재는 전체적으로 재평가될 필요성이 있다”고 피력했다.

이어 “독산성은 3대에 걸친 왕과 왕세자의 행차가 이어진 유적이면서 정조의 효심이 어린 곳”이라고 강조하며 “조선시대 산성연구에 있어 빼 놓을 수 없는 역사가 깊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조선시대 수리시설을 엿볼 수 있는 만년제에 대해서는 “정조의 효심이 담겨있는 대표적인 유적”이라면서 “최근 만년제의 위치가 현재 위치가 아니라는 문제가 토지소유자들에 의해 제기돼 시굴조사가 실시되기도 했지만 조사결과 만년제는 의심의 여지없이 현재의 위치라는 결론이 내려진 바 있다”며 “훼손된 만년제의 원형복원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또 “원행·능행로는 어머니와 함께하는 원행이 보다 편안한 길이 되기를 바랐던 정조의 효심이 깃들어 있다”며 “때문에 원행·능행로는 그 자체로도 가치가 크다`”고 설명했다.

◇태안 3지구 발굴조사의 성과

정 교수는 태안 3지구 발굴조사의 성과로 정조재실터의 발굴, 백제-조선시대의 생활유적 발굴, 수원고읍성과 관아지 등을 꼽았다.

그는 “정조재실터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발굴된 유적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며 “이는 1800년 조성된 건릉의 부속시설물인 정자각, 비각, 수복방, 제기고 등의 건물지가 아직 태안3지구 안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뜻한다”고 주장했다.

생활유적으로는 “청자, 분청자기, 백자, 고려시대 야외노지, 고상건물지, 수혈유구, 통일신라-고려 초기 주거지, 조선시대 수전 경작지 등이 확인됐다”며 “조사결과를 통해 이 지역이 적어도 한성백제시기부터 통일신라기를 거쳐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수원·화성지역의 중심지로서의 기능을 했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많은 주민들이 밀집해서 살았던 태안3지구는 화산고분군과 고금산유적, 독산성유적, 기안리 제철 유적 등이 인근에 위치하고 있는 등 유적의 밀집도가 대단히 높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끝으로 “옛 수원부 읍치 지역은 융건릉으로 인해 지금까지 한적한 곳으로 남아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역사고고학의 보고(寶庫)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이라며 “앞으로도 이들 지역은 통일신라-고려-조선으로 이어지는 생활유적에 관한 귀중한 자료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토론에 나선 이남규 한신대 교수 역시 “융건릉·용주사 일원은 우리나라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선사-근세 유적의 보고”라며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매장문화재들을 감안해서라도 개발계획을 강행하려는 주택공사의 몰지각한 태도는 조속히 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강영철 성문미술문헌연구소장과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 강관식 한성대 교수, 박대남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 등도 주제발표 및 토론에 나서 문화재 정책에 대한 다양한 의견 및 대안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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