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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특집] “기축년 경제우려 쇠 심줄 근성으로 이겨내자”

성실의 상징 ‘우직한 소’ 신에게 바치는 제물이자 풍요러움을 상징하기도

 

 

기축년(己丑年) 소띠 해가 밝았다. 신화에 소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이미 고대에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제주도의 삼성혈(三姓穴) 신화는 소와 말의 목축 기원을 말하고 있다. 태초에 양을나(梁乙那), 고을나(高乙那), 부을바(夫乙那) 세 신인이 태어나고, 바다에 떠서 온 돌상자에 세 처녀와 망아지, 송아지, 오곡의 종자가 들어 있었다. 이들이 부부의 짝을 맺은 후 비로소 밭을 일궈 오곡을 심고 망아지와 송아지를 길러 날로 가족과 가세가 번창하였다. 오늘날까지 제주지방에서 회자되는 고부량 3성의 신화 줄거리다.

소는 풍요의 상징이면서 신에 바치는 제물이었다.

우리나라는 고조선 때는 물론 삼국 시대인 신라 시대까지만 해도 정치와 제사가 딱이 구별되지 않았다. 이를 제정일치(祭政一致)라 하였다. 신라는 입춘이 지나 첫째 돼짓날에 인간에게 처음 농업을 가르쳤다는 신농씨(神農氏)와 후직씨(后稷氏)에게 농사 잘되게 해달라며 선농제(先農祭)를 올렸고, 첫째 소날에는 바람을 관장하는 신에게 일년 내내 순풍을 보내 주십사하고 풍백제(風白祭)를 지냈다. 입하가 지난 첫째 돼짓날에는 신농씨와 후직씨에게 농사가 계속 잘되게 해달라며 중농제(中農祭)를 올렸으며 첫째 원숭이 날에는 비를 관장하는 신에게 때 맞추어 비를 내려 주십사하며 우사제(雨師祭)를 지냈다. 입추가 지난 첫째 돼짓날에는 신농씨와 후직씨에게 농사를 잘짓게 해주셔서 감사한다며 후농제(後農祭)를 올렸고, 용날에는 농업을 관장하는 신인 영성신에게 감사하다는 영성제(靈星祭)를 올렸다.

이렇듯 삼산오악(三山五岳)과 명산대천(名山大川)에서 풍년을 비는 제사를 지냈는데 이 때마다 제물로 바쳐진 것이 소였다.

조선 시대에 와서 정치와 제사가 어느 정도 분리되었으나 농사와 관련된 제사는 여전히 비중이 컸고 제주는 임금이었다. 이 때의 제단을 선농단(先農壇)이라했고, 경칩 후 첫 해일(亥日)에 임금이 친이 나아가 제사를 지냈다. 제사가 끝나면 큰 솥에 소고기국을 끓여 문무백관과 평민들이 함께 먹었는데 오늘날의 설농탕 시원이다.

옛 사람들은 소를 생구(生口)라고 불렀다. 식구(食口)는 가족을 말하고, 종이나 머슴을 생구라고 했는데 소를 생구라고 한 것은 소를 낮은 단계의 인격체로 보았기 때문이다. 농경사회에 있어서 소는 매우 귀중한 존재이면서 재산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도 그럴것이 밭과 논을 갈 때 소가 도왔고, 집안에 다급히 돈 쓸 일이 생기면 소를 팔아 충당했기로 소야말로 유용재산 1호라고 할만 하였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진면목을 소에 비유하였다. 선(禪)을 닦아 마음을 수련하는 순서를 나타낸 십우도(十牛圖)가 그것이다. 십우는 심우(尋牛:소를 찾아 나섬), 견술(見述:소의 자취를 봄), 견우(見牛:소를 봄), 득우(得牛:소를 얻음), 목우(牧牛:소를 기름), 기우귀가(騎牛歸家: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옴), 망우존인(忘牛存人:소를 잊고 본래의 자기만 존재함), 인우구망(人牛俱忘:자기의 소를 다 잊음), 반본천원(返本遷源:본디 자리로 되돌아 감), 입전수수(入廛垂手:가게에 들어가 소를 드리움, 궁극의 자리에 듦)이다. 이는 인간이 소를 찾고 있는 순서와 이미 얻은 뒤에 주의할 점과 회향(回向)할 것을 이르고 있다.

도교에서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을 표방하는 만큼 유유히 살기를 원한다. 옛 사람 가운데는 소를 타고 유유자적한 이가 적지 않았는데 조선 시대의 명재상 맹사성도 그 중 한사람으로, 말 대신 소를 타고 한양에서 그의 고향인 온양까지 오르내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소를 풍요와 여유, 성수러움의 상징으로 보는 데는 동서고금에 차이가 없지만 무술적 해석과 속신에는 큰 차이가 있어 보인다. 인도에서는 소를 세계의 창조자이자 양육하는 존재로 신성시하고, 중국 남부지방에는 소를 숭배하는 우묘(牛廟)가 있으며 베이징에는 거대한 소 청동상을 궁의 못가에 세워 못과 강을 어지럽히는 악귀를 쫓았다. 일본 오이타(大分)현에서는 1월 6일을 ‘소의 설’이라하고, 후쿠오카(福岡)현에서는 1월 11일을 ‘소의 첫부리기’라 하여 겨우내 묵혔던 쟁기를 꺼내 논을 간다. 오사카(大阪), 긴키(近畿)지방에는 우신(牛神) 신앙이 있으며 이시가와(石川)현에는 조왕신이 붉은 소를 타고 왔다는 적우총(赤牛塚)의 전설이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 소는 하늘의 여신 하트르와 함께 자연과 죽음을 관장하는 오시리스의 누이 동생이자 아내이며, 대지의 여신인 이시스로 머리 위의 쇠뿔 사이에 원반을 끼운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암소는 분석심리학에서 대모(大母)를 상징한다. 황소는 아버지이고, 암소는 어머니로서 모든 것이 근원의 원초적 포괄자, 즉 생성의 모체이자 회귀의 장으로 인식한다. 이미 태고적부터 전해오는 신화나 전설, 민담 등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소는 인간에게 도움을 줄 뿐 해를 끼치지 않는 존재이면서 불교의 십우도가 시사하듯이 인간이 바르게 살기 위해 지켜야할 참마음을 가르치고 있다.

소는 우직하다. 그러나 강하며 성실하다. 주인에 복종하며 배신하지 않고 받은 것만큼 보답한다. 동작이 느리지만 실수가 없고, 인내심은 그 어떤 동물과도 비길 수 없다. 인간에 의해 죽임을 당하면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고 간다. 희생의 극치다.

그래서 소를 주제로 한 명언과 속담이 많다. 우선 명언을 모아 보았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정의를 실천하지 못한다면 그는 말이나 소와 같다.”(정철). “소가 식용가축이 될 수 있다고 감히 말하는 정치가는 인도에 하나도 없다.”(간디). “계구우후(鷄口牛後), 닭의 부리는 될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 마라.”(사기) “수레를 끄는 소가 죽으면 부부가 운다. 그것은 혈육에 대한 사랑 때문이 아니라 소가 주는 이익이 크기 때문이다.”(안자) “진리는 회의론자들에게 우유를 더 이상 주지 않으려는 암소다. 그래서 그들은 황소의 우유를 짜러 갔다.”(S.존슨) “학식이 없는 사람은 옷을 입힌 소나 말과 같다.”(한문공) “할계언용우도(割鷄焉用牛刀), 닭을 잡는데 어찌 소 잡는 칼을 쓰겠는가. 하찮은 일에 거창한 수단을 동원할 필요는 없다.”(논어) 등이다.

속담도 생각보다 많다. “개구리들이 노려봐도 소는 물을 마신다.”(나이지리아) “느린 소도 성낼 때 있다.”(한국) “달걀 도둑이 소 도둑 된다.”(서양) “대신댁 송아지 백정 무서운 줄 모른다.”(한국) “물소 앞에서 하프를 연주해야 소용없다.”(미얀마) “소같이 벌어서 쥐 같이 먹는다.”(한국) “소는 뿔 때문에 사람은 혀 때문에 잡힌다.”(서양) “쟁기질 못하는 놈이 소 탓한다.”(한국) “제우스신에게 합법적인 것이 소에게 합법적인 것은 아니다.”(로마)

올해는 지난해 보다 살아가기가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내탓 네탓하며 포기할 수는 없다. “희망은 태양과 함께 돌아온다.”고 했다.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이유다.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창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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