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령 휴양림에 세한도 더 늙은 솔/ 이 저녁 바람벽이 빗소리 담아내고/ 다 못춘 엉거주춤은 살풀이로 다시 푼다/ 무시로 눈을 떠서 창밖을 살펴보니/ 허물로 벗어놓은 는개비 구슬 솔잎/ 어쩌면 산그늘 알래 저토록 맺혀있나(성춘복의 세한도)
오늘의 대표시인 53인들이 추사 김정희에게 바치는 헌사를 ‘시로 그린 세한도’란 제목으로 이근배 시인이 엮은 시집을 과천문화원이 발간했다.
이 시집을 집어 들고 한장 한장 넘기다보면 먹이 아닌 시로 그린 세한도(歲寒圖)도 묵향이 은은히 배어 나옴을 느낀다.
이들 시인들은 시(詩)란 형식을 빌려 가슴 아리는 추사의 고독을 읊조리고 예술세계를 노래했다. 비록 정형화된 활자이나 시문 하나하나가 살아 꿈틀대며 독자의 심금을 파고든다.
또 추사가 남긴 업적은 근·현대 시인들의 끊임없는 창작의 샘임도 말해주고 있다.
수록된 시는 총 63편.
문단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이름만 들어도 단박에 알 시인들이 추사를 애송하는 글 한점을 적어 그의 예술 혼을 기렸다.
성찬경은 ‘추사의 글씨에게’란 시제를 통해 /너를 키운 한국이란 물 한국이란 땅 한국이란 바람은/ 너의 천둥 같은 나래 소리로 해서 길이 멀리 떨칠 자랑을 간직한다./는 찬미가를 남겼다.
‘오적’, ‘타는 목마름으로’ 등의 명작을 쓴 김지하는 /추사가 살아 있었다는 그 일 하나만으로 37도의 이 무더위가 이무렇지도 않다/(하략)고도 했다.
추사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세한도를 시인들은 글제로 애용했다.
/대정 앞 바다의 물살로도 다 받아낼 수 없는 귀를 밝히는 소리가 빛으로 끓어 넘친다. 노인의 눈빛이 새잎으로 돋는다/(이근배) /그대가 그리는 건 길 잃은 두견, 물감으로 눈 그리면 날개를 치고 새한도 노송가지 별빛에 떤다./(오세정) /참 솔가지 몇 개로 견디고 있다. 완당이여 붓까지 얼었던가./ 생각하면 우리나라의 추위가 이 속에도 있고 누구나 마른 소나무 한 그루로 이 겨울을 서 있어야 한다./(정희성)
시인들은 추사가 머문 자리에서 시 한수를 낭독하며 그를 추모했다.
/죽로(竹爐)는 비어있고 바람만이 들고난다. 복제한 세한도 먹향기를 그리다가 백송 앞 성긴 그늘에 들어 흰구름을 우러른다./(최승범의 추사고택에서) /골목을 호령하는 바람 끝으로 어디서 본 듯하다. 봉두난발이나 꼿꼿이 허리세운 추사/(정군칠의 보성리 수선화)
‘시로 그린 세한도’는 우리 민족사에 큰 족적을 남긴 추사 김정희가 한 세기 반이 넘는 시공을 훌쩍 뛰어넘어 오늘날까지 살아 숨쉼을 보여주고 있다.
최종수 문화원장은 “이 시집을 통해 모든 한국인들이 추사 김정희 선생을 이해하고 늘 만나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다.”고 말했다.